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22:1-6 그를 번제로 드리라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5 이에 아브라함이 종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가져다가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명령을 받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심(1-2) 이 시험의 목적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여러 시험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을 강화하셨고, 이번에 가장 어려운 시험을 통해 그의 믿음을 드러내려 하십니다. 이 시험에 임하는 아브라함의 자세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는 말 속에 들어있습니다. 어떤 말씀이라도 듣고 순종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시험이 정말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또 다른 아들 이스마엘이 있었습니다(창 21:8-14). 하나님은 ‘네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 대신 자기 목숨을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이삭을 통해 번성하리라던 언약도 있었습니다(창 21:12). 이 내용에 비추어 이번 명령이 모순되어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신제물은 이방신들이 요구하는 것이었기에 하나님도 이방신과 같지 않은가라는 의심이 들 수도 있었습니다.
즉각적인 순종(3) 아브라함은 명령을 받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 시험이 이해될 때까지 실행을 미룰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행동합니다. 단 한 번의 질문도 항의도 없습니다. 생각이나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답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명령이니 나는 순종할거야”라는 각오로 아들을 태울 장작을 직접 쪼개고 아들을 바칠 모리아 산으로 급히 출발합니다.
이삭을 바침(4-6)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삼일이 걸렸습니다. 사탄이 이 삼일 동안 아브라함을 흔들었을 것입니다.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정말 내 아들을 죽이라는 뜻일까? 죽이면 언약은 실패하지 않을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모든 의심을 물리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내가 아들을 죽인다 할지라도 다시금 살아나게 하실 것이라는 부활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히 11:17-19). 그는 죽은 아들도 다시 살게 하셔서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칩니다. 먼저 동행했던 종들을 떨어뜨립니다. 그리고 장작을 이삭에게 지우고 불과 칼을 자기 손에 들고 갑니다. 칼을 쥔 그의 손에서 행동하는 그의 믿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적용: 아브라함처럼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고 있는지 당신의 믿음을 살펴보세요.
살아가는 동안 당신 능력으론 감당키 어려운 문제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행동하시는지요? 아브라함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인간적인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힘든 문제를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관심을 집중하고 그 분의 인격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요구사항의 내용 자체보다 그 요구를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에 집중했고, 그래서 그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을 멘토 삼아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칠 때마다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순종의 근육을 잘 키워 흔들리지 않는 영의 근육을 세워가는 역전의 기회가 되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