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신라 사람들의 극락왕생 부적符籍, 국내 最古 ‘수구다라니隨求陀羅尼’와 첫 만남
다라니陀羅尼는 낯선 것처럼 느껴지지만 항상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 본 《천수경(千手經)》의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 수리 마하 수리 수수리 사바하(修里修里 摩訶修里 洙修里 沙波訶)’부터 불교 신자들이 즐겨 외우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시 사바하(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까지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주문이 모두 비밀의 언어, 비밀의 부적符籍인 ‘다라니’이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부처의 가르침을 담은 다라니 또는 진언眞言이라고 불리는 주문을 소리 내어 외웠다. 언제나 다라니를 부적처럼 몸에 지녔으며, 탑과 불상이나 무덤 안에 모시면 모두가 평안해진다고 믿었다. 기록에 따르면 불교가 전해진 삼국시대부터 널리 쓰였지만, 오늘날까지 남은 다라니는 고려와 조선에서 만든 것뿐이라고 그간 알려졌다. 그런데 아주 오래된 비밀의 부적, 신라의 수구다라니隨求陀羅尼가 우연히 발견되었다.
오랜 기간 보존처리를 마친 수구다라니를 처음 선보인다.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신비한 주문이 담긴 수구다라니와의 첫 만남, 여러분 모두의 소원 성취를 기원해 보기 바랍니다.
✺ 《천수경(千手經)》의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修理修理 摩訶修理 洙修里 娑婆訶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깨끗하고 깨끗하고 크게 깨끗하게 하여
|아주 깨끗함을, 끝내는 원만히 성취케 하소서.'
|'좋은 일이 있겠구나, 좋은 일이 있겠구나!
|아주 좋은 일이 있겠구나, 지극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
|아! 기쁘다.' -《천수경(千手經)》의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 수리(修理, sri): 좋다(吉祥), 깨끗하다, 깨끗이 한다(淨)는 뜻.
* 마하(摩訶, mah): 마하(摩訶), 마혜(摩醯), 막하(莫訶)라고 한다. 큰, 위 대한이라는 뜻이며 대(大), 다(多), 승(勝)의 3가지 뜻 외에 여러 가지 뜻이 있다.
* 수수리(修修理, susri): 수리(좋다)는 뜻에 묘하게라는 뜻의 형용사 su 가 붙어 묘하게 좋다(妙吉祥), 묘하게 깨끗하다는 뜻이다.
* 사바하(沙婆訶, svaha): 간접사로 원래는 신들에게 물건 등을 헌납할 때 읊었다. 진언(眞言) 끝에 붙여서 성취를 구하는 말로 쓰며 구경(究 竟), 원만(원만), 성취의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결국 성취되어 지다, 라 는 의미를 지닌 채 일반적으로는 영광이 있기를 이란 뜻으로 이해되어 진다.
관세음보살의 광대한 자비심을 찬양하는 불교경전인 천수경(千手經)의 가장 첫 시작이 바로 산스크리트어 진언의 이름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이 하는 주문)'. 산스크리트어를 해석하면 '수리(sri)'는 '좋다/깨끗하다/기쁘다', '마하(maha)'는 크게(아주)이며, '수수리(susri)'는 '수리(sri)'에 '묘하다' 또는 '지극하다', '좋다'라는 뜻의 접두어 '수(su)'가 붙어 '묘하게 좋다'라는 뜻이다. '사바하(svaha)'는 '원만해지다', '성취하다'는 뜻으로 진언마다 붙는 종결구다. 종합하면 '깨끗하구나 깨끗하구나, 아주 깨끗하구나, 묘하게 깨끗하구나, (모든 것이) 원만히 성취되리라'라는 의미가 된다.
✺ 대한불교조계사 반야심경(한글)
◆ 반야심경(般若心經) 본문 및 해석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일체를 초월하는 지혜로 피안에 도달하는 가장 핵심되는 부처님의 말씀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 때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오온이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 온갖 고통을 건너느니라.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사리자여!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색이 곧 공이고 공이 곧 색이니, 감각·생각·행동·의식도 그러하니라.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형태는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줄지도 않느니라.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생각·행동·의식도 없으며,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없으며,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고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도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고지 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신비하고 밝은 주문이며 위없는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고설 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 주문을 말하니 이러하니라.
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揭諦 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넘어 가자, 모두 넘어가서 무한한 깨달음을 이루자
범자 수구다라니(梵字隨求陀羅尼), 통일신라, 종이에 채색, 29.7×30.3㎝, 본관6860, 국립중앙박물관.
범자 수구다라니(梵字隨求陀羅尼)는 경합에 넣기 위해 여러 번 접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오랫동안 접힌 채 합 안에 보관되어서 여러 겹이 겹치고 글자와 그림이 반대쪽에 찍혀 나오거나 글자가 서로 겹쳐서 내용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외곽에는 다양한 불교 의식구를 그렸으며, 중앙 그림을 중심으로 방향을 달리하면서 사방으로 범자가 필사되었다.
복원 전 범자 다라니는 총 열여섯 개의 조각으로 찢어진 것을 대충 배치한 다음 배접한 상태로, 직사각형에 크기는 32.9×46.8cm였다. 조사과정에서 원형과 달리 잘못된 배치라는 것을 확인하고, 판독 결과 범자 다라니의 원래 형태는 정사각형인 것을 알았다.
다라니는 중앙의 그림 왼쪽 상단 모서리 부분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서 점점 더 큰 정사각형을 그리며 다라니가 이어진다. 이때 글자는 다라니 중심부를 위쪽으로, 다라니 외곽을 아래쪽으로 하여 쓰였으며, 각 모서리 부분에서 90도로 회전한다.
다라니 중앙에 네모난 여백을 두고, 그 안에는 오른손에 금강저를 든 금강신金剛神이 왼손 손가락으로 무릎을 꿇고 앉은 인물의 정수리를 어루만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도상은 불설수구즉득대자재다라니신주경佛說隨求卽得大自在陁羅尼神呪經에 적힌 다라니 서사법을 따른 것이다. 가운데 그림은 부처나 보살, 신상神像과 인물 등을 경전의 내용에 따라 발원 대상자에 맞게 그렸다. 승려가 지니는 다라니에 금강신과 공양하는 모습의 승려를 그린다고 한다. 그런데 이 다라니는 경전의 지침과 다르게 붉은 예복을 입고 관리나 높은 지위의 남자들이 착용하는 복두幞頭를 머리에 쓰고 공양하는 듯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
범자 다라니의 판독 결과 인도, 네팔, 중국 등지에서 발견한 고대 산스크리트 문자로 쓰인 수구다라니와 거의 일치한다고 한다. 특히 8~9세기 중국에서 제작한 수구다라니와 형식이 매우 비슷하여 주목된다. 중국에서 같은 시기에 유행한 수구다라니가 우리나라에 수입된 것이 아닌가 하였지만, 최근 과학적 조사로 다라니를 쓴 종이가 닥나무로 만든 한지韓紙로 분석되어, 우리나라에서 쓴 다라니인 것이 증명되었다. 지금까지 판독을 비롯한 기초조사의 결과, 범자 수구다라니는 국내에서 발견된 판본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한 필사본으로 확인된다.
한자 수구다라니(漢字隨求陀羅尼), 통일신라, 종이에 채색, 29.5×30.9㎝, 본관6860, 국립중앙박물관.
한자 수구다라니(漢字隨求陀羅尼)는 여러 한역본이 있으나, 보사유寶思惟가 693년에 한역한 『불설수구즉득대자재다라니신주경佛說隨求卽得大自在陁羅尼神呪經』에 따라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된다. 범자 다라니와 마찬가지로 정사각형이며, 금동 경합에 넣기 위해 여러 번 접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한자 다라니 역시 오랫동안 접혀 있어서 글자와 그림이 서로 겹쳐 찍힌 부분이 많다. 그래서 단에 그려진 도상들을 정확하게 복원하여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
경전에서는 단을 만들고 외곽의 사방 모서리에 향수를 가득 채운 병을 두고, 줄기에 비단이 걸린 활짝 핀 연꽃을, 그리고 삼차극, 금강저, 도끼, 칼, 검, 소라나팔, 화염주 등을 그리도록 하였다. 한자 다라니에서 경전의 내용과 일치하는 도상으로는 병, 검, 칼, 금강저, 소라나팔이 있으며, 이들은 모두 연꽃 위에 놓여 있다. 또한 경전에 따라 연꽃의 수염[蓮花鬚]을 그린 것이 특징이다. 각 모서리의 병과 병 사이에 도상은 각 다섯 개씩 배치된 것으로 보인다. 외곽에 다양한 의식구가 그려진 안쪽으로는 다라니가 써졌다. 다라니는 중앙의 도상을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쓰이는데, 한자 다라니의 가운데에도 그림을 그렸던 방형의 공간이 확인되었다.
처음 배접 당시 다라니 두 조각이 잘못 배치되었던 것을 다라니 글자 내용을 확인하면서 배열을 바르게 잡아 제자리로 옮겨 복원하면서 찾아냈다. 가운데 작은 그림이 그려졌지만 많이 손상되어 알아보기 어렵다. 중앙의 그림 공간을 중심으로 다라니는 사방으로 돌아가며 쓰이는데, 범자 다라니처럼 왼쪽 위 모서리에서 서사가 시작된다. 진행 방향도 범자 다라니와 같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모서리 부분에서 90도로 회전하며 이어진다. 그러나 글자가 배치되는 방향은 범자 다라니와 다르다. 범자 다라니의 경우 글자가 다라니 중심부를 위쪽으로, 다라니 외곽을 아래쪽으로 하여 쓰였는데, 한자 다라니는 한자를 한 글자씩 세로 쓰기를 하면서 진행 방향대로 이어서 썼다. 한자 다라니 역시 범자 다라니와 함께 국내에서 발견된 판본들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다라니이다.
범자 수구다라니, 통일신라, 한지, 29.7×30.3㎝, 본관6860,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경주박물관이 100여년만에 처음 공개하는 통일신라시대의 불교경전 부적 ‘수구다라니(隨求陀羅尼)’의 범자본 전체 모습. 범자(산스크리트 문자)로 채워진 부적문 조각 한가운데에 불교 수호신 중 하나인 금강역사(金剛力士)로 보이는 불교신이 관리로 추정되는 이의 머리를 만지면서 축복을 내리는 듯한 도상이 그려져 있고, 그 중심으로 불교 주문이 기록돼 있다.
경주 남산 출토본으로 전해져온 ‘수구다라니’의 범자 본(부분).범어 글자들로 둘러싸인 여백 부분에 금강역사신상이 꿇어 안은 이(관리로 추정)의 머리를 만지는 그림이 보인다. 꿇어앉은 이 옆에 ‘~叱知(질지)’라는 추정 관직명이 적혀있다.
금동경합(金銅 經盒), 통일신라, 동제, 금도금, 8.8×6.2×3.9㎝, 본관6859, 국립중앙박물관.
금동 경합(金銅 經盒)은 뚜껑과 몸체가 따로 분리되고, 뚜껑을 닫았을 때 몸체와 잘 맞도록 뚜껑 안쪽에 턱을 단 전형적인 상자 모양의 합이다. 경합은 구리로 만들고 안팎으로 도금을 한 후 바닥 면을 제외한 모든 면에 무늬를 새겼다. 면마다 네 모서리에 선을 그어 테두리를 입체적으로 표현하였고, 뚜껑에는 보상화무늬를, 옆면 사면에는 무기를 든 신장상神將像을 음각陰刻하였다. 뚜껑 윗면과 옆면의 여백에는 어자魚字무늬를 새겼다. 특히 보상화무늬와 신장상은 외곽선을 먼저 가는 선으로 새긴 다음 그 위에 정으로 삼각형이 연속되는 무늬를 덧새겨 외곽선을 강조하였다. 경합의 제작기법과 모서리에 선을 그어 테두리를 입체적으로 장식하는 방식, 보상화무늬와 신장성을 새기고 여백에 어자魚子무늬를 배치하는 방식 등은 다른 통일신라 금동 합이나 사리기에서 보이는 전형적인 특징들로 경합의 제작 시기를 8세기 중기 이후로 추정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경합에 들어있던 수구다라니도 같은 시기인 통일신라 때 만든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경합은 경주 남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며, 범자와 한자 수구다라니가 각각 접힌 채 이 합에 들어있었다고 한다. 이 수구다라니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것으로, 경주 남산에서 출토된 근거는 정확하지 않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의 수구다라니는 대부분 무덤에서 나왔고, 이후 둔황의 막고굴이나 탑에서 나온 경우도 있으며, 사리장엄구에서도 발견되어 널리 활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이 수구다라니는 경합에 들어있던 것으로 보아 몸에 직접 지닌 것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경합에 담겨 있었고, 비교적 경합과 다라니가 잘 남아 있어서 탑에 모셨던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수구다라니 2점. 각각 한자(위쪽)와 범
자(梵字·고대 인도 문자:산스크리트어)(아래쪽)로 쓰여 배접된 상태였다가 이번에 분리·복원.
가로세로 약 30cm 크기 한지 2장엔 한자와 범자(梵字·고대 인도 문자)로 쓴 다라니가 각각 적혀 있다. 그중 범자로 주문을 새긴 종이 중앙엔 금강저(金剛杵·불교에서 적을 무찌르는 무기)를 든 불교의 수호신 ‘금강신(金剛神)’이 그려져 있다. 수구다라니 제작법을 담은 경전 ‘불설수구즉득대자재다라니신주경(佛說隨求卽得大自在陁羅尼神呪經)’에 따르면 이 같은 도상(圖像)은 주로 승려들이 소지한 수구다라니에서 엿볼 수 있다.
한자로 적은 수구다라니는 고대 인도 문자로 된 불교 주문을 한자로 음차해 기록한 것이다. 같은 시기 인도와 중국 등 불교문화권에서 제작된 수구다라니는 20여 점이 현존하지만, 한자 수구다라니가 함께 나온 건 처음이다. 한자는 총 2143자가 쓰였다.
동아시아 전역에 널리 퍼졌던 수구다라니는 신라에도 영향을 미쳤다. 삼국유사엔 신라 신문왕(神文王, ?∼692)의 아들 보천태자가 경북 울진의 성류굴에서 수구다라니경을 외워 동굴의 신을 감화시켰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신명희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문헌으로만 전해졌던 통일신라 수구다라니의 실체를 확인한 사례”라고 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조선총독부는 금동 경합과 수구다라니 2점을 각각 20엔에 사들였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다가 2020년 경주 남산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에서 조명됐다. 100여 년 만에 수장고에서 잠 깬 이 유물은 3년간의 복원을 거쳐 내년 1월 28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 개막/ 무료.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1806), ‘염불서승(念佛西昇)’, 삼배 수묵담채, 20.8×28.7cm, 간송미술간 소장.
염불서승(念佛西昇)은 염불하며 서방정토로 올라간다는 의미이다. 구름 위로 놓인 연화대(蓮花臺)에 앉은 승려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모습은 마치 신라 경덕왕 때 양산 포천산에서 아미타불을 염송(念誦)하던 다섯 명의 비구가 연화대에 앉아 서쪽을 향해 떠나갔던 일이나, 9세기 초 강주 미타사의 여종인 욱면(郁面)이 염불하여 연화대에 앉아 서방세계로 떠났다는 삼국사기 권5(三國史記 卷五) '욱면비염불서승郁面婢念佛西昇'의 내용을 그린 듯하다.
화면 왼편 상단에 해행체(楷行體)로 쓴 ‘檀老(단로)’라는 관지(款識)가 있고, 그 밑으로 그의 자인 ‘士能(사능)’을 새긴 주문방인(朱文方印)과 그의 호 ‘檀園(단원)’을 새긴 백문방인(白文方印)을 연이어 찍었다.
구름 위에 피어난 연꽃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한 선승(禪僧)이 염불왕생(念佛往生)을 염원하고 있다. 부글부글 끓는 듯한 구름과 연꽃, 그 속에서 피어나 열매를 맺은 듯한 스님의 뒷모습, 그리고 담청으로 달빛으로부터 차분하게 우린 배경이 미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연화대좌 속에서도 두광(頭光)처럼 빛나는 달빛 속에 스님의 뒷모습에서는 초탈함이 엿보이고, 달빛이 반사되어 비치는 장삼에서는 달밤의 정치마저 느낄 수 있다. 김홍도는 50대 후반 이후 석화(釋畫)를 즐겨 그렸는데, 그 가운데 높은 격조를 갖춘 명품이라 하겠다.
[출처 및 참고문헌: 문화재청 국립경주박물관 전시 정보, Daum, Naver 지식백과/ 이영일∙고앵자 생명과학 사진작가∙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행복한 주말 아침이 밝았네요.
향기로운 차 한잔의 여유 속에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하루를 시작합니다.
사람이 살아 가면서 늘 초심의 마음을 간직하며 살아가라고 하네요.
오늘도 초심의 마음으로 나를 돌아보며 행복하게 좋은 일만 가득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