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4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하늘의 너희 아버지처럼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43-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3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44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45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46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47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죽기 살기로 작정하고 사랑하라
어려서 교리를 배울 때 들은 얘기입니다. 어느 유명한 외과 의사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호언장담(豪言壯談)하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많은 사람들을 수술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죽은 사람을 해부도 해 보았고, 산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수술 칼로 베고, 잘라보고, 열어보지 않은 곳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영혼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수술을 하면서 실체를 발견하고 싶었답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그 영혼이 심장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심장 수술하는 경우에 참석해 보았고, 뇌에 있을 것 같아서 또 뇌 수술하는 데도 참석해 보았고, 매일 많은 사람들의 수술을 하면서 영혼이 어디에 있는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영혼은 없다.’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의사로서, 과학자로서 사람은 영혼과 육신이 결합한 존재라고 하는데 육신을 아무리 뒤져보고, 갈라보고, 해부해 보아도 영혼을 찾을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사람은 반론을 제기하라고 했더랍니다.
아무도 그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며, 실험적인 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였답니다. 그래서 그는 의기양양해져서 ‘영혼이 없다.’는 사실을 공론화하기로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하였답니다. 그런데 아주 나이가 많은 할머니 한 분이 나서서 그 의사선생님에게 질문을 하더랍니다. “선생님, 부인을 사랑하십니까?” “예, 사랑합니다.” “아! 그러시군요. 아이들도 사랑하십니까? 그리고 과학을 좋아하시는군요.” 의사선생님은 무척 화가 나서 자기가 이처럼 무식한 할머니와 얘기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아서 짧게 잘라서 말했답니다. “예 사랑합니다. 그것도 많이 사랑합니다. 과학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니까 나는 과학으로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답니다. 의술이나 과학을 모르는 할머니와 달라요.” 그러자 그 할머니는 여러 사람들을 한번 빙 둘러보더니 “의사 선생님, 선생님의 그 수술 칼은 제게 빌려 주시겠습니까? 제가 선생님의 어디에 사랑이 있는지, 그리고 과학을 좋아하시는 마음이 얼마나 큰 것이 있는지 찾아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줄행랑을 놓았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 받는다는 것도 말로 설명할 수 없고, 표현할 수 없고, 느낌으로도 표현할 수도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걸 꺼내서 보여줄 수도 없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사랑을 ‘한다. 안한다. 나는 많이 하는데 너는 왜 조금하느냐?’고 말할 수도 없고, 시비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사랑하니까 너도 이렇게 사랑하여라.’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한다고 하여도 그것이 옳은 것인지, 주님께서 아름다운 사랑으로 인정해 주실 것인지 자신 있게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오직 겸손하게 사랑할 뿐입니다. 그 사랑에 대하여 점수를 주실 분은 하느님뿐입니다. 내가 사랑을 가지고 점수를 주어 판단한다면 나는 아주 교만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논어의 술이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자왈 ; 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
(子曰 ;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라는 말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도에 뜻을 두고, 덕을 지키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어야 한다.”>
공자의 이 도(道)라는 것은 ‘올바른 도리’로 사람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도에 따르는 사람은 덕(德)으로 행동으로 나타나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을 인(仁)이라고 해서 최고의 덕으로 나타냅니다. 예(藝)란 단순히 예술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라 모든 문화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禮), 악(樂), 사(射), 어(御 : 다스리고, 짐승을 길들이는 것), 서(書), 수(數)의 육예(六藝)를 말했답니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가장 어려운 논어의 구절이 바로 이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말은 정말 쉽지만 평생을 노력해도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인(聖人)이 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공자도 최고의 덕인 사랑은 사람이 반드시 행동으로 보이고 나타내야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공자는 이런 사람을 완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군자(君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은 적극적인 사랑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기왕에 사랑을 하려거든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적극적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온 마음과 온몸을 다하여 뜨겁게 열정적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의 나처럼 그렇게 어정쩡하게 사랑하지 말고, 죽기 살기로 작정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등상을 받으려고 죽어라하고 공부하지 말고, 죽어라하고 공부하다보니 우등상을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라.>
▥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26,16-19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6 “오늘 주 너희 하느님께서 이 규정과 법규들을 실천하라고 너희에게 명령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그것들을 명심하여 실천해야 한다.
17 주님을 두고 오늘 너희는 이렇게 선언하였다. 곧 주님께서 너희의 하느님이 되시고,
너희는 그분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분의 규정과 계명과 법규들을 지키고, 그분의 말씀을 듣겠다는 것이다.
18 그리고 주님께서는 오늘 너희를 두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곧 주님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분 소유의 백성이 되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지키며,
19 그분께서는 너희를 당신께서 만드신 모든 민족들 위에 높이 세우시어,
너희가 찬양과 명성과 영화를 받게 하시고, 너희가 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축일2월 24일 성 세르지오 (Sergius)
신분 : 순교자
활동 지역 : 카파도키아(Cappadocia)
활동 연도 : +304년
같은 이름 : 세르기예프, 세르기오, 세르기우스, 세르지우스
성 세르기우스(또는 세르지오)는 카이사레아(Caesarea)의 행정장관이었다. 그는 후에 카파도키아에서 수사(혹은 신부)가 되었다.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재위 중에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희생되었다. 성인의 유해는 에스파냐의 타라곤(Tarragon) 부근 우베다(Ubeda)로 옮겨졌다.
축일2월 24일 성녀 아델라 (Adela)
신분 : 과부, 여왕
활동 연도 : +1137년
영국의 정복자 윌리엄(William) 왕의 딸인 성녀 아델라는 프랑스 블루아(Blois)의 스테파누스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생애 동안 영국내의 정치적인 문제에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수도원과 성당에 많은 기부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 축일을 맞은 세르지오 (Sergius) 형제들과 아델라 (Adela) 자매들에게 주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기도드립니다.
야고보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