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耳順의 意味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우뚝 섰으며, 마흔 살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 도올논어(2) 61쪽)
아마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논어 구절의 하나일 것이다. 40,50대에서 글이나 읽는 사람치고 “불혹(不惑)‘이나 ”지천명(知天命)’을 모르는 사람을 거의 없을 테니까. 그러나 이순(耳順)의 나이라는 표현은 잘 쓰지 않는 것을 보면 한 사회를 리드하는 연령층에서 약간 소외된 연령층에 속하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이순(耳順)은 귀가 순해진다는 말이다. 주석에 의하면 모든 것에 통달하여 그냥 듣기만 하여도 거칠 것이 없이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도올은 그 뜻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도올은 이순(耳順)이 전자와 같은 달자(達者)의 모습이 아니고, 순전히 인간의 감성과 관련된 “용서”의 함의가 더 강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즉, 감정적으로 남이 나에게 어떠한 역한 소리를 해도 그것을 역한 소리로 듣지 않을 수 있는 감성의 순화라는 것이다. 기분 나쁜 소리를 들어도 감성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나이라는 뜻이다.
이순(耳順)의 나이가 되면 모든 기능이 노쇠하기 마련이다. 귀는 물론 눈도 어두워진다. 멀리 있는 것은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것은 잘 보이지 않게 된다. 이 것도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까이 있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멀리 보고 멀리 생각하라는 신의 섭리인지도 모른다.
어느 날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보던 나루가 옆에 앉은 나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더니
“당신 얼굴에 주름살이 언제 이렇게 많이 생견?”
생뚱맞은 질문이다. 내 얼굴에 있는 주름살이야 줄잡아 십여 년 전서부터 자리를 잡고 살고 있건만 그걸 이제야 알아보다니. 그럼 이제까지 나를 주름살 없는 젊은이로 보아 왔다는 말인가?
지난 3월에 건강검진 받을 때 보니 나루의 시력을 0.3정도이다. 안경을 맞춰서 쓰게 했으나 귀찮다고 잘 쓰지 않는다. 전화번호를 찾거나 은행에 가서 일 볼 때 말고는 그렇게 불편을 느끼지 않는 눈치다. 그렇고 보니 나루는 신이 준 이순(耳順)의 섭리를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남편의 얼굴에 깊게 페인 주름살을 보지 않고 아직도 젊은이로 볼 수 있으니 얼마나 행복한가?
이순(耳順)의 나이에 찾아오는 노쇠현상을 좋게 받아들이자. 너무 많은 소소한 것들을 들으려 하지 말고 기분 나쁜 소리를 듣더라도 못 들을 척 털어버리고, 너무 자세히 보아 남의 흠을 잡지 말고 못 본 척 보아 넘기고, 나에게 상처로 남는 원망이나 원한마저 다 잊어버리자. 그리고 허한 마음으로 허허 웃는 큰 인격체가 되자.
▲ 이산가족이 될 뻔한 C오동
어제 밤까지 쏟아지던 비는 아침이 되자 말끔히 개었다. 비로 씻긴 대지가 눈부신 신록으로 덮였다. 지난주에 많은 회원이 빠져 실망했었는데 오늘은 열 다섯 명이 참석했다. 반가운 마음에 그냥 악수만하고 오름으로 향한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은 여기서부터 발생했다.
작년에 올랐던 체오름 굼부리쪽 농원 입구에 도착해 보니 앞장을 포함한 차 두 대가 오지를 않는다. 앞서 출발하거나 중간에 끼인 것으로 판단되는데 이상하다. 앞장에게 전화를 해보니 통화도 잘 되지 않는 지역인 모양이다. 대화 중 자꾸 전화가 끊기고 잘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 부근에 왔다가 다른 길로 잘못 접어들었나 하고 기다렸다. 10여분 기다려도 소식이 없자 먼저 온 친구들에게는 검도 수련을 하도록 하고 안돌 오름 입구에 가서 전화를 했다. 거기서는 전화가 통했다. 한참을 기다려 되돌아 나온 친구들을 보니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이제 알고 보니 앞장은 작년 등반에 결석해서 굼부리쪽 길은 생각하지 않고 재작년에 올랐던 오름 등 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쪽에서 일행을 찾아 헤맸던 것이다. 일행의 차들 사이에 다른 차들이 끼어드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결과적으로 체오름을 사이에 두고 앞과 뒤에서 서로를 찾은 꼴이 되고 말았다.
거의 한 시간 동안 일행을 찾아 헤맨 앞장 일행에게 사과를 드린다. 이는 모두 카페지기의 불찰이다. 다음 집결지를 확실히 하지 않고 그저 잘 찾아오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이 부른 결과다. 이를 계기로 다음부터는 출발 전에 사전 모임을 꼭 갖도록 하겠다.
▲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살고 싶은 곳, 체오름에서
고사리 때문에 한달 여 동안 못했던 검도수련을 했다. 굳은 몸이 사범의 지시에 따라 수련을 하다보니 차츰 몸은 풀리는 것 같으나 예전의 힘찬 모습은 찾기가 쉽지 않다. 몇 주 더해야 제 실력들이 나올까 보다. 막걸리 한잔으로 이산가족의 한을 풀고 잘 정리된 농원의 오솔길을 따라 오름으로 향했다. 군데군데 참꽃나무와 산철쭉이 피어 있으나 작년의 그 화사한 모습은 볼 수 없었다. 아마 시기적으로 좀 늦어서 그런가 보다. 새순으로 단장한 봄 나무들의 상큼한 모습이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기슭에 도착한 우리는 너른 풀밭에 둘러앉았다. 거대한 성체를 방불케 하는 체오름의 능선이 수직으로 서있다. 남동쪽 벼랑에 토사가 흘러내려 붉게 변한 것은 작년보다 더 넓어보였다. 굼부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서쪽 능선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청미래덩굴이 유난히 많아 지금 한창 새 덩굴손을 뻗고 있었다. 햇빛이 따갑고 약간 더웠으나 그리 힘들지 않고 능선 위로 오를 수 있었다. 굼부리 안쪽으로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고 바깥쪽으로도 경사가 있는 둥그스름한 원형을 이룬다.
능선을 걸으며 보는 경치가 그만이다. 안쪽으로는 구슬잣밤나무 등 상록수가 울창하고 멀리 크고 작은 오름들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한 폭의 그림이다. 한라산 쪽으로도 광활한 곶자왈 지역과 오름들이 안쪽에 못지않다. 여기서 찍은 부부사진 등이 지금까지 찍은 사진들 중 돋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치에 취하고 날씨에 취하여 정신없이 걷다보니 동쪽 기슭까지 내려왔다. 철조망을 다시 건너 굼부리 안쪽으로 향했다. 작년에 보아 두었던 명당자리를 찾기 위함이다.
굼부리 안쪽에서 죽순을 캐러 온 농장 주인을 만났다. 60대 후반이나 70대 초반의 온화한 노인이었다. 자신은 송당에 살고 있다고 하며 입구를 포함하여 굼부리 전체가 자기 소유라고 한다. 원래는 호텔 을 지으려고 정원을 조성했으나 자금이 없어 포기했다고 한다. 부럽다는 말에 자기는 이제 지는 해라며 여기서 돈 한 푼 나지 않는다고 자조 섞인 어조로 말을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노인이 참 부러웠다. 이런 곳은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임과 함께 한 백년 살고 싶은 곳이다.
명당자리를 찾아 자리를 깔았다. 벌써 시간은 오후 1시 반이다. 가지고 온 음식도 금방 동이 난다. 복분자주에 고소리술까지 좋은 경관에 취흥은 절로 난다.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선달의 유머 강의도 재미있고 3,6,9게임도 걸림이 없다. 오늘은 50을 넘어가는 기록을 세웠다.
야외무대처럼 생긴 장소여서 그런지 오름song도 다른 장소에서와는 달리 우렁차게 잘 나온다. 이제 스스럼없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놀다보니 어느덧 시간은 5시가 가깝고 명송가든에서 은하수가 내는 맛있는 설렁탕을 한 그릇씩 먹고 헤어졌다. 2007. 5. 10.
첫댓글 산행보고가 늦어졌네요. 본인이 게으른 소치입니다. 뒷부분도 간단히 줄였습니다. 이점 사과드립니다.
공자님 말씀 들을때는 옳거니하면서도 수양부족으로 실천이 안되는군요.받자한 성품의햇살 같으면 감성순화가 잘이루어 질텐데,허허 웃으면서 경건한마음 만으로 살 때 인데,희수 쯤이면되려나!! 산행보고잘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노인이 되면서 老貪, 壅固執도 늘어나는 것이 일종의 본능이 아닌가도 생각되는데 이런 걸 순화하기 위해 성인들께서 무던히 노력하지 않았나 싶네. 사실 이순이니 종심이니 좋은 말이기는 하나 나이에 따라 어디 그렇게 되는가? 가는 날까지 수양공부 게을리 말아야지. 正心修己 !!!
이번에 조그만 '랑데부의 차질'로 조금씩 신경쓰임이 있었는데, 역시 산행은 산행인 것, 카페지기의 의향에 전적으로 공감동조합니다. 햇살의 耳順론 말미의 지론은 감동을 줍니다. 그렇게 살려는 데에 일깨움 주는 카페에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