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동레츠에서 거래하는 지역화폐 두루. 1두루는 1원의 가치를 지닌다.(위사진) 한밭레츠 회원들은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바람직한 공동체 운영방안을 모색한다.(아래사진) | | 지난달 29일 대전시 법동에 자리잡은 지역공동체 생활문화운동 ‘한밭레츠’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랑방’이라고 써 붙인 15평 남짓한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동시에 끼치는 그윽한 향내가 매연에 지친 코를 놀라게 한다. 미백색의 포근한 벽지는 눈을 달래준다. 사랑방에는 30대 주부 8명이 밥상에 둘러 앉아 뭔가를 토론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취재차 왔습니다”라고 큰소리로 인사했지만 선뜻 반기는 이가 없다. 흘끗 쳐다본 주부들은 다시 얘기꽃을 피운다. 주부들은 ‘피드백을 통한 효과적인 대화법’에 대해 토론 중이란다. 애들 교육이나 재테크에 대해 수다를 떨 것 같은 주부들에겐 어울리지 않은 주제다. 의구심을 드러내자 손이 비어 기자를 ‘맡은’ 주부회원 고연(36)씨가 일침을 놓는다. “비싼 옷 입고 좋은 음식 먹으면서 큰 집에 살면 행복할까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행복한 삶은 서로 돕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삶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소원해지는 가족끼리, 이웃끼리 다시 결속을 다지기 위해선 대화가 기본이죠.”
지역화폐 운동 ‘레츠(LETS)’의 주된 목적 또한 ‘공동체 살리기’에 있다. 이는 가정 붕괴와 이웃 간의 단절 등 공동체 해체라는 현대사회 부작용의 정점에 ‘돈’이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성장 일변도의 ‘관성’이 공동체를 해체시킨다는 것.
이 때문에 물품과 서비스 대가로 지불하는 지역화폐를 만들어 돈의 개념을 바꿨다. 한밭레츠 지역화폐 ‘두루’는 돈이 아니라 ‘선물’. 두루를 집에 쌓아뒀다고 해서 어깨에 힘을 주거나 빚이 많다고 해서 움츠러드는 법이 없다. 도움을 조금 많이 주거나 받았을 뿐. 두루 교환이 잦으면 잦을수록 거래하는 회원들 사이의 결속은 더욱 강해진다.
점심식사 시간. 하나둘씩 사랑방으로 모여든다. 한밭레츠 사무실 밑에 위치한 지역공동체 병원 ‘민들레 의료생활협동조합’에 근무하는 의사, 한의사 10여명과 회원들이 모여 밥을 같이 먹는다. 민들레 의료생협은 한밭레츠 회원들이 중심이 돼 공동출자로 세워진 병원이다. 옹기종기 밥상에 둘러앉은 모습이 영락없는 가족이다.
“어이 홍두깨 이번주 결혼한다면서.” 한 간호사가 30대 남성에게 한마디 툭 던진다. 쑥스러움에 말을 얼버무리자 다들 함박 웃음이다. ‘홍두깨’는 다름아닌 의료생협의 한의사 홍종민씨. 공동체에서 ‘의사님’ ‘선생님’ ‘∼씨’ 등 존칭은 없다. 버들치, 바우솔, 휘파람, 산아저씨 등 직접 지은 별명을 부른다. 거추장스러운 사회적 지위는 훌훌 벗어 던졌다. 그에 따른 ‘특별대우’도 없다. ‘평등’은 공동체가 지향하는 이상이다.
이들 사이에 낀 ‘기자님’이 멋쩍다. 식사를 마치고 ‘묵은 때’를 벗으라는 듯, 누군가 ‘부담스러운’ 제의를 한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설거지 담당을 정하는데 밥을 먹었으니 동참하라는 것이다. 게임의 법칙은 거꾸로였다. 가위가 바위를 이기고 바위는 보를 이긴다.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못 벗어나서일까. ‘결승’에서 가까스로 졌다.
이 공동체에서 거꾸로 가는 ‘법칙’은 또 있다. ‘가격은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경제학 이론은 이들에겐 난센스다. 두루 가격의 높고 낮음은 시장거래와 큰 상관이 없다. ‘자두’라는 별명을 쓰는 주부 회원 이자우(37·대전시 법동)씨는 공동체 시장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은 ‘정(情)’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 한 회원이 홈페이지에 어린이용 자전거를 팔겠다고 내놓자 회원들이 서로 사겠다고 몰린 적이 있죠. 그런데 가장 비싼값을 치르겠다는 사람에게 팔리지 않았죠. 회원들은 자전거가 가장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한 회원에게 양보했어요. 서로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한밭레츠’를 이끌어가는 가는 주요 회원들은 대부분 386세대. 80년대 시대적 아픔과 고민을 같이했기 때문일까. 이들은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 위해 또 함께 모였다. ‘버들치’라는 별명의 주부회원 고씨는 공동체적 삶을 택한 자신만의 철학을 일사천리로 풀어놓는다.
“환경오염, 인간소외 등 물질문명으로 인해 느끼는 문제점을 고민하다 한밭레츠를 대안운동으로 택했죠. 주위에선 형편이 어렵지도 않은데 왜 그렇게 불편하게 사냐고 야단이에요. 그런데 물물교환, 재활용 등은 자린고비나 절약과는 조금 다릅니다. 환경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생각이 깔려 있는 행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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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민들레 의료생협은 공동체 단위를 동(洞)으로 좁힌 ‘법동레츠’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밭레츠의 경우 주요 회원들의 주거지역이 흩어진 점이 회원간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는 데 장애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지역사회 단위를 ‘시’에서 ‘동’으로 좁힐 필요성을 느낀 것. 특히 임대아파트와 일반 아파트가 뒤섞인 법동에는 주민 사이의 소득 격차가 심해 나눔과 보살핌의 이웃관계를 형성하는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회오리’ 김성훈 조직기획실장은 “공동체 화폐 두루를 매개로 법동 지역에 보건·의료·복지시설 네트워크를 만들어 건강하고 살 만한 지역사회를 조성할 것”이라고 말한다.
돌아오는 길. 알타리무(총각무), 깻잎, 김치, 비지찌개…. 풍성한 유기농산물 먹거리 로 채운 배가 부르다. 사람내 맡아 가슴마저 따뜻하다. 설거지를 하지 않았기에 어느새 기자의 두루 계좌는 ‘마이너스’가 돼 있었지만 ‘가난한’ 발길은 그리 무겁진 않았다.
글 우한울, 사진 서상배기자/erasmo@segye.com
‘레츠(LETS:Local Exchange Trading System)’란 일정 지역 내에서 회원들 간의 상품 또는 서비스 거래에 대해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가 아니라 독자적인 지역화폐로 결제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지역 내 생산을 소비와 직접 연결함으로써 환경친화적인 지역순환형 경제를 건설하고, 시장경제의 과당경쟁에 따른 분열과 소외를 극복해 상부상조하는 공동체를 건설할 목표로 고안됐다. 지역화폐를 매개로 현대사회에서 훼손된 공동체 문화를 복원하겠다는 것. 이는 품앗이, 두레, 계 등 우리 상부상조의 전통문화와 맥을 같이한다.
레츠 화폐가치는 국가에서 발행하는 화폐와 달리 회원들 간의 거래가 이뤄지는 순간마다 창출된다. 부채에 대해 이자를 지급할 필요가 없으며 정해진 상환기간도 없다. 부채는 상품과 서비스 판매를 통해 추후 상환하겠다는 약속을 의미할 뿐이다.
오늘날 형태의 레츠 운동 기반을 마련한 사람은 캐나다 국적의 마이클 린턴. 1983년 경제불황에 직면하여 실업자가 양산되는 상황을 지켜본 린턴은 ‘살아가는 데 돈이 꼭 필요할까’ 하는 질문을 던지며 중앙집권화된 통화제도로부터 독립된 지역화폐를 만들어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한밭레츠, 미래여성클럽, 불교환경교육원, 인하대학교 내 인천정보센터, 중앙대 부설 종합사회복지관, 관악구 등이 도입해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우한울기자 |
첫댓글 허 참 고연~~` !!!!
ㅋㅋㅋ~~~ 풀각시님 표현이 딱입니다.~~~
거개의 사람들이라면...괜스레 부러 저리 살고플까 하고 한번쯤은 의문을 가져볼테지요. 나눔을 가지려 해도 마땅히 없는 그사람들은 정情이라는 나눔이라도 주위에 나눈다 함이 참 곱게 보입니다. 버들치님...수고하여 나눈만큼 좋은 맘이시지요? 헛허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