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영루’ 인수 후 국내 1위 업체로 이끌어
만두파동이 ‘전화위복’ 돼 미국시장 진출
박성수 집사 (취영루 대표이사 수원중앙침례교회)
(사진=김용두 기자) 도전하는 삶이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1945년 화교 성모 씨가 만든 물만두로 유명해진 취영루의 상호와 상표권을 19998년에 인수한 뒤 2000년 22억 원이었던 매출액을 작년에 378억원까지 끌어올리며 ‘취영루’를 만두제조업체 1위로 만든 이 회사 대표이사 박성수 집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취영루(제조업체와 외식업체 포함) 외에 영상미디어컨텐츠와 인포머셜 홈쇼핑 사업체인 씨와이알(구 씨앤텔) 등 5개의 회사를 운영하는 CEO가 됐지만 ‘성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표현한다. 가야할 길이 멀고, 해야할 일 또한 많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도전하는 그의 인생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그는 얼마나 도전정신이 강했던지 소아바미라는 자신의 단점을 이겨내고 군대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대학 재학시에는 방학 때마다 공사판 인부, 자장면·가스 배달원 등 다양한 노동을 경험하며 기업가가 되겠다는 목적을 위해 인내하며 오늘날 자신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있기까지는 모두 ‘하나님을 만나 순종했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내가 모든 것을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후 모든 것을 주님 발앞에 내려놓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성공의 길로 이끌어주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IMF와 2004년 만두 파동 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며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했다면 지금의 제가 될 수 없었겠죠”
목사의 딸을 만나 1993년 결혼과 동시에 본격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된 그는 “아직까지 크리스천이 되지 않았다면 기업은 키울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가운데 기쁨으로 기업성장을 이끌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기업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의 순위는 언젠가 바뀌잖아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면 믿는 자에게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도하고 구하면 반드시 위기를 극복할 힘을 주시기 때문이죠”
그에게 있어 가장 큰 시련은 어느 때보다 2004년에 있었던 만두 파동이었을 것이다. 취영루는 진실과는 다르게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로 하루 아침에 불량 만두소를 사용하는 업체들과 함께 도마 위에 올라 불량기업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 당황하게 된 박성수 집사는 제일 먼저 김장환 목사를 찾아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그러자 김장환 목사는 그에게 “진짜 불량 만두소를 쓰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하나님 앞에서 결백을 주장할 수 있다는 박 집사의 말에 김 목사는 “그러면 당장 크게 광고를 하고 결백을 위해 싸우라”고 격려하며 기도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그는 국내 유명 일간지 1면에 ‘취영루 만두에 불량 만두소를 사용했다면 회사문을 닫겠다’며 결백을 주장하는 광고를 냈고 관계기관에 실사를 요청, 결국 3일 만에 무혐의 판정을 받아냈다. 박 집사는 김장환 목사의 격려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을 믿고 기도로 후원해준 직원들이 있었기에 고통의 터널을 빨리 지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만두파동으로 적잖은 손실을 입긴 했지만 그 일을 통해 깨달은 바가 커요. 오히려 전화위복도 됐고요. 취영루가 다른 만두와 차별화되면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8군에 만두를 납품하게 되었고, 국내만두업계 최초로 미국 시장까지 진출하는 등 더욱 바빠지게 됐죠”
취영루는 미국 로스엔젤레스 시장 진출에 성공하면서 뉴욕 시장 공략에 나섰다. 최근에는 미시시피주립대학교 안에 ‘만두제품개발연구소’를 개설, 동대학과 공동으로 제품개발 및 적극적인 마케팅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여기에는 외식과학연구소와 국제 경영전략연구소 등 미시시피주립대학교 산하 연구기관들로 참여키로 했다.
기업 경영의 목적을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여기는 그는 언제나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모든 것에 순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려운 이웃들이 있는 곳이라면 발벗고 이들을 찾아나서 도움을 전한다. 그 중 하나가 해마다 수해를 입은 지역을 찾아가 그들에게 만두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일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수해를 입은 강원도 한 산간지역을 방문하고 240여 가구에 만두 한 묶음씩을 전달했다.
또 취영루가 우회상장도면서 최근에는 25억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장학금 기탁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은 한사코 꺼려했다. “기업이 돈을 버는 만큼 중요한 것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가 몸담고 일하는 직장이 있는 파주시에 장학재단을 만들기로 하고 이 곳과 모교에 장학금을 내놓게 된거죠”
하나님을 향해 주파수를 맞추고 살아야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하는 박 집사. 그래서 그는 예배를 중시한다. 모든 직원들에게 예배를 강조하고 일주일동안 아침마다 취영루가 있는 경기도 파주를 비롯해 자회사들이 있는 마포, 송파, 김포 등을 돌며 직원들과 예배를 드린다. 직원들을 모두 기도의 동역자들로 표현하는 박 집사는 사람들과의 만남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다. 그리고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라고 강조한다.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급훈을 ‘에수님을 믿자’로 정할 만큼 신앙이 돈독하셨던 선생님은 세상에서 성공하는 세가지 비결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죠. 바로 ‘예수님을 믿고, 부모를 공경하며, 맡은 임무에 완수하면 100% 아니 1000%로도 성공할 수 있다’고 가르쳐주셨죠”
이때문에 무엇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박 집사는 지난 5년동안 추진해 왔던 대학설립인가 승인을 최근에 받아내고 올 가을부터 공사에 들어간다. 외식 사업과 유통 등을 가르치는 특화된 대학 설립이 목적인 그는 “믿음안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사회에 필요한 일꾼들로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바쁜 중에도 경희대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사회에 진출하려는 젊은이들에게 하나님 안에서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라고 당부한다. “하나님안에 목적을 두고 있으면 인내를 갖고 기도하게 됩니다. 저는 대학 설립을 목적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5년만에 응답을 받았습니다. 만일 제가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고 4년만에 포기했다면 목적을 이룰 수 없었겠죠. 1년만 더 기다렸다면 이룰 수 있는 목적을요. 따라서 젊은이들이 모욕과 수치심을 굴하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게 되길,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는 일꾼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젊은이들에게 들려주는 박 집사의 조언은 상당한 도전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