삼천팔백일흔여덟 번째
나는 어떻게 여기에 있지?
생명이 어떻게 왔는가, 하는 질문에 세상에서는 창조론과 진화론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진화론은 과학적인 설명 같지만, 작동원리(mechanism)를 깊이 살펴보면 전부가 ‘우연’과 ‘저절로’에 의해 작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답니다. 우리 몸을 한 번 살펴볼까요? 세포의 크기나 모양은 생물에 따라 모두 다른데 전자 현미경으로 보면 대략 100분의 1㎜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세포 한 개에는 물과 무기물을 제외해도 약 1조 개나 되는 부품이 들어 있답니다. 보잉747 비행기 한 대에 약 600만 개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니, 인간의 세포 한 개에는 약 16만 6,000대의 보잉747에 들어갈 양의 부품 수에 해당하는 물질이 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를 어찌 우연히, 저절로 그리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창조론을 주장하고 있고, 창조주를 섬기는 것이지요. 불가에서 애송하는 700여 년 전쯤의 시 한 토막, “삶은 한 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 조각 뜬구름 스러짐이니 뜬구름이 본래 실체가 없듯 삶과 죽음도 실체 없기는 마찬가지라. 다만 한 무엇이 항상 홀로 나타나 담담히 삶에도 죽음에도 매이지 않네.” 우연히 인연에 따라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 이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존재의 현실입니다. 진화론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 두 구절은 이러한 존재의 현실을 받아들인 불교적 깨달음의 경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과 사, 나와 남의 차별과 집착이 없는 경지를 표현한 것으로, 다시 말해 내 머릿속 관념일 뿐인 이분법적 차별이 없는 불이不二의 경지, 생과 사, 나와 남의 차별이 없는 일물一物의 경지를 표현함으로써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어떻게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숙고하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