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다고 머물 수는 없다
여수에 내려와 교회 직원 영성 수련회에 함께 하며 저녁 집회 설교를 하였습니다.
‘다니엘처럼 기도하자’는 말씀을 전하고 뜨겁게 기도하였습니다.
여수까지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본 창문 밖 남도의 경치는 참 푸근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우리나라에 아름다운 곳이 많습니다. 한국의 자연은 사람을 압도하는 장관이 아니라 푸근하게 감싸주는 멋이 있습니다.
가을의 풍요함도 함께 느낄 수 있어서 한참 경치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쉼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코스타 때문에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갔을 때 생각이 났습니다.
케이프타운은 정말 자연이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프리카의 경치는 규모가 달랐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왔고 웅장하였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제게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넌 어디로 가서 살고 싶으냐?”
한 때는 아름다운 곳, 살기 좋은 곳에서 살고 싶은 유혹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닙니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에 가서 살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 설 때, “살기 좋은 곳만 찾아 다니다 왔습니다” 할 것입니까?
세상 없이 경치 좋은 곳이라도 며칠만 지나면 감동이 없어집니다.
세상 없이 아름다운 곳에서 살면서도 삶의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름다운 경치가 인생의 답은 아닌 것입니다,
어느 이민 교회 목사님께서 왜 이민교회가 쇠퇴하느냐 하는 질문에 대답하였습니다.
“이 땅에 이민올 때, 대부분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것이 아니라 여기가 좋아보였거나, 오고 싶었거나,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서 이민 길에 올랐습니다.
이렇게 출발이 잘못된 이민 생활은 계속해서 실수의 연속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를 깨닫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현실은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도 끊임없이 자기의 뜻에 맞는 교회, 자기의 뜻을 이루는 교회, 자기가 생각하기에 좋은 교회를 택하니 이민교회, 이민 사회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버리는 정도가 아니라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리게 됩니다. (빌 3:7-9)
이것이 우리가 예수님을 정말 믿고 따르는 자인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했는지를 분별하는 기준입니다.
1박2일의 아쉬운 여행이지만 아름다운 여수에서 할 일 많은 교회로 갑니다.
아쉽기도 하지만 제가 가야 할 곳은 주님이 부르시는 곳입니다.
아름다운 여수에서 하루를 지내고 다시 교회가 있는 성남으로 올라가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소망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동안 교회에서 고생한 직원들 모두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이곳에서 영원히 살았으면 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오늘 다 버려두고 기쁜 마음으로 집을 향하여 올라 갈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하여 가지는 마음이라 여겨집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는 잘 보고 듣지 못하였는데 여행 중에는 선명하게 보고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기를 쓰지 않았다면 보지 못하고 지나칠 뻔 했던 주님이었고, 듣지 못하고 지날 뻔 했던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곳이라고 머물 곳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