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분야에 최선을 다하며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다"라고 말하는 화산면 명금리 출신 성하철 명성건축 회장. 2005년 6월 77억여원을 들여 평양에 라이온스안과병원을 건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전국적인 관광지로 이름난 해남 땅끝을 얘기하다보면 꼭 튀어나오는 이야기가 '잘못된 개발의 그림자'들이다. 그 중에서도 땅끝의 정점에 우뚝 서 있는 땅끝탑은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흉물스럽다는 말까지 나와 새삼 이 땅에서 무언가를 짓고 설계하는 사람들의 안목과 미의식의 중요함을 느끼게 한다. 이번 금요초대석에서 만난 건축설계 및 전문시공회사 명성건축의 성하철 회장(74)은 화산면 명금리 출신이다. 해남중·고등학교를 나와 전남대 건축학과에서 공부하고 서울시청 공무원으로 일하다 설계사무소를 차려 집과 건물들을 수 없이 지었다. 그 중에서도 2005년 6월에 준공된 평양낙랑구역 승리2동에 위치한 '평양라이온스안과병원'은 그가 재정위원장으로 고 김대중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있기 전부터 여섯차례나 평양을 직접 오가며 이뤄 낸 역작에 속한다. 지금은 건축현업에서는 손을 떼었지만 여전히 좋은 건축물을 보면 가슴이 뛰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싶다는 원로건축가와 고향이야기, 그리고 좋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연보
1937년 해남군 화산면 명금리출생 해남중(7회), 해남고(5회)졸업 전남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 졸업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졸업(공학석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고위정책과정 수료
1963. 11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건축과 1966. 5 서울특별시 성동구청 건축과 1968. 12 명성건축 설립 1970. 10 건축사 면허취득 1973. 1 건축시공 기술사 취득 1991~92 재경 해남중고등학교 동창회장 1997. 7 국제라이온스협회 354-A지구 총재 겸 복합지구 의장 역임 2001. 7 (주) 명성건축 대표이사 2000~05 평양라이온스안과병원 재정위원장 2010 현재 (주)명성건축 회장.
1950년대에 대학을 가셨는데 그 때는 지금처럼 건축에 문화적인 개념이 덜하던 때였죠? 그렇죠. 건축자재도, 건축기술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때였으니까. 그 때에 비하면 우리 건축기술이 엄청나게 발전을 했습니다. 외국에서 대형공사를 많이 수주해 오는 것도 그만큼 기술이 뒷받침 돼 주기 때문이죠. 못 짓는 건물이 없지 않습니까?
회장님은 우리나라 건축설계분야에서 1세대에 속한가요? 우리 이전에도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김수근과 김중업, 이분들이 한국현대 건축의 1세대로 평가되지요. 물론 해방 전 건축가들이 존재했으나, 완전한 근대건축가로 볼 수는 없고 해방 후에도 경제적 기반의 빈약에 따른 상공업의 부진, 사회적 혼란, 현대화에 대한 적응력 부족으로 새로운 건축 창조행위가 활발히 일어났다고 보기 힘듭니다. 1960년 이후 경제성장에 따른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외국에서 서구건축을 직접 배우고 귀국한 건축가들과 국내의 건축가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지요. 이들이 한국현대건축의 1세대를 형성하는데 파괴된 건축의 정체성과 도시질서를 서구 근대 건축의 개념으로 창조하려 했지요.
건물은 한번 지어지면 적어도 수십 년, 혹은 1백년이 넘게 존속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고 심사숙고가 따라야하는 종합예술 같은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건물의 용도와 건물이 놓이는 위치를 감안한 개념과 철학, 그리고 설계자의 디자인적 안목이 잘 살려진 건물이 예술품처럼 가치를 갖게 되지요.
회장님은 그런 건물을 지으셨습니까? 허허. 지금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제 집을 몇 번 설계해서 지었고 세정신문 사옥, 중소기업은행합숙소와 연수원, 이동통신전남지사와 전북지사 외에 전화국이나 우체국도 제 손에서 많이 설계, 시공까지 했지요. 편하기로만 하면 아파트만한 것이 없지만 재개발이라고 해서 높이만 짓는 아파트는 반대합니다. 오래된 아파트들도 재개발보다는 골조는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 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싶어요.
어리석은 질문 같은데 '진정 좋은 집'이란 어떤 걸까요? 혹시 일본인으로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의 건축을 본적이 있습니까?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종합 해양 리조트인 휘닉스 아일랜드 안에 바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인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와 글래스 하우스(Glass House)가 있어요.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을 가진 지니어스 로사이는 자연과 교감하고 예술과 공간이 조화로운 미술관이자 명상 공간이죠. 빛과 물, 노출 콘트리트가 주조를 이루는 안도 타다오 특유의 건축물 특징을 보이며 그곳에는 햇빛과 하늘, 바람과 돌과 물, 풀과 꽃 등 제주도의 자연이 그대로 투영되어있습니다. 전망에 초점을 두어 방해 받지 않고 수평선이나 주변의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일부러 미술관 겸 명상 공간은 지하에 지었다고 해요. 서울에서 위로만 우뚝우뚝 솟는 건물을 보다가 그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모습이 정말 충격이었죠.
그러고 보니 광주에 짓고 있는 아시아문화전당도 지하에 많은 부분이 들어가는 것으로 설계되었던데, 일종의 트랜드인가요? 20세기 3대 건축가의 한사람이며 미국 건축의 아버지라고 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누가 로마네스크 건축을 보고 경탄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건축을 여기로 가져와서 원래의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다 심어 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라고요. 라이트의 건축 사상은 '유기적'이라는 용어 속에 응축되어 있는데 그의 정의에 따르면 유기적 건축이란 시간, 장소, 사람에 어울리는 건축입니다. 즉, 건축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시대에 부합해야 하고, 그것이 세워지는 곳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일차적 소명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아리조나주에 있는 그의 사무소는 지하에 있고 지상에 나온 지붕엔 산처럼 풀을 심기도 했는데 더운 지역이니까 그게 가장 이상적인 집이었던 거죠.
고향 해남의 아름다운 해변을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경관구성이 어떠해야할지 알 것 같군요. 이제 건축 현업에서 물러나셨다니 고향에 오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건축과 연결된 일들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해남과는 라이온스클럽을 통한 무료개안시술봉사나 재경해남중고동창회, 두륜회모임 등 여전히 자주 찾게 됩니다. 개안시술봉사는 1999년 7월 제가 장안라이온스클럽 총재로 있을 때 시작해 그동안 녹내장, 백내장 환자 등 수백 명을 치료해왔죠. 또 1989년 '재경 해남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직을 맡아 재학중인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적립하는 등, 모교발전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에 안과병원을 짓게 된 배경은? 국제라이온스협회와 한국라이온스연합회의 지원으로 준공된 안과병원은 시력우선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라이온스의 정신과 한국라이온들의 민족애와 동포애가 접목되어 이뤄진 것입니다. 향후 남북한 통일을 위한 작은 밀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오랜 준비 끝에 2002년 11월 22일 첫 삽을 뜬 이래 2년7개월 만인 2005년 6월 18일 준공했습니다. 제가 건축 일을 해 봐서 재정위원장을 맡아 연면적 3,325㎡(1,005.89평)로 지하1층, 지상 3층으로 건립했죠. 12개 병실에 76병상을 갖추고 Slit Lamp(세극등 현미경)등 60여종의 최첨단 의료장비를 설치했습니다. 77억원 정도가 들었어요. 준공 후에도 병원운영을 위해 추가로 의료장비를 제공하고 안과 전문의 및 간호사 등 전문인력을 파견해 왔고 직접 평양까지 갈 수 없을 땐 연변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기도 했지요.
북한의 열악한 의료환경을 생각할 때 매우 적절한 지원을 하셨군요. 활발한 사회활동을 배경으로 정계진출을 꿈꾸는 출향인사들도 많은데 회장님도 그런 유혹을 받았습니까? 저는 건축설계사이자 시공기술자입니다. 전문직을 가진 이들은 그 직업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가장 빛이 나고 인생의 마무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할 수만 있다면 개인적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고향의 영재들을 돕고 싶고, 그게 더 행복하고 해남과 모교를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바쁘게 사셨으니 고향에 한번이라도 더 자주 오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친인척들이 살고 계시나요? 해남서초등학교 교장으로 계시던 倫자 鎬자 선친은 50대에 일찍 돌아가셨어요. 지역에서는 존경받는 분이셨는데 아쉽죠. 그러나 내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의 실명예방과 안구수술 등 평생 해오던 봉사활동을 고향에서 더 하고 싶습니다. 라이온스총재로 있을 당시 서울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가졌던 소년소녀가장돕기 걷기대회에 2,000여명 참석한 적도 있는데 무척 보람이 컸죠. 또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해 1억원을 모금해 한국시각장애자 복지회를 지원하기도 하고 베네수엘라 구호 국제봉사를 한 적도 있는데 저는 그런 일들이 좋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으면 두륜회회원들이나 뜻이 맞은 사람들과 함께 국제봉사도 하고 싶고, 탈북대학생들이나 중국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모금 등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건축에 문외한인 필자는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와 성하철 회장이 충격을 받았다는 안도 타다오가 지은 제주도의 지니어스 로사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안도가 특별한 것은 기하학 구성을 사용하면서도 인간을 위한 공간, 인간생활을 위한 장, 공공적 성격이 강한 공간을 창조하는 안도만의 작품성향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수평선이나 경관 등 제주도의 자연이 잘 투영된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내었다. 어떤 시인이 말하기를 '해남의 햇볕과 흙은 분명히 다른 곳과 다르다'고 말했다. 유난히 붉은 흙과 맑고 투명한 햇빛, 바람과 돌, 향기로운 풀과 꽃이 있는 해남의 자연에 어울리는 기념비적인 건축을 누군가는 지어야 할 것이다. 그가 성하철이기를 기대해본다.
그렇죠. 건축자재도, 건축기술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때였으니까. 그 때에 비하면 우리 건축기술이 엄청나게 발전을 했습니다. 외국에서 대형공사를 많이 수주해 오는 것도 그만큼 기술이 뒷받침 돼 주기 때문이죠. 못 짓는 건물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이전에도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유명한 김수근과 김중업, 이분들이 한국현대 건축의 1세대로 평가되지요. 물론 해방 전 건축가들이 존재했으나, 완전한 근대건축가로 볼 수는 없고 해방 후에도 경제적 기반의 빈약에 따른 상공업의 부진, 사회적 혼란, 현대화에 대한 적응력 부족으로 새로운 건축 창조행위가 활발히 일어났다고 보기 힘듭니다. 1960년 이후 경제성장에 따른 건설 붐이 일어나면서 외국에서 서구건축을 직접 배우고 귀국한 건축가들과 국내의 건축가들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되지요. 이들이 한국현대건축의 1세대를 형성하는데 파괴된 건축의 정체성과 도시질서를 서구 근대 건축의 개념으로 창조하려 했지요. 그렇습니다. 건물의 용도와 건물이 놓이는 위치를 감안한 개념과 철학, 그리고 설계자의 디자인적 안목이 잘 살려진 건물이 예술품처럼 가치를 갖게 되지요. 허허. 지금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만 제 집을 몇 번 설계해서 지었고 세정신문 사옥, 중소기업은행합숙소와 연수원, 이동통신전남지사와 전북지사 외에 전화국이나 우체국도 제 손에서 많이 설계, 시공까지 했지요. 편하기로만 하면 아파트만한 것이 없지만 재개발이라고 해서 높이만 짓는 아파트는 반대합니다. 오래된 아파트들도 재개발보다는 골조는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 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싶어요. 혹시 일본인으로 세계적인 건축가인 안도 타다오의 건축을 본적이 있습니까? 제주도 섭지코지에 있는 종합 해양 리조트인 휘닉스 아일랜드 안에 바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건축물인 지니어스 로사이(Genius Loci)와 글래스 하우스(Glass House)가 있어요. '이 땅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을 가진 지니어스 로사이는 자연과 교감하고 예술과 공간이 조화로운 미술관이자 명상 공간이죠. 빛과 물, 노출 콘트리트가 주조를 이루는 안도 타다오 특유의 건축물 특징을 보이며 그곳에는 햇빛과 하늘, 바람과 돌과 물, 풀과 꽃 등 제주도의 자연이 그대로 투영되어있습니다. 전망에 초점을 두어 방해 받지 않고 수평선이나 주변의 자연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일부러 미술관 겸 명상 공간은 지하에 지었다고 해요. 서울에서 위로만 우뚝우뚝 솟는 건물을 보다가 그 인간적이고 자연친화적인 모습이 정말 충격이었죠. 20세기 3대 건축가의 한사람이며 미국 건축의 아버지라고 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했어요. "누가 로마네스크 건축을 보고 경탄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건축을 여기로 가져와서 원래의 환경과는 전혀 다른 환경 속에다 심어 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치다"라고요. 라이트의 건축 사상은 '유기적'이라는 용어 속에 응축되어 있는데 그의 정의에 따르면 유기적 건축이란 시간, 장소, 사람에 어울리는 건축입니다. 즉, 건축은 그것이 만들어지는 시대에 부합해야 하고, 그것이 세워지는 곳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그 집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일차적 소명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아리조나주에 있는 그의 사무소는 지하에 있고 지상에 나온 지붕엔 산처럼 풀을 심기도 했는데 더운 지역이니까 그게 가장 이상적인 집이었던 거죠.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건축과 연결된 일들이 남아있을 뿐 아니라 해남과는 라이온스클럽을 통한 무료개안시술봉사나 재경해남중고동창회, 두륜회모임 등 여전히 자주 찾게 됩니다. 개안시술봉사는 1999년 7월 제가 장안라이온스클럽 총재로 있을 때 시작해 그동안 녹내장, 백내장 환자 등 수백 명을 치료해왔죠. 또 1989년 '재경 해남중·고등학교 총동창회장'직을 맡아 재학중인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적립하는 등, 모교발전에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국제라이온스협회와 한국라이온스연합회의 지원으로 준공된 안과병원은 시력우선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는 라이온스의 정신과 한국라이온들의 민족애와 동포애가 접목되어 이뤄진 것입니다. 향후 남북한 통일을 위한 작은 밀알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오랜 준비 끝에 2002년 11월 22일 첫 삽을 뜬 이래 2년7개월 만인 2005년 6월 18일 준공했습니다. 제가 건축 일을 해 봐서 재정위원장을 맡아 연면적 3,325㎡(1,005.89평)로 지하1층, 지상 3층으로 건립했죠. 12개 병실에 76병상을 갖추고 Slit Lamp(세극등 현미경)등 60여종의 최첨단 의료장비를 설치했습니다. 77억원 정도가 들었어요. 준공 후에도 병원운영을 위해 추가로 의료장비를 제공하고 안과 전문의 및 간호사 등 전문인력을 파견해 왔고 직접 평양까지 갈 수 없을 땐 연변에서 환자들을 진료하기도 했지요. 저는 건축설계사이자 시공기술자입니다. 전문직을 가진 이들은 그 직업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 가장 빛이 나고 인생의 마무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할 수만 있다면 개인적으로 장학재단을 만들어 고향의 영재들을 돕고 싶고, 그게 더 행복하고 해남과 모교를 사랑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해남서초등학교 교장으로 계시던 倫자 鎬자 선친은 50대에 일찍 돌아가셨어요. 지역에서는 존경받는 분이셨는데 아쉽죠. 그러나 내 부모님 같은 어르신들의 실명예방과 안구수술 등 평생 해오던 봉사활동을 고향에서 더 하고 싶습니다. 라이온스총재로 있을 당시 서울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가졌던 소년소녀가장돕기 걷기대회에 2,000여명 참석한 적도 있는데 무척 보람이 컸죠. 또 KBS 사랑의 리퀘스트에 출연해 1억원을 모금해 한국시각장애자 복지회를 지원하기도 하고 베네수엘라 구호 국제봉사를 한 적도 있는데 저는 그런 일들이 좋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으면 두륜회회원들이나 뜻이 맞은 사람들과 함께 국제봉사도 하고 싶고, 탈북대학생들이나 중국유학생들을 위한 장학금 모금 등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건축에 문외한인 필자는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와 성하철 회장이 충격을 받았다는 안도 타다오가 지은 제주도의 지니어스 로사이를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안도가 특별한 것은 기하학 구성을 사용하면서도 인간을 위한 공간, 인간생활을 위한 장, 공공적 성격이 강한 공간을 창조하는 안도만의 작품성향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수평선이나 경관 등 제주도의 자연이 잘 투영된 아름다운 건물을 지어내었다. 어떤 시인이 말하기를 '해남의 햇볕과 흙은 분명히 다른 곳과 다르다'고 말했다. 유난히 붉은 흙과 맑고 투명한 햇빛, 바람과 돌, 향기로운 풀과 꽃이 있는 해남의 자연에 어울리는 기념비적인 건축을 누군가는 지어야 할 것이다. 그가 성하철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