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 산행일/집결장소 : 2022년 3월 27일(일) / 3호선 안국역 2번출구 (10시 30분)
◈ 참석자 : 14명
◈ 산행코스 : 안국역-성균관대후문-와룡공원-와룡정-말바위옆-말바위안내소-숙정문-촛대바위-곡장밑-청운대쉼터-청운대안내소-1번출입문-창의문옆-윤동주시인의언덕-인왕산숲길-청운공원-가온다리-해맞이동산-불국사-세종마루-세종마을-뒤풀이장소-경복궁역-집
◈ 동반시 : "3월이여, 어서 오렴" /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김종화 산우 추천>
◈ 뒤풀이 : 돼지고기 등에 소·맥주 / "황금정" <종로구 체부동 211-1. 경복궁역2번출구 근처 (02) 720-6985>
전염력이 강하여 하루 30만명이 확진되는 코로나 오미크론 상황속에서도 산우들이 적지않게 모였다. 역시 시산회원들은 누구보다 강하고 건강하다. 지각하는 산우들이 있어 일진 10여명은 걸어서 가고 나머지는 2번 마을버스로 이동하여 와룡정에 도착, 한차례 휴식을 가진 후 출발한다(약 11시).
오늘의 코스는 숭례문(남대문)-광희문-혜화문-숙정문-창의문(자하문)을 잇는 18.5km 성곽길의 일부와 인왕산 숲길로 역사적인 길이다. 게다가 와룡공원에서 숙정문까지는 고 박원순시장이 죽음을 향해서 걸었던 발자국이 남은 길이기도 하다(나는 2003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 시절, 풍문여고옆 아름다운가게 오픈때 환담한 적이 있었는데, 선하고 순수한 분이라는 인상이 남아 있다).
우리가 웃으면서 가볍게 걷고 있는 이 길(성곽밖길)을 고인은 어떤 고뇌속에서 올라갔을까? 시신이 발견된 곳이 숙정문 돌담 밑이였다는데... 자살이라고 발표했지만, 누가 이곳으로 유인해서 살해했다는 설도 있고, 오로지 숙정문과 성곽만이 사실을 알고 있겠지!
숙정문의 얘기를 안할 수 없다. 원래 북대문이기도 한 숙청문(肅淸門)은 태조 4년인 1395 년에 건립되었는데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키다’는 의미의 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는데, 숙정문을 개방하면 숙정문이 음의 기운이라 조선여성들이 바람이 나고 남녀간 풍기가 문란해지니 문을 패쇄해야 한다는 풍수지리학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박원순 시장이 성문제 때문에 이곳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숙정문으로 올라 가는 동안 오른쪽의 멋있는 VIEW와 함께 삼청각이 보인다. 부근에 있는 대원각과 함께 유명한 정치요정으로 박정희, 김종필, 정일권, 이후락등이 이용했으며, 국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던 오빠손에 죽은 정인숙 사건이 발생했는데, '정인숙이 낳은 자식이 정일권 총리의 자식이냐'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삼청동 반대편 성북동에 있는 대원각 주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이 법정스님에게 시주하여 대법사가 1997년에 길상사가 되었다. 여기서 김영한 과 시인 백석의 러브스토리를 알아 보자. 백석이 함흥에서 영생고보 영어 교사로 재직하던 1936년 회식자리에서 김영한을 보고 첫눈에 반하여 사랑을 하게되어 김영한에게 자야(子夜) 지여주고 3년간 행복한 동거생활을 하게 되었다.
백석의 부모가 기생이라고 반대 다른 여자와 결혼을 시켰지만, 백석은 첫날밤도 치르지 않고 만주로 도망가자고 제안하였지만, 자야는 백석에 장래에 부담이 될까 염려하여 거절을 한다. 백석은 언젠가 자기를 찾아 만주로 올거라 확신하며 만주로 떠난다. 이때 홀로된 백석은 자야를 그리워하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짓는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을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가마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퓩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그러나 잠시동안 이별이 영원한 이별이 되고야 만다. 해방이 되자 백석은 오지않는 자야를 찾아 만주에서 함흥으로 내려갔지만 자야는 서울에 있어야 했고 6.25가 터져 둘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된다.
이후 백석은 1996년 사망하게된다. 혼자 남겨진 김영한은 아픔을 잊기 위하여 악착같이 돈을 벌기 시작했고 3대 요정중 하나인 대원각을 세워 엄청난 재력가로 성장한다. 평생을 백석만 그리원 했던 김영한은 늘 담배를 곁에 두고 살았다 결국 폐암으로 1999년 세상을 떠난다.
1천억의 재산을 기부했는데, 아깝지 않냐 란 기자의 질문에 "1천억이 그 사람 시 한 줄만 못해" 라고 했다. 김영한은 일년에 하루(7.1)는 음식을 먹지 않았는데 그날이 백석 생일이다. 유언으로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길상사에 눈 많이 내리는 곳에 뿌려 달라" 였는데, 위 시(詩)에서 처럼 눈 많이 내리는 어느날 길상사 앞 마당에 뿌려졌다.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서 '청운대-백악마루-북악산정상을 거쳐서 내려가자'고 하였으나 계단이 너무 많고 연로하셔서 뭇 가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우회길로 곡장밑을 경유하여 내려오다 성벽 밖인 옛 군견훈련장에서 간식 자리를 폈다. 둘려보니 우리 노인네처럼 먹을 것을 놓고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는 무리는 없었다.
지나가는 관리소 직원들이 빨리 마셔 버리라고 한다. 우리는 성밖에서는 괜찬은 줄 알았다. 청운대안내소에서 표찰을 반납하고 새로 개방되었다는 낮고 쉬운 길을 따라 내려오니, 아델라베일리 식당 앞의 1번출입문으로 나와 창의문 아래를 지나서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도착, 시(詩) 한편을 읽어 본다.
"서시" / 윤동주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두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시인이 28세에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다(1945. 2. 16). 어려운 시대에서도 굴하지않고 한 점 부끄러움 없이 자신의 길을 가고자 했던 시인, 현실을 극복하고 다시 올 아침을 기다리던 청년, 죽어서 저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청년으로 남아서 언제나 빛나고 있습니다. 다 아는 시이지만, 다시 잃어보니 숙연해 집니다.
지금 부터는 '인왕산숲길'을 걷는다. 사전 답사를 왔을 때 길을 잘못 들어 청운문학도서관 옆으로 내려와 경기상고, 청운동을 지나 왔지만, 이번엔 실수없이 채부동~옥인동~청운동~효자동을 왼쪽으로 내려다 보며 아기자기한 '인왕산숲길'을 내려왔다.
또 걷고싶은 서촌 동네길 이었다. 유명한 세종마을은 조선시대는 왕족과 사대부, 중인들의 거주지로 유명했고, 일제 강점기 이후에는 문인과 예술인이 많이 자리 잡은 곳이다. 세종마을은 2011년 종로구청장이 직접 붙인이름으로 세종대왕이 태어난 준수방(俊秀坊)이 세종마을에 포함되는 통인동 일대였기 때문이다.
이제 산책은 다 했으니 뒤풀이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의 '황금정' 식당에서 하기로 하였다. 산행때 낭송하지 못한 동반시는 뒤풀이때 음식을 먹기전에 오늘의 매니져인 내가 낭송하였다.
"3월이여, 어서 오렴" /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3월이어 어서 오렴
난 얼마나 기쁜지 몰라
오기를 무척 기대했어
모자를 벗어 놓게
넌 걸어왔구나
얼머너 숨이 차니
3월이너, 어떻게 지냈니,
그리고 다른 이들응
자연은 잘 보살펴 두고 왔겠지
아, 3월이여, 나와 함께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자
말해 줄 게 너무 많아
난 네 편지를 받았어, r그리고 새들도 왔어
단풍나무들은 네가 오는 것을 결코 몰랐어
내가 말하건대 - 그들 얼굴이 얼마나 빨개졌는지
하나 3월이여, 날 용서해
네가 나보고 물들이라고 맡긴 저 모든 산들도
거기에 맞는 볼색을 찾지 못했어
네가 전부 다 가져가버렸기 때문에
누가 문을 두드리나? 4월이네
문을 잠가라
난 만나지 않을 거야
그는 일년이나 날 찾지 않았잖아
내가 바쁠 때는
하나 하찮은 것들은 아주 작게 보이네
내가 오자마자
비난은 칭찬만큼 귀중하고
그리고 칭찬은 비난만큼 미미하네
'황금정'에서 배고픈 허기를 채우고, 경복궁역에서 집으로 향하였다. 오늘 하루도 즐거운 산책날 이었다. 여기까지 부족한 산행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하면서...
2022년 3월 27일(일) 홍황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