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문기술자 이근안 비운의 영웅 만들기?
민주화의 대부 김근태 선생이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영면하셨다. 향년 64세다. 인생의 2막을 새로 시작할 수도 있는 나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고문의 후유증은 그를 평생 괴롭혔다. 끝내 고문이 원인이 되어 파킨스병을 얻었고, 우리 곁을 표표히 떠나가셨다.
선생이 타계하면서 세인의 주목을 받은 인물이 있다. 바로 선생을 고문했던 ‘고문기술자’ 이근안이다. 그는 경기지방경찰청 공안분실장을 지내면서 1985년 선생이 ‘서울대 내란음모 사건’으로 체포됐을 때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선생을 고문하면서 악연을 맺었다. 그는 선생 말고도 무고한 많은 사람들을 고문하여 한 시대를 풍미했다. 그는 1988년 군사정권이 붕괴한 이후 불법 체포 및 고문을 시도한 혐의로 수배되어 10년여를 숨어 다니다가 2000년에 자수하여 재판 결과 징역 7년을 언도받고 2006년 11월에 출감하였다. 출감 후 2008년에 목사 안수를 받고 개신교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세인들의 관심은 그가 선생의 빈소를 찾아 진심으로 용서를 빌 것인가 하는 거였다. 지난 몇 년 이명박 정부에 의해 우리의 민주주의와 인권은 참담하게 무너졌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세상의 참된 도리가 지켜지기를 비는 마음이었는지 모른다. 어쩌면 지난 세기 인간의 야만이 저지른 참혹한 범죄 중에 하나인 고문이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역사적인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사진출처 : 다음이미지>
돌이켜보면 선생은 고문의 후유증에도 불구 2004년 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근안을 찾아가 끝내 그를 용서했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선생은 생전에 이근안의 사죄가 가식처럼 느껴진다고 토로했지만, 선생은 그를 탓하기 전에 선생 스스로 옹졸하지 않은지를 더 괴로워했다.
이런 순고하고 착한 선생의 영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고문기술자 이근안은 일찌감치 선생의 기대를 저버렸다. 때문에 그가 선생의 영혼 앞에 진심으로 참회할 거라는 기대는 사실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만 인간으로서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하는 세속적인 기대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2010년 2월 이미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근안은 자신의 고문 행위를 애국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고문 기술자가 아닌 신문 기술자라고 미화하는가 하면, 심지어 선생에 대한 전기고문 조차 부정하는 망언을 했다. 교도서에서 성경을 수십 번 읽으며 참회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는 고문 기술자 당시 경감은 과거일 뿐이며, 현재는 목사라고 당당히 주장했다. 이처럼 그는 이미 뼛속까지 악마였다. 그런 그가 선생의 빈소를 찾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이근안의 근황과 관련 재미난 기사를 내놓았다. 이근안이 선생의 병세가 악화된 4개월 전부터 연락을 끊었고, 성탄절 전후로는 아예 종적을 감췄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근안 부부가 파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주변 부동산중개업소를 통해 확인한 결과 이들 부부는 지난해부터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20만 원을 내는 13.2m²(약 4평)짜리 허름한 단칸방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2008년 목사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어 신앙 간증을 하고 다녔다는 그다. 특히 2010년에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고문사실을 미화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가 파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도저히 믿을 수없는 사실이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도피생활에서도 정권의 비호가 없었다면 10여년을 숨어 다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있었다. 당시 검경이 그를 붙잡을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그의 급작스러운 자수도 석연치 않지만, 수감생활에서도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알려졌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파지로 연명한다는 것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난 뭔가 모종의 흑막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는 이해가 어려운 일이다. 어쨌든 동아일보가 전한 그의 근황은 이렇다.
한 파지수거업체 주인은 “매주 이 전 경감의 부인 신모 씨가 파지나 알루미늄 캔을 모아와 한 달 평균 10만 원가량의 돈을 받아갔는데 파지 양이 많을 때는 이 씨가 직접 손수레를 끌고 왔다”며 “신 씨가 인근 빌딩에서 환경미화원 일을 한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혹 그의 근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을까 인터넷을 뒤적이다 놀라운 글 하나를 발견했다. 도무지 눈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충격적인 글이었다. ‘이근안과 구엔 곡 로안’이라는 제목의 프런티어타임스(www.frontiertimes.co.kr)기사다. 정권이 바뀌면서 ‘처형 집행인’과 ‘고문기술자’로 몰려, 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구엔 곡 로안이 누구인가. 그는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8년 1월 30일, 전투 중에 체포되어 연행되던 베트콩을 즉석에서 권총으로 사살하여 충격을 준 인물이다. 당시 이 장면은 현장에 있던 외신 기자들에게 포착되어 전쟁의 참혹함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 장면을 찍은 에디 아담스는 그 후 플리처상을 수상하면서 베트남전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진이 되었다. 전쟁의 잔혹성과 추악함을 충격적으로 상징했던 이런 범죄행위자를 두둔하는 기사라니, 어이가 없었다.

베트콩을 즉결처분을 하고 있는 구엔 곡 로안.
이 한장의 사진은 전쟁의 잔혹상과 추악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기사는 베트콩에게 즉결처분을 집행했던 남베트남의 치안대장 구엔 곡 로안 준장을 군인으로서 당연한 행동을 한 것으로 묘사하며 “이 사진 한 장으로 '사이공의 처형집행인'이라는 별칭을 얻었고, 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무슨 도살자인양 취급하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 기사가 이근안을 옹호하는 부분은 과히 충격적이다. 이 부분을 직정 인용해 보면 이렇다.
구엔 곡 로안과 비슷한 인생 경로를 겪은 사람은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이근안 전 경감이다. 이근안은 1970년에 경찰에 입문하여 대공 분야에서 한 우물만 팠다. 이근안은 대공수사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4건의 간첩검거 유공과 16차례의 대통령 표창을 받은 실력 있는 대공수사관이었다. 그러다가 이근안은 1985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김근태를 만나게 되면서 그는 인생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로안 준장이 사이공 대로에서 바이 로프를 만나면서 인생 항로가 삐뚤어졌던 것처럼.
이근안이 김근태를 심문하는 방법은 김근태의 맨발에 물을 붓고 AA 건전지 두 개를 발에 갖다 대어 겁을 주는 것이었다. 김근태는 이것을 전기고문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자칭 민주화세력들과 좌익언론들은 관절빼기, 볼펜심 꽂기, 통닭구이, 등 이근안이 듣도 보도 못한 온갖 고문기술들을 이근안의 '작품'으로 만들었고, 생전 이근안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도 이근안에게 고문당했다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
최근 인터넷의 극우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글들을 무작위로 살포하고 있다는 말을 들어보았지만, 이 정도 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는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정도를 뛰어넘어 일종의 범죄행위를 두둔하는 미치광이의 짓처럼 보인다. 이미 수많은 증언과 폭로로 이근안의 범죄행위가 낱낱이 밝혀진 상황에서 이근안의 주장을 그대로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이다. 옹호하는 차원을 넘어 그를 영웅으로 추겨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다음의 글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광우병 괴담, FTA 괴담, 518 괴담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김근태를 출발점으로 해서 무성하게 번성했던 '이근안 괴담'의 목표점은 이근안이기보다는 대한민국 정부였다. 고문이라는 비도덕적 행위를 부각시켜서 정권에 흠집을 내고 대공 수사력을 약화시키려는 좌익들의 의도였다. 이근안 괴담의 공로는 지대했다. 그 후 전세는 역전되어 이근안은 지명수배당해 쫓기는 몸이 되었고, 대공 수사력은 약화일로를 걸어 간첩 구경할 일이 없어졌다.
도대체 반박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 같은 글이지만, 아직도 이런 글이 버젓이 인터넷에 공공연하게 떠도는 것이 현실이다. 로안과 이근안의 문제는 실상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인간이 인간을 살육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추악한 범죄에 대한 문제다. 이것은 어떤 이념이나 정치체제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건 우리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걸 부정한다면 우리가 개나 소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럼에도 이 기사는 “패망하지 않은 나라 한국의 이근안은 패망한 국가 월남의 로안 준장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망하지 않았지만 망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딛고 서있는 땅은 대한민국이지만 우리를 다스리고 지배하는 것은 대체 누구일까”라고 묻는다.
이처럼 뼛속까지 이념과 색깔로 물들어 인간을 편가르기 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미치광이와 같은 사람들이 살아지지 않는 한 이근안과 같은 괴물도 이 땅에서 살아지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이근안이라는 이름 석 자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