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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 은행 영업점 대출창구 모습. /뉴스1
은행 대출을 중도 상환할 때 물리는 ‘중도 상환 수수료’ 면제에 대해 은행들이 ‘신(新) 관치’라고 반발한다고 한다. 고금리 덕에 유례 없는 수익을 올리는 은행들이 고객 부담을 덜어주라는 주문에 “경제 원리에 어긋난다”는 논리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중도 상환 수수료는 은행 입장에서 갑작스러운 대출 중단에 따른 이자 손실에 대한 배상과 계약 위반에 따른 위약금 성격을 갖고 있다. 법적으로 은행의 권리로 인정되고 있다.
그렇다고는 해도 중도 상환 수수료가 소비자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설계돼 있다는 점에서 개선할 여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가계·기업 대출, 장기·단기 대출 등의 대출 종류, 고객 신용 등급과 상관없이 중도 상환 수수료가 대출금 잔액의 1.2~1.5% 수준으로 일률적이다. 은행들이 소비자의 대출 갈아타기를 막기 위해 중도 상환 수수료율을 서로 비슷한 수준으로 책정하는 담합 의혹도 있다. 변동금리 대출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금리 변동 위험을 소비자에게 전가하는 측면도 있다. 미국에선 금리 변동 위험을 은행이 지는 고정금리 대출에만 중도 상환 수수료를 받는다. 스페인에선 0.25~0.5%의 수수료를 부과해 우리보다 훨씬 저렴하다. 국내 은행들은 높은 수수료율 덕에 중도 상환 수수료로만 매년 3000억~4000억원의 수익을 얻고 있다.
올 들어 금리 상승 덕에 은행들은 앉아서 돈벼락을 맞았다. 9월까지 예대금리차에 따른 이자 마진만 40조원대에 이른다. 손쉬운 이자 장사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은행들은 지난 8월부터 취약계층, 고위험 다중 채무자에 한정해 중도 상환 수수료를 면제해 주는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생색내기 수준이다. 1900조원대 빚을 지고 있는 가계 대부분은 중도 상환 수수료 감면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반 대출자들에게도 한시적으로 중도 상환 수수료를 대폭 감면해줌으로써 가계의 빚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필요가 있다. 올 들어 11월까지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5조원가량 줄었다. 마이너스 통장은 고금리인 데다 중도 상환 수수료가 없어 대출자들이 빚을 빨리 갚은 결과다. 중도 상환 수수료 감면은 가계 빚 조기 상환을 촉진할 수 있다. 대출 조기 상환은 은행에도 나쁘지 않다. 요즘 은행들은 자금이 부족해 고금리 예금을 유치하거나 고금리 은행채를 발행하고 있는데 조기 상환된 자금을 새 대출 재원으로 쓰면 자금의 효율적 배분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