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심문모 전] 제4부 아마겟돈(103)
9. 죽었으나 살았다(1)
다음은 방동환에게서 김 일병이 소설과는 다른 사실 관계를 수정하듯이 들려준 이야기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종합해서 자기 나름의 진실이라는 것을 들려 준 것이다.
-김치국 일병은 고향이 강릉이었습니다. 우리 사단은 지난 해 인천 상륙 작전에 이어 서울을 수복하고부터, 그러니까 추석이 추석인지도 모르고 지내버린 때였습니다. 우리 군은 거의 전투랄 것도 겪어보지 못한 채 그냥 도보 북진 행군이 계속되다시피 했었지요.
포항에서부터 계속 북진한다고 행군만 여러 날 이어지고 있었지요. 그런데 일월산 아래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쫓기던 북괴군이 그 산의 고지를 차지하고 국군의 진군을 저지하고 나섰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새끼들이 낙오병으로 구성된 빨치산이었습니다.
우리 부대는 그야말로 전투다운 전투를 처음 겪는 판이었지요.
부대라고 해봤자 중대병력이었지만……, 우리 중대가 사단 직할중대였어요. 연대 병력은 사단보다 앞서서 진격하고 있었고, 사단 본부 대대는 뒤 따라 가고 있었습니다. 사단 뒤로 아마 105밀리 포병대대가 따라오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단의 명령은 직할 대대가 패잔 공비들을 소탕하고 진격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물어 가는 시간이라 전방 식별이 잘 안 되는 판에 벌어진 전투였습니다.
돌격 명령이 떨어지자 소대별로 진격 방향이 정해져서 모두 전방의 고지를 향해 돌격하는데 김 일병은 꼼짝하지 않고 뒤처졌습니다.
공비들은 전방의 위에서 아래로 다발총을 마구 쏴대어 탄환이 불꽃처럼 마구 날아오고, 뒤에서는 독전대 헌병들이 권총 공포를 쏴대고 하는 판이었습니다.
그래서 황준호 소대장이 소대 선임하사였던 저에게 그 병사를 끌고 뒤따라 오르라고 하고 자기는 소대의 선봉에 서서 진격을 지휘했습니다. 그때 저는 이등중사였지요.
마침 우리 소대는 삼공 캐리버(30mm caliber MG) 일 문과 무반동포인 바주카 포 일 문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기관총을 맡은 선임분대 분대장이고, 문 하사는 제이분대인 바주카포 분대의 분대장이었죠. 그런데 문 하사는 뒤처지는 분대원인 김 일병을 끌고 올라오느라고 소대 뒤로 처졌습니다. 그러니까 부득불 내가 두 분대를 한꺼번에 이끌고 소대장을 뒤 따랐죠. 그래서 우리 분대와 이분대가 거의 좌우 두 열 행군 종대형으로로 진격하며 올라갔죠. 어두운 숲 속을 향해 먼저 바주카포를 몇 발 발사하자 숨었던 적들이 나타나 뛰는 그들 뒤를 향해 기관총으로 난사하면서 쳐 올라갔습니다.
다행히 그 전투는 긴장했던 것에 비해 좀 싱겁게 끝났습니다.
그들은 한때 잠깐 사람을 놀라게 하기는 했으나 곧 똥줄 빠지게 도망치기 바빠서 우리 중대는 신나게 추격해서 고지를 점령했습니다.
모처럼 첫 전투의 승전이어서 중대 전체가 기세등등하도록 도취했습니다.
정말 신났었지요. 그런데 뒤늦게 문 하사가 그 고문관 사병을 끌고 올라오는데 보니 마치 포로를 나포해서 끌고 오는 모습이었습니다.
문 하사가 소대장 앞에 김 일병을 나꿔채 메다꽂듯이 팍 엎어버리더니 총개머리판으로 엉덩이를 내리깠습니다. 우리 소대원 모두 보는 데서요.
소대장이 말렸습니다. 그런데도 이 새끼 총살시켜야 합니다고 소리소리 지르면서 발길질에 주먹질해댔죠. 아무도 못 말렸습니다.
소대원들 중에도 김 일병을 야유해댔습니다.
쌍말로 아주 초죽음이 되도록 조진 거죠. 내가 나서서 문 하사를 붙들어 말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승리했으니까 봐줘라, 야.’하고 말입니다.
소대장은 피투성이가 된 김 일병을 추스르도록 하고 꿇어앉히고 “명령 불복종은 즉결처분감이라고, 너 하나 때문에 우리 소대원 전원이 전멸할 수도 있었다. 널 살려 주는 것은 행운인 줄 알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 김 일병은 그날 당한 폭행으로 해서 이래로 앙심을 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지만 그 후에도 일상적으로 문 하사는 김 일병을 상대로 기합 주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리고 이틀인가 사흘 만에 강릉 부근에 이르자 사단 전체가 행군을 멈추었습니다. 삼팔선을 돌파해서 북진을 계속할 것인가 거기서 전투가 마감될 것인가를 담판 짓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대 전체가 도로 양쪽으로 길게 행군 대형으로 저녁을 맞아 식사를 하고 휴식 자세로 늘어져 있었습니다. 보급 차량 행렬만이 그 대열 가운데로 먼지를 일으키며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문제의 고문관 병사가 소대장에게 자기 고향 동네가 바로 지척에 있는데 다녀오고 싶다고 했던 모양입니다. 소대장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합디다. 당치도 않은 소리를 하지 말고 조용히 휴식을 취하다가 자라고 했답니다. 절대로 이동할 생각을랑 하지 말라고 했답니다. 그걸 문 하사도 알고 그에게 정신 차리라고 눈을 부라린 모양입니다.
그랬는데도 그날 밤 그는 사고를 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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