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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시대 북종화의 대가 이당(李唐, 1080?-1130?)이 그린 만학송풍도(萬學松風圖).
고난도의 기법인 ‘부벽준법(斧劈皴法)’을 구사한 작품이다.
실내 인테리어로 걸어놓은 그림이 건강이나 장수와 관련 있을까. 이 주제를 처음으로 들고 나온 이가 중국 명나라의 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이다. 중국 회화사에서 그림과 ‘양생(養生)의 도’를 접목시킨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중국의 산수화를 북종화와 남종화로 구별한 후, 북종화는 수명을 단축시키는 반면 남종화는 수명을 늘려준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었다. 장강(長江, 창장강) 이남 지역에서 수묵 산수화를 즐겨 그려온 남종화가들 중에서는 장수하는 이들이 많았다. 명나라 시대의 문징명(文徵明, 1470-1559(89세), 심주(沈周, 1427-1509(82세), 진계유(陳繼儒, 1558-1639(81세) 등은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아도 오래 살았다. 동기창 자신도 81세까지 살았다. 반면 채색 산수화를 그려온 북종화가들은 대개 환갑을 넘기지 못했다고 한다.
이당(李唐, 1080?-1130?), ‘만학송풍도(萬學松風圖)’. 북송시대, 북종화, 부벽준법(斧劈皴法) 작품(부분도)
동기창은 그 이유를 그림 기법에서 찾았다. 북종화는 붓으로 가늘고 긴 선, 짧고 굵은 선 등 윤곽선을 그리고 도끼로 찍어내거나 끌로 파내듯 대상물을 표현하는 구작법(鉤斫法)을 구사한다. 이 기법은 지나치게 조심스럽고 세밀해 화가의 심신을 고달프게 하고 결국 수명까지 단축시킨다는 게 동기창의 주장이었다. 게다가 매너리즘적 기교와 정형화된 기법은 그림에서 생동감이 결여되는 단점까지 보인다는 것이다.
반면 남종화는 묵을 이용해 공간의 여백을 최대한 살려내는 선담법(渲淡法)을 구사한다. 이러한 남종화는 여유를 즐기고 정신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동기창은 남종화가들이 그림 속에서 자연을 즐기기 때문에 정신이 온전하고 질병이 없이 장수했다고까지 말한다. 이른바 그림에 의지하고 그림으로 낙을 삼는 ‘기화위락(寄畵爲樂)의 경지다.
여백의 미가 돋보이는 남종화가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의 산수 그림.
남종화와 북종화의 이같은 특징은 기운(氣運)의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의 화가이자 미술사가인 딩시위안(丁羲元, 1942- )은 저서 ‘예술풍수(藝術風水)’에서 “구작법(鉤斫法)을 구사한 북종화는 선으로 각을 만들 듯 공간의 경계를 확정지음으로써 기(氣)를 안으로 가두거나 흡수하는 작용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반면 “선담법(渲淡法)을 구사한 남종화는 공간의 경계선이 모호해 기가 외부의 공간으로 흘러나온다”고 한다. 즉 남종화에서는 기운이 열린 공간으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런 기운의 유동성을 두고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고 표현한다. 기운생동은 더 나아가 작품과 감상자에게도 이어진다. 결국 남종화를 즐기거나 가까이 하면 그림과 감응한 감상자의 건강과 장수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문징명(文明明, 1470-1559), ‘수각도(水閣圖)’, 1557년, 수묵지본립축.
진계유(陳繼儒, 1558-1639), '운산유취도(雲山幽趣圖)'.
✺ 뒤에야(然後)-安得長者言 중에서
靜坐然後知平日之氣浮(정좌연후지평일지기부) 고요히 앉아본 뒤에야 평상시의 마음이 경박했음을 알았네
守默然後知平日之言躁(수묵연후지평일지언조) 침묵을 지켜본 뒤에야 지난날의 언어가 소란스러웠음을 알았네
省事然後知平日之費閒(성사연후지평일지비한) 일을 줄인 뒤에야 시간을 무의미하게 보냈음을 알았네
閉戶然後知平日之交濫(폐호연후지평일지교남) 문을 닫아건 뒤에야 이전의 사귐이 지나쳤음을 알았네
寡欲然後知平日之病多(과욕연후지평일지병다) 욕심을 줄인 뒤에야 이전의 잘못이 많았음을 알았네
近情然後知平日之念刻(근정연후지평일지념각) 정을 쏟은 뒤에야 평소에 마음씀이 각박했음을 알았네
-진계유(陳繼儒, 1558-1639)
진계유(陳繼儒, 1558-1639)는 명대明代의 문학가이자 서화가이다. 자는 중순仲醇이고 호는 미공眉公과 미공麋公을 썼다. 화정華亭(지금의 샹하이上海 송강松江)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명석하고 시문과 서화에 모두 능하여 유생이었을 때 지역의 명사들이 모두 그와 교유하기를 원하였다. 스물아홉 살 때 출사의 뜻을 접은 뒤 유생의 옷을 태우고 소곤산小昆山으로 들어가 은거를 시작했으며 나중에는 동사산東佘山으로 옮겨 저술에만 몰두하였다. 조정에서 몇 차례 불렀으나 모두 사양하며 나아가지 않았다. 남북종론南北宗論을 견지했으며 화가의 수양을 중시하고 서화의 근원이 동일하다는 의견에 찬동하였다. 《매화책梅花冊》, 《운산권雲山卷》 등을 세상에 남겼고, 《이고록妮古錄》, 《진미공전집陳眉公全集》, 《소창유기小窗幽記》 등의 저작을 남겼다.
留七分正經以度生(유칠분정경이도생), 7할은 성실하게 살면서 삶을 꾸려야 하고,
留三分痴呆以防死(유삼분치매이방사). 3할은 어리숙하게 살아 죽음을 막아야 한다.
* 正經(정경): 정당하게. 성실하게. 마오뚠茅盾은 《霜葉紅似二月花》란 작품에서 “他不是紳縉, 從沒幹過一件在太太們眼裡看來是正經的事(그 사람은 사대부가 아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님들 눈에 바르게 보이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라고 했다.
심주(沈周, 1427-1509), ‘국화 그림(墨菊)’, 명明, 종이에 수묵, 137.3×32.2cm, 고궁박물원 소장.
국화墨菊/ 심주(沈周, 1427-1509).
寫得東籬秋一株(사득동리추알주), 동쪽 울타리의 국화 한 그루 그려내니,
寒香晩色淡如無(한향만색담여무). 추국의 향기와 색깔 없는 듯 담박하네.
贈君當要領賞此(증군당요령상차), 그대에게 주니 요령 있게 감상하시길,
歸去對之開酒壺(귀거대자개주호). 돌아가 이 그림 대할 땐 술병을 열게.
도연명이 사랑했던 국화 한 그루를 그렸다. 차가운 늦가을 국화의 향기와 색깔은 있는 듯 없는 듯 담박하기만 하다. 사공도(司空圖)는 ‘떨어지는 꽃은 말이 없고 사람이 담담하기가 국화와 같다[洛花無言, 人淡如菊]’고 했던가. 그대에게 이 국화 그림을 주네. 그런데 이 그림을 감상하는 데에는 한 가지 요령이 있네. 집에 돌아가 이 국화를 대할 때면 반드시 술 단지를 열도록!
심주(沈周, 1427-1509)는 명나라 4대가의 한 사람으로 산수, 화훼에 뛰어났다. 특히 그는 명대에 사의(寫意), 즉 자신의 내면세계를 물상에 투영한 화훼 그림의 개창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화풍은 남송과 원나라 화가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산수화처럼 화조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하는 새로운 세계를 열었다.
이 그림을 보면 아래에서 위로 뻗는 국화 한 그루가 찬 날씨에도 꼿꼿이 서 있고 그 상부에 몇 송이 아름다운 국화꽃을 달고 있다. 구륵법을 구사하여 외곽선 없이 국화의 자태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는 은자의 마음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에서 말한 동리추(東籬秋), 즉 동쪽 울타리의 가을 국화는 바로 도연명의 상징 아니던가? ‘귀거(歸去)’나 ‘호(壺)’ 역시 <귀거래서>에 나오는 말이다. 도연명이 그 국화를 보면서 쓴 시가 바로 유명한 <음주(飮酒)> 시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그림과 시를 조화시켜 도연명으로 상징되는 은자의 정신과 마음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 느끼듯이 그의 그림은 사의적인 면이 강하지만 물상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기 역시 잘 포착하여 그려내고 있다. 사의(寫意)와 사생(寫生)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보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그는 본래 학문을 하여 인품이 고매한 데에다 시를 잘 쓰고 글씨도 잘 썼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언제나 시와 글씨, 그리고 그림이 어울려 있어 그림을 넘어서는 정취가 깃들여 있기에 감상의 즐거움이 아주 깊고도 풍부하다.
이 제화시는 희학적인 면이 있다. 그림을 가지고 가는 상대에게 이 국화를 제대로 감상하자면 집에 돌아가서 이 그림을 걸어 놓고 보면서 술을 마시라고 한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좋은 그림을 보면서 음주의 흥취를 느끼라는 말인가?
집에 가서 이 그림을 앞에 두고 술병을 열라는 말은 앞에서 설명한 은자의 마음을 향유하라는 말이고 자신이 이 그림을 주는 것은 그림을 받는 사람을 은자로 인정한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은자야말로 늦가을 국화처럼 색과 향이 담담하여 없는 것 같지만 뚜렷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시의 제목은 후인이 붙인 것이다. 옛 사람들의 작품에는 제목이 없는 그림이나 시가 많다. 3구는 일반적 7언처럼 4, 3으로 끊어지지 않고 2, 5로 끊어지며 요령(要領)은 붙은 말로 부사어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그림에 찍힌 인장을 보면, 강희제가 만든 황실 자손의 공부방인 무일재(無逸齋)에도 있었고, 건륭제의 서실 삼희당(三希堂) 안에도 이 그림이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또 청나라 황실의 서화 목록집인 《석거보급(石渠寶笈)》에 이 작품이 기록되어 있으며, 가경제와 선통제가 이 그림을 감상한 것 역시 알 수 있다.
심주(沈周, 1427-1509), ‘단풍이 든 풍경(Landscape with Autumn Foliage)’.
예술풍수-동양화에 담긴 미학 그리고 풍수를 말하다
|저자 딩시위안(丁羲元, 1942- ) | 역자 이화진 | 출판 일빛 | 2010.8.2.
✵ 책소개
동양화에 담긴 미학, 그리고 풍수를 말하다『예술풍수』. 고대 중국 회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분석을 진행해 온 저자 딩시위안이 예술적 관점에서 최초로 풍수론을 도입한 ‘예술풍수론’을 제창한다. 이는 서화 속에 드러난 글자나 그림만이 전부가 아닌,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氣)’로 풍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예술품 본연에 내재된 풍수, 예술품의 전래 과정 속에 존재하는 풍수, 예술품의 소장 및 전수 과정에서의 풍수, 이 세 가지 측면이 작용한다. 저자는 중국 서화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송나라 시대 그림을 예로 들면서 '예술풍수' 속에 담긴 풍수의 비밀와 의미를 풀어나가고 있다.
✵ 저자 : 딩시위안(丁羲元, 1942- )
저자 딩시위안은 일본국립학술진흥회 특약연구원, 상해미술관 부관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상해미술관 연구원, 상해중국화원 소속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해상화파(海上畵派)』『허곡연구(虛谷硏究)』『임백년(任伯年)』『국보감독(國寶鑒讀)』등이 있으며, 중국 회화사에 관한 논문이 여러 편 있다. 현재 그의 저서와 논문들은 북경 수도박물관과 상해박물관을 비롯해 여러 연구 기관에서 연구 토론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 역자 : 이화진
역자 이화진은 숙명여자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국 사회과학원에서 수학했다. 베이징 주재 서울문화무역관(서울시청 베이징 대표처)에 재직했으며,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 목차
1 예술풍수란 무엇인가? 01 풍수는 없는 곳이 없다 / 02 풍수의 본래 의미 : ‘풍’에 대한 해석 / 03 풍수의 기원 / 04 풍토와 인정
2장 예술풍수 개요 01 그림에는 음양이 있다 / 02 회화와 건축 / 03 걸개그림과 방위 / 04 기국과 해위 / 05 길상운 / 06 ‘길상’의 해학적 비유 / 07 송나라 시대 그림의 작시법 / 08 남북종과 양생의 도
3장 수묵절창水墨絶暢 01 중국화의 재료와 기법 / 02 수묵과 필묵
4장 그림 속의 산수와 예술풍수 01 산의 형태 : 오성과 구성 / 02 중국화에 나타난 강물의 변천 과정 / 03 그림 속의 명암과 용맥
5장 송나라 그림 속의 풍수
01 산山 범관의 「계산행여도」/ 곽희의 「조춘도」/ 이당의 「만학송풍도」
02 수水 이숭의 「월야관조도」/ 송나라, 작자 미상의 「송간산금도」/ 하규의 「계산청원도」
03 조鳥 송나라 휘종의 「부용금계도」/ 송나라, 작자 미상 「암순도」/ 양해의 「추류쌍아도」
04 음音 마원의 「심당금취도」/ 송나라, 작자 미상 「하당안악도」
05 죽竹 문동의 「묵죽도」/ 임춘의 「매죽한금도」
06 풍風 이적의 「풍우귀목도」/ 최백의 「쌍희도」/ 송나라, 작자 미상의 「해당협접도」
07 화花 송나라, 작자 미상의 「출수부용」/ 송나라, 작자 미상의 「앵속화」/ 송나라, 작자 미상의 「두화청정」
08 설雪 송나라, 작자 미상의 「설제도」/ 남송 시대, 작자 미상의 「설계행여도」
09 월月 마린의 「동파시의」/ 마린의 「대사야월」
10 인人 송나라 휘종의 「청금도」/ 송나라, 작자 미상의 「경획도」/ 이위의 「죽림유거도」
6장 예술풍수와 서화 감상 01 육법과 예술풍수 / 02 방위를 보다 / 03 음양을 분별하다 / 04 풍수를 밝히다 / 05 필묵을 보다
7장 예술풍수의 60가지 길흉
8장 미인화와 예술풍수 01 미인, 수토, 그리고 심미 기준 / 02 중국의 미인화 / 03 미인화와 풍수
9장 운과 풍수 01 운에 내포된 의미와 기원 / 02 운미와 기운 / 03 운과 예술풍수
10장 인류 예술에 나타난 풍수의 변천 01 세계 예술 발전의 두 갈래 / 02 조각과 회화의 예술 변천 / 03 동서양 예술풍수의 융화
✵ 출판사서평
예술은 풍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변화시킬 수도 있다
이 책은 중국 그림의 역사를 꿰뚫어 읽어내면서 그 작품들 속에 깃들어 있는 미학을 비롯해 그것에 오롯이 담겨 있는 심미관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분석한다.
또한 중국의 묵화와 채색화 내면을 따라 흐르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재료와 기법, 필묵(筆墨)과 산세(山勢)와 수류(水流), 명암(明暗)의 강함과 약함을 비롯해 좋은 그림에 관한 해석과 감정(鑑定)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모든 궁금증을 풀어 간다. 특히 중국 서화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송나라 시대 그림 속에 담겨 있는 풍수를 예로 들어 구체적인 감상법과 분석법을 제시한다.
그밖에도 미인화에 내포되어 있는 의미와 미적 요소, 기운생동(氣韻生動)의 내재적 함의와 미감, 세계 예술 발전에 미친 풍수의 역할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특히 이 책에서 공개하는 ‘예술풍수의 60가지 길조와 흉조’는 예술품을 구매 소장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참고 자료가 될 것이다.
“예술풍수론은 예술의 근본을 더욱 규범화하고 탐구하려는 시도로서 시간, 방위, 성상(星象), 서열(序列), 기식(氣息) 등 동양 문화의 독특한 관점에서 예술의 특성과 발전 방향을 연구하는 예술 철학이다.”
지은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고대 중국 회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분석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예술적 관점에서 최초로 풍수론을 도입하여 ‘예술풍수론’을 제창하였다. 지은이는 예술풍수론의 근거로서 중국 회화 역사의 흐름과 각 시대의 화풍과 기법, 주요 화가와 그의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예술풍수’ 속에 담긴 풍수의 비밀과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풀어간다.
첫째, 예술품 본연에 내재된 풍수
예술품 자체에 기의 형태인 기국(氣局)을 비롯하여 기의 구조, 성분, 배열, 내재된 생명의 유동성, 감정의 전이, 형식, 공간미, 내부적 변화의 추이 등이 존재함을 밝힌다. 그 내용은 산수화(山水畵), 화조화(花鳥畵) 등에서 나타나는 산수의 형세, 산맥의 경사도와 물결의 세기, 방위, 화조의 배치, 대응, 동정(動靜) 등 생동감이 넘치는 기국과 관련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예술품의 전래 과정 속에 존재하는 풍수
예술 작품이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지는 동안 외형상으로는 본연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고 해도 후세에 전해지면서 미치는 영향력과 파급 효과는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풍수와 관련이 깊다. 진귀한 작품에는 상서로운 기운이 서려 있어 쉽게 그 기세를 꺾을 수 없는데, 이는 작품에 스스로를 보호하는 영물이 깃들어 있는 것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하늘의 시기와 신들의 질투 때문일까? 애석하게도 세기의 걸작들은 대다수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예술풍수는 예술품이 지닌 ‘불후(不朽)’의 속성과 이러한 불후의 속성을 얻게 된 연유에 대해서도 다룬다.
셋째, 예술품의 소장 및 전수 과정에서 풍수의 작용과 길흉화복
예술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공간 속에서 형성하는 풍수의 기국은 길흉화복, 민간 전통 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술풍수를 좀 더 통속적으로 말하면 ‘풍수’의 관점에서, 즉 예술에 내재된 ‘기’가 공간 속으로 흘러나오는 각도로 그림을 그리고, 바라보고, 감상하고, 소장하는 것이다. 어울리는 곳에 그림을 배치하고 그림을 통해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마음껏 그림을 향유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풀어간다. 물론 그림 외에 다른 모든 예술품도 예술풍수의 범주에서 다룰 수 있다.
예술풍수는 동양화의 미학과 심미감에 관한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과제에 해당한다.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중국의 묵화와 채색화 예술에 담긴 미학과 심미관을 탐색해 볼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술풍수는 예술의 내재적, 외재적 유동 공간이다
예술풍수는 예술이 시간과 공간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변화에 따라 전수되는 과정에서 형성되거나 순간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일종의 ‘유동(流動)의 미(美)’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인류가 시간에 대해 느끼는 민감함이면서도 그 시간을 잡고 싶은 충동의 표현이기도 하다. 시간은 서로 다른 공간 속으로 재빨리 자취를 감춰 버리기도 하고, 서로 다른 공간 속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서화(書畵) 예술은 그 속에 드러난 글자나 그림만이 전부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그 내면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 ‘기(氣)’이다. 마치 터질 듯이 요동치며 솟아오르려는 ‘기’는 내부에서 가만히 숨죽이고 있는 듯 보이지만, 가득 찬 채 움직이며 밖으로 그 빛이 마구 내달리려고 한다. 이러한 기, 기세(氣勢), 기운(氣韻)이 바로 예술풍수인 것이다.
예술풍수는 ‘예술’에 ‘풍수’를 더한 말이 아니다
예술 자체에 이미 풍수가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예술을 이용하여 풍수에 순응토록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주변 건물과 환경의 공간적 분위기를 조화롭고 부드럽게 하여 길흉을 조절할 수 있고, 인간사 경사스런 일의 분위기와 풍속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풍수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꾀하고 융합을 이루어 나가는 상호 작용이기 때문에 예술은 풍수를 만들 수도 있고 풍수를 바꿀 수도 있다. 이는 고금을 통틀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풍수의 역할은 매우 긍정적이기 때문에 임의로 왜곡하거나 그릇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술풍수는 살아있는 생명이 시공 가운데 어떻게 드러나고, 그 영속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 하는 문제도 다루고 있다. 예술의 창작, 비평, 감상, 소장, 그리고 회화 예술가의 품격, 천부적 재능, 나아가 천수를 누리거나 요절하는 등 예술로 승화되는 모든 대상이 예술풍수에서 연구하려는 분야에 속한다. 그리고 예술의 공간미, 기운(氣韻), 매력, 내재된 유동성, 감정의 전이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예술풍수가 된다. 예술풍수는 영적 감흥과 사물에 대한 인지에서 출발한다.
동쪽에 이성(李成)의 그림, 서쪽에 범관(範寬)의 그림을 걸다
고대 중국에는 그림을 걸 때도 원칙이 있었다. 공간적 위치와 춘하추동 사계절을 고려하였으며, 결코 마음 내키는 대로 함부로 거는 법이 없었다. 거실은 사계절의 풍수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서, 이곳에 거는 괘화(?畵)야말로 풍수의 기본을 보여주는 것으로 매우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다.
북송의 화가 왕선(王詵)은 자신의 집에 있는 별당 서재의 동쪽에는 이성의 그림을 걸고, 서쪽에는 범관의 그림을 걸어놓았다고 한다(東掛李成동괘이성, 西掛範寬서괘범관). 어느 날 그는 이성의 그림을 보고 “이 선생의 화법은 묵에 윤기가 흐르고 필치가 섬세하다. 운무에 둘러싸인 거대한 산세는 마치 움직이는 것 같고 마주하고 있으면 천리는 떨어진 듯한데 그 수려한 기운은 손을 뻗으면 닿을 것만 같다”라며 극찬하였고, 또 범관의 그림을 보고는 “눈앞에 거대하고 험준한 산맥이 펼쳐져 있는 듯하니 그 기세가 웅장하고 필치가 노련하다. 그야말로 참으로 두 그림은 ‘문(文)’과 ‘무(武)’에 해당하는구나!”라고 거듭 감탄하였다.
필묵은 기운과 상통하고, 그 속에 풍수가 존재한다
수묵은 정말 오묘하다. 중국인은 2천 년 전에 벌써 ‘먹’을 사용할 줄 알았다. 먹은 곧 ‘흑토(黑土)’를 가리킨다. 소나무가 원료이므로 그 속에는 오행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대자연이 있었기에 중국화가 존재할 수 있었으며, 그 속에서 특히 수묵화는 흑백과 음양, 산수의 공간미를 표현한 것이다.
7세기 성당(盛唐) 시대까지는 수묵과 수묵화가 크게 성행하였다. 도학(道學)을 비롯하여 중국 철학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선(禪) 또는 선학(禪學)과 융합하면서 ‘선화(禪畵)’로 발전하였다. 또한 다도(茶道), 서법(書法)과 어우러지면서 중국 고유의 수묵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하게 되었다. 실로 오묘한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오도자가 그린 띠는 ‘바람(風)’을 대적하고(吳帶當風)
조불흥이 그린 의복은 ‘물(水)’이 든듯하다(曹衣出水).
붓 아래에서 바람이 일고 붓 아래에서 물이 배어 나온다(‘붓이 풍수를 만든다’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오도자는 그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의복에 달린 끈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잘 그렸기 때문에 ‘오대는 당풍이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그가 사찰에서 일필휘지로 불화의 후광을 그릴 때면 수많은 탄성이 터져 나올 정도로 그림의 기세가 웅장하였다.
중국 삼국시대 때 오(吳)나라에서 활동했던 조불흥(曹不興)의 인물화를 보면 신체의 근육과 뼈대가 고루 발달해 있고, 몸의 형체가 옷의 주름 변화에 따라 표현되고 있다. 마치 물속에서 나온 사람의 옷이 몸에 붙어 형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바람을 대적하고, 물이 든듯하다는 생생한 묘사법은 더 이상 필묵 안에만 머물지 않고 필묵 밖으로 그 기를 표출하게 된 것이며, 바로 여기에 예술풍수가 있다.
그림과 예술품에는 음양이 있으며, 그것이 서로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
그림은 풍수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비와 바람을 일으키기도 하고, 당시의 계절감을 느끼게도 해준다. 서화는 수묵에 윤기를 머금고 있는 작품을 가장 상품으로 여긴다. 그림 속의 산수에 물이 없으면 윤기가 흐르는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옥이 들어서기에 좋은 자리라고도 볼 수 없다. 북송(北宋) 시기에 화가 동원이 등장하면서부터 중국 산수화에서 물은 점점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풍수 변화의 원인을 제공하게 되었다. 예술풍수는 예술품의 창작과 감상과 소장, 공간의 변화 등에 운용됨에 있어 몇 가지 이와 관련된 길흉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내용은 미신과 같은 황당무계한 논리가 아니라 회화 예술 본연의 원리에서 출발하여 수천 년에 걸쳐 편찬된 화론(畵論) 저술의 내용을 망라하여 종합한 귀중한 견문에 해당한다.
서화(書畵)는 평정심을 기를 수 있는 오묘한 기능을 지니고 있는데,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다만 서화의 창작, 소장은 모두 풍수를 조절하는 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에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풍수에는 ‘천(天)’, ‘지(地)’, ‘인(人)’이라는 삼원(三元)이 존재하며, 각기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예를 들어 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화는 화가 또는 여러 수집가들의 손을 거치면서 전해져 오고 있다. 때로는 훼손되거나 화를 입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무탈하게 전해져 오기도 한다. 그 안에는 기운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는 바로 풍수의 힘에 해당한다. 서화를 소장하고 있는 사람은 복이 있다. 그림에 있는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유익한 그림을 골라 소장할 필요가 있으며, 수량도 적정선을 유지해야 한다. 절대로 탐욕을 부려서는 안 된다. 특히 소장자는 순리에 따라 서화를 얻어야 하며, 결코 강제로 소유하고자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화가 한 곳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길한 징조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서화, 예술을 온 인류의 재산으로 여겨 함께 즐기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이다. 편협한 생각은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무익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본래 변화와 유동을 거듭하며 발전한다. 그림 속의 풍수와 자연의 풍수가 결합되어 그 기세를 떨칠 때 세계의 예술풍수도 그 맥을 유지하며 계승될 수 있는 것이다.
[출처: 동아일보 2023년 10월 19일(목) [안영배의 웰빙풍수](안영배 기자. 풍수학박사), Daum, Naver 지식백과, 인터넷 교보문고 /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비오는 가을 날씨가 따뜻한 차 한 잔 생각나는 아침입니다
이제 얼마남지 않은 늦가을 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며 국화꽃 향이 가는 가을의 아쉬움을 달래주는 듯 합니다.
오늘도 비 속에 불어오는 강하고 다소 차가운 바람이 겨울 날씨와 단풍이 공존하는 계절 감각입니다.
마지막 단풍을 즐기시며
행복한 웃음으로 가득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