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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애(友愛)와 인(仁)의 상징 병아리>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닭(鷄)은 산란율을 다소 낮으나 성격이 활발하고 보호 본능∙포란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꿩과에 속하는 닭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인간에게 사육되어 길러졌다고 기록으로 전한다. 그래서 닭은 인간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닭을 명당(明堂)을 제시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닭의 힘찬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 ‘계성(鷄聲)’, 황금 닭이 뛰쳐나오는 곳 ‘금계(金鷄)’,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곳 ‘금계포란(金鷄抱卵)‘, 닭 벼슬과 같은 형상을 한 곳 ’계관(鷄冠)’, 등 닭의 이름과 관련된 곳은 명당중의 명당이라 한다.
옛날에는 제천의식에 닭을 이용하거나, 액을 물리친다고 닭의 피를 사용했다. 그리고 닭이 낳은 알을 ‘달걀‘이라 부르고 한자어로는 ’계란(鷄卵)’이라 한다. 한 개의 알에서 나온 두 병아리를 ‘쌍계(雙鷄)’라 하고, 젊은 닭인 ‘영계’는 원래 ‘연계(軟鷄)’에서 변한 단어이다. 병아리를 한자어로 ‘계추(鷄雛)‘라 하고, 병아리 같은 아이라는 뜻으로써 풋내기를 이르는 말로 ’추아(雛兒)‘라고 일컫는다.
또한 옛날 중국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전요(田饒)가 국왕 노애공(魯哀公)에게 이르기를 “임금께서 닭을 보시지 않았나이까? 머리에 갓을 쓴 것은 문(文)이고, 발에 며느리발톱이 붙은 것은 무(武)이고, 적이 앞에 있으면 용감히 싸우는 것은 용(勇)이고, 먹이를 얻으면 서로 부르는 것은 인(仁)이고,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는 것은 신(信)입니다.”며 닭을 치켜세웠다.
닭(鷄)에 대한 고사성어(故事成語)는 많으나, 병아리와 관련된 고사성어로는 ’줄탁동기(啐啄同機)‘가 대표적인 사자성어(四字成語)이다. 이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으로,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의 힘인 '줄'과, 어미 닭의 도움인 '탁'이 함께 이뤄져야 병아리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는 뜻이라고 한다. 의미가 깊은 말이다.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자세로 미래 천년 거제도의 문화시대를 모두가 함께 열어갔으면 한다.
<지란지교를 꿈꾸며>로 유명한 유안진 작가의 시, ‘계란을 생각하며’ 중반부 내용을 읽어보자. “밤중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다. / 남이 나를 헤아리면 비판이 되지만 / 내가 나를 헤아리면 성찰이 되지 / 남이 터뜨려 주면 프라이감이 되지만 / 나 스스로 터뜨리면 병아리가 되지 / 환골탈태(換骨奪胎)는 그런 거겠지.“
달걀의 환골탈태(換骨奪胎)는 ‘깨어짐’이다. 껍데기가 깨져야 비로소 프라이(fried eggs)가 되거나 병아리가 되는 것이다. 껍데기의 안팎에서 동시에 쪼아 깨뜨리면 새 생명 병아리가 태어난다.
같은 달걀인데 남과 북의 명칭이 다르다. 우리는 ‘닭의 알’의 준말 달걀이 표준어다. 물론 계란도 달걀의 동의어로 표준어다. 반면 북한에서는 1954년에 제정된 조선어철자법에 따라 ‘닭알’이 곧 그들의 표준어다. 평양에서 ‘닭알 장사 속 구구’라고 하면, “현실성 없는 공상만 하다가 얼마 안 되는 밑천까지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짓“을 비유하는 말이다. 가끔 뉴스에 달걀 맞는 정치인이 등장하는데, 원래 달걀을 던지는 유래는, 영국 빅토리아 왕조 때 슬랩스틱 코미디 배우들이 관객을 웃기기 위해 얼굴에 달걀 반죽을 발랐던 데서 시작됐다는 설이 있긴 하다. 범죄자나 부정한 정치인 등에게 달걀을 던지는 것은 갱생(更生)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항의의 내용이나 동기가 무엇이든 악감정을 담은 달걀 테러는 달걀에 대한 모독이다.
우리나라 옛 선조들은 병아리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했는지 살펴보자. 어미닭과 새끼가 함께 붙어 다니고, 또한 어미가 마시면 따라 마시고, 어미가 쪼면 따라 쪼며, 화기가 애애하여 “자정(慈情)과 효도(孝道)가 지극하다”고 여겼으며, 병아리가 부모를 잃어도 잠시도 서로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니는 것을 보고 “그 우애의 정이 볼 만하니 효도와 공손이라는 인(仁)을 하는 근본이다.“라고 찬양했다.
송나라 시대의 유학자 정호(程顥 1032~1085년)∙정이(程頤 1033~1107) 두 형제 즉,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나는 병아리를 볼 적마다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한다.’라는 뜻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보고 싶다.”고 하며 이를 ‘인(仁)’이라 했다. 뒤이어 중국 주자(朱子 1127~1279)가 말하길, “인(仁)은 일찍이 병아리로부터 그 맥(脈)이 유래되어 아울러 말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병아리의 곱고 여리고 가련함이 인(仁)과 닮았기 때문이다.”하였다. 주자는 인(仁)을 병아리로 말미암아 취하여 비유한 것이다.
이로 인해 동양의 정자(程子)∙주자(朱子)의 학문인, 정주학(程朱學) 성리대전(性理大全) 35권에 기록하길, “사랑의 이치는 인(仁)의 본체이니, 사랑의 이치가 인이기 때문에 성(性)이다. 인은 성이고, 측은(惻隱)은 정(情)이다. 측은은 인이 발하여 나오는 싹이다. 병아리는 생(生)의 의욕이 순수(醇粹)하니 인(仁)을 살펴볼 수 있다. 물을 마시고 모이를 쫄 때는 태연하여 싸우면서도 빼앗는 걱정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인(仁)이다. 만물이 모두 그러하니, 이것은 우연히 병아리를 보고 말한 것이다.”[愛之理 仁之體也 則愛之理是仁 故性也. 仁是性 惻隱是情. 惻隱是仁之發出來底端芽. 雛是生意醇粹 可以觀仁. 飮啄自如 未有爭鬪侵凌之患 只此便是仁.]
어찌되었건, 아기 병아리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아름답고 신기한 것으로 가득할 것이다. 보고 만지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드러내는 우리네 아기들의 모습과 꼭 닮았다. 병아리가 가진 세상에 대한 애정 어린 호기심은 우리 아이들의 마음과 같다.
1) 병아리를 기르며[將雛雞] / 김진규(金鎭圭) 거제면 동상리 거제여상 터 1689년~1694년.
거제도 귀양 중에 일이 없어 닭을 키웠는데 어미닭과 새끼가 함께 붙어 다니는 걸 보고 감동하여 이 글을 짓는다.(巨濟謫中無事養雞 見其子母相隨 感而有作)
“닭과 병아리를 길러보니 자주 놀라고 울어 고생스럽게 애를 썼다. 이전에 알에서 엎드려 있다가 또 알을 쪼아 나온다. 알에서 참고 굶주리며 살기 어려운 날이 며칠인지.. 그러한 뒤에 대부분 병아리로 태어난다. 털과 깃털을 크게 갖추지 못하고 힘이 약해 뒤뚱거리며 걷고 소리가 가늘어 "앵앵"거린다. 스스로 음식을 먹지 못해 어미닭이 벌레를 머금고 조를 쪼아서 먹이니 감탄할 뿐이다. 새끼 병아리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준다. 낮에 돌아다니다 반드시 돌아보고 돌아와서 밤에 잘 때에는 반드시 날개를 덮어 보호해준다. 대체로 병아리가 점점 커가나 어미를 떠나지 않는다. 혹 어미가 날기도 하나 좌측에 있건 우측에 있건 어미닭의 크나큰 사랑으로 병아리를 돌보니 한층 사랑이 깊어져 감탄스럽다. 병아리가 집에서 달아나는 것을 아직 참지 못하고 고양이나 살쾡이가 와서 훔쳐갈까 언제나 조심하며 부리를 내밀고 날개를 드날리며 함께 싸우고자 한다. 대다수 병아리는 오직 어미에게 의지한다. 어미의 지극한 은혜 어찌 알리오? 어미닭의 새끼 사랑에 감탄하나 "반포지효"를 바라는 건 아니다. 지극한 정성은 하늘이 부여한 것인데 나그네(본인)는 어머니와 이별한지 오래되어 이런 사실을 대하니 눈물이 비처럼 흐른다. 닭과 병아리를 기르며, 비록 괴롭고 수고스럽지만 너와 더불어 병아리들과 서로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로다.”
[ 將雛雞 辛苦頻驚啼 旣卵旣伏又旣啄 幾日忍饑不下棲 然後衆雛生 毛羽猶未成 力微步跚跚 聲細鳴嚶嚶 嗟雞啄粟含虫不自喫 分予衆雛食 晝行必回顧 夜宿必覆翼 衆雛漸大不離母 或飛母左或母右 嗟雞見雛之大愛轉深 未忍舍雛走 常恐貓貍來攘雛 張觜奮翅欲與鬪 衆雛但依母 豈知母恩厚 嗟雞 愛雛非爲望反哺 至情天所賦 客子別母久 對此淚如雨 將雛雞 雖辛苦 爾與衆雛能相聚 ]
[주] 반포지효(反哺之孝) :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孝)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란 후에 어버이 은혜를 갚는 효성을 이르는 말.
2) 닭장[鷄柵] 갑자년 1504년 여름 4월, 충주(忠州)로 귀양 간 이후 지은 시들이다. / 이행(李荇)
客居窘朝夕 타향살이에 조석 끼니 군색하여
糲飯常不羹 상에는 거친 밥에 늘 국도 없었지
鷇觫三雞雛 바들바들 떠는 병아리 세 마리를
厚餉拜吾兄 보내 준 그 후의 내 형께 감사하오. / 울종 형(蔚宗兄)이 보내 준 것이다.
廚子左右視 부엌 아낙이 좌우로 돌아보더니
揚刃請割烹 칼을 치켜들고 잡아먹자 하누나
殺之爾誠忍 죽이려는 너는 참으로 잔인하군
惻隱仁者情 측은한 마음이 인자의 정인 것을
解縛置堂下 묶인 새끼 풀어 뜰아래 놓아주니
呀呀尙哀聲 삐악삐악거리며 애처로이 울도다
其二小如拳 두 놈은 작기가 겨우 주먹만 하여
雌雄未可名 암컷 수컷도 아직 구별이 안 되고
其一稍長大 나머지 한 놈은 조금 자란 터라
赤幘頗崢嶸 붉은 벼슬이 자못 우뚝이 솟았지만
但傷左翮折 불쌍하게도 왼쪽 날개가 부러져
見人每虛驚 사람을 보면 언제나 화들짝 놀란다
不難恣汝輩 너희를 풀어 주는 게 어렵지 않으니
啄食蟲螘幷 모이 쫒고 벌레까지 쪼아 먹으면
我免供給費 나는 모이 비용을 안 대어도 되고
汝亦王生生 너희 또한 건강하게 잘 자랄 테니까
東家靑鵲猫 동쪽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란 놈
暴怒鳴甚獰 난폭하여 우는 소리 몹시 사나운데
嗟汝爪距弱 안타깝게도 너희는 발톱이 약하니
安敢與枝撑 어찌 감히 저 놈과 적수가 되리요
庭除數尺地 뜰 안의 몇 자 남짓 되는 땅에다
小柵易經營 작은 나무 울타리를 쉽게 지었나니
收汝日固護 너희를 거두어 날로 잘 보호하고
養汝稻與秔 너희를 나락 모이 주어 잘 기르마
我非太早計 내가 성급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風雨待先鳴 풍우 칠 때 먼저 울기를 기다리노라
[주] 풍우대선명(風雨待先鳴) : 《장자》 제물론(齊物論)에, “그대는 너무 성급하게 생각하는구나. 달걀을 보고 밤에 시각을 알려 주길 바라다니.” 하였다. ‘풍우(風雨) 칠 때’라는 것은, 성어(成語)로 풍우대상(風雨對牀)이라 하여, 친한 벗과 다정히 보내는 시간을 뜻한다. 이 구절은, 자신이 아직 자라지도 않은 닭에게 새벽을 알려 주길 바라는 성급한 생각을 가진 게 아니라, 풍우 치는 밤 벗에 대한 그리움이 몹시 깊을 때 빨리 울어 날이 새게 해 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 뿐이라는 뜻인 듯하다.
3) 병아리[雞雛] / 권근(權近 1352~1409)
愛養雞雛謹護藏 병아리 사랑하여 조심히 기르는 것은
知仁遺訓要無忘 인을 안다는 유훈을 잊지 않기 위해서네
憐渠不廢晨昏職 너 새벽 알림을 잘 지키니
在我當除日月攘 내 함부로 죽이지 않으리라
夢白直須安賦命 흰 닭을 꿈에 보고 천명을 알았거니
舐丹難與學仙方 단약 먹고 신선되는 법 배우기 어려워라
古來得失何時了 잘 되고 못 됨은 예부터이니 어느 때 그치랴
遭縛宜令老杜傷 노두가 묶인 닭 보고 슬퍼함이 마땅하네
[주1] 안부명(安賦命) : 자신이 죽을 것을 안다는 뜻으로 분수에 맞게 처신한다는 뜻. 진(晉)의 사안(謝安)이 병이 깊어지자, 친우에게 “옛날 환온(桓溫)이 살았을 때 내가 항상 온전하지 못할까 염려했더니, 꿈에 문득 온의 수레를 타고 16리쯤 가다가 한 마리 흰 닭을 보고 그쳤던 일이 기억난다. 온의 수레를 탄 것은 그 지위를 대신함이고, 16리는 금년이 16년째이고, 백계(白鷄)는 유(酉)를 맡았는데 금년 태세(太歲)가 유에 있으니, 내 병이 아마 낫지 않을 것이다.” 하고, 곧 상소하여 위(位)에서 물러나더니, 얼마 안 되어 죽었다.
[주2] 단약(丹藥) :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하는 약. 《신선전(神仙傳)》에 “회남왕(淮南王) 안(安)이 임종할 때에, 먹고 남은 단약 그릇을 뜰 가운데 놓아두었더니, 닭과 개가 핥아먹고 모두 하늘로 올라갔으므로, 천상에서 닭이 울고 구름 속에서 개가 짖었다.” 하였는데, 허황한 일이라는 뜻이다.
[주3] 노두상(老杜傷) : 두보의 슬픔. 둘 다 좋게 하기는 어렵다는 뜻. 《두시(杜詩)》 박계행(縛鷄行)에, 종이 닭을 시장에 팔러 가는 것을 보고, 그 까닭을 물으니 “닭이 벌레와 개미를 쪼아 먹는 것이 보기 싫어서입니다.” 하였다. 두보가 말하기를 “닭과 벌레는 같은 동물이니 어느 것에는 후하고 어느 것에는 박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니 그 닭을 풀어 주라.” 하고 탄식하기를 “닭과 벌레 둘 다 온전할 수는 없다. 벌레를 살리자니 닭이 죽고, 닭을 살리자니 벌레가 죽는구나.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잘못하는 것인가. 잘 되고 못 됨이 끝날 때가 없겠구나.” 하였다.
4) 닭[鷄]. 치고받다 마는 싸움 / 김옥균(金玉均 1851~1894)
“병아리 한 무리가 왠지 가끔 싸우는데 몇 차례 날개 탁탁 부딪치다 멈칫 서서 애틋이 바라보다간 문득 그만두고 만다.”[養得鷄雛十許頭 時來挑鬪沒因由 數回腷膊還停立 脉脉相看便罷休]
◯ 개화기 시절, 친일 친러 친중 친미 등 각종 파당이 생겨나 그야말로 반대를 위한 반대로 공연히 트집 잡아 맹렬한 기세로 싸우다가는 결국 흐지부지 그만두는 따위의 정쟁을 꼬집은 것이다.
5) 하계추[下雞雛] / 구암선생문집(懼庵先生文集) 이수인(李樹仁 1739~1823)
㐲雞時日久 닭이 알을 품고 시일이 지나가면
將子始成群 바야흐로 자식이 무리를 이룬다.
黃白纔交化 황색과 백색이 조금 섞이게 되고
雌雄姑未分 암수가 잠시 동안 나뉘질 않는다.
未論仁智德 인의예지(仁義禮智) 사덕(四德)을 논하지 말라.
先見化成源 선견지명(先見之明)을 기른 근원이다.
不必求家利 집안의 이익을 구할 것까지는 없다.
呼童護養勤 아이를 불러 애써 돌보고 지키라했다.
6) 계추[鷄雛] 병아리 / 이정암(李廷馣 1541∼1600)
上防鴟嚇下猫窺 위쪽의 소리개 위협에 맞서는데 아래로는 고양이가 엿보니
非爲秋來口腹資 가을이 오지도 않았는데도 뱃속을 불러준다.
寂寞江村風雪夜 눈보라 치는 밤, 적막한 강촌에서
警晨功課定中知 새벽을 여는 일을 정히 알고 있다네.
7) 병아리 두 마리[二雞雛] / 신의황(申益愰 1672~1722)
병아리 두 마리가 부모를 잃고 오락가락 하며 잠시도 떨어지지 않고 서로 붙어 다닌다.(二雞雛 失母何依依 相隨不暫離)
日暮不上塒 날이 저물어도 횃대위로 가질 않고
棲身依棘籬 가시울타리에 의지해 몸을 깃드니
終然羽毛短 끝내는 짧은 깃털이
霑濕無休時 물기에 젖어 쉴 새도 없구나.
中夜起振露 한밤중에 일어나 이슬을 떨치면서
四顧鳴聲悲 사방을 둘러보며 우는 소리 처량하네.
願言托鳳凰 원컨대 “봉황이 돌보아
飮啄隨所爲 마시고 쪼는 일 계속하게 하소서“
8) 계추[鷄雛] / 응와선생문집(凝窩先生文集) 이원조(李源祚 1792~1872)
場畔呴呴鷄啄花 마당의 닭이 구구 소리 내며 꽃을 쪼다가
翩翩飛上樹枝斜 펄펄 날아오르니 나뭇가지가 기우네.
馴緣得食饞心在 익숙하게 먹이를 탐하려 살피는
嫰可觀仁生意多 고운 모습이 인(仁)을 보는 듯 생의 의욕이 두텁다.
學母登塒何太蚤 어미 닭에게 배워 횃대에 오르는데 어찌 벼룩보다 뛰어난가?
隨人出野不嫌賖 사람들 따라 들에 나가니 염치도 없구나.
待佗喈喈風雨夜 삐악삐악 우는 소리 더하는 비바람 치는 밤에,
一聲驚動萬千家 놀라 들썩이며 내는 짧은 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진다.
9) 집오리가 병아리를 품다[家鴨乳鷄雛] / 이민구(李敏求 1589~1670)
鷄乳在庭內 닭이 뜰 안에서 알을 품고 있는데
有物來攫之 혹 포식자가 와서 가로채려 한다면
十雛毛羽細 열 마리 병아리의 깃털이 미미하니
中路失母慈 길 도중에서 어미의 사랑을 잃게 되었겠지.
日夕無依泊 저녁에 의지하고 머무를 곳 없으니
短翮可棲塒 짧은 날개로 횃대에 깃들었는데
欄邊一文鴨 난간 곁의 한 점 무늬의 오리가
痛若軫孤遺 슬픈 외톨이를 슬퍼하며 애석해한다.
展側懷抱間 곁에서 살피고, 품고 있는 사이에
覆翼實勤斯 날개로 덮어주면서 온 정성을 다하네.
夜久聞拍拍 밤이 깊도록 토닥토닥 거리면서
引領防狐貍 이끌고 보호하니 여우와 살쾡이를 막아낸다.
晝行異飮啄 낮에는 쪼고 마시는 것이 특이하여
顧視鳴聲悲 두루 돌아보니 우는 소리가 서럽다.
悽悽急難情 구슬픈 마음에 어찌해야할지 모르지만
未沫風雨時 비바람 치는 때에도 그만두지 않는다.
孰謂蠢動儔 누가 꿈틀거리는 하나의 몸이라 하는가?
用意乃故奇 마음먹은 뜻이 이런 까닭이라 기특하다.
縱然形氣殊 설사 형상과 기운이 다를지라도
寸腸炯不疑 작은 진심은 의심할 바 없이 명백하다.
豈要鄕黨譽 어찌 시골마을을 칭찬할까?
勉焉仁義施 어질고 의로운 일을 베풀자꾸나.
塞性間人禽 인간과 짐승 사이의 타고난 천성(天性)은
所貴者良知 어짊을 고귀하게 여기는 바를 알고 있음이다.
昔賢感同胞 옛날의 현인은 같은 동포에게만 느꼈지만
茲道安可私 이러한 도리(道理)는 사사로이 편안하다.
嗟哉鄧伯道 아아, 등백도(鄧伯道)여~
事出通人爲 일이 닥치면, 사리에 깊이 통달한 사람이 되어야하고
君子誠惻隱 군자는 슬픔을 참으로 숨겨야하며
激烈雙淚垂 격렬하게 두 줄기 눈물을 흘려야 한다.
[주] 등백도(鄧伯道) : 중국 진나라 명사(名士). 이름 수(收). 아들과 조카를 데리고 난리를 피해 달아나다가 일이 급하여 두 아이를 다 구할 수 없자, 조카만 구하고 아들을 버렸다. 후에 끝내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10) 계추설[鷄雛說] 병아리에 대한 견해 / 하겸진(河謙鎭 1870~1946).
집에 있는 어미닭 두 마리가 봄여름 동안 각각 10여 마리 병아리를 거느리고 한가하게 뜰에서 놀고 있는데 그 병아리가 오래되지 않아 껍질을 벗고 나왔다. 주자가 말하길, “인(仁)은 일찍이 병아리로부터 그 맥(脈)이 유래되어 아울러 말하게 되었는데 아마도 병아리의 곱고 여리고 가련함이 인(仁)과 닮았기 때문이다.” 내가 가리키며 이야기하니 객(客)이 말하길, “참 선(善)하도다” 주자는 사물로 말미암아 취하여 비유한 것이다. 이로써 나는 외롭지 않음을 알고 그 병아리도 그러하고 어미닭 또한 인(仁)으로써 어미닭이 사방을 지키니 병아리가 이르지 못하는 곳이 없다. 그 마음은 잠시라도 망각하지 아니한다. 갑자기 이웃집 개가 있음을 알았다. 그 높이가 몇 자되는데 지나가는 닭이 성난 눈으로 깃털을 세우고 앞장서서 나아가 날개 죽지를 퍼떡이니 개가 마침내 뒷걸음치며 순회하다 피한다. 그때 닭은 어찌하여 큰 개가 자신의 적수가 아님을 알지 못한 것일까. 또한 어찌하여 날개 죽지로 달려드는 것이 반드시 죽을 수 있음에도 행운이라 생각하지 아니하는가. 그런데도 이를 행하니 이러한 것은 자애로운 성품이 깊고 지극함이다. 그러하여 “어진 사람은 반드시 용기를 지닌다.”고 흔히 말한다. 객(客)이 말하길, “어미닭은 개가 그러함을 생각하질 않고, 인(仁)으로써 어미닭이 마땅히 달려던 것이다.” 개는 수탉을 알지 못하니 적인지 동지인지 어찌 알리오. 또한 어찌하여 물어 씹어서 취식하고자 아니하는가? 그런 까닭에 뒷걸음치고 순회하고 피하게 된 바, 이로써 거기에 병아리가 있기에 참지 못하는 것이다. 흔히 참지 못하는 마음이 인(仁)이라 말한다. 나는 모든 사물을 깊이 생각해보니, 어진 사람 모두 예외 없이, 홀로 옳은 마음이 없다면, 무슨 연유로 무릇 천하를 불쌍히 여기겠는가? 가련한 자는 약한 나라의 갓난아이보다 더욱 심하도다. 그 부모가 되어 자식을 보호하는 것을 알지 못하여, 그 자식은 강한 이웃이 두려워서, 그 기세에 속수무책, 애걸하고 가련하게 된다. 이는 용기가 없음이다. 강한 이웃은 오직 한번 삼켜 자신의 배만 불릴 줄 알고는 갓난아이를 먹으려고 한다. 부모를 받들어 모시는 것이 없으니 이는 모진마음이다. 용기가 없는 자의 그 허물로 말한다면, 유연하고 참는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이리가 탐하는데 유연하다면 이는 즉, 사람들이 탐욕스럽고 악랄함을 원망할 것이고 하늘이 엄히 벌을 내릴 것이다.
[ 家有母鷄二春夏間各率其雛十數散遊中庭其雛脫離于殼未久也 朱子言仁嘗以鷄雛切脈竝言之蓋以雛之鮮嫩可憐有似乎仁也 余指以語客曰善乎 朱子之因物取喩也 以余觀之不獨其雛然母鷄亦仁母鷄方衛其雛無所不至其心未嘗頃刻忘也 俄見有鄰犬其高數尺者過之鷄卽怒目磔毛挺身以搏之犬果逡巡回避當其時鷄豈不知夫犬之非己敵也 亦豈不知搏之則必死無幸哉然而爲此者慈性深至而然所謂仁者必有勇也 客曰不惟母鷄然犬亦仁當其鷄之搏也 犬豈不知夫鷄之不能敵我也 亦豈不欲一噬而取食哉 其所以逡巡回避者以其有雛故不忍也 所謂不忍之心仁也 余因思凡物莫不有仁人獨無是心何哉夫天下之哀矜而可憐者無有甚於弱國之赤子也 爲其父母而不知防衛其子畏强鄰之氣勢束手乞憐是無勇也 强鄰只知肥己一噬而食之使赤子 無所於仰哺是忍心也 無勇者其過也 柔軟忍心者其失也 貪狼柔軟則人怨貪狠則天誅其嚴乎 ]
11) 변상벽의 모계령자도에 제하다[題卞尙璧母鷄領子圖]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변상벽이 변고양이로 일컬어짐은 고양이 잘 그려 사방에 이름났는데 이젠 또 새끼 거느린 닭을 그리어 하나하나가 털이 살아 있는 듯하네. 어미닭은 까닭도 없이 성을 내어 낯빛이 몹시 사납게 달아오르고 목털이 고슴도치마냥 꼿꼿이 서서 만나는 놈마다 꾸짖음을 당하도다. 쓰레기 버린 곳이나 방앗간에서 흙을 파내듯 항상 땅을 허비어 한 톨이나 얻으면 거짓 먹는 체하고 애써 주림 참으며 새끼만 먹이고 놀라 허둥지둥 사전에 살피어라. 올빼미 그림자 숲 끝을 지나도다. 아, 새끼를 사랑하는 그 성질이여. 하늘이 준 건데 누가 능히 빼치랴. 새끼들은 어미를 둘러싸고 다니되, 솜 같은 노란 옷 더부룩이 입었는데 노란 부리는 막 어린 기름같이 연하고 붉은 볏은 씻은 듯이 색깔 엷어라. 새끼 둘이 막 어미를 따라가는데 어이하여 급급하게 저리 뛰는고? 앞 엣놈 부리에 물린 것이 있어 뒤 엣놈이 그것을 빼앗고자 하여 새끼 둘이 한 지렁이를 다투어라. 서로 물고 놓지 아니하도다. 새끼 하나는 어미 등에 타고 앉아 가려운 곳 한창 스스로 긁어 대고 새끼 하나는 홀로 안 따르고서 채소의 싹을 한창 쪼아 먹누나. 형형색색 세밀하여 실물과 똑같고 도도한 기상 또한 막을 수 없네. 들으니 이 그림 막 그렸을 때 수탉이 보고 잘못 떠들어 댔다 하네. 또한 그가 그린 고양이 그림도 뭇 쥐들을 겁먹게 할 만하여라. 뛰어난 기예가 여기에 이르니 만져 볼수록 흥미가 줄지를 않네. 큰 솜씨라 산수화를 그리는 데도 여기저기 붓놀림이 광활하구려.
[卞以卞貓稱 畫猫名四達 今復繪鷄雛 箇箇毫毛活 母鷄無故怒 顔色猛峭巀 頸毛逆如蝟 觸者遭嗔喝 煩壤與碓廊 爬地恒如墢 得粒佯啄之 苦心忍飢渴 瞿瞿視無形 鴟影度林末 嗟哉慈愛性 天賦誰能拔 群雛繞母行 茸茸嫩黃褐 蠟嘴軟初凝 朱冠淡如抹 二雛方追犇 急急何佻撻 前者咮有垂 後者意欲奪 二雛爭一蚓 雙銜兩不脫 一雛乘母背 癢處方自撥 一雛獨不至 菜苗方自捋 形形細逼眞 滔滔氣莫遏 傳聞新繪時 雄鷄誤喧聒 亦其烏圓圖 可以群鼠愒 絶藝乃至斯 摩挲意未割 麤師畫山水 狼藉手勢闊]
[주] 변상벽(卞尙璧) : 변상벽은 숙종 시대의 화가로서 벼슬이 현감에 이르렀는데, 특히 닭ㆍ고양이를 잘 그려 ‘변고양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한다.
12) 병아리를 구경한 데 대한 설[觀鷄雛說]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옛날 정부자(程夫子)가 병아리를 관찰하였는데 기록하는 이가 ‘인(仁)이라’ 하였다.우리 집은 서울에 있어도 해마다 닭 한 배씩을 기르고 그 병아리를 즐겁게 관찰하고 있다. 그것이 처음 알에서 깨어 나오면 노란 주둥이가 연하고 부드러우며 녹색을 띤 털이 더부룩한 것이 잠시도 어미의 날개를 떠나지 않고, 어미가 마시면 따라 마시고 어미가 쪼면 따라 쪼며, 화기가 애애하여 자정(慈情)과 효도(孝道)가 지극하다. 조금 자라 어미를 떠나면 또 아우와 형이 서로 따르며 항상 같이 다니고 같이 자고, 개가 기웃거리면 서로 호위하고 새매가 지나가면 서로 소리친다. 그 우애의 정이 볼 만하니 효도와 공손이란 인(仁)을 하는 근본이다. 너희들은 병아리보다는 조금 자랐으니 비록 부모만 오로지 사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어찌 형제끼리 정을 독실하지 않아서, 도리어 저 매우 비천한 미물에게 웃음거리가 되어 멸시를 당할 수 있겠느냐. 아.
[昔程夫子觀雞雛 記者曰仁也 余家京城之中 猶歲養雞一羣 樂觀其雛 方其新說于卵也 黃口脆輭 綠毳蒙茸 片刻不離母翼 母飮亦飮 母啄亦啄 和氣藹然 慈孝雙摯 稍長而離母 則又弟兄相隨 行卽同行 棲卽同棲 狗唁則胥衛 鴟過則相聲 其友愛之情 又油然可觀 孝弟也者 其爲仁之本歟 汝等雛之稍長者也 雖不能專愛于父母 顧不欲篤情于兄弟 反爲彼至卑至微之物所笑而賤之也乎 吁]
13) 계추[鷄雛] 병아리 / 성호사설(星湖僿說) 이익(李瀷 1681~1763)
정자(程子)가 이르기를, “나는 병아리를 볼 적마다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한다.’라는 뜻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면서 보고 싶다.”고 하였으니, 이는 참 좋은 말이다.병아리가 털과 날개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솔개와 매는 위에서 엿보고 생쥐와 족제비는 아래에서 숨어 있다. 삵괭이와 고양이는 둥우리를 뚫고 철모르는 아이들은 기왓장과 돌멩이로 이리저리 휘갈긴다. 이들은 모두 병아리를 잡아먹으려고 한결같이 엿보면서 사람이 잘 방어할까 두려워한다.이러므로 돌보아주는 사람의 마음이 조금만 게을러지면 온갖 걱정이 이틈 저틈으로 들이 닥친다. 또는 이런 걱정을 없애주어도 오히려 잘 번식이 되지 않는 것은 다만 굶기고 얼리는 데 달린 것이다. 진실로 능히 성심껏 보살펴준다면 어찌 잘 번식되지 않을 까닭이 있겠는가?병아리란 수효가 많은 까닭에 먹을 것이 궁핍하고, 털이 얇은 때문에 추위를 두려워하는데, 이 추위를 못 이겨 발발 떠는 것도 역시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채우지 못한 때문이다.만약 자주 쌀과 가루를 먹여서 배고픈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한다면 암탉도 힘껏 날개를 펼치고 덮어주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해서 추위를 면할 수 있고, 먹을 것을 구하려고 바삐 쫓아다니지 않게 되어 고달픔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먹을 것이 뜰 안에 있는 까닭에 멀리 나가지 않으므로 바깥 걱정도 적을 것이다. 먹을 것을 보면 서로 뺏으려다가 약한 놈은 배부르게 먹지 못하는 까닭에 피곤한 병이 점점 심하게 되나, 쌀을 넉넉히 흩어 주어서 여럿이 다 배부르게 먹도록 하면 병든 것은 나을 수 있을 것이다.어떤 이는 이르기를, “혹 남은 밥을 던져주면 똥이 막혀서 죽는다.”고 하나, 실은 그렇지 않고 똥은 도로 미끄러워진다. 꽁무니 밑 보드라운 털에 똥이 많이 맺히면 똥구멍이 막혀서 죽게 된다.나는 이 남은 밥알이 병아리에게 해로운 줄 알지만 자주 먹이고 부지런히 보호해 준다. 똥구멍이 막힌 것은 그 보드라운 털을 가위로 잘라주면 똥이 바로 터져 나오는 바, 이렇게 하면 병아리가 반드시 쉽게 자라난다.대개 백성들이 여러 가지로 고통을 겪는 것은, 잘 살고 귀히 된 자로서는 깨닫지 못한다. 이미 온갖 고통을 받고 또 배도 고프게 되니 어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다가 도랑과 구렁에 엎어져 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 갓난아이를 보호하듯 한다 : 이 말은 《서경》 주서(周書) 강고(康誥) 편에, “갓난아이 보호하듯 하면 백성이 편안하리라[若保赤子 惟民其康乂].”라고 보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