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문자 중 거란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
이리가수미
거란은 중국 사서에 동호의 후예로 기록되어 있으며 동호는 고대 한민족과 친연 관계에 있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다. 근래에는 거란어를 통해 고대 한국어를 찾아내어 이를 한국 고대사 연구에 적용하려는 작업도 시도되고 있다.
그러나 거란이 이미 사라진 민족이기 때문에 거란어를 복원하려는 작업은 극히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거란어에 대한 자료가 일부 남아 있고 거란문자가 기록된 유물이 오늘날까지 남아있다고 하지만 거란어에 대한 자료는 극히 적고 거란문자는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란어에 대한 충분한 이해에 다다르기까지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아직 수많은 과제가 남아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거란문자는 여진문자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거란어의 이해에는 거란문자의 해독이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거란어는 단순히 거란 및 여진 문화의 이해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며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사의 이해에도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 있기 있기 때문에 거란문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고자 한다.
거란문자는 거란대자와 거란소자가 있는데 거란대자는 표의문자, 거란소자는 불완전한 음성문자일 것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이 의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거란문자 전체에 대해 상세히 다루는 것은 필자의 능력 밖의 일이므로 여기에서는 거란대자에 대해서만 간단히 설명하고자 한다.
거란대자는 태조 아율아보기가 서기 920년(神冊5년)에 제정한 것이라고 한다. 거란대자의 성격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한자의 성격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근래까지 발견된 바에 따르면 표음문자의 성격이 강한 소자가 400자 정도인 것에 비해 대자는 1800자 정도로 글자의 수가 소자보다 몇 배 이상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거란대자 전체가 발견된 것은 아니므로 확실한 것은 알 수 없으나 한자와 비교하면 그 총수는 비록 적으나 그 수가 많아서 애초 창제의 목적이 언어의 기록과 소통이라는 문자 본래의 목적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거란은 백성이 글을 인쇄하는 것을 금지하였으며 실제 사용에 있어서도 비효율적이어서 널리 쓰이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현재 남아있는 관련 유물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거란대자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사용되었는데 이는 거란대자가 태조인 아율아보기의 창제라고 하였기 때문에 후대의 제왕이나 신료들이 이를 폐지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거란대자의 성격이 한자와 비슷하고 몇몇 글자, 예를 들면 일(一), 이(二), 삼(三), 오(五), 십(十) 등의 글자는 한자에서 그대로 차용하고 있지만 많은 경우 거란의 창작이어서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해독이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거란대자가 한자와 같이 기록된 유물도 있으나 로제타스톤이나 베히스툰 비문과 같은 대역이 아니어서 거란대자의 해독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고 있다. 최근 2010년에 발견된 거란대자비 역시 관련 연구자는 자료가 드문 거란대자비의 발견을 반기면서도 한자나 투르크문자의 병기가 없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이 유물은 현재 몽골 울란바토르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이다.
옛 기록의 것을 제외하고 거란문자가 재발견된 것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따라서 거란문자 해독의 역사는 아직 10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거란대자 해독의 어려움은 거란숫자의 해독의 경우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데 위에서 설명한 다섯 숫자를 제외하고 1부터 10까지 가운데 나머지 다섯 숫자를 해독하는데 30여년 정도가 걸렸다. 1부터 10까지의 전 숫자가 해독된 것은 9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기록을 보면 송나라 사람이 거란인의 말이 어순이 뒤죽박죽이라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거란어의 어순이 만족, 몽골족과 비슷하였음을 알려주며 이는 또한 거란어의 어순이 우리말의 어순과도 비슷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란 대자, 필자 씀]刘凤翥, 1991, [关于契丹大字中个位数字之解读], [[东北业历史与文化]], 辽沈书社, 381쪽.
거란대자의 간단한 해석을 소개하자면 앞의 거란대자의 맨 윗줄은 거란의 연호 “대안(大安)”이고 가운데 줄은 “7년”이며 맨 아래줄은 “나이 29세에(歲卄九于)”인데 한자식 어순이라면 于卄九歲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어순은 현대 중국인이라면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한국인에게는 자연스럽게 보일 것이다. 아마도 거란어의 어순을 따른 것으로 추측되는데 거란어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거란대자는 1997년 현재 100개 조금 넘는 정도가 해독되었다고 한다.
과거 일부에서 고조선 문자가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하던 비가 투르크 비문이었다고 하는 내용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다. 투르크문자는 그 모양이 에트루리아나 룬 문자, 흉노의 기호(문자?)와 비슷하다. 투르크 문자에 대해서는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 비교적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은 다른 동아시아 문자에 대한 교양 대중의 관심이 적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특히 거란문자는 아직 해독해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가능성이 많은 분야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이 분야에 관한 최고 전문가가 우리나라에서 나오기를 기대하며 거란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자 한다.
*본래 각주를 달았으나 올리는 과정에서 삭제되어 참고문헌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참고문헌-
-[[遼史]]
-姜仁旭, 2011, [考古資料로 본 匈奴의 文字資料],[[제6회 한국목간학회 국제학술대회 東北亞細亞의 最新 文字資料 硏究]]
-동서문화, 2001, [[世界大百科事典]]
-박영배, 2001, [[앵글로 색슨족의 역사와 언어]], 지식산업사.
-이성규, 2009, [거란어와 한국어의 관련성에 대하여], [[한국몽골학회 학술회의 발표논문집 거란 연구의 현황과 연구방향]]
-淸格爾泰, 梁伍鎭 譯, 1997, [契丹 文字의 特徵에 대하여], [[아시아 諸民族의 文字]], 口訣學會編, 태학사
-Hiu Liu, 1997, [女眞語文字 硏究의 現況과 課題], [[아시아 諸民族의 文字]], 口訣學會編, 태학사
-東京外国大学校アジア․アフリカ言語文化硏究所, 2012 ,[[FIELD+]] 8
-刘凤翥, 1991, [关于契丹大字中个位数字之解读], [[东北业历史与文化]], 辽沈书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