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출식념 증상정법을 듣고 받아 지니는 증상력에 의지하는 까닭에, 들숨 날숨을 대상경계로 하여 그에 마음을 묶어 두고, 철저히 이해하고, 잊지 않고 분명히 기억함이 아나파나념의 의미임을 바르게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을 그 의미를 사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2. 또 바르게 사유 관찰하기를, “들숨 날숨이 신체 안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들숨 날숨은 신체에 속한 것이므로, 들숨 날숨은 바람이며 바깥에도 바람이 있으므로, 안과 밖이 차이가 있다.” 이렇게 하는 것을 그 사상을 사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3. 또 바르게 사유 관찰하기를, “들숨에는 두 종류가 있고, 날숨에도 두 종류가 있다. 만약 바람이 코로부터 배꼽 부위에 도달하면 이를 들숨이라 한다. 만약 배꼽 부위로부터 시작하여 코에 도달하면 이를 날숨이라고 한다.”고 한다. 다시 바르게 알기를, “이러함은 긴 들숨 날숨이다. 이러함은 짧은 들숨 날숨이다. 이와 같은 숨은 전신에 두루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여러 숨들의 자상을 사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바르게 사유 관찰하기를, “들숨이 사라지고 나면 날숨이 일어난다. 날숨이 사라지고 나면 들숨이 일어난다. 들숨 날숨이 나타남은 명근에 속한다. 명근이 없으면 들숨 날숨도 없다. 동시에 식이 있는 신체에도 속하여 신체가 없으면 당연히 들숨 날숨이 없다. 이 들숨 날숨 자체와 그것이 의지하는 신체는 모두 무상한 것이요 영원한 것이 아니며 마침내 언젠가는 늙고 병들어 죽어 끝날 것이다.”고 한다. 이를 여러 숨들의 공상을 사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4. 또 바르게 사유 관찰하기를, “만약 이와 같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에 마음속으로 청정한 정념에 머물지 못한다면 갖가지 악한 사량 분별이 그 마음을 요란하게 하여 잘못되어 밝고 고요하게 머물 수가 없다. 만약 정념이 출현하지 않으면 마음속은 잘못되어 죄과의 흑품에 속하게 된다. 이는 번뇌가 있는 경계로서 앞서 자세히 말했던 바와 같다. 번뇌가 있으면 자기에게 상해를 입혀서 타오르는 고뇌가 있고 생로병사 같은 일들이 있게 된다.
만약 위의 흑품과 서로 위배된다면 잘못이 없는 백품에 속하게 된다. 바로 청정한 계정혜로서 번뇌가 없는 경계이다. 앞에서 자세히 말했듯이 번뇌가 없음이 곧 지혜요 지혜가 나고 자라고 그것이 넓고 크도록 증장시킨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을 그 품을 사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5. 또 바르게 사유 관찰하기를, “과거세 미래세 현재세에 들숨 날숨이 계속 출현할 때에 이 들숨 날숨은 심신에 속해있고 심신은 또 들숨 날숨에 속해있어서 서로 속하여 있다.”한다. 이것을 과거 현재 미래 삼시의 다름을 사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6. 또 바르게 사유 관찰하기를, “이 가운데는 들숨을 지닌 자도 날숨을 지닌 자도 없고 들숨 날숨은 심신에 속하면서 찰나 찰나에 생멸하므로, 진실하며 항상 머물며 파괴되지 않는 심신을 얻을 수 없다. 오직 인과 연으로부터 생겨난 색수상행식의 제행이 있을 뿐인데 여기에다 가상을 일으켜 언어적 개념을 세워서 들숨 날숨을 지닌 자가 있다며, 그것은 바로 심신이라거나 혹은 가명아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을 관대도리로써 그 도리를 사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바르게 사유 관찰하기를 “만약 이와 같은 입출식념에서 잘 닦고, 잘 익히며, 잘 많이 닦고 익히면, 산란하는 마음을 끊을 수 있다.”한다.
또 바르게 사유 관찰하기를, “이와 같은 도리에는 치교량이 있고 내증지가 있고 비탁법이 있다.”고 하며,
“성립법성과 난사법상과 안주법성이 있으니, 분별심으로 상대적으로 사고해서는 안 되며, 분별해서는 안 되며, 오직 믿고 이해해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을 작용도리 증성도리 법이도리로써 그 도리를 사유 관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상과 같이 하는 것을 아나파나념을 부지런히 닦는 사람이 여섯 가지 사항의 차별 대상경계를 사유 관찰하는 비파사나라고 한다.
- 염정 노인 원환선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