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킹만 사건, 닉슨 독트린과 닉슨 쇼크, 그리고 세계적 인플레이션
964년 북베트남군이 통킹 만에서 8월 2일과 8월 4일 2차례 미국 구축함을 공격하였고, 미군은 이를 격퇴했다고 보고된 사건으로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계기가 되었지만, 사실은 조작되었다는 통킹만 사건이 일어난다.
1964년 8월 2~4일에 베트남 근해의 통킹 만에서 미국 제7함대 소속 구축함 매덕스호와 터너조이호가 북베트남군의 어뢰정으로부터 공격을 당했다는 보고를 들은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미해군 비행기들에게 북베트남을 보복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의회는 거의 만장일치로 통킹 만 결의안을 채택했다.
결의안의 목적은 미국군에 대한 어떠한 무장공격도 격퇴하고 더 이상의 침략을 방지하기 위해 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이 취하는 모든 조치를 승인하고 지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통킹만 결의안은 사실상 대통령에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전면적으로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공식적인 권한을 부여해주었다.
그러나, 1995년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 사령관이었던 보 구엔 지아프는 8월 2일 매덕스 함을 공격한 것은 인정했지만 8월 4일 공격은 없었다고 주장하면서, 통킹만 사건에 대해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2005년 미국안전보장이사회의 옛 비밀문건이 해제되어 공개되었을 때 역시 8월 2일에 교전한 것은 맞지만 8월 4일에는 북베트남 함정이 없었다고 보고되어 있었다.
8월 2일에도 오후 3시 함장이 포수들에게 1,만 야드까지 접근하면 발포하라고 명령했고, 오후 3시 5분에 함포 3발을 발사해서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고 되어 있었다.
당시 린드 존슨 대통령이 언급했던 북베트남 어뢰정의 선제 공격은 없었다.
즉, 린드 존슨 대통령이 베트남에 군사적 간섭을 하기 위해 통킹만 사건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벌어진 10년간의 전쟁으로 미국은 막대한 재정지출을 하게 되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던 미국은 1970 년 닉슨독트린을 발표한다.
닉슨 독트린의 내용은 이렇다.
1969년에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발표한 고립주의 정책이다. 주한미군 감축 발상과 데탕트도 여기서 비롯되었다.
"미국은 앞으로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을 피한다. 미국은 아시아 제국과의 조약상 약속을 지키지만,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하여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하여 그에 대처하여야 할 것이다.
미국은 ‘태평양 국가’로서 그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지만 직접적, 군사적 또는 정치적인 과잉 개입은 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의사를 가진 아시아 각국의 자주적 행동을 측면 지원한다.
아시아의 각국에 대한 원조는 경제 중심으로 바꾸며 여러 나라 상호 원조 방식을 강화하여 미국의 과중한 부담을 피한다.
아시아의 각국이 5∼10년의 장래에는 상호안전보장을 위한 군사기구를 만들기를 기대한다.“
닉슨 독트린 발표 후, 닉슨대통령이 1971년 8월 발표한 달러방어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충격이 닉슨 쇼크다.
1960년대 말부터 미국은 베트남 전쟁을 포함해 많은 대외 원조 및 군사비 지출로 인해 경제력이 크게 낮아졌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국제수지가 크게 악화돼 달러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다. 게다가 미국 달러화의 금 교환 요구가 외국에서 크게 늘어나면서 미국의 금 보유고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이에 닉슨 대통령은 금과 달러의 교환 정지, 10%의 수입 과징금의 실시 등을 포함하는 달러방어정책을 내놓게 되었다.
닉슨 쇼크는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일본, 중남미 등에 큰 충격을 주었고,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 바뀌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미국은 금의 보유량과 상관 없이 달러를 찍어내고 각국은 변동 환률제로 인한 혼란에 빠졌고, 전 세계는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게 되었다.
앞으로 전 지구적으로 물가는 상승할 것이다.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가.
자본주의가 망할 때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