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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 삼각산 도선사(道詵寺)를 찾아서 ①
-도선사광장에서 청담대종사 사리탑전까지-
불교의 4대명절 중 하나인 성도절이 일요일에 걸렸기에 치악산 상원사로 갈까 했는데 전날 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갈 수 없어서 우이동 도선사쪽으로 가서 백운대에 올랐 다가 삼각산 노적사로 내려가 거기서 성도절을 보내고자 속으로 생각하고 비니초님과 동네에서 우이동행 153번 시내버스를 타고 우이동으로 향했습니다. 날씨는 미세먼지 로 맑지 못하여 시계가 흐린 것이 아쉽지만 한번 먹은 마음을 뒤로 물릴 수는 없는 일 이었습니다. 도선사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9시 18분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산행을 하지 않는 터라 앞으로 산행을 계속해 보고자 하는 마음에 산행을 할 수 있는 몸이 되는가 시험삼는 일정이기도 했습니다.
버스종점 한 옆엔 도선사차량이 신도를 실어나르는 차가 있는데 마침 성도절이어서 많 은 신도들이 도선사를 찾고 있었습니다. 도선사 주차장까지 손쉽게 가는 방법이지만 등산객은 탑승불가여서 아예 걸어 올라가자 하여 올라가노라니 예전에 비해 많은 변화 가 생겼더군요. 포장길을 따라 올라갔는데 새로이 조성된 둘레길이 있어 그동안 이쪽 방면으로 발길이 한동안 없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버스종점에서 도선사 주차장까지는 약 2.3km에 달하는데 쉬엄쉬엄 가다 보니 약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오전 10시 13분에 도착했습니다.
오전 10시 13분에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우선 미소석가부처님께 합장배례를 올리고 주변을 바라보니 주변이 말끔하게 정비되어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은 등산객을 상대로 하는 가게가 즐비했는데 다 철거시키고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엔 유명 사찰 일주문 밖은 시장의 먹자 골목처럼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모두 정화작업을 통해 말끔하게 단 장된 곳이 많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곳만 해도 수없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수덕사, 마 곡사, 진관사... 등등 앞이 그랬는데 지금은 모두 언제 그랬냐는 산뜻해서 보기 좋습니 다.
도선다원이 생겼네요.
도선사 부속건물로 쓰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백운대 가는 길은 나중에... ^^
걸음은 절로 도선사로 향하고... ^^
이번의 산행은 주목적지가 노적사여서 도선사를 그냥 지나치려 했는데, 도선사를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닌 것 같고, 시간도 법요를 시작할 때여서 법석에는 동참하지 못하더라 도 오랜만에 도선사를 상세히 담아보고자 하여 발걸음을 도선사로 돌렸습니다.
천왕문(天王門)
2.3년만에 갔더니 천왕문 옆에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오랜만에 가는 것인지 모릅니다.
이 천왕문은 일주문을 겸하고 있는 문입니다. 이처럼 큰 도선사가 일주문이 없는 것이 특이하지만 도선사의 경계는 미소석가불 한참 아래부터 아닌가 합니다. 종점에서 걸어 오르다 보면 길 좌우에 "천지동근(天地同根) 만물일체(萬物一體)"라는 석주(石柱)가 보이 는데 이 글은 청담 큰스님의 친필이라 합니다.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늘 여기 를 지나 때면 마음에 새겨보는 글입니다. 하늘과 땅은 한뿌리요, 만물은 한몸이란 뜻이 니 자타불이(自他不二)요 천지는 나와 더불어 한뿌리임을 알게 해줍니다. 도선사의 경 계가 만약 여기부터라면 여기에 일주문이 서야 마땅하겠지요.
일주문에는 대개 ○○산 ○○사의 편액이 걸리게 마련인데 도선사는 천왕문에 걸려 있 으니 이 문이 일주문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는 셈입니다.
삼각산 도선사(三角山 道詵寺) 편액
이 천왕문은 1987년 11월 15일에 완공한 불사로서 봉황문(鳳凰門)이라고도 하며 본래 맑고 깨끗해야할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四天王)을 모신 문입니다.
동쪽의 지국천왕(持國天王), 서쪽의 광목천왕(廣目天王), 남쪽의 증장천왕(增長天王), 북쪽의 다문천왕(多聞天王)께서 거룩한 삼보(三寶)를 지키는 문입니다. 나쁜 것을 깨버 리고 올바른 일을 펼치려는 마음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그 뜻이 있습니다.
북방 다문천왕(多聞天王)과 동방 지국천왕(持國天王)
남방 증장천왕(增長天王)과 서방 광목천왕(廣目天王)
안쪽에 걸린 천왕문(天王門) 편액
삼각산 도선사(道詵寺)는 서울 강북구 우이동 264번지(삼양로 173길 504)에 자리한 대 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 조계사 말사입니다.
도선사는 신라 경문왕(景文王) 2년(862)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합니 다.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명산승지를 두루 답사하다가 삼각산의 빼어난 산세를 보고 이곳이 1천년 후 말세 불법이 다시 일어날 곳임을 예견하고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곳의 큰 바위를 신통력으로 가르고 20여 척에 달하는 관음보살상을 주장자로 새겼다 고 전합니다. 그런데 창건이후 조선 전기까지의 중건ㆍ중수내용에 대해서도 전하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들어가는 길 오른쪽 비탈에 세워진 포대화상과 부도
《전통사찰총서》에 따르면, 조선 후기에 접어들어 북한산에 산성을 쌓을 때 승병들이 방번(防番)을 섰고, 조선 철종 14년(1863)에 김좌근(金佐根)의 시주로 절을 고쳐 지었으 며 칠성각을 새로 지었습니다. 그리고 고종 17년(1880)에 칠성탱화와 신중탱화를 새로 그려 절에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고종 24년(1887)에 동호 임준(東湖任準) 스님이 마애관음보살상 앞에 오층탑을 봉안하 였는데, 그 안에 석가모니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1903년에는 혜명 관수(慧明寬守) 스님이 고종의 명을 받아 산신각을 새로 짓고, 법당 상단불화ㆍ팔상도 ㆍ신중탱화ㆍ극락구품도ㆍ현왕탱화ㆍ감로탱화ㆍ지장탱화ㆍ산신탱화 등을 봉안하였으 며, 불상을 개금하였습니다. 이듬해인 1904년에는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 받고, 법당과 큰방을 낙성하였습니다.
청담 대종사의 말씀 한마디 읽어 보세요.
그러나 1912년 6월에는 큰 홍수를 만나 서별당 및 승료가 떠내려가고 주지를 비롯한 7인이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습니다. 1926년에는 큰방의 후불탱화를 조성하여 봉안하 였습니다. 1961년에 도선사의 중흥조인 청담 순호(靑潭淳浩) 스님이 주지로 취임하여 당시 박정희 대통령 및 육영수여사 등의 시주로 지하 1층, 지상 3층의 호국참회원을 건립하고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습니다.
1971년 청담 스님이 입적하자 그의 문도 혜명ㆍ원명ㆍ혜성ㆍ현성ㆍ동광 등의 스님이 차례로 유지를 받들어 대작불사를 일으켜 청담 스님의 사리탑ㆍ탑비명ㆍ석상ㆍ미소석 가불ㆍ청동지장보살상 등을 조성하였습니다. 1977년에는 종합포교센터인 호국참회원 을 증축 완공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다가
도선사는 포교, 교육, 복지분야에 광범위한 부설기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선 포교분야에는 도선사 홍은동 포교당, 도선사봉천동 포교당, 도선사 경북 성주 포교당 대흥사, 도선사 경북 안동 포교당 세심사, 도선사 인천 포교당 영산정사, 도선사 미국 하와이포교당 무량사 등이 있고,
교육분야로는 재단법인 청담장학문화재단, 학교법인 청담중학교, 청담정보통신고등학교, 교양대학 도선불교 실달학원 등이 있으며,
진입로가 멋있습니다.
사회복지분야로는 혜명복지법인사무국, 혜명양로원, 청담종합복지관, 혜명보육원, 금천지역 자활센터, 청담광명의 집, 청담노인센터(주,야), 청담데이케어센터, 장애인주간보호센터 청학원, 장애인그룹홈 지장의 집, 장애인그룹홈 관음의 집, 혜명지역아동복지센터, 청담어린이집, 보람어린이집, 성북어린이집, 파랑새어린이집, 자양4동 어린이집, 아리랑어린이집, 월계1동 어린이집, 도봉 도선어린이집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오른쪽 길 옆에 세워져 있는 지장보살상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
지장보살에 대한 안내글
「이 청동 지장보살상은 도선사 자매 사찰인 일본의 고야산(高野山) 진언종(眞言宗) 안양 원(安養院)에서 1983년 11월 15일 청담대종사(靑潭大宗師) 12주기 열반재(涅槃齋) 때 봉 정되어 모셔져 있으며 지지(持地)ㆍ묘당(妙幢)이라고도 합니다.
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ㆍ사람ㆍ하늘의 6도(六道) 윤회에 끝없이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 해 주고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인도하여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는 보살입니다.
지장보살은 중생제도를 위해 영원히 보살로 남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지옥문전에서 대비 (大悲)의 눈물로서 교화한다는 보살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입멸(入滅)하신 뒤로부터 미륵부처님이 출현하실 때까지 뭇 중생을 교화하는 분으로 도리천에서 석가여래의 부촉에 따라 매일 아침 선정(禪定)에 들어 중생 의 근기(根機)를 관찰한다고 하며 그 형상은 머리를 깎은 민머리 아니면 특수한 가운형 두건을 쓰고 있습니다. 가사(袈裟)를 입고 연꽃을 들고 있으며 또는 바른손에 보배 구슬 [寶珠]을 들기도 합니다. 혹은 석장(錫杖)을 짚은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동자(童子)를 안 은 지장보살도 있습니다. 」
여러 동자들의 모습 1
여러 동자들의 모습 2
여러 동자들의 모습 3
계단 위에 범종각이 있고 우측으로는 청담대종사 사리탑전이 있습니다.
청담대종사 사리탑전으로 오르는 108계단
먼저 법당으로 가려다가 법당은 성도재일 법요식으로 자리가 혼잡하니 우선 이곳부터 찾아보자고 해서 청담대종사사리탑전으로 향했습니다.
계단 우측은 모두 5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단은 소대(燒臺)가 있고, 제2단은 도선 사사적비, 제3단은 청담대종사석상, 제4단은 청담대종사탑비, 맨 위 제5단은 청담대종 사사리탑전입니다.
제1단에 마련된 소대(燒臺)
이곳은 천도재 때, 영가를 전송(錢送)하고 봉송(奉送)하면서 지전(紙錢)이나 지의(紙衣) 등 의례에 사용한 여러 가지 장엄구를 소각하는 대(臺)입입니다.
제2단의 삼각산 도선사사적비(三角山 道詵寺事蹟碑)
제3단의 청담대종사 석상(靑潭大宗師 石像)
도선사의 중흥조 청담대종사(靑潭大宗師)
「청담대종사(靑潭大宗師)는 1902년 10월 20일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서 1971년 11월 15일에 도선사에서 입적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 총무원장, 중앙종회의장, 장로 원장 등을 두루 역임한 한국불교의 커다란 스승이다. 법명은 순호(淳浩)이며 호는 청담 (靑潭)이고, 속명은 이찬호(李讚浩)로 본관은 성산이다.
경남 진주에서 아버지 이화식(李化植)과 어머니 제주 고(高)씨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 부터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배웠고, 17세가 되어서야 진주제일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19년 3ㆍ1 독립운동에 앞장섰다가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진주고등농 림학교 재학 중 여름방학 때 진주 비봉산 호국사(護國寺)에 놀러 갔다가 박포명(朴抱明) 스님을 만나 불교와 인연을 맺었다. 그 뒤 해인사, 백양사 등을 돌아다니며 출가하려 하 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진주고등농림학교를 졸업한 후 25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불법을 배우고 이듬해 귀국하여 1927년 26세의 나이에 마침내 고성의 옥천사(玉泉寺)에서 규영(圭榮) 스님에게 출가하였 다. 박한영(朴漢永) 스님을 은사로 득도ㆍ수계하고 청담(靑潭)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29세에 서울 개운사의 대원불교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이수한 뒤, 부패해 가는 승단을 바로잡기 위하여 불교를 개혁, 정화하려는 뜻을 세우고 50여 명의 승려들을 규합하여 개 운사에서 전국학인대회를 결성하였으나 일본의 방해에 의하여 무산되었다.」
청담대종사 석상(靑潭大宗師 石像)
「33세에 충암 예산의 정혜사(定慧寺)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를 한 이후 여러 해 동안 금강산 유점사, 오대산 상원사, 가야산 해인사 등 전국의 선원에서 참선ㆍ수도하 였고, 이때 계행도 철저히 닦아서 인욕보살이라는 별명을 듣기도 하였다.
1937년 8월에 운허 용하(耘虛龍夏) 스님 등과 선학원에서 유교법회(遺敎法會)를 10일 동안 열었다. 그러나 준비과정에서부터 당시 불교 교무원 관계자들과 31본산 주지들이 적극 반대하였고, 종로경찰서에도 여러 차례 불려가 법회를 중지하도록 회유ㆍ협박당 하기도 하였다. 이에 굴하지 않고 한영 정호(漢永鼎鎬), 만공 월면(滿空月面), 동산혜일 (東山慧日) 등 40여 스님들이 참석하여 성황을 이뤘다.
8ㆍ15 광복 이후에는 교단의 재건과 불법중흥의 신념을 가지고 고성 문수암(文殊庵)과 합천 해인사(海印寺) 등지에서 대중들을 교화하고 도제양성에도 전력하였다. 또한 합리 적인 종단운영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출가와 재가를 구분하고 그들이 하여야 할 5개조 행동지침을 발표하였다.」
청담대종사(靑潭大宗師)
「1953년 교정(敎正) 만암 종헌(曼庵宗憲)이 종명을 조계종으로 개명하고 교화승과 수 행승을 구별하여 점진적 정화를 시도하고자 하였을 때, 효봉 원명(曉峯元明)과 함께 선 학원에서 제1차 수좌대회를 열어 전면적인 대처승 정화를 주장하였다. 그해 가을 사찰 이 청정도량으로 정화될 때까지 목숨 바쳐 싸우겠다는 결의로 약 400여 명의 비구와 함께 단식하였다. 이어 1955년 조계종 초대 총무원장에 취임했고, 이후 조계종 중앙 종회 의장, 세계불교도대회 한국대표, 해인사 주지, 도선사 주지, 동국학원 이사장을 거쳐, 1966년 대한불교조계종 통합종단 제2대 종정, 전국신도회 총재, 조계종 장로원 장 등을 역임하였다.
1968년 도선사에 호국참회원(護國懺悔院)을 건립하였고, 다음 해에는 불교계의 앞날을 염려하여 종단의 탈퇴를 선언하였다. 1970년 총무원장에 재임하였고, 1971년 11월에 세수 70세, 법랍 46세로 도선사에서 입적하였다.
스님은 평생을 수행과 정법수호에 진력하면서 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나의 인생관》, 《마음》, 《현대의 위기와 불교》, 《신도수경》,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선입 문》,《반야심경강설》,《금강경대강좌》 등이 있다.」 -전통사찰 총서에서-
석상 난간석이 여러 군데 내려 앉은 모습이 보입니다.
지반을 철저히 다지고 공사를 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난간석이 내려 앉은 단면의 모습을 보니 난간석과 난간석의 이음을 홈을 파고 연결했어야 했는데 시멘트로 그냥 접합을 했으니... ㅉㅉㅉ _()_
제4단은 청담대종사사리탑비(靑潭大宗師舍利塔碑)입니다.
탑비의 정면 모습
전불심등부종수교조계종정청담조사비(傳佛心燈扶宗樹敎曹溪宗正靑潭祖師碑)
비명(碑銘)에 전불심등(傳佛心燈)이란 부처님의 심등(心燈)을 전한다는 말이니 부처님의 지혜의 법등(法燈)을 전한다는 말입니다. 부종수교(扶宗樹敎)란 종지(宗旨)를 떠받치고 가르침의 방편을 세운다는 말이니, 종지종풍을 드날리고 무수한 방편으로 중생을 제도 함을 말합니다. 전불심등 부종수교(傳佛心燈 扶宗樹敎)는 대개 종정이나 총림의 방장 또는 종단의 원로 스님들께 붙이는 용어입니다.
그러니 비명은 '부처님의 심등을 전하고 종지종풍을 떠받치고 가르침의 방편을 세우신 조계종 종정 청담조사의 비'란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비 옆에 청담대종사를 찬탄하는 노랫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청담 큰스님
이은상 작사 김동진 작곡
칠십년 한평생 고행과 참선 발심과 서원으로 오직 한마음 없음의 큰 진리를 깨달으시어 지혜와 법력을 갖추시었네.
청담 큰스님 정신의 기둥 가신 분 길이 여기 계시옵소서.
병들고 무딘 중생 건지시려고 막대 짚고 거리로 내려오시어 동서로 밤낮으로 가림이 없이 부처님 귀한 말씀 외치시었네.
열반의 백팔 범종 울려 퍼지고 금강경 독경소리 은은한 속에 육신은 가시어도 법신은 불멸 성불하신 그 모습 바라봅니다.
비문을 살피는 비니초님
사리탑비는 불기 2519년(1975)에 건립되었는데 훼손되어 불기 2552년(2008) 무자년 (戊子年)에 고쳐 지었음을 명기(銘記)하고 있습니다.
증명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宗正) 법전(法傳). 총무원장(總務院長) 지관(智冠), 산중질(山中秩)로는 전조실(前祖室) 정천(正天), 조실(祖室) 혜정(慧淨), 부조실(副祖室) 현성(玄惺), 회주(會主) 혜성(慧惺), 주지(主持) 혜자(慧慈)입니다.
사리탑비를 둘러보고 그 위에 조성된 청담 스님 사리탑전으로 향합니다. 2년 전에 염 화님과 미소님께서 청담대종사권역을 순례하시면서 여기에 아무런 안내문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시어 안내문 설치를 건의하셨다고 해서 혹 안내문이 있는가 살피었는데 역시나 이처럼 중요한 곳에 청담 스님에 대한 안내문은 없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수십억 건물도 뚝딱 짓는데 아직 종무행정이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청담 큰스님 사리탑전
오른쪽의 금강역사 밀적금강(密跡金剛) 왼쪽의 금강역사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과 밀적금강(密跡金剛)
나라연금강(那羅延金剛)은 입을 벌리고 '아' 소리를 내며 공격 자세를 취하고, 밀적금강 (密跡金剛)은 입을 다물고 '훔' 소리를 내며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아'는 범어의 첫 글자이고 '훔'은 끝 글자로, 나라연금강은 출발하며 진취적으로 나아가는 의미로 공격 자세를 취하고, 밀적금강은 소멸의 단계에서 거두어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는 것입니다. 또, 이 두 역사가 내는 소리는 합쳐서 우주 만물의 처음이자 마지막을 상징하는 진언 '옴'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나라연금강은 힘이 엄청나게 세서 코끼리의 백만 배나 된다고 합니다. 밀적금강은 금강 의 무기를 가지고 부처님을 수호하는 야차신으로항상 부처님에게 친근하여, 부처님의 비밀한 사적을 들으려는 본서(本誓)가 있으므로 밀적(密迹)이라 합니다.
중앙 상단엔 지장보살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청담대종사(靑潭大宗師) 사리탑(舍利塔)
청담대종사께서 1971년 11월 15일에 세수 70세, 법랍 45세로 도선사에서 입적하시어 다비를 행하자 사리 8과가 출현하여, 이곳 도선사와 고성 옥천사, 고성 문수암, 고창 선 운사 등에 사리탑 부도를 조성하여 봉안했습니다.
사방으로 똑같은 기법으로 여의주를 문 팔룡이 새겨져 있습니다.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 사리탑
이 사리탑은 높이 8.18m, 폭 4m, 무게 350t으로 조성되었는데, 탑의 양식이 독특하고 조각이 정교하여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땅밑 4m의 반석 위에 세워진 기초석과 기단 부에는 여덟 마리의 용이 파도에 떠 있는 모습으로 조각하였는데 이는 사리탑을 옹호하 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 위에는 호법신장이 새겨져 있는데 그 위에 지붕을 올리고 그 위에 부도탑을 올리는 양식으로 되어 있어 참으로 독특하구나 생각하였습니다. 하대석, 중대석을 세우고 상대석에는 앙련(仰蓮)을 세우고 그 위에 탑신석을 세웠는데, 탑신석에 는 불보살상이 새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그 위에 옥개석을 덮고, 상륜부를 장식한 모 습입니다.
나라연금강 옆 울타리에 앉은 까마귀
무엇을 바라보고 있으신가요? ㅎㅎㅎ
청담 큰스님에 대하여선 고등학교 때 『마음』이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바 있었는데 청담 큰스님의 석상과 사리탑을 예배하고 나니 감개가 무량하였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108계단을 내려와 법당쪽으로 향했습니다. (다음에 계속)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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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찰 앞이 깨끗하게 정화 되었내요. 날씨가 풀리면 함께가요....나무묘법연화경()()()
오랜만에 갔더니 정화가 되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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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찰 앞에 있는 먹자골목 같은 곳은 정비하는 추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도 전에도선사청년다니다가 그만두고 경기도로다니죠
도선사 청년회도 다녔군요. 먼 곳만 찾아다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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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화창한 봄날 미소님과 함께한 도선사의 기억이 백우님의 순례기로 새롭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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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회님께서 건의하신 안내판은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청담 큰스님이 어떤 분인가 하는 정도는
무소에서 그런 데에 관심을 두면 이곳을 찾는 분들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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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려도 되고 포교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감사합니다.
백우님의 도선사 순례기를보니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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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여기를 둘러보면서 염화님과 미소님께서 샅샅이 살피고 가셨구나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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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