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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 타협안을 만든다는 중책을 맡게 된 우스트랼로프와 스탈린은 농업 분야의 전문가이자 천재 경제학자로 불리는 [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를 영입했습니다. 스물여덟에 불과한 콘드라티예프는 경험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듯, 인민경제최고회의의 위원들과 회동하며 경제계획안을 만들어냈습니다.
1. 노동자파의 계획안대로 신용, 소비, 생산자 협동조합을 전부 창설한다.
2. 전환파의 농업 진흥 필요성 주장을 인정하여 토지 소유권은 국가가 보유하되, 20년의 기한이 있는 토지 사용권은 개인이 지역 소비에트를 통해 거래할 수 있게 한다.
3. 노동조합이 전권을 갖는 것은 조합주의라는 비판을 받아들여, 산별 노동조합이 각 공장의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하되, 노동자 자주 관리가 적용된 산업체는 이에 해당하지 않게 한다.
4. 사기업의 소득을 과세해 창설한 노동자기금을 노동조합 중앙평의회가 관리하게 하고, 노동자기금은 러시아 내 기업들의 주식을 구매해 중앙평의회에 이전하여 노동자들의 소유가 되게 함으로써, 산업체별 노동자 자주 관리가 실현될 수 있게 한다.
5. 이를 위해 주식시장을 다시 개시하고, 대신 상장주식을 분할하여 외국인의 투자 및 투자수익 해외 반출을 어렵게 한다.
이외에 수십 가지 조항이 붙은 타협안은 러시아 내에서 일대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타협안이 늘 그렇듯이, 스탈린과 우스트랼로프가 뭉쳐 만들어진 ‘중앙파’의 계획은 전환파와 노동자파 모두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배급제를 폐지하고 공동식당을 저가의 공영식당으로 수정하며, 이로 인해 발생할 가사노동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하여 주부에게 혜택을 준다는 방안은 평등주의에 어긋난다며 비판받았고, 대단히 복잡한 경제계획안은 소자본가를 인정하는 전환파나 소비에트 권력을 인정하는 노동자파와는 달리 경제를 관리할 ‘관료 계층’의 권력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중공업 6:경공업 4의 비율은 애매모호한 중간점이기도 했죠.
고급 인력 양성을 위해 고등교육기관을 대거 설립한다는 방안은 ‘부르주아 국가의 교육과 다를 바가 없다’라는 비판 또한 받았죠. 유일하게 모두의 동의를 받은 부분은 모든 교육 분야에서 노동계급과 빈농 출신의 학생들에게 우선적인 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 정도였습니다.
관료제가 알아서 사라질 것이란 것은 망상이고 사회주의 국가라 할지라도 국가의 운영에 있어서 관료제는 필수라고 믿는 스탈린은 이에 대해서는 타협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유사 다당제 정치가 수립된 러시아에서 관료제와 정치를 분할하고 엽관제를 시행해야 한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사고를 지닌 우스트랼로프도 마찬가지였죠.
연립정당과 사이가 좋았던 우스트랼로프는 이 계획안이 오히려 연립정당들에 이익일 것이라며 설득하였습니다. 관료 계층이 힘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공산당 중앙위원이 으레 정부 고위직을 겸임하는 상황은 알아서 사라질 것이고, 공산당 정치국이나 인민위원회에서 결정하던 사항은 자연스레 법적 국가 최고기관인 중앙집행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란 주장이었죠.
진짜 평의회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몰두하던 독일의 룩셈부르크는 이 유사민주주의적 방안을 듣고 ‘우스트랼로프 동무는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고 있다’라고 지적했지만, 항상 공산당에 밀려 2중대 신세였던 러시아의 연립정당들은 이 제안에 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인민대중의 지지를 받지만, 중앙 정치권에서 힘을 못 쓰는 사회민주노동당과 사회혁명당은 이 제안을 듣고 스탈린-우스트랼로프 연합을 지지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죠.
이윽고 전러시아 소비에트 대회의 표결이 진행되었을 때 결과는 팽팽했습니다. 중앙파의 타협안이 약 40%, 전환파가 32%, 노동자파가 28%를 받았죠. 중앙파는 자신들이 약간의 표 차로 더 이겼다는 이유로 계획을 밀어붙이는 대신, 3개월 동안 중앙파의 계획대로 경제정책을 진행하되 1920년 7월로 연기되었던 제헌의회 선거, 정확히는 ‘정치협상회의 선거’ 때 경제정책별로 선거연합을 결성하여 인민의 심판을 한 번 더 받자고 주장하였죠.
나폴레옹 3세의 국민투표처럼 느껴지는 방안에 일부 인사들이 크게 비판하긴 하였지만, 중앙에서의 논쟁에 질려 있던 인사들은 중앙파의 타협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중앙파의 경제계획이 진행되는 3개월 동안 정국이 얼마나 중앙파에게 유리해질지는 그들만이 알 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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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동안 인민경제최고회의의 권한은 크게 증대되었습니다. 경제학자였던 [발레리안 오볼렌스키]의 뒤를 이어 새로이 경제회의 주석으로 선임된 레닌의 오랜 동지 [글렙 흐리지자놉스키]는 [러시아 전력화위원회(ГОЭЛРО)]와 같은 수많은 소위원회를 경제회의 내에 창설하고, 자신이 전력화위원회의 위원장을 겸임하고 레닌과 함께 계획을 짰습니다.
10년 내로 러시아 전역에 전기를 보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에 모두가 우려와 감탄을 동시에 보냈습니다. 러시아를 방문 중이던 SF 소설가 [허버트 조지 웰스]는 레닌을 만난 자리에서 레닌의 전력화 계획에 ‘당신은 나보다 더한 몽상가요’라는 농담을 던지면서도, 러시아가 현대 최대의 사회경제적 실험을 시작하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습니다.
중앙파의 예측대로, 이 모든 것은 그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갔습니다. 전력화위원회 하나에만 300명에 가까운 과학자와 경제학자가 참가하였고, 경제회의는 소비에트 러시아에 가담한 구 러시아 제국의 관료와 테크노크라트, 지식인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이들은 중앙파의 중개로 공산당에 대거 입당하여 공산당의 세력을 늘리는 데 일익을 가담하며 소비에트 러시아에 일약 ‘붉은 개발주의’ 바람이 불게 했습니다.
이윽고 러시아에서 과학적 진보와 사회적 개혁, 산업 개발은 긍정적이고 숭배해야 할 것으로 변하였습니다. 모든 면에서 실용주의는 찬양받았고, 구축주의 예술인들은 크게 호평받았죠. 일부 인사들은 프랑스의 미래주의와의 유사성을 지적하였으나, 일부의 비판은 으레 묻히기 마련이었습니다.
이윽고 중앙파는 전환파와 노동자파의 비판적 지지와 실무적 협조를 통해, 1920년 6월 정치협상회의 초대 선거 직전에 러시아 최초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의 가안을 짜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하였습니다. 산업, 건설, 수송 관련 노동자를 5년 안에 3배로 늘리며 모든 산업 분야에서 고도성장을 이룩한다는 계획은 대단히 낭만적이었고, 일부는 현실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실적이었는지와 별개로, 정치협상회의 선거장에 나간 인민들은 그러한 선전문이 누구의 명의로 배포되었는지를 기억했습니다. 공산당이 이례적으로 ‘당내 민주주의의 인정’을 내걸며 한 선거구에 공산당의 복수 후보 공천과 각 후보가 자신이 전환파, 중앙파, 노동자파 중 어디에 속하는지 알릴 수 있게 한 가운데, 3개의 파는 여러 정당과 이합집산하여 각자의 선거연대를 구성하였습니다. 레닌과 일부 최고지도자들만은 별도의 선거연대를 구성하였죠.
선호투표제와 중선거구제를 합쳐놓고, 우익정당인 입헌민주당 등은 출마는커녕 존재 자체가 불법인 상태에서 정협 초대 선거는 현 정부를 구성하는 좌익 정당들에 대한 일종의 승인투표에 가까웠습니다. 공산당의 3대 파벌과 지도부, 사회민주노동당, 사회혁명당, 노동인민사회당, 아나키스트 조직동맹은 최종적으로 4개의 선거연맹을 구성하였습니다.
레닌이 속한 공산주의자-무소속동맹(Блок коммунистов и беспартийных), 트로츠키파, 아나키스트 조직동맹, 사회혁명당이 속한 노동자파의 민주집중제연합(Группа демократического централизма), 부하린파, 사회민주노동당, 노동인민사회당이 속한 전환파의 노동자-농민동맹(Рабоче-крестьянский блок), 중앙파, 즉 공산당 대부분이 속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전선(Революционно социал-демократический фронт)은 소속 후보 전원이 무리 없이 당선된 레닌의 연맹을 제외하면 치열한 경쟁을 거쳤습니다.
1920년 7월 1일, 정협 조직법에 따라 언론인, 예술가와 교육자, 소수민족 대표와 종교단체 대표, 노농적군과 민경(民警)에 의석이 할당된 뒤 발표된 정치협상회의 선거 결과는 모두가 예측한 결과였습니다. 직능대표 분배 의석을 제외한 767석 중에서 분파를 막론하고 공산당은 약 58.5%의 의석을 점유하였고, ‘볼셰비키’라는 이름은 정말로 대중의 지지를 받는 사회주의 세력의 다수파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세부적인 결과로는 결국 중앙파의 승리였습니다. 단독 과반은 아니지만, 약 42%의 의석을 점유하는 데 성공한 중앙파는 레닌의 확고부동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중앙파의 대표 격인 우스트랼로프와 스탈린은 순식간에 레닌의 뒤를 이을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 부상하였습니다. 자신이 제안했던 정협 선거가 성공리에 끝나자, 우스트랼로프는 정협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모든 실무를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정협의 의장으로 사회민주노동당의 원로 중 한 명인 [레오 데이치]가 위촉된 가운데, 스탈린은 자신만만하게 자신의 계획안을 내놓았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포함되는 거대 연합체이자 연방국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맹’, 이하 소련의 체제와 국명을 제안하고 그 헌법 초안과 국기를 정협 회의에서 발표한 것이죠.
기존의 러시아를 계승하면서 자유롭고 독립적인 각 가맹국 간의 연합으로 이중적 체제의 특성을 지게 될 소련은 러시아와 자캅카스를 회원국으로, 우크라이나를 준회원국으로, 러시아의 핵심 동맹국을 참관국으로 포함할 예정이었습니다. 회원국이 서로 밀접히 통합되고 준회원국이 군사와 외교 등 여러 핵심적인 부분을 제외한 분야에서 자치를 누린다면, 참관국은 양국 인민의 무비자 입국이나 환율 및 관세 우대 등의 혜택 제공만 이뤄질 예정이었죠.
레닌이 본래 제안한 국명인 ‘유럽-아시아 소비에트 공화국 연맹’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신생 소련의 이 독특한 체제 선언은 소련의 영역이 구 러시아 제국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란 확장주의적 행보의 선언이었습니다. 실제로도 핀란드, 갈리치아-로도메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가 참관국 가입을 선언하고 그리스가 축하 사절단을 보내며 소련이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우스트랼로프가 구체화한 정협의 기능과 역할은 이 소련의 설립과 밀접히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주로 중앙집행위원회가 보유하고 있던 권한 일부를 가져와 연방 체제의 설립과 안정에 이바지하는 목적이었죠.
1. 소련의 외부 국경과 내부 국경 문제의 해결
2. 새로운 회원국, 준회원국, 참관국의 가입 및 승격 문제를 최종적으로 논의
3. 중앙집행위원회, 인민위원회를 비롯한 중앙기관 또는 개별 인사에 대한 탄핵
4. 중앙집행위원회와 인민위원회에 대한 상호 불신임 결의
5. 각종 인사청문회
6. 헌법의 제정 및 개정
7. 위헌법률 관련 헌법소원 접수 및 심의
권한에서 보이듯이 정협은 강력한 견제 권한과 헌법이라는 핵심적인 가치를 조정할 권한은 있었지만, 실무적인 권한은 하나도 없는 상징적인 기관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직선제 입법부를 혐오하는 사회주의자들로서는 이 정도도 큰 타협이었죠. 소련이 출범하면 정협은 ‘전연방 정치협상회의’로 격상되어 회원국과 준회원국에서 직선제로 제한 없이 계속해서 선출될 예정이 되었습니다.
첫댓글 스탈린은 못 믿을 놈 취급 받더니 선거 이겼다고 금세 지도자 하마평에 오르네 ㅋㅋㅋㅋㅋ
선거에서 이긴 사람 당에서 흔들면 어찌되는지는 저희는 다 알죠(...) 볼셰비키도 나름 오랜 원내정당이었고요.
@렌지파일 후단협(...) 악몽이죠. 선거 승자 배제하고 패배자 연정 갔을때랑 동급의 악마적인 일(...)
@dear0904 사실 스탈린의 귀환(?)은 소설에서 꽤나 뜬금없이 스탈린하고 우스트랼로프가 하하호호하던 장면에 대한 보충설명이기도 합니다
@dear0904 후단협 오랜만에 듣네요… ㅋㅋㅋㅋ
@렌지파일 이게 연대기 형의 장점일수도 있겠네요 ㅋㅋ 2중 보충 설명이라...
@E.E.샤츠슈나이더 그러고보니 대연정과 신임투표 다 했네요 여기도(?)
@E.E.샤츠슈나이더 ㅋㅋㅋ 사실 저 위의 사례의 적절성 빼곤 꺼낼 일이 거의 없는 말이긴 하죠 ㅋㅋ 이것도 20년이나 된 말이고 ㅋㅋ
@렌지파일 이제 “서기장 못해먹겠다”랑 건곤일척의 캐삭빵만 나오면 되는 건가요(…)
@E.E.샤츠슈나이더 스탈린이 바르바로사 작전 직후 못해먹겠다고 다차 들어간것은 못해먹겠다에 해당되겠네요(?
@dear0904 후단협...
@렌지파일 그리고 막판에 유언장 시퀀스에서 스탈린이 병력을 끌고오면 캐삭빵이 되는거구요(??)
표트로프(X) (붉은 글씨로) 탈주(перебежчик)
이게 뭘 의미할지… ㅎㅎㅎ
ㅎㅎㅎ..
@렌지파일 과연 통장님이 예전에 언급하셨던 “전체주의 소련 vs 민주사회주의 유럽의 싸움“은 실현될 것인가(…)
@E.E.샤츠슈나이더 다른 뜻도 있죠. 망명 혹은.. 전향
@렌지파일 사실 본편에서 다룬 부분 이후의 스토리가 더 기대됩니다(?)
러시아어를 몰라가지고 걍 지나쳤는데 이런 일이...?
오... 폭풍이 다시 한번 불어올것 같은 느낌이 매우 강하게 드네요 ㅎㅎ...
제목은 국민혁명 용으로 바꿨는데 딴데만 계속 다루네요(...)
@렌지파일 원래 그런겁니다(?)
체제의 정비, 소련 내부 산업의 변동과 같이 오는 스탈린의 대두... 공화정을 노리되 신격화를 암묵적 동의한 레닌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ㄷㄷ
다음편이 절반 정도는 만들어진 상태에서 시간이 안나네요 (...) 어떻게든 올려보겠습니다..
ㄷㄷ… 모쪼록 하시는 일 무탈하게 잘 끝내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