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8년 2월, 프랑스에서는 2월 혁명으로 루이 필립이 축출되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시민''혁명이었다면, 2월혁명은 시민 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합작에 의한 혁명이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힘을 확인하게 된 노동자 계급은 제2공화국 출범을 앞두고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요구 가운데는 프랑스 국기인 三色旗를 폐지하자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프랑스 대혁명 직후 제정된 삼색기의 백색은 원래 부르봉 왕가의 상징색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 대신 그들은 赤旗를 새로운 국기로 제정하자고 주장했다. 원래 비상사태를 알리는 깃발이었던 赤旗는 2월혁명을 거치면서 노동자 계급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이때 2월혁명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자, 임시 정부 외무장관이던 라마르틴은 이렇게 연설했다.
"赤旗는 민중의 핏속으로 끌려다니면서 ''상 드 마르스'' 광장을 한 바퀴 돌았을 뿐이다. 삼색기는 조국의 이름과 영광, 그리고 자유와 더불어 세계를 돌아왔던 것이다."
삼색기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정확하게 지적한 라마르틴에게 국민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적기를 국기로 삼자는 주장은 쏙 들어갔다. 오늘날까지도 프랑스의 가장 대표적인 상징 가운데 하나인 삼색기는 이렇게 지켜졌다.
2.
21일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에 따르면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 기구인 반제민족민주전선(반제민전)은 일본과 미국의 식민통치 100년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는 남한의 국호, 국기, 국가를 모두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반제민전은 20일 발표한 <소위 애국가 저작권 인도 문제와 관련하여>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태극기는) 제 민족의 의지와 정신이 아니라 이조 봉건정부(조선 왕조)가 다른 나라로부터 형태와 무늬 등을 받아다 영국 화물선 선장의 조언을 받아 완성한 것"이라면서 "나라와 민족의 참다운 정신과 미래를 대표할 만한 징표 하나 없는 이 땅의 현실은 외세 의존이 망국의 길이라는 것을 뼈에 사무치게 새겨주고 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국호,국가,국기를 바꾸어야 한다는 빨갱이들의 개소리에 대해, 노무현 정부는 아직까지 일언반구 항의가 없다. 아마 남축에서 자유총연맹 같은 관변단체에서 "북한의 국호와 국기와 국가를 바꾸라"고 성명을 냈다면, 북한공산집단은 아마도 "남조선 괴뢰 수구반동들이 제 주제도 모르고 존엄 높은 우리 공화국을 모독하는 망발을 했다"면서 "그런 헛소리를 한 작자들의 주둥이를 찢어버리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3.
놈현 정부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심기를 건드릴까 저어하여 아무 소리 못하겠다면, 나라도 한 마디 해야겠다.
태극기가 어떻게 제정되었는지, 그 속에 담긴 깊고 큰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태극기에 담긴 역사성, 민족사적 정통성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1882년 일본에 수신사로 가던 박영효가 만들고, 이듬해 정식으로 국기로 제정된 이래, 태극기는 우리 민족과 영욕을 같이해 왔다.
조선이 쇄국정책을 던져 버리고 국제무대에 데뷔할 때, 태극기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세상에 존재함을 알리는 우리 민족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경복궁 근정전에 일장기가 세워지던 날, 나라는 망했고, 민족은 식민통치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1919년 3월1일, 온 겨레가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 나왔을 때, 그들은 태극기를 흔들었다.
만주땅에서,시베리아에서,중국대륙에서 풍찬노숙하던 독립군들이 품속에 넣고 꺼내 보던 것이 태극기였다. 이봉창,윤봉길 의사는 마지막 길을 가기 전에 태극기 앞에서 폭탄을 꺼내들고 애국의 결의를 다졌다.
임시정부 산하의 광복군도, 좌익계열의 조선의용군도, 태극기 앞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투쟁할 것을 다짐했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한 후, 태극기는 다시 살아났다. 서대문형무소에 갇혀 있던 애국투사들이 풀려나올 때, 시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그들을 환영했다.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서윤복 선수는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결승 테이프를 끊어, 11년 전 베를린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뛰었던 선배 손기정, 남승룡의 한을 풀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은 태극기를 앞세우고 메인스타디움을 행진하면서 ''대한민국''이 부활했음을 세계에 알렸다.
삼팔선 이남에서는 물론이고, 삼팔선 이북에서도 태극기는 해방된 조국의 상징이었다.
북한 주민들은 태극기를 흔들며 북한땅에 진주하는 소련군을 환영했다.
1945년 10월 33살의 ''김일성 장군''이 평양공설운동장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단상에는 태극기가 세워져 있었다. 이듬해 3월1일 북한 땅 곳곳에서 열린 3-1절 기념행사에서 북한 주민들을 ''스딸린 대원수''와 ''김일성 장군''의 초상화와 함께 태극기를 앞세우고 가두행진을 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으로 시작되는 애국가를 불렀다.
국토는 분단됐어도, 해방 후 3년여 동안 태극기와 애국가는 남과 북 할 것 없이, 겨레의 첫째가는 상징이었다.
1948년 공산집단이 소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태극기는 북한 땅에서 폐기됐다. 우리가 흔히 ''人共旗''라고 부르는 족보 불명, 국적 불명의 헝겁쪼가리가 태극기를 대신했다.
태극기를 폐기하는데 앞장선 자는 연안파의 우두머리였던 김두봉이었다. 그는 "태극기의 태극 4괘는 周易의 음양 사상을 기초로 한 것인데, 이 음양 사상은 反민주주의적인 지배계급의 미신적 사상이며, 태극기는 李朝 봉건시대의 亡餘遺物"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의 명의로 <왜 태극기를 없애야 하는가>라는 팜플렛을 발간해 배포했다.
그 자신, 왜정 시대에 태극기 아래서 독립운동을 하고서도 태극기 폐지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 자가 당대에 손꼽히는 한글학자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한글이야말로 ''李朝 봉건시대''에 ''봉건 통치배들의 우두머리'' 가운데 하나였던 세종 임금이 민중들에게 ''봉건통치사상''을 주입하기 위해 제정한 것 아니던가....
최고인민회의에서 김두봉이 태극기 폐지를 주장하고 나서자, 몇몇 대의원들은 용감하게도 태극기 폐지를 반대하고 나섰다. 정재용이라고 하는 대의원의 반대 주장을 보자.
<우리 인민들은 왜적의 혹정 밑에서 쓰라린 시기에도 태극기를 간직하고 그것을 떳떳이 띄울 날을 하루 같이 원했습니다. 1945년8월15일, 조국이 해방되면서 조선 인민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해방의 감격과 기쁨에 어쩔 줄을 몰랐으며, 그저 희망의 태극기를 받들고 하늘이 진동하게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리하여 태극기는 우리 인민의 가가호호에 띄우게 됐습니다. 중요한 식전이나 건물에는 반드시 소련 국기와 아울러 태극기를 나란히 띄우게 됐습니다. 이는 인민들이 태극기를 귀여워 하며 사랑하며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북조선 인민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남조선의 인민들도 역시 한결같이 태극기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극기는 통일의 무기도 되는 것입니다. 이 태극기 밑에서 남북 조선의 인민들은 튼튼히 단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태극기를 그대로 두자는 말씀을 드립니다.>
앞에 소개한 라마르틴의 연설 못지 않게, 태극기의 역사성, 민족사적 정통성을 잘 지적하고 있다. 특히 그가 "태극기는 통일의 무기"라고 한 것은 기가 막힌 탁견이다.
애국가도 폐지되고, "애국가"라는 이름의 새로운 국가가 제정됐다. 하지만 이 애국가는 "김일성 장군의 노래"에 밀려 북한주민들조차 그 존재를 잘 모르는 유명무실한 노래가 되고 말았다.
태극기를 포기하는 순간 북한공산집단은 자신들이 "민족사의 異端 세력"임을 자인한 셈이다. 그리고 일제 하에서 겨레가 함께 불렀던 애국가가 폐지되고, 이 애국가를 대신해서 만들어진 (북한)애국가조차 "김일성 장군의 노래"에 밀려나는 순간, 북한은 그들이 주장하는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김일성의 私物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북한이 민족사적 정통성의 상징인 태극기와 애국가를 스스로 포기한 것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다행스럽고 고마운 일이었다.
4.
북한이 태극기를 버린 이후에도 대한민국은 태극기를 지켜왔다. 태극기는 대한민국과 함께 영욕을 같이해 왔다.
6-25때 학도병들은 태극기에 혈서를 쓰고 전선으로 달려갔다. 공산군과의 고지쟁탈전에서 승리한 국군장병들을 태극기를 매단 M-1소총을 흔들며 "대한민국 만세!"를 불렀다. 4-19때 거리로 나온 학생과 교수들도 태극기를 흔들었다. 월남으로 파병되는 동료 장교에게 육사 동기생들은 태극기에 武運을 기원하는 글귀를 적어 선물했다.
1970~80년대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오던 학생들도 태극기를 앞세웠다. 광주사태 당시 희생자들의 관을 덮은 것도 태극기였다 (심지어 이광재조차 손가락을 잘라 태극기에 혈서를 썼노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1983년 아웅산 테러 사건으로 순국한 분들, 1996년 강릉무장공비사건으로 전사한 장병들, 2002년 서해교전 전사 장병들, 그 분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될 때, 그 분들의 관 위에는 태극기가 덮여 있었다.
이에리사가 사라예보에서 탁구로 세계를 제패했을 때, 김진호와 그 후배들이 양궁세계선수권대회를 휩쓸었을 때, LA에서, 서울에서,바르셀로나에서, 아틀랜타에서, 시드니에서, 아테네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딸 때마다 태극기가 오르고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특히 황영조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우승했던 손기정옹과 포옹할 때의 감동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그 때 붉은 셔츠를 입고, 태극기 두건을 쓰고,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대~한민국!"을 외치던 감격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5.
이렇게 우리 민족과 영욕을 같이해 온 태극기를 두고, 1991년부터인가 하얀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를 그려 넣은 ''한반도旗''라는 것이 등장했다.
나고야 세계탁구대회때 남북단일팀을 구성하면서 처음 등장한 이 한반도기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2004년 아테네 올림필픽 입장식에서도 등장했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한반도기라는 헝겊쪼가리에 밀려나도, 다들 그것이 남북화해와 통일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댔지,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은 거의 없었다.
한반도기는 좌익들의 통일관련 (엄밀히 말해 연방제, 적화통일 관련이겠지만) 집회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북한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식에도 한반도기는 등장했다.
생각해보면 한반도기가 등장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리 사회의 對共경계태세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한반도기가 더 빈번하게 모습을 드러낼 수록, 태극기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은 허물어져 갔다.
이제 북한공산집단은 전위조직을 앞세워 감히 대한민국의 국호와 국기와 국가를 고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그것도 자신들이 47년 전 태극기를 폐기할 때 폈던 것과 같은 논리로....
그들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얕잡아 보았으면, 그런 몰상식하고 무례한 주장을 하고 나섰을까를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나라의 상징은 여러가지가 있다. 국기,국가,국호는 물론이고, 수도와 지폐의 도안, 화폐의 호칭도 나라의 상징이다.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 國體가 바뀌게 되면, 이러한 나라의 상징부터 바꾼다.
프랑스 혁명 후에는 삼색기가 국기로 제정되고, 정부의 중심이 파리 교외의 베르사이유에서 파리 시내로 이전하고, 라 마르세예즈가 국가로 제정됐다.
러시아 혁명 후에는 수도가 상뜨 페쩨르부르크에서 모스크바로 옮겨지고, 백색-청색-적색의 국기가 노란색 낫과 망치를 그려 넣은 赤旗로 바뀌었다. 소련이 붕괴한 후에는 다시 제정 러시아 시절의 국기로 돌아갔고, 상뜨 페쩨르부르크로 천도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중국 공산혁명 후에도 청천백일기 대신 오성홍기를 국기로 제정하고, 수도를 南京에서 北京으로 옮겼다.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자.
놈현 정권이 행정수도니, 행정도시니 해 가면서 기를 쓰고 천도를 강행하려는 것은 놈현 스스로 자백한 대로 "지배세력의 교체"와 무관하지 않다. 화폐 단위를 바꾼다, 화폐도안을 바꾼다 하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국가 상징의 변경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과거사 진상규명"이라는 것도 대한민국의 성취를 부정하기 위한 술수가 감추어져 있다.
난데 없이 "Korea"표기를 "Corea"로 바꾸자는 캠페인이 벌어진 것은 국호 變改의 신호탄이었다.
그리고 이제와서 북한공산집단은 전위 조직을 앞세워 국호와 국가와 국기를 바꾸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아예 대한민국을 지워버리고, 장사지내버리겠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들로서는 "혁명의 만조기"가 도래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두고 보라. 빠르건 늦건 간에 이제 별의별 명목을 다 붙여 가며 국호와 국기와 국가를 고치자는 주장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안 그래도 그동안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해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대만으로 밀려난 중화민국말고는 국호에 민국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는 소리도 있다. 태극기가 주역이라는 미신의 산물이라는 주장도 있어 왔다. 애국가의 가사와 곡조가 너무 수동적이라느니, 루마니안지 불가리안지의 민요와 흡사하다느니 하는 주장도 있었다.
일본과 미국 때문에 "Corea"가 "Japan"보다 뒤에 오는 "Korea"로 바뀌게 된 것이라면서, "Korea"의 표기를 "Corea"로 바꾸자는 캠페인에 좌익들이 대거 참가하고, 북한 관영매체들이 이를 뒷받침하는 보도들을 내보냈던 전례를 보면, 국호와 국기와 국가를 바꾸자는 운동이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할 수 있다.
좌익들은 좌익은 아니지만 평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와 태극기와 애국가에 불만스러워하던 사람들을 앞장세우면서 그럴듯한 논리로 국호와 국기와 국가를 바꾸자는 여론을 조성해 나가다가, 나중에는 좌익세력들을 총망라해 국호와 국기와 국가를 고치자는 무슨무슨 연대를 꾸려 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상황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누가 애국자이고, 누가 반역자인지를 분명히 드러내 줄 것이다.
대한민국 국호 네 글자와 태극기와 애국가를 지키자는 세력이 애국자고, 거기에 變改를 가하려는 세력은 반역자이다.
태극기 폐기 당시 북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정재용이 말한 것처럼 태극기는 "통일의 무기"다. 대한민국 국호 네 글자도, 애국가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