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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ESUSONE 원문보기 글쓴이: 제이원
시편 25:1~22 언약을 보이시리라 2020. 11. 11
1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 2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3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5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 6 여호와여 주의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부터 있었사오니 주여 이것들을 기억하옵소서 7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 8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0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11 여호와여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소서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14 1)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 15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 16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17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 18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 19 내 원수를 보소서 그들의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나이다 20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 21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 22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
시편 25편도 표제어에 다윗의 시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시편 25편은 히브리어의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알파벳 순서로 되어 있다는 것은 아주 치밀한 문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늘날 시인이 치밀한 구조를 가지고 쓰는 것과 다릅니다. 다윗의 시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은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시를 짓고 성령의 역사로 성경이 보존되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이 되어있기에 성령의 감동으로 이해되고 믿게 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봉독” 다윗이 여호와를 향하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 본다고 합니다. 다른 번역으로는 주님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다윗이 기름부음을 받고부터 주변에 원수들이 등장합니다. 그 원수들로 인하여 자신이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그들이 나를 이겨 승리를 노래를 부르지 않게 하여 달라고 주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우러러 보고 주님을 기다리는 육신의 문제들로 인하여 주를 바라봅니까? 아니면 영혼의 문제로 인하여 바라봅니까?
베드로전서 1:8~11절입니다.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0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11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12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구약의 성도들도 예수님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는 세례요한입니다. 그리로 구약의 남은 자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사람들만 예수님을 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이 보았습니다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은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이나 신약이나 성도들이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듣고 믿습니다. 보지도 못하였지만 사랑하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즐거워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임하셨기에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고 그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였습니다. 그래서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서 예수님을 증거 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눅24:44). 신약의 사도들도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 복음은 천사도 몰랐던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시편에서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소망한 것이 분명하기에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마22:43).
본문 3절입니다.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2절에서 원수들에게서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받으면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수치가 어떤 수치일까요? 다윗도 온갖 수치를 당하고 살았습니다. 다윗이 주라고 부른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수치를 당하였습니까? 다윗은 감히 비교할 수도 없는 십자가의 수치를 당하였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수치를 당하심은 죄인들의 수치를 대신 담당하신 수치가 됩니다.
로마서 9:30~33절입니다. “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33 기록된 바 ㅋ)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사야 28:16절의 말씀으로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 그 십자가 지신 예수님께서 걸림돌이며 거치는 바위처럼 보이지만 그를 믿는 자는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다윗이 이런 기도를 하는 겁니다.
로마서 10:11~13절입니다. “11 성경에 이르되 ㄹ)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13 ㅁ)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사야 28:16절과 요엘서 2:32절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누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인 십자가의 예수를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영원한 수치가 없습니다.
본문 4~5절입니다. “봉독” 1~3절에서 주를 우러러 보며 주를 기다리는 이유는 원수들 때문입니다. 그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어지는 4~5절에서도 주의 도, 주의 길, 주의 진리를 보이시고 가르치시고 지도하여 교훈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것을 5절에서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면 구원하여 달라는 겁니다.
6~7절입니다. “봉독” 5절에서 종일 주를 기다린다고 하는데 무엇을 기다리는 겁니까? 앞에서 구원이라고 하였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말하면 주의 긍휼과 인자함입니다. 주의 긍휼과 인자함이 영원부터 있었기에 주님께서 이것을 기억하여 달라고 합니다. 영원이란 하나님이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영원 전부터 이제와 영원까지라고 할 때에 이제는 이 역사입니다(유25). 이 역사 속에 있는 피조물인 인간은 하루살이와 같습니다. 하루살이 같은 인간의 죄를 그 영원한 인자와 긍휼로 덮어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 그 간음과 살인과 온갖 죄도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기억하여 주시고 주의 선하심으로 대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의 인자와 긍휼이 영원하기에 그것을 의지합니다.
8~13절입니다. “봉독” 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기에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십니다. 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시며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십니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입니다. 여호와의 모든 길을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들에게는 자신의 죄를 알게 되기에 나의 죄악이 크오니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자기 죄를 알고 도움을 요청하기에 그의 택할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 택할 길은 주의 영원한 인자와 긍휼을 구합니다. 이런 자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합니다. 이러한 땅의 상속도 세상의 섞어질 것들이 아니라 하늘에 간직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합니다.
14~15절입니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그를 경외하는 자란 1~13절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주의 친밀함을 보여주시는데 그 친밀함을 보여주시는 것이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 언약을 보여주심으로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아브라함 언약이나 모세 언약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이 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언약은 그 위를 영원히 하여 주신다는 언약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 언약을 보여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의 영원하심을 보여주시는 새 언약입니다.
예레미야 31:31~34절입니다.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윗보다 약 500년 뒤의 사람이지만 새 언약의 내용이 다윗이 시편 25편의 내용을 다 담아내고 있습니다. 다윗이 주님을 바라는 것은 주의 영원하신 인자와 긍휼을 구합니다. 그 영원한 긍휼과 인자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젊은 시절을 죄와 허물을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함을 받았기에 주의 긍휼과 인자의 영원함을 찬송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언약을 보이시리고 말씀하신 내용이 새 언약에 대한 내용이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영원 전에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신 언약입니다. 이것을 영원 전 언약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그 영원한 언약을 역사 속에서 계시하시는데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 새 언약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의 설교의 중심 줄기인데 어제 어떤 분의 편지가 왔습니다. 간략이 말하면 이런 내용입니다. 어려서 고신에서 자랐고 약 2년 전에 어느 권사님의 소개로 저의 설교를 들었다고 합니다. 청년 때에 언약과 성취라는 성경신학적 입장에서 성경을 보기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그 결과 여러 가지 미움을 받았다는 겁니다. 저의 설교에서 십자가의 다 이루심과 이 역사 속의 펼쳐짐에 대하여 믿음의 선진들이 간 그 길로 이끌려 감을 맛본다고 하였습니다. 육신의 소욕에 사로잡혀 갈 때면 진동치 않는 나라를 소망하도록 크게 흔들어 주신다는 겁니다. 이럴 때에 제가 종종 하는 말이 저와 취향이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답장을 간단하게 하였습니다.
16~21절입니다. “봉독” 다윗이 주님께 구하였고 주님은 언약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외롭고 괴로운 겁니다. 어제 편지를 보낸 분도 외롭고 괴로웠기에 저 같은 사람에게도 편지를 보낸 것이지요! 일종의 동병상련이라고 봅니다. 언약을 본 다윗이지만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합니다. 언약을 보았고 받았지만 마음에 근심이 많으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어 달라고 합니다. 나의 곤고함과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여 달라고 합니다. 내 원수가 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여 달라고 합니다.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여 달라고 합니다. 수치는 앞에서도 보았습니다. 영원한 수치를 당하지 않는 일을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여 달라고 합니다. 주님은 자기 언약에 성실하시기에 그 성실하심과 정직함으로 보호하여 달라고 합니다. 이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은 언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22절입니다.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그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소서” 그동안 다윗은 나라고 하였습니다. 나를 구원하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시편의 제일 마지막 절은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다윗 개인 속에 이스라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의 특징이 이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달라고 하였을 때에 왕이 잘하면 복을 받지만 잘 못하면 벌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허락된 왕이 사울이며 그 사울로 인하여 백성들이 고난을 받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일방적인 선택으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십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잘 하면 백성이 복을 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나”에서 “이스라엘”로 말하면서 시편 25편이 마무리됩니다. 다른 표현으로 그리스도 안에 성도가 있는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시편 마지막 절에서 하나님이여 이스라엘을 모든 환난에서 속량하여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속량하시기 위하여 누구를 보내시니까? 다윗의 왕위에 앉아서 영원히 다스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십니다.
누가복음 1:31~33절입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받은 예수님출생에 대한내용입니다. 예수님을 품에 안으면 무엇이 일어납니까?
누가복음 2:28~32절입니다.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인데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고 기다리다가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하는 말입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이방이 빛도 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분의 살과 피가 새 언약이며 그 언약을 십자가로 이루시고 그 혜택을 부어주시면 그 혜택이 임한 자들이 영적인 이스라엘이 됩니다. 다윗에게 언약을 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십자가로 이루신 새 언약을 보여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안에서 속량함을 받고 영원한 수치를 당하지 않기에 비록 고난 중에 있어도 즐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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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JESUSONE 원문보기 글쓴이: 제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