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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외시(先從隗始)
먼저 외로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사물을 시작하려면 우선 말을 꺼낸 자부터 착수해야 함 또는 큰 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先 : 먼저 선(儿/4)
從 : 따를 종(彳/8)
隗 : 높을 외(阝/9)
始 : 시작할 시(女/5)
(유의어)
매사마골(買死馬骨)
선시어외(先施於隗)
선종자시(先從自始)
천금매골(千金買骨)
청자외시(請自隗始)
출전 : 사기(史記)
이 성어는 먼저 외(隗)로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사물을 시작하려면 우선 말을 꺼낸 자부터 착수해야 한다. 또는 큰 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의 소왕(昭王)은 자지(子之)의 난에서 파괴된 연나라를 수습하여 왕위에 오른 뒤 숙적 제(齊)나라에 보복하고자 현자의 인재를 불러 들였다. 그는 우선 곽외(郭隗) 선생을 찾아가 나라를 일으키는 데 필요한 인재를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저는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옛적에 어떤 군주가 천리마를 구하려 하였지만 3년이 지나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신하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제가 찾아 보겠습니다.’ 신하가 삼 개월이 걸려 천리마를 찾았지만 그곳에 이르렀을 때 천리마는 벌써 죽었습니다. 신하는 그 뼈를 오백금(五百金)을 주고 사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군주는 크게 노하여 말했습니다.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살아 있는 말이다. 어찌하여 죽은 말 따위에 오백금이나 던졌는가.’ 그 신하는 ‘죽은 말도 오백금으로 사는데 살아 있는 말이라면 더할 것입니다. 세간에서는 주군께서 후한 값으로 말을 사들인다고 생각할 것이므로 머지않아 좋은 말이 얼마든지 찾아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1년도 채 되기 전에 천리의 양마(良馬)가 세 필이나 찾아왔답니다. 그러니 왕께서 현사를 불러들이고자 하는 것이 진심이라면 우선 저부터 채용해 주십시오. 저 같은 것도 섬기고 있다는 것을 알면 저보다 현자는 어쩌겠습니까?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찾아올 것입니다.”
今王誠欲致士先從始 且見事 況賢於者乎 豈遠 千里哉.
곽외(郭隗)의 말을 듣고 소왕(昭王)은 옳게 여겨 그를 위해 저택을 지어 스승으로 모셨다. 그후 명장 악의(樂毅)가 위(魏)나라에서, 음양가(陰陽家) 추연(鄒衍)이 제(齊)나라에서, 대정치가 극신(劇辛)이 조(趙)나라에서 오는 등 천하의 현사가 다투어 연(燕)나라로 모여들었다.
연왕(燕王)이 전사자를 후하게 장사(葬事)지내고 생존자를 위문(慰問)하고 백성들과 동고동락하며 정치에 정진한 지 28년이 되었다. 그래서 연(燕)나라도 부강하게 되었다. 하지만 사졸(士卒)이 안일에 빠지게 되자 악의(樂毅)를 총사령관으로 진(秦)나라, 초(楚)나라, 삼진(三晋; 趙, 魏, 韓)과 더불어 제(齊)나라를 쳤다. 제군(齊軍)은 대패하고 제나라 민왕(閔王)은 국도(國都)에서 밖으로 도주했다. 연군(燕軍)은 단독으로 도주하는 군대를 제(齊)나라로 추격하고 제나라의 도읍지 임치(臨淄)에 쳐들어가 궁전과 종묘(宗廟)까지 소각해 버렸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나온다. 여기서 선종외시(先從隗始)라는 성어가 나왔다. 먼저 외(隗)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큰 뜻을 이루려면 먼저 가까운 사람이나 말한 사람부터 시작하라는 뜻이다.
이 고사는 인재를 육성하고 등용하기 위한 몇가지 방법을 우리에게 시사합니다. 첫째는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이다. 둘째는 과감한 투자이다. 셋째는 아랫사람을 믿어주는 신뢰이다. 넷째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배려이다. 그리고 끝까지 기다려주는 믿음이다.
이 고사를 놓고 어떤 사람들은 곽외(郭隗)를 뻔뻔스럽다고 꼬집었다. 인재를 모은다는 명분을 들이대며 자기 자신을 출세시켜 달라고 부탁한 기회주의자라는 것이다. 자기가 출세하기 위해서 임금을 이용했다는 비난이다. 반면 다른 사람들은 정반대의 해석을 했다.
어느 조직이든 뛰어난 인재들이 영입되면 기존 조직원은 찬밥신세가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조직 전체를 위해서 임금에게 인재 뽑는 방법을 건의했다는 해석이다. 스스로를 우대해 달라고 한 것도 어디까지나 인재를 뽑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곽외(郭隗)는 스스로를 추천했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조직을 위해 인재 뽑는 방법을 소왕(昭王)에게 가르쳐줬다는 것이다.
유방(劉邦)을 찾아왔다가 달아난 한신(韓信)을 뒤쫓아 가서 데려온 소하(蕭何)의 경우도 그랬다. 한신은 큰 뜻을 품고 유방을 찾아왔지만 푸대접만 받았다. 결국 불평 끝에 달아나게 되었다. 소하가 뒤쫓아 가서 이틀 만에야 데리고 올 수 있었다.
소하는 한신을 데리고 온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유방에게 건의까지 했다. “항우가 내려준 한중왕(漢中王) 자리에 안주하고 싶지 않으면 한신을 대장군으로 임명해라. 그것도 날짜를 택해서 엄숙한 임명식을 거행하면서 임명해야 한다. 한신은 큰 그릇이다.”
유방은 소하의 말을 듣고 나서야 한신을 다시 평가하게 되었다. 건의를 받아들였다. 한술 더 떠서 한신을 나라에 둘도 없는 인물(國士無雙)이라고 추켜 세우기까지 했다. 소하 역시 일개 병졸에 지나지 않던 한신을 대장군으로 끌어올리면, 자기와 경쟁관계로 클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렇지만 조직을 위해서 한신을 중용하자고 유방에게 건의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이 우리 정치판에서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외부인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것은 불협화음이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어쩌고 있다는 불만들이다. 경선이 순조롭지 못하다. 조직 전체를 위해서 받아들이고, 수긍하는 사람은 드물다.
공천 과정에서도 잡음과 비리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모당은 구청장 후보 공천과 관련, 억대의 돈을 받았다는 당 소속의원에 대한 수사를 의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조직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일 것이다.
어떤 외부 영입 인사의 경우는 소속 정당의 이미지를 감추려 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소속 정당의 이미지를 내세우면 당선되지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일 것이다. 정당의 지원을 받아 출마를 하면서 정당을 외면하고 있다. 머릿속에 든 것은 오로지 자신의 당선과 명예뿐이다. 조직은 생각 밖이다. 선거철만 되면 탈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선종외시(先從隗始)
먼저 곽외부터 따르게 한다는 뜻으로, 믿음을 주고 작은 일부터 시작한다는 말이다. 높을 외(隗)는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이름이고, 성의 하나라고 하지만 곽외(郭隗)라는 사람이름 외에는 별로 쓰임이 없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연(燕)나라의 재상이었던 곽외는 죽은 말의 뼈를 천금으로 사서 천리마를 구하게 했다는 매사마골(買死馬骨)에 등장한다. 죽은 말에도 거금을 치르는데 천리마(千里馬)는 오죽할까 하며 줄 이은 데서 인재를 우대하면 현자를 모을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 나왔다.
나무를 옮겼다고 후한 상을 내린 사목지신(徙木之信)이나 공자(孔子)가 강조한 무신불립(無信不立)도 믿음을 앞세운다는 말이다. 곽외부터 먼저 시작하여 따르게 하라는 이 성어는 천리마 구하는 다음에 따른다.
중국 북부에 위치했던 연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이기도 한 나라였다. 하지만 후기에는 이웃 제(齊)나라의 침략을 받아 많은 영토를 빼앗긴데다 내분도 끊이지 않아 국력이 쇠약해졌다. 이럴 때 즉위한 소왕(昭王)은 실지를 회복하고 치욕을 씻기 위해 세상의 뛰어난 인재를 초빙하려고 했다. 소왕은 이 문제를 재상 곽외와 상의했다.
전한(前漢)의 유향(劉向)이 쓴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에 나오는 내용을 보자. 곽외가 옛날 어느 임금이 구하려 했다는 천리마 일화부터 풀어낸다. 천금의 현상을 하고 천리마를 찾았으나 3년이 지나도록 감감했다. 한 신하가 수소문 끝에 말을 찾았지만 죽은 뒤라 오백 금을 주고 말뼈를 구해 왔다.
이 소문을 듣고 실제 천리마가 세 마리나 등장했다. 죽은 말뼈에도 거금을 준 믿음이 효과를 봤다. '이제 왕께서 어진 선비를 구하려 하신다면 저 외부터 시작하십시오(今王誠欲致士 先從隈始).'
소왕은 새로 궁실을 짓고 곽외를 섬겼다. 이 소식에 명장 악의(樂毅)와 추연(鄒衍), 소대(蘇代) 등 이웃 나라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에 힘입어 소왕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었다.
작은 희생을 치르고 처음 목표한 이상을 얻게 된다는 이 성어는 신뢰를 중시하라는 교훈이다. 믿음을 앞세우고 실천하면 어떤 난관이라도 뚫을 수 있고, 주위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스스로 자신을 추천했다고 청자외시(請自隗始) 또는 청자외시(請自隗始)라고도 하는 이 말은 또한 먼 곳이 아니라 가까운 데서 얼마든지 인재를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선시어외(先始於隗)
외(隗)부터 먼저 시작하라는 뜻으로, 전국시대 연(燕)나라의 재상 곽외(郭隗)가 ‘인재를 구한다면 먼저 나부터 등용하시오’라고 했던 말에서 비롯되어, 가까이 있는 자부터, 또는 말을 꺼낸 자(제안자)부터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선종외시(先從隗始)도 같은 말입니다. 전국책(戰國策) 연책(燕策) 소왕(昭王) 편에서 유래합니다.
연(燕)나라는 주(周)나라 무왕(武王)의 아우 소공석(召公奭)을 시조로 하는 명문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춘추시대를 거쳐 전국시대로 내려오면서도 별로 큰 세력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더구나 처음 왕 칭호를 쓰기 시작했던 이왕(易王)이 죽은 뒤 내분이 일어나 국력이 약해졌고 그 틈을 타서 제(齊)나라에게 제압당하여 영토의 태반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
이런 시기에 즉위한 소왕(昭王)은 스스로 현인을 찾아 연나라의 부흥책을 묻고 다녔습니다. 이윽고 곽외를 마주한 소왕은 그에게 역시 잃었던 땅의 회복에 필요한 인재를 모으는 방법을 물었습니다.
현자를 찾는 소왕의 열의를 본 곽외는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옛날 어느 왕이 천리마를 구하고자 애썼으나 3년이 넘도록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자청하는 신하가 있어 그에게 천금을 주고 천리마를 구해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 신하는 석 달 뒤에 천리마가 있다는 곳을 알아내고 달려갔으나 천리마는 그가 도착하기 얼마 전에 죽어 버렸습니다. 신하는 그래도 5백금을 주고 그 죽은 말의 뼈를 사왔습니다. 물론 왕은 격노하여 ‘내가 원하는 것은 천리마이지 죽은 말뼈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신하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신하는 왕에게 ‘천리마라면 그 죽은 뼈조차 거금을 주고 사들이니 살아 있는 천리마라면 얼마나 비싼 값을 쳐줄 것인가 라고 세상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이제 머지않아 반드시 천리마를 끌고 올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 말대로 1년도 지나지 않아 천하의 명마가 세 필이나 모였다는 것입니다.”
곽외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진정으로 인재를 구하려고 생각하신다면 ‘먼저 이 외부터 시작하십시오(먼저 저부터 등용하십시오)’ 제가 중하게 쓰였다는 소문이 나면 우수한 인재들은 더욱 우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천리 길도 마다 않고 스스로 찾아들 것입니다.”
이 말을 수긍한 소왕은 즉시 그를 스승으로 극진히 예우했습니다. 과연 이 소문이 여러 나라에 알려지자 천하의 인재들이 다투어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명장(名將) 악의(樂毅), 음양가(陰陽家)의 비조(鼻祖) 추연(鄒衍), 대정치가 극신(劇辛) 등의 인물들이 그때 모여들었습니다.
이렇게 유능한 인재를 얻은 소왕은 부국강병의 치적을 쌓아 드디어 진(秦), 초(楚), 삼진(三晋:韓 魏 趙)과 함께 제나라를 쳐 숙원을 풀게 되었습니다.
앞서 곽외가 소왕에게 해준 이야기에서 ‘죽은 말을 사왔다’는 말인 ‘매사마골(買死馬骨)’은 별 볼일 없는 것을 사서 요긴한 것이 오기를 기다린다, 또는 하잘것없는 것이라도 소중히 대접하면 긴요한 것은 그에 끌려 자연히 모여든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중국 전국시대 연나라의 명장 악의(樂毅)
선종외시(先從隗始)
'악의(樂毅)'의 선조는 위나라의 명장인 '악양'이라는 인물로, '위 문후' 때에 '중산'을 정복한 공으로 '영수'를 다스리게 되었다고 한다. 악의가 태어난 시기나 위치는 불문명하지만, 대대로 영수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땅은 후에 '조나라'의 '무령왕'에게 점령되어, 악의는 조나라 사람이 된다. 악의는 조나라에서 관직을 지냈는데, 무령왕이 죽고나서는 '위나라'로 갔다고 한다.
이무렵 '연나라'는 '제나라'에게 공격받아 사실상 속국의 상태였는데, '연 소왕'은 신하인 '곽외'에게 우수한 인재를 모으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다. 이게 곽외는 우선 나부터 중용하라고 말하였다. 연 소왕은 곽외를 스승으로 모시고, 그를 위한 저택을 지어줬다고 한다. 이러한 소문을 듣고 많은 인재들이 널리서 찾아오게 되었고, 후에 악의 또한 연나라로 오게 된다. 이것이 선종외시(先從隗始) '우선 (곽)외부터 시작하십시오'하는 뜻으로 중국의 속담으로 널리 쓰인다고 한다.
제나라와의 싸움
기원전 290년경 중국의 전국시대에는 '진나라'와 제나라가 2대 강국이었다. 제나라는 ‘계명구도’로 유명한 '맹상군'을 재상에게 맡기고, '춘추오패'로도 유명한 '제의 환공' 이후로 국력을 계속 축적하고 있었다. 연 소왕은 이전에 아버지와 형이 제나라에 의해 화를 입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연나라를 부흥시키고 제나라에 복수하려고 하였다.
악의는 그런 연 소왕에게 다른나라와 동맹하여 대항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악의는 직접 조나라를 찾아가서 조약을 맺었으며, 사람을 보내 '초나라'와 위나라와도 동맹을 맺어 연합을 결성하였다. 마지막에는 진나라에도 제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협력할 것을 설득하였다.
제나라의 국력은 강대하였으나 '제 민왕'의 교만함하고 포악한 성격이 약점이 되었다. 제나라의 재상 맹상군은 전에도 한번 제 민왕의 미움을 사서 재상의 자리에서 쫒겨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지위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험까지 느낀 그는 위나라로 도망쳤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 소왕은 악의를 총사령관으로 하여 연합군을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하게 했다. 연합군은 제나라의 군대와 싸워 크게 승리하였고, 이에 만족한 다른 나라의 군사들을 귀환하였지만, 악의는 연나라 군대를 이끌고 계속 진격하여, 제나라의 수도인 임치까지 함락시켰다. 제 민왕은 달아났으나, 악의는 전쟁을 계속하여 5년 동안 70여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거'와 '즉묵'만이 남았다고 한다. 그사이에도 제 민왕은 자신을 도와주는 다른 나라들에게 불손하게 굴었고, 결국 초나라에서 구원하러 보낸 '요치'에게 살해당하였다.
조나라로 망명
왕도 죽고, 국토고 거의 다 잃은 제나라는 바람 앞에 등불 같은 지경에 이르렀는데, 악의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먼저 제 민왕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 '제 양왕'으로 죽위하였는데, 이로 인해 제나라 사람들이 다시 뭉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었다. 그리고 남은 제나라의 성 중 하나인 '즉묵'은 '대부'라는 자가 지키고 있었는데, 그가 전사하면서 '전단'이라는 자가 장군으로 추대되어 성을 지켰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던 연 소왕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연 혜왕'이 즉위하였는데, 그는 태자시절부터 악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제나라의 전단은 연 혜왕과 악의의 사이를 이간질 하였고, 이에 연 혜왕은 악의를 해임하고 연나라로 불러들였다. 이에 생명에 위협을 느낀 악의는 조나라로 망명하게 된다. 이후 연나라의 장군으로 '기겁'이 취임하였으나, 전단은 '화우지계'를 이용하여 연나라의 군대를 물리쳤고, 종국에는 연나라에 빼앗긴 70여개 성을 모두 되찾았다.
악의를 잃은 연나라는 그렇게 무너져 버렸다. 전쟁에서 참패하게 된 연 혜왕은 뒤늦게 후회하여 악의에게 다시 돌아올 것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악의는 연나라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을 편지로 써서 답장을 보냈다. 이 서신을 '보연왕서'라 한다. 연 혜왕은 이에 악의의 아들인 '악간'을 '창국군'으로 삼고 대우해 주었으며, 악의는 연나라와 조나라를 오가며 지내다, 조나라에서 사망하였다고 한다.
사기(史記) 세가(世家)
권34 연소공세가(燕召公世家 : 연세가)
연 소왕(燕 昭王), 혜왕(惠王), 무성왕(武成王), 효왕(孝王), 연왕 희(燕 王喜)
이 편은 30세가(世家) 중 네 번째 편으로 주나라의 개국 공신인 소공 석이 연나라에 봉해진 이후 연나라의 800여년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연(燕)나라는 춘추시대의 주나라 제후국이자, 전국시대의 전국 칠웅 가운데 하나였다. 주 무왕(周 武王) 희발(姬發)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그의 동생 소공(召公) 석(奭)을 연(燕)의 제후에 봉하여 소공 석이 연(燕)의 시조(始祖)가 되었다.
기원전 227년, 연(燕)나라의 태자(太子) 단(丹)이 형가(荊軻)를 자객으로 보내 진왕(秦王) 정(政)을 암살하려 했으나 실패하였다. 분노한 진왕(秦王)이 왕전(王翦)으로 하여금 연(燕)을 공격케 하여 기원전 226년 연(燕)나라를 함락시켰다. 연왕(燕王) 희(喜)는 태자(太子) 단(丹)을 죽여 화의(和議)를 요청하며 요동지역으로 피신했지만, 기원전 222년 진(秦)나라 장수 왕분(王賁)에게 사로잡혀 연(燕)나라는 멸망되었다.
24. 연 소왕(燕 昭王) | 곽외(郭隗)
燕昭王於破燕之後即位(연소왕어파연지후즉위), 卑身厚幣以招賢者(비신후폐이초현자).
연 소왕(燕 昭王)은 연나라가 제나라에게 격파된 후 즉위하여 몸을 낮추고 후한 폐백으로 현자를 초빙했다.
謂郭隗曰(위곽외왈): 齊因孤之國亂而襲破燕(제인고지국란이습파연), 孤極知燕小力少(고극지연소력소), 不足以報(부족이보). 然誠得賢士以共國(연성득현사이공국), 以雪先王之恥(이설선왕지치), 孤之願也(고지원야). 先生視可者(선왕시가자), 得身事之(득신사지).
곽외(郭隗)에게 말했다. “제나라가 우리나라의 혼란을 틈타 우리를 기습하여 무너뜨렸소. 우리 연나라의 땅은 작고 힘이 약해 되갚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소. 그러나 진실로 유능한 인재를 얻어 함께 나라를 다스리며 선왕의 치욕을 씻는 것이 나의 바람이오. 선생께서 보기에 이런 인재가 있다면 이 몸이 친히 그를 모시겠소.”
(註)
◯ 燕昭王(연소왕) : 전국시대 연나라의 군주로 이름은 평(平)이다. 시호는 소양왕(昭襄王)이지만, 약칭 시호로는 소왕(昭王) 혹은 양왕(襄王)으로도 불린다. 곽외(郭隗)와 추연(鄒衍), 악의(樂毅) 등 어진 선비를 초빙하여 부왕(父王) 때 잃었던 땅을 제(齊)나라로부터 되찾았고 제나라의 수도 임치(臨淄)에 진입하고 거(莒)와 즉묵(卽墨)을 제외한 제나라의 70여 성을 점령하여 연나라가 가장 강성한 시기를 이루었다.
◯ 卑身(비신) : 자신의 몸을 낮추다.
◯ 幣(폐) : 비단. 재물. 幣帛(폐백).
◯ 郭隗(곽외) : 전국 시대 연(燕)나라 사람. 연나라 소왕(昭王)이 제(齊)나라에 복수하고자 인재를 구할 때 현사(賢士)를 초빙하는 방법을 알려주어 악의(樂毅)와 추연(鄒衍), 극신(劇辛) 등의 인재들이 다투어 찾아와 국력이 부강해졌다. 여기서 나온 고사성어가 선종외시(先從隗始)이다.
◯ 孤(고) : 왕이 자신을 겸손하게 일컫는 말.
◯ 共國(공국) : 함께 나라를 다스리다.
◯ 雪(설) : 세설(洗雪). (치욕을) 씻다.
郭隗曰(곽외왈): 王必欲致士(왕필욕치사), 先從隗始(선종외시). 況賢於隗者(황현어외자), 豈遠千里哉(기원천리재).
곽외가 말했다. “왕께서 반드시 인재를 모시려 한다면 먼저 이 곽외부터 시작하십시오. 하물며 이 곽외보다 나은 인재들이 어찌 천 리를 멀다 하겠습니까!”
於是昭王為隗改筑宮而師事之(어시소왕위외개축궁이사사지).
이에 소왕은 곽외를 위해 궁을 짓고 그를 스승으로 섬겼다.
樂毅自魏往(악의자위왕), 鄒衍自齊往(추연자제왕), 劇辛自趙往(극신자조왕), 士爭趨燕(사쟁추연).
악의(樂毅)가 위(魏)나라에서 오고, 추연(鄒衍)이 제나라에서 오고, 극신(劇辛)이 조(趙)나라에서 오는 등 인재들이 다투어 연나라로 달려왔다.
燕王噲死問孤(연왕쾌사문고), 與百姓同甘苦(여백성동감고).
연 소왕은 죽은 사람에게는 조의를 표하고, 혼자 사는 사람들을 위문하는 등 백관들과 동고동락했다.
(註)
◯ 致(치) : 불러 모으다.
◯ 况(황) : 하물며.
◯ 樂毅(악의) : 전국시대 연나라의 상장군(上將軍). 본래 중산국(中山國) 사람이었으나 중산국이 조나라에 망한 뒤 조나라 사람이 되었다가 연 소왕(燕 昭王)에게 중용되어 상장군이 되었다. 여러 제후국과 연합하고 제나라를 토벌하여 제나라의 70여 성을 항복받고 창국군(昌國君)에 봉해졌다. 소왕(昭王)이 죽고 태자인 혜왕(惠王)이 즉위하였는데, 혜왕이 제나라의 반간계(反間計)에 말려들어 악의(樂毅)를 의심하고 대장군의 직위를 박탈하자, 악의(樂毅)는 조(趙)나라로 망명하였다. -사기 권80. 악의열전(樂毅列傳)
◯ 추연(鄒衍 또는 騶衍) : 전국시대의 제(齊)나라 제자백가 중 음양가(陰陽家)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史記列傳(사기열전) 권74. 孟子荀卿列傳(맹자순경열전)
◯ 劇辛(극신) : 전국시대 조(趙)나라 사람으로 연 소왕(燕 昭王) 때 조나라에서 연나라로 와 국정을 맡고, 진(秦)나라와 초(楚)나라, 삼진(三晋)을 연합시켜 제(齊)나라를 공격했다. 연왕희(燕王 喜) 13년 연나라의 장수가 되어 조나라를 공격하다가, 조나라 장수 방난(龐煖)에게 살해당했다.
◯ 趨(추) : 달려오다.
25. 연 소왕(燕 昭王)
二十八年(이십팔년), 燕國殷富(연국은부), 士卒樂軼輕戰(사졸락질경전).
연 소왕 28년(기원전 284년), 연나라는 부유해지고 병사들은 기꺼이 전투에 나가려 했다.
於是遂以樂毅為上將軍(어시수이악의위상장군), 與秦(여진) 楚(초) 三晉合謀以伐齊(삼진합모이벌제).
이에 마침내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진(秦)나라와 초나라, 삼진(三晉)과 함께 제나라를 정벌하기로 했다.
齊兵敗(제병패), 湣王出亡於外(민왕출망어외).
제나라의 군대는 패했고 제 민왕(齊 湣王)은 도성 밖으로 도망쳤다.
燕兵獨追北(연병독추배), 入至臨淄(입지임치), 盡取齊寶(진취제보), 燒其宮室宗廟(소기궁실종묘).
연나라의 군대만 추격하여 임치에 진입해서는 제나라의 보물을 취하고 궁실과 종묘를 불태웠다.
齊城之不下者(제성지불하자), 獨唯聊(독유료) 莒(거) 即墨(즉묵) 其餘皆屬燕(기여개속연), 六歲(육세).
함락되지 않는 제나라의 성으로는 요(聊), 거(莒), 즉묵(卽墨)만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연나라의 차지가 되어 6년 동안 지속되었다.
(註)
◯ 樂軼(낙질) : 기꺼이 출격하다.
◯ 輕戰(경전) :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다.
◯ 湣王(민왕) : 제 민왕(齊 湣王). 연(燕)나라 장수 악의(樂毅)가 오국(五國)을 연합해서 제(齊)나라에 쳐들어오자 제 민왕(齊 湣王)이 거(莒)로 도망쳐서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니, 초나라는 장군 요치(淖齒)를 보내 구해 주었다.
◯ 追北(추배) : 패배하여 달아나는 적을 추격하다. 北는 달아날 ‘배’.
혜왕(惠王)
(이 부분은 원문에는 기록이 없어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昭王三十三年卒(소왕삼십삼년졸), 子惠王立(자혜왕립).
소왕이 재위 33년(기원전 279년) 만에 죽고 아들 혜왕(惠王)이 즉위했다.
惠王為太子時(혜왕위태자시), 與樂毅有隙(여악의유극).
혜왕은 태자 때 악의(樂毅)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及即位(급즉위), 疑毅(의의), 使騎劫代將(사기겁대장).
즉위한 후 악의를 의심하여 기겁(騎劫)에게 상장군을 대신하게 했다.
樂毅亡走趙(악의망주조).
악의는 조나라로 망명했다.
齊田單以即墨擊敗燕軍(제전단이즉묵격패연군), 騎劫死(기겁사), 燕兵引歸(연병인귀), 齊悉復得其故城(제실부득기고성).
제나라의 전단(田單)이 즉묵에서 연나라의 군대를 격파했으며, 기겁은 전사하고, 연나라의 군대는 철수했으며, 제나라는 잃었던 성들을 모두 되찾았다.
湣王死于莒(민왕사우거), 乃立其子為襄王(내립기자위양왕).
제 민왕이 거(莒)에서 죽고 그 아들이 제 양왕(齊 襄王)으로 즉위했다.
惠王七年卒(혜왕칠년졸).
혜왕은 재위 7년(기원전 272년) 만에 죽었다.
韓(한) 魏(위) 楚共伐燕(초공벌연).
한, 위, 초가 함께 연나라를 정벌했다.
燕武成王立(연무성왕립).
연나라의 무성왕(武成王)이 즉위했다.
(註)
◯ 隙(극) : 틈. 원한.
◯ 疑毅(의의) : 악의를 의심하다. 연 소왕(燕 昭王)이 죽고 악의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태자가 혜왕(惠王)으로 즉위하자, 전단(田單)이 반간책을 써서 “악의가 제나라의 왕이 되려고 한다.”라고 소문을 퍼뜨렸다. 이에 간신들이 악의를 참소하자, 혜왕이 악의를 의심하여 기겁(騎劫)에게 대장군의 직위를 대신하게 하고 악의(樂毅)를 불러들이니, 악의는 조나라로 망명해버렸다. -사기 권80. 악의열전(樂毅列傳)
◯ 齊田單以即墨擊敗燕軍(제전단이즉묵격패연군) : 제나라의 전단은 즉묵(卽墨) 싸움에서 화우진(火牛陣)의 전법으로 연나라 군대를 대패시키고 제(齊)나라가 잃어버렸던 70여 개 성읍을 모두 회복하였다. -사기 권82. 전단열전(田單列傳)
26. 무성왕(武成王)
武成王七年(무성왕칠년), 齊田單伐我(제전단벌아), 拔中陽(발중양).
무성왕 7년(기원전 265년), 제나라의 전단이 연나라를 정벌하여 중양(中陽)을 빼앗았다.
十三年(십삼년), 秦敗趙於長平四十餘萬(진패조어장평사십여만).
무성왕 13년(기원전 259년), 진(秦)나라가 장평(長平)에서 조나라의 40만 대군을 패배시켰다.
十四年(십사년), 武成王卒(무성왕졸), 子孝王立(자효왕립).
무성왕 14년(기원전 258년), 무성왕이 죽고 아들 효왕(孝王)이 즉위했다.
(註)
◯ 拔(발) : 점령하다.
◯ 長平(장평) : 지명(地名). 조(趙)나라 상당군(上黨郡)의 읍. 장평 대전(長平大戰)은 기원전 262년에서 기원전 260년에 걸쳐 진(秦)나라와 조(趙)나라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전투이다. 중국의 전국 시대의 판도를 변하게 만든 대표적인 전투의 하나이다. 장평의 승리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 기반이 되었으며, 패전국인 조나라의 몰락을 가져온 결정적인 전투였다.
27. 효왕(孝王)
孝王元年(효왕원년), 秦圍邯鄲者解去(진위한단자해거).
효왕 원년(기원전 257년), 한단(邯鄲)을 포위하고 있던 진(秦)나라가 포위를 풀고 철수했다.
三年卒(삼년졸), 子今王喜立(자금왕희립).
효왕이 재위 3년(기원전 255년) 만에 죽고 지금의 왕 아들 희(喜)가 왕이 되었다.
(註)
◯ 효왕(孝王) : 연 효왕(燕 孝王). 연 무성왕의 아들. 재위 3년 만에 죽고 아들 희가 왕이 되었다.
◯ 解(해) : 포위를 풀다.
28. 연왕 희(燕王 喜)
今王喜四年(금왕희사년), 秦昭王卒(진소왕졸).
연왕 희(燕王 喜) 4년에 진 소왕(秦 昭王)이 죽었다.
燕王命相栗腹約歡趙(연왕명상률복약환조), 以五百金為趙王酒(이오백금위조왕주).
연왕 희가 재상인 율복(栗腹)에게 조나라와 동맹을 맺게 하고 500금을 주어 조(趙)나라 효성왕(孝成王)의 생일을 축하하는 사신으로 가도록 했다.
還報燕王曰(환보연왕왈): 趙王壯者皆死長平(조왕장자개사장평), 其孤未壯(기고미장), 可伐也(가벌야).
율복이 돌아와 연왕에게 보고했다. “조나라 왕의 장정들은 모두 장평 싸움에서 죽고, 고아가 된 자식들은 아직 자라지 않아 정벌할 만 합니다.”
(註)
◯ 王喜(왕희) : 연왕 희(燕王 喜). 효왕(孝王)의 아들로, 이름은 희(喜)이다. 연(燕)나라 마지막 왕으로 형가(荊軻)에게 진시황(秦始皇)을 암살하도록 시킨 것으로 유명한 태자 단(丹)의 아버지이다.
◯ 約歡(약환) : 우호적인 맹약을 맺다.
◯ 栗腹(율복) : 인명. 연(燕)나라의 재상.
王召昌國君樂閒問之(소왕창국군악간문지).
연왕이 창국군(昌國君) 악간(樂間)을 불러 물었다.
對曰(대왈): 趙四戰之國(조사전지국), 其民習兵(기민습병), 不可伐(불가벌).
창국군이 대답했다. “조나라는 사방으로 전쟁을 치르는 나라로 사람들이 싸움에 익숙하므로 정벌할 수 없습니다.”
王曰(왕왈): 吾以五而伐一(오이오이벌일).
연왕이 말했다. “우리가 다섯 명으로 한 명을 칠 것이다.”
對曰(대왈): 不可(불가).
창국군이 대답했다. “안 됩니다.”
燕王怒(연왕노), 群臣皆以為可(군신개이위가).
연왕은 화를 냈고, 신하들은 모두 할 수 있다고 했다.
(註)
◯ 昌國君(창국군) 악간(樂間) : 악의(樂毅)의 아들. 창국군(昌國君)은 악의(樂毅)가 받은 봉호(封號)로 그의 아들이 이어받았다.
◯ 四戰之國(사전지국) : 조나라의 동쪽에는 연나라가 있고 서쪽에는 진(秦)나라가 있으며, 남쪽으로는 위(魏)나라와 한(韓)나라가 있으며 북쪽으로는 흉노가 있으므로 사전(四戰)이라 한 것이다.
卒起二軍(졸기이군), 車二千乘(거이천승), 栗腹將而攻鄗(율복장이공호), 卿秦攻代(경진공대).
끝내 군대를 동원하여 두 길로 나누고 전차 2,000승(乘)을 내어 율복에게는 호(鄗)를, 경진(卿秦)에게는 대(代)를 공격하게 했다.
唯獨大夫將渠謂燕王曰(유독대부장거위연왕왈): 與人通關約交(여인통관약교), 以五百金飲人之王(이오백금음인지왕), 使者報而反攻之(사자보이반공지), 不祥(불상), 兵無成功(병무성공).
오직 대부 장거(將渠)만이 왕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과 우호를 맺고 500금(金)까지 보내 그 왕의 건강까지 빌었는데, 사신의 보고만 듣고 오히려 그들을 공격하려 하시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니 군대가 공을 세우지 못할 것입니다.”
燕王不聽(연왕불청), 自將偏軍隨之(자장편군수지).
연왕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스스로 별동대를 이끌고 따라갔다.
將渠引燕王綬止之曰(장거인연왕수지지왈): 王必無自往(왕필무자왕), 往無成功(왕무성공).
장거가 왕의 인끈을 잡아당기며 만류하며 말했다. “왕께서 직접 가시면 정말 안 됩니다. 가셔도 성공하지 못 합니다.”
王蹵之以足(왕축지이족).
왕이 발로 그를 걷어찼다.
將渠泣曰(장거읍왈): 臣非以自為(신비이자위), 為王也(위왕야).
장거가 울면서 말했다. “신은 저를 위해 이러는 것이 아니라 왕을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註)
◯ 卒起二軍(졸기이군) : 연왕은 율복에게 40만 군으로 조나라의 호(鄗) 땅을 공격하게 하고 경진(慶秦)에게는 20만으로 대(代)를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자 조나라에서는 이에 맞서 염파(廉頗)에게 8만 군사로 호(䧚)에서 율복을 맞아 싸우도록 하고, 악승(樂乘)에게는 5만 군으로 대(代)에서 경진을 막도록 하였다. 싸움은 연나라가 크게 패하였다. <戰國策 31卷 燕策>
◯ 鄗(호) : 조(趙)나라의 읍.
◯ 慶秦(경진) : 경봉(慶奉)으로도 쓰며 연나라 장수.
◯ 通關約交(통관약교) : 서로 관문을 지나게 하고 맹약을 제정하다.
◯ 偏軍(편군) : 별동대.
◯ 綬(수) : 인끈. 도장을 매는 끈.
◯ 蹵(축) : 축(蹴). 짓밟다. 차다.
燕軍至宋子(연군지송자), 趙使廉頗將(조사염파장), 擊破栗腹於鄗(격파율복어호).
연나라의 군대가 송자현(宋子縣)에 이르자 조나라는 염파(廉頗)를 장수로 삼아 호에서 율복을 격파했다.
[樂乘(악승)]破卿秦(파경진)
(樂乘(악승) 於代(어대), 樂閒奔趙(악간분조).
악승(樂乘)은 대(代)에서 경진(卿秦)을 격파했으며 악간(樂閒)은 조나라로 달아났다.
廉頗逐之五百餘里(염파축지오백여리), 圍其國(위기국).
염파는 500여 리나 추격하여 연나라의 도성을 포위했다.
燕人請和(연인청화), 趙人不許(조인불허), 必令將渠處和(필령장거처화).
연나라가 화친을 요청하자 조나라는 허락하지 않으면서 반드시 장거가 화친을 주관하게 하라고 요구했다.
燕相將渠以處和(연상장거이청화).
연나라가 장거(將渠)를 재상으로 삼아 화친을 주관하게 했다.
趙聽將渠(조청장거), 解燕圍(해연위).
조나라는 장거의 요청을 듣고 연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었다.
(註)
◯ 宋子(송자) : 송자현(宋子縣). 거록군(鉅鹿郡)에 속했다.
◯ 廉頗(염파) : 조(趙)나라의 명장으로 진(秦)나라와 위(魏)나라 등과 싸워 여러 차례 적을 물리쳤으며 신평군(信平君)의 칭호를 받았다. 같은 시대에 활약한 조나라의 재상 인상여(藺相如)와의 교우는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고사의 유래가 되기도 하였다. <사기 권81. 염파인상여열전(廉頗藺相如列傳)>
◯ 樂乘(악승) : 악의(樂毅)‧악간(樂間)의 일족으로 조나라에 벼슬하고 있었다.
◯ 國(국) : 국도. 도성.
◯ 處和(처화) : 참여하여 화친을 주관하다.
◯ 相(상) : 재상으로 임명하다.
▶️ 先(먼저 선)은 ❶회의문자로 之(지; 가다)와 어진사람인발(儿; 사람의 다리 모양)部의 합자(合字)이다. 어진사람인발(儿)部는 본디 人(인)과 같은 글자이지만 이 모양이 아래에 붙는 글자는 그 위에 쓰는 자형(字形)이 나타내는 말의 기능을 강조하여, 앞으로 나아가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先자는 ‘먼저’나 ‘미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先자는 牛(소 우)자와 儿(어진사람 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先자의 갑골문을 보면 본래는 牛자가 아닌 止(발 지)자와 儿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사람보다 발이 앞서나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先자는 ‘먼저’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소전에서는 止자가 牛자로 잘 못 옮겨졌다. 소전에서의 牛자와 止자가 서로 비슷하여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先(선)은 (1)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앞선 먼저의 뜻을 나타내는 말 (2)어떤 명사(名詞) 앞에 붙이어 돌아 간의 뜻을 나타내는 말 (3)바닥이나 장기, 고누, 윷놀이 따위에서 맨 처음에 상대편보다 먼저 두는 일, 또는 그 사람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먼저, 미리 ②옛날, 이전 ③앞, 처음, 첫째 ④돌아가신 이, 죽은 아버지 ⑤선구(先驅), 앞선 사람 ⑥조상(祖上) ⑦형수(兄嫂) ⑧앞서다, 뛰어넘다, 이끌다 ⑨나아가다, 앞으로 가다 ⑩높이다, 중(重)히 여기다, 뛰어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앞 전(前)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뒤 후(後)이다. 용례로는 할아버지 이상의 조상을 선조(先祖), 학교나 직장을 먼저 거친 사람 또는 나이나 학식 등이 자기보다 많거나 나은 사람을 선배(先輩), 남의 앞에 서서 인도함 또는 앞장서서 안내함을 선도(先導),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은 열사를 선열(先烈), 맨 앞이나 첫머리를 선두(先頭), 먼저와 나중을 선후(先後), 조상의 무덤이 있는 곳을 선산(先山), 다른 문제보다 먼저 해결함 또는 결정함을 선결(先決), 맨 먼저 주창함을 선창(先唱), 선수를 써서 자기에게 이롭도록 먼저 상대방의 행동을 견제함을 선제(先制), 다른 일에 앞서 행함 또는 앞서 행한 행위를 선행(先行), 어떤 임무나 직무 등을 먼저 맡음 또는 그 사람을 선임(先任), 먼저 약속함 또는 그 약속을 선약(先約), 남보다 앞서서 먼저 차지함을 선점(先占), 맨 앞장을 선봉(先鋒), 남보다 앞서 길을 떠나감을 선발(先發), 차례에서의 먼저를 선차(先次), 세상 물정에 대하여 남보다 먼저 깨달음을 선각(先覺), 무엇보다도 먼저를 우선(于先), 다른 것 보다 앞섬을 우선(優先), 남보다 앞서 함을 솔선(率先), 앞장서서 인도함을 수선(帥先), 앞서기를 다툼을 쟁선(爭先), 선조의 덕업을 받듦을 봉선(奉先),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두는 바둑을 상선(相先), 실력이 비금비금한 사람끼리 두는 바둑을 호선(互先), 남보다 앞서 일을 도모하면 능히 남을 누를 수 있다는 뜻으로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남보다 앞서 하면 유리함을 이르는 말을 선즉제인(先則制人), 사보다 공을 앞세움이란 뜻으로 사사로운 일이나 이익보다 공익을 앞세움을 일컫는 말을 선공후사(先公後私), 소문을 미리 퍼뜨려 남의 기세를 꺾음 또는 먼저 큰소리를 질러 남의 기세를 꺾음을 일컫는 말을 선성탈인(先聲奪人), 근심할 일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즐길 일은 남보다 나중에 즐긴다는 뜻으로 지사志士나 인인仁人의 마음씨를 일컫는 말을 선우후락(先憂後樂), 앞을 내다보는 안목이라는 뜻으로 장래를 미리 예측하는 날카로운 견식을 두고 이르는 말을 선견지명(先見之明), 먼저 들은 이야기에 따른 고정관념으로 새로운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이르는 말을 선입지어(先入之語), 먼저 예의를 배우고 나중에 학문을 배우라는 말을 선례후학(先禮後學), 먼저 의를 따르고 후에 이익을 생각한다는 말을 선의후리(先義後利), 다른 사람의 일보다 자기의 일에 우선 성실해야 한다는 말을 선기후인(先己後人), 먼저 앓아 본 사람이 의원이라는 뜻으로 경험 있는 사람이 남을 인도할 수 있다는 말을 선병자의(先病者醫), 선인의 행위를 들어 후학을 가르침을 일컫는 말을 선행후교(先行後敎), 꽃이 먼저 피고 나중에 열매를 맺는다는 뜻으로 딸을 먼저 낳은 다음에 아들을 낳음을 이르는 말을 선화후과(先花後果), 먼저 곽외郭隗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말한 사람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선시어외(先始於隗) 등에 쓰인다.
▶️ 從(좇을 종)은 ❶형성문자로 従(종)의 본자(本字), 徔(종)은 통자(通字), 从(종)은 간자(簡字)이다. 음(音)을 나타내는 从(종)은 사람 뒤에 사람이 따라 가는 모습으로,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는 간다는 뜻이다. 止(지)는 발자국의 모양으로 나아가는 일과 사람이 잇따라 나아감이니 따르다의 뜻이다. 옛 글자 모양은 사람을 어느쪽을 향하게 하여도 좋아, 人의 모양을 둘 그려 따른다는 뜻을 나타냈다. 나중에 오른쪽을 향한 것은 比(비), 왼쪽을 향한 것은 从(종)으로 하였다. ❷회의문자로 從자는 '좇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從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止(발 지)자, 从(좇을 종)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본래 '좇다'라는 뜻은 从자가 먼저 쓰였었다. 从자는 사람을 나란히 그린 것으로 뒷사람이 앞사람을 '좇아가다'를 뜻했었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자와 止자가 더해지면서 길을 따라 뒷사람이 앞사람을 좇아간다는 의미를 표현하게 되었다. 그래서 從(종)은 (1)종속적(從屬的)인 것 주(主)가 되는 것에 딸리는 것 (2)사촌(四寸)이나 오촌(五寸)의 겨레 관계를 나타내는 말 (3)직품(職品)을 구별하는 한 가지 이름 정(正)보다 한 품계(品階)씩 낮고, 종1품(從一品)부터 종9품(從九品)까지 있음 등의 뜻으로 ①좇다, 따르다 ②나아가다, 다가서다 ③모시다, 시중들다 ④일하다 ⑤놓다 ⑥모이다 ⑦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⑧높고 크다 ⑨조용하다, 느릿하다 ⑩방종(放縱)하다, 제멋대로 하다 ⑪말미암다 ⑫따라서 죽다 ⑬오래다 ⑭세로, 남북(南北) ⑮자취(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 흔적(痕跡) ⑯시중드는 사람, 심부름꾼 ⑰종(친족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 ⑱버금(으뜸의 바로 아래) ⑲높고 큰 모양 ⑳부터,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종 복(僕),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임금 왕(王)이다. 용례로는 이제부터나 지금으로 부터를 종금(從今), 지금까지 내려온 그대로를 종래(從來), 줏대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사람을 종복(從僕), 어떤 일에 매달려 일함을 종사(從事), 남편을 좇음을 종부(從夫), 주가 아닌 간접적인 원인을 종인(從因), 이전이나 이제까지를 종전(從前), 남에게 따라 다니며 심부름하는 사람을 종졸(從卒), 주되는 것에 딸려 붙음을 종속(從屬), 꾸밈이 없이 사실대로 함을 종실(從實), 침착하고 덤비지 않음을 종용(從容), 어떤 사업에 종사함을 종업(從業), 이로부터나 이 뒤를 종차(從此), 뒤를 따라서 죽음을 종사(從死), 남의 명령이나 의사에 좇음을 복종(服從), 고분고분 따름을 순종(順從), 뒤를 따라서 좇음을 추종(追從), 굳게 맹세하여 서로 응함을 합종(合從),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남을 따름을 맹종(盲從), 서로 따르며 친하게 지냄을 상종(相從), 사실 그대로 고함을 일컫는 말을 종실직고(從實直告), 물이 신속히 낮은 쪽으로 흐르듯이 선善임을 알았으면 지체없이 이에 따르는 것을 뜻하는 말로 서슴치 않고 착한 일을 하는 태도를 이르는 말을 종선여류(從善如流), 마음에 하고 싶은 대로 함을 이르는 말을 종심소욕(從心所欲),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이 순순히 간언을 따름을 일르는 말을 종간여류(從諫如流), 욕심 내키는 대로하여 사사로운 감정을 충족시킴을 일컫는 말을 종욕염사(從欲厭私), 다수자의 의견을 좇아 결정함을 일컫는 말을 종다수결(從多數決), 착한 일을 쫓아 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착한 일을 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말을 종선여등(從善如登),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좇아서 함을 이르는 말을 종오소호(從吾所好), 우물에 들어가 남을 구한다는 뜻으로 해 놓은 일에 아무런 이득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종정구인(從井救人), 어떤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편할 대로 쉬울대로 쫓아 함을 이르는 말을 종편위지(從便僞之), 자기 마음대로 하고도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는다는 종회여류(從懷如流) 등에 쓰인다.
▶️ 隗(높을 외)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鬼(귀, 외)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隗(외)는 ①높다 ②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먼저 외로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사물을 시작하려면 우선 말을 꺼낸 자부터 착수해야 함 또는 큰 일을 이루려면 먼저 작은 일부터 시작하여야 한다는 말을 선종외시(先從隗始), 먼저 외부터 시작하라는 뜻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말한 사람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선시어외(先始於隗) 등에 쓰인다.
▶️ 始(비로소 시)는 ❶형성문자로 乨(시)는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계집 녀(女; 여자)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台(태, 이, 시)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음(音)을 나타내는 台(태, 이, 시)와 여자(女)의 뱃속에 아기가 생기는 일이 시초라는 데서 '비로소', '처음'을 뜻한다. 始(시)는 어머니 뱃속에 아이가 생기는 일, 또 한 집안의 시초, 시조(始祖), 나중에 '사물의 시작'이란 뜻으로도 쓴다. ❷회의문자로 始자는 '비로서'나 '일찍이', '옛날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始자는 女(여자 여)자와 台(별 태)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台자는 匕(비수 비)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것으로 수저를 입에 가져다 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女자가 더해진 始자는 마치 엄마가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아이는 엄마가 주는 양분을 통해 삶을 시작하게 된다. 始자는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아 만든 글자이다. 그래서 始(시)는 ①비로소 ②바야흐로 ③먼저, 앞서서 ④일찍, 일찍부터 ⑤옛날에, 당초에 ⑥처음, 시초(始初) ⑦근본(根本), 근원(根源) ⑧시작(始作)하다 ⑨일으키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처음 초(初), 근본 본(本), 비롯할 창(創), 비롯할 조(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끝 말(末), 마칠 종(終)이다. 용례로는 처음으로 함을 시작(始作), 한 족속의 맨 우두머리 조상을 시조(始祖), 시작한 처음 무렵을 시초(始初), 시작되는 처음을 시원(始原), 어떤 일을 맡아보기 시작함을 시무(始務), 일의 처음과 끝을 시말(始末), 직업 또는 학업 따위의 일을 시작함을 시업(始業), 처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함을 시동(始動), 일련의 동작 운동이 시작되는 점을 시점(始點), 어떤 일이 시작되는 때를 시기(始期), 맨 처음 출발 또는 발차함을 시발(始發), 처음으로 자연 그대로 사람의 손이 가해지지 않음을 원시(原始), 처음으로 시작함을 개시(開始), 천지가 비롯된 무렵이나 만물이 시작된 때를 태시(太始), 어떤 사상이나 학설 등을 처음 내세움을 창시(創始), 맨 처음을 본시(本始), 마지막과 처음을 종시(終始), 아무리 돌아도 처음 비롯한 곳이 없음을 무시(無始),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관철한다는 말을 시종일관(始終一貫), 처음이나 나중이 한결 같아서 변함없다는 말을 시종여일(始終如一), 처음에는 부지런히 하나 나중에는 게으름을 이르는 말을 시근종태(始勤終怠),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다는 말을 종시일관(終始一貫), 한 해의 마지막 때와 새해의 첫머리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연말연시(年末年始), 시작도 끝도 없다는 뜻으로 불변의 진리나 윤회의 무한성을 이르는 말을 무시무종(無始無終), 살고 죽는 윤회의 굴레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을 일컫는 말을 무시범부(無始凡夫), 근본에 보답하고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천지와 선조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말을 보본반시(報本反始), 이제야 비로소 처음으로 들음을 일컫는 말을 금시초문(今始初聞), 시작할 때부터 끝을 맺을 때까지 변함이 없다는 말을 유시유종(有始有終)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