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137) -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11년 12월 31일, 다사다난한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어느 핸들 평탄하리만 금년 한 해 참으로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음을 감사한다.
새해 벽두, 역사의 물결이 큰 변화의 소용들이로 빠져드는 북아프리카 여행에 올랐다. 리비아를 거쳐 튀니지에 들어가자 재스민혁명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 여파로 인접국인 알제리 여행이 좌절되었다. 이어서 들른 모로코에서 이집트 시위가 크게 번지는 것을 지켜보며 역사의 현장에 서 있음을 실감하였다. 그때까지도 철옹성처럼 견고한 리비아의 카다피 요새가 파괴되고 그가 개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라고는 예측하지 못하였다.
3월, 유례없는 대지진과 쓰나미가 일본을 강타하고 그 여파로 4월에 서울에서 도쿄까지 걸으려던 한일우정걷기행사가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행로로 바뀌었다. 그런 가운데 4월 1일부터 20일 까지 서울 - 부산, 520여km를 아내와 함께 완주할 수 있어서 보람 있었다.(작년 4웧 10일 - 24일에 서울 - 고창 간 320km를 걸은 회상의 피란길행사에 이어 두 번째 국토대장정이다.)
지난 8월, 무상급식문제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퇴하였을 때 다음과 같이 적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확대여부를 묻는 주민투표에 시장 직을 걸었다가 투표율이 낮아 개표가 무산된 것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일을 지켜보며 공직자를 비롯한 지도자들의 책임과 의무의 막중함을 되새기게 된다. 그가 서울시 본연의 임무가 아닌 서울시교육청의 무상급식문제에 사활을 건 것 자체가 책임과 의무의 본질을 제대로 짚지 못한 사려의 부족함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더구나 그의 사퇴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정치권과 사회에 더 큰 혼란과 갈등을 야기하는 새로운 불씨가 될 수 있음이 안타깝다.'
그 후 안철수의 등장과 박근혜 대세론의 쇠퇴, 시민운동가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동반쇠락 등 정치사회적 대변혁의 깃발이 온 나라를 강타하고 한해의 막바지에는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는 등 돌발변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보다 더 큰 혼란과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 온 저력을 지녔으므로 나는 앞날을 낙관적으로 전망하며 희망의 끈을 붙잡는다.
10월에서 11월 사이에 구순의 어머니께서 노환으로 네 차례에 걸쳐 입원과 퇴원을 되풀이하는 사이에 매일 여러 차례 병원을 드나들며 자녀 된 도리를 깨칠 수 있음도 큰 은총의 시간이었다. 덕분에 파란만장한 어머님의 삶을 되돌아보며 가족들이 기록한 어머님 관련문집을 정리하여 책자로 만들 수 있어 감사하다.
30여 년 전에 결혼주례를 한 교회 후배한테서 다음과 같은 메일이 왔다.
'안녕하세요? 평안하시지요?
보내주신 글들을 읽고 있으면 교과서를 대하는 느낌을 언제나 받습니다.
3일 후면 2012년은 과거의 시간이 됩니다. 잘한 일도 크게 잘못한 것도 생각이 나지를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살았나봅니다. 변화가 있었다면 시부모가 되었다는 게 큰 변화이겠네요. 아주 착하고 예쁜 며느리가 생겨서 좋습니다.
올 한해를 평안히 보낼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가난한 자들이 있다할지라도 먹을 것이 풍성한 우리나라는 복 받은 나라임에 틀림없습니다. 복 받은 나라에 태어난 것도 감사드립니다. 일할 수 있는 육신이 있다는 것도 감사드립니다. 감사가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므로 한해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 평안하시기를 기도드리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지난 일요일에 우리 교회는 금년 한 해를 감사하는 주일로 보냈다. 이를 통하여 양로원 어른들과 후원자들로 모이는 작은 교회에 하나님은 큰 축복으로 한 해를 잘 마무리하도록 돌봐주시고 인도하셨음을 감사하였다. 우리 모두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는 삶을 누렸으면.
추신,
12월 28일부터 30일까지 2박3일간 집안의 식구들이 고향에서 송년의 모임을 가졌다. 그 내용을 적은 글을 싣는다.
'뜻 깊게 보낸 가족들의 송년모임
연말에 우리 가족(할아버지의 후손)들은 고향의 산사에서 이틀간 머물며 고즈넉한 정취를 맛보고 집안의 화목과 우애를 다지는 넉넉한 시간을 가졌다. 우리 가족은 3년 째 연말의 송년행사를 고창 선운사에서 갖고 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수십 센티미터의 폭설이 내린 산사의 설경이 아름다웠고 금년에는 며칠째 계속되던 혹한이 물러가고 따뜻한 남녘바람이 세파에 시달린 마음을 푸근하게 녹여주어서 좋았다.
선운사에 머무는 첫날에는 인근의 국순당 고창명주(주) 임원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중학교 친구가 다른 두 동창까지 불러서 명작 복분자술과 이곳명산 풍천장어로 열 명이 넘는 대가족에게 저녁을 풍성하게 대접해주어 고마웠다. 숙소인 우체국수련원에 돌아와 흥이 있는 가족들은 노래방에 들러 숨은 노래실력을 발휘하기도.
이튿날, 숙소에서 아침을 지어먹고 선운사 경내를 한 시간 여 산책하였다. 눈에 쌓인 산사의 대웅전에서 두드리는 목탁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고 간간히 찾는 길손들의 조용한 발걸음이 적막을 깨뜨린다. 사진을 찍고 눈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순하게 생긴 하얀 개가 꼬리를 흔들며 따라붙는다. 작년에 인근 참당암에 들렀을 때 반기며 마치 배웅이라도 하듯 우리 알을 달리던 그 개일까?
숙소에 돌아오니 지역농협의 조합장으로 일하는 친지가 아이스박스에 잘 보관된 오디열매를 두 박스나 보내왔다. 좋은 품질의 토산품이니 고향의 정을 맛보라는 따뜻한 마음에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잠시 후 숙소를 나와 고향의 선영으로 향하였다. 모임 때마다 이곳에 들러 찬송을 부르고 먼저 가신 가족들의 묘역을 돌아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화사한 색깔의 꽃병이 놓인 묘역에 묵념하며 인품이 훌륭하고 효자이셨던 할아버지의 덕망을 이어받는 후손이기를 다짐한다.
성묘를 마치고 식사하러 가는 길에 모교인 상하초등학교를 찾았다. 모처럼 들른 교정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근무 중인 선생님이 웬 손님인가 살핀다. 이 학교출신이라 모교를 둘러보고 싶어서 왔노라니 교장선생도 계신다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한다. 인상 좋은 교장선생이 친절하게 맞아주며 따뜻한 차를 대접하고 학교현황을 상세하게 설명하는 고향인심이 푸근하다.(점심식사 때 반주로 드시라며 큰 병에 담긴 복분자술도 선물로 주어 감사하다.)
1951년에 졸업한 후 60년 만인 누님을 비롯하여 여덟 명이나 되는 이 학교 출신들 모두 오래만에 모교를 찾은 감회가 별다르다. 사촌 동생은 50여 년 전에 이 학교 선생님으로 재직할 때 자기 집에서 하숙을 했던 고 000선생님이 군내의 다른 초등학교로 전근 가서 학생들을 인솔하여 산에 올랐다가 흘러내리는 큰 돌덩어리를 몸으로 막아 학생들의 피해를 막고 순직한 지난날을 회상하기도.(그 선생님의 이야기는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상하초등학교는 우리들이 다니던 때에는 한 학년에 여러 클래스가 있을 만큼 학생들이 많았으나 지금은 전교생이 모두 108명, 그런데도 고창군에서는 네 번째로 학생이 많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원자력발전소 측의 지원으로 통학버스가 3대나 있고 며칠씩 다른 곳을 견학하며 체험학습도 실시하는 등 시골학교지만 교육지원이 잘 이루어진다니 좋은 일이다.
점심은 고향 바닷가 해수욕장에 있는 백합전문 식당에서 들기로 하였다. 어릴 적 또래들과 자주 찾던 구시포 해수욕장은 큰 배들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로 변신하는 공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방조제 공사가 한 참인 제방 끝까지 들어가 바로 앞에 있는 가막섬을 돌아보니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1956년이던가, 까마득하게 보이는 가막섬을 가보고 싶어 물이 빠진 어느 날 또래들과 섬까지 가보자며 바다에 뛰어들었다. 섬 가까이 이르렀는데 썰물이 밀물로 바뀌어 물이 허리까지 차올랐다. 급히 돌아오다가 목까지 잠기는 물살에 허우적대는 동생을 품에 안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추억이 서린 바다다. 어쩌면 대형사고로 생명을 잃었을지도 모를 위험에서 벗어나 한 평생을 잘 보내고 노년의 초입에 들어선 60대 후반에 이곳을 돌아보는 감회가 새롭다.
백합국수로 점심을 들고 인접한 영광군 홍농면의 원자력발전소지역을 거쳐 영광굴비의 주산지인 법성포항을 지나 한국의 아름다운 길로 각광을 받는 백수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한 후 근년에 문을 연 해수목욕탕에 몸을 담갔다. 크고 화려한 욕탕에서 육신은 물론 영혼의 때까지 훌훌 털어버리는 마음으로 몸을 씻고 나오니 기분이 상쾌하다.
숙소에 돌아오니 해가 지고 어둑어둑하다. 고향 부근의 바닷가는 전국적으로 낙조의 경치가 아름다운 곳, 오늘은 서쪽하늘이 구름에 가려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하지 못함이 아쉽다. 저녁과 아침의 주된 메뉴는 돼지고기 찌개와 떡국, 복분자주를 곁들여 가족들이 한데 어울린 식탁이 푸짐하다.
사흘째, 아침 일찍 일어나 선운사 경내의 또 다른 산책코스를 돌아보며 맑은 공기를 마시니 영하 5도의 찬바람에도 기운이 난다. 산중에 있는 암자(석상암)에서는 검은 개가 낯선 손님을 경계하며 컹컹 짖어대고 암자의 스님은 문을 열고 웬 소란인가 살핀다. 스님에게 정중하게 목례를 건네고 암자를 뒤로하였다.
TV의 아침마당에서는 부부와 가족의 중요성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화목하게 지내는 집안의 전통을 되새기며 성경 한 구절을 찾아 읽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해 아래서 얻은 분복이니라.(전도서 9장 9절)
오전 10시 반에 이틀간 머문 숙소에서 나와 고창읍에 있는 모양성으로 향하였다. 15세기 중반에 외적을 막기 위해 쌓은 모양성은 지금도 원형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서 고향을 찾을 때 자주 들르는 곳이다. 성벽 길은 눈이 녹지 않은 곳도 있어서 약간 위험하지만 조심하며 경내를 한 바퀴 돌고나니 심신이 가뿐하다. 오래된 소나무와 굵고 긴 맹종죽 대나무 숲이 운치가 있고.
모양성 입구에는 판소리의 명창 신재효를 기리는 동리국악당과 신재효 생가, 판소리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어서 격조 높은 문화의 향기를 풍겨준다. 내 고장은 아름다워라.
고창읍에 사시는 큰 형님 내외는 어느새 팔순 중반에 접어들었다. 노령에 찬바람 쐬며 움직이기 힘들다고 선운사모임에는 안 오셨으나 고창에서의 점심식사에 함께 하셨다.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동태매운탕으로 점심을 들고 이틀간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가족들은 내년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볼 것을 기약하며 서울과 광주로 나뉘어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남다른 우애와 화목을 다지는 우리 가족 모두 평안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