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짝’ 곧 ‘신’의 정체성이 뭡니까?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사람의 발을 섬기는
‘종’ 아닙니까. 발을 보호하고 살리는 ‘종’ 아닙니까.
그것도 ‘새신짝’이 아닌 ‘헌신짝’이라면?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헌신짝’이 되기를 싫어합니다.
헌신짝처럼 버려진 인생은 실인즉 비참합니다. 쓸모없는 ‘헌신짝 인생’ 그 자체는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스스로 ‘헌신짝’이 되어버릴 수만 있다면, 그런 ‘나’는 누구에게 쓰임을 받아 신겨져도 좋고,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좋습니다. 신겨지면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요, 버려지면 그것조차도 주인 혹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자유의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심오한 영성(靈性)에의 열림이자 ‘그리스도의 자유’에의 깨달음이 과연 거기 있습니다.
실인즉 이현필 선생은 버려진 병자들을 섬기는 과정에서 옮은 폐병과 후두결핵으로 인해 말년에 성 프란치스코처럼 모진 병고를 앓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만, 임종시 “오 기쁘다! 기쁘다!”라고 연방 하늘을 향해 소리 지르며 가셨습니다. 그것은 하늘나라에의 열림이자 참 자유인의 탄성이었다고 저는 지금도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