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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오년 새해 소망.
2025년 12월 29일 월요일
선경 정해균의 독서노트 새해특집.
◐자유와 새해 결심.
니체는 그의 “즐거운 학문” 에서 ‘새해를 위하여’ 라는 제목의 글을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다; 나는 여전히 사유한다: 나는 여전히 살아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나는 여전히 사유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이 무엇을 소망하는지 표현하는 것이 허락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니체자신이 새해에 원하는 것은 모든 사물속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것을 배우는 것, 그리고 아름다움을 창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
새해결심은 새로운 해를 맞이하면서, 자신에게 약속을 하는 것이다. 새해 결심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개입하고 목적을 지닌 삶을 만들어 가는 행위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인간은 자유를 지닌 존재 다. 그리고 그 자유는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크고 작은 ‘새해 결심’을 만드는 과정에서 행사된다. ….
이렇게 보자면, 새해 달력의 1월은 인간이 자신에게 보내는 새로운 탄생의 초대장이다. 그대의 새해 결심은 무엇인가. 아직 만들지 안았다면 지금이라도 만들어 보시라. 그 새해 결심이 ‘작심 3일’이 될지라도 그것은 그대만의 삶의 축제이다. 그 작심 ‘3일의 축제’는 그대 자신속의 새로운 탄생을 꿈꾸는 자유, 희망 그리고 사람의 몸짓이므로, 인간의 삶은 무수한 ‘작심3일’들이 만나서 유일하고 대체 불가능한 자신만의 여정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므로.
-강남순 지음 ‘질문 빈곤사회’ 중에서
◐결국은 결단의 문제.
누구에게나 하루는 스물 네 시간입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쓸 것 인가는 나의 결단이고요. 먹고사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들여야 되기 때문에, 남은 시간은 정말 얼마 안되니 더 소중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귀한 시간에 자기만의 생각을, 일을, 꾸준히 해가며 그렇게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가나는 건 힘들 뿐 만 아니라 너무나 외로운 작업입니다. 그러나 그 고단함이나 외로움은 꼭 견뎌야 합니다.
이런 질문해봅니다. 자신의 문제들을 괴테처럼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뜻도 세워보고요. 괴테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있는 능력의 예감’ 이라고요. 속에 든 것을 꺼내야죠. 누구에게나 공평한 스무 네 시간, 버릴 건 버리고, 조금 손해도 보면서, 조금은 바보같이, 자신의 뜻을 바르게 세워보고 그에 따라 살아보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꾸준히 가다 보면 그 길의 끝에서 지금보다 더 성장한, 나 다운 나를 만납니다. 나라는 존재는 남이 키워줄 수 없으니 까요. 스스로를 키우고, 좋은 뜻으로 더 큰 나를 세워보세요. 만들어 가보세요.
-전영애 지음 ‘괴테 할머니의 인생수업’ 중에서
◐ 관성의 법칙 깨뜨리기.
관성은 우리 삶의 중요한 내적 기준입니다. 관성대로 살아야 뇌와 몸의 피로를 줄이고 평온을 유지할 수 있어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이 내적 기준을 높은 수준으로 만들어 두는 것입니다. 문제는 익숙함 이란 컴포트존에 안주할 때입니다. 이 단계에서는 성장이 정체되지요. 따라서 일정수준에 도착했다면 의식적으로 관성을 깨트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단계로 관성을 깨고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습니다. 첫째, 변화가 아주 작아서 거침없이 해볼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겁니다. 늘 다니던 길 대신 엉뚱한 길로 가 보거나, 왼손으로 양치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이것이 ‘최소 유효저항’ 의 원리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둘째, 메타인지를 통해 내가 무엇을 한단계 변화시켜야 하는 지 정확하게 인지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자세한 계획을 세워 관성을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을 몸에 붙이는 것입니다. 이과정을 통해 우리는 일부의 관성을 깨뜨리며 정체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수 있습니다.
-김익한 지음 ‘원 페이지 인문학’ 중에서.
◐ 사람 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 것 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고민하고 방황하고 노력하고 있다. … 그런데 질문은 곧 ‘사람 답게 사는 방법’ 을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럼 그 해답은 어떻게 찾아야 할까.
첫번째 힌트는 율곡사상의 근본을 이루며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다루고 있는 입지(立志)에서 찾을 수 있다. 입지는 뜻을 세운다는 의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심이 되고 나침반이 되어줄 ‘큰 뜻’ 을 세우는 것이다. (두번째)필요한 것이 바로 행동. 곧 실천이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행동을 이끌어 내는 매개인 공부이다. … 아무리 높고 큰뜻을 세웠다 해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이를 온전히 실천할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각각 3가지가 필요하다. 이는 의식주(衣食住)와 지학행(志學行)이다. 의식주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고 지학행은 사람 답게 살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곧 뜻을 세워 배우고 익혀 이를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이두가지가 사람이 살아 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정신적인 가치보다는 물질적인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하다. 의식주만을 추구한다면 다른 동물과 다를 것이 없다. 사람 답게 사는 문제는 오직 지학행에 달려있다. 사회적인 기준과는 상관없이 끊임없이 지학행을 추구하는 사람이야 말로 모든 이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율곡이야 말로 바로 그런 인물이라고 믿는다. 그는 성인이 되겠다는, 사람으로 살며 최고의 경지에 이르겠다는 큰 뜻을 세워 평생을 두고 실천하며 쉼 없이 배우고자 했다. 어찌 시대와 삶의 모습이 다르다 해서 외면 할 수 있겠는가. ‘북주서(北周書)에 ‘글을 가르치는 스승을 만나기 쉬워도 사람됨을 몸소 가르치는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經師易求 人師難得)’고 했다. 율곡의 삶을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기 바란다.
-한성주 지음 ‘율곡, 사람의 길을 말 하다’ 중에서
【선경의 독서 노트】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에서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로 미하엘 천사가 주님으로 부터 인간세상에 내려가서 알아오라는 세가지숙제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 숙제는 다음세가지질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1. 사람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하엘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제화공내외와 인연을 맺어 인간세상에 뿌리를 내려 정착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나중에 제화기술자로 손님들이 주문한 신발을 만드는 과정에서 위에 서 제기된 세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알아차립니다. 그런 연후에 미하엘 천사는 지상에서 다시 하늘나라로 승천합니다. 미하엘 천사가 지상에 거처하면서 만난 사람들 과의 사연을 통해 알아 차린 해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다.
2.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은 미래를 아는 능력이다.
3. 사람은 (자신에 대한 염려로 살아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사실은 사랑 하나만으로 산다.
한편 한국의 한정주 작가는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중에서 ‘사람 답게 산다는 것’ 의 세가지 해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습니다:
첫째, (먼저)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심이 되고 나침반이 될 큰 뜻을 세우는 것이다.
둘째, (그 다음)큰 뜻의 실천이다.
셋째, (마지막 단계는)실천을 이끌어내는 매개인 공부 또는 배움이다.
편의상 순서를 매겼지만 ‘공부 또는 배움은’ 큰 뜻을 세우는 일과 실천과정의 선행(先行)하거나 최소한 “큰 뜻을 세우는 입지(立志)’와 ‘실천’과 병행해서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이라는 낱말은 상황과 경우에 따라 여러가지로 달리 표현됩니다. 캐나다 출신 소설가 마가렛 엣우드(Margaret Atwood,1939- )는 사랑이라는 단어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랑”을 두고 상황과 경우에 따라 여러가지 다른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말했습니다. 엣우드는 이는 마치 에스키모들에게 있어 생존하는데 중요한 눈(雪)을 52가지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이치와 같다고 설명합니다. 성경 코린트 1서(13장 4절-8절)에서 사랑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다양한 형태의 행동 양식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고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의에 기뻐하지 않고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영국의 작가겸 저널리스트 새무얼 스마일즈(Samuel Smiles,1812-1904)는 ‘일만시간 태도의 법칙’에서 생활 속 사랑의 연쇄작용내지 선순환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사랑은 사랑하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는 마음을 북돋우고 애정이 담긴 친절을 낳는다. 사랑은 다른 사람에 대한 희망과 너그러움을 품게 한다. 사랑은 자비롭고 온화하며 진실하다. 사랑은 선을 알아본다. 사랑은 사물의 가장 밝은 면을 본다. 사랑은 언제나 행복을 향해 있다. 사랑은 행복한 생각을 북돋운다. 사랑은 명랑한 분위기속에서 살아간다. 사랑은 비용이 들지 않지만 돈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값진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지닌 사람을 축복하고 다른 사람의 가슴속에 행복을 키워준다. 사랑의 슬픔조차도 기쁨과 연결된다. 그리고 사랑의 눈물은 달콤하기까지 하다.”
독일문호 괴테는 “리벤 벨렙트 Lieben belebt”즉 “사랑이(죽어 있는 것을)살린 다”고 두드러지게 표현했습니다. 영국의 시인이자 극작가 조지 챕만 (George Chapman,1559-1634 )은 “Love is nature’s second sun.” 즉 “사랑은 자연의 두번째 태양” 이 라고 말했습니다. 에머슨(Raph Waldo Emerson)은 사랑이야 말로 “긍정 중에 긍정(The affirmative of affirmatives is love.)”이라고 위상을 높였습니다. 아무튼 이쯤 되면 “사랑이 인생의 관건이다.” 또는 “사랑이 인생의 대세이다.” 등으로 표현해도 과장이라고 나무랄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삶에서 “공부” 또는 “배움”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논어(論語) 제1편 학이(學而) 맨첫 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 즉 “배우고 때 맞추어 복습하면 그 또한 기뻐지 아니 하랴!” 에서, 그리고 논어 제2편 위정(爲政) 오십오이지우학(吾十五而志于學)즉 “내가 15살에 배움에 뜻을 두었고”에서 공자의 배움에 대한 열망의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후기 실학자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요절한 친구 주도이(周道以)의 삶을 기리는 애사(哀詞)를 지었습니다. 그의 애사를 읽어 보면 배움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것은 배움 때문이다.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고, 군자는 생을 마치도록 남에게 이름이 불리지 않은 것을 미워한다고 했다. ‘하루를 배우면 하루를 사람 노릇하고, 일년을 배우면 일년동안 사람 노릇하는 것이다(一日爲學, 爲一日 之人, 一年爲學, 爲一年之人)’.” 홍대용은 평생 배움에 힘썼던 주도이의 삶을 증언하면서 그가 서른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것을 슬퍼했습니다. 주도이야 말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던 공자의 말씀을 실천하다 떠난 사람입니다. 주도이(周道以)는 경남 함안 사람으로 퇴계 이황의 친구였던 주세붕(周世鵬)의 후손입니다. 평생 진리를 좇으며 살겠다는 뜻을 담아 도이 라 이름 지었습니다.
학생(學生)이라는 우리말은 다의어(多義語)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사전에 의하면 학생의 정의는 네 가지입니다. 학생의 첫번째 정의는 “학예를 배우는 사람” 입니다. 두번째 정의는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사람” 입니다. 세번째 정의는 “생전에 벼슬을 하지 아니 하고 죽은 사람의 명정, 신주, 지방 따위에 쓰는 존칭” 입니다. 그리고 네번째 정의는 “신라 때, 국학에서 가르침을 받던 사람” 입니다. 사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저같이 글을 쓰기 위해 계속 공부를 하고 책을 읽어야 하는 사람도 나이먹은 “학생” 축에 들어갑니다. 한마디로 학생은 미완(未完)의 대기(大器) 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현역시절 벼슬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교전통에 따르면 죽어서도 “학생” 신분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학생이라는 애칭은 싫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공부하는 학생의 본분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노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인 “아집과 독선” 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저에게는 학생이라는 호칭이 더욱 매력적입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예기(禮記) 학기편에 출전을 두고 있습니다. 교학상장의 의미는 가르치고 배우는 것은 서로를 성장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배운 후에 야 자신의 부족함을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리고 가르쳐본 후 에야 가르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게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배우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스승이 더욱 반성하고 노력하여 성장하게 된다는 이치입니다. 배우는 학생이 배우는 일에 반성이 없고, 가르치는 스승이 가르치는 일에 분발이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교학상장(敎學相長)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배우려는 학생의 장점으로는 “좀더 나아지려는 (겸손한) 마음 가짐”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나아지려는 마음 가짐” 은 인간이 향유하는 고귀한 영혼의 자산입니다. 동시에 개체의 미래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에너지 원입니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 “나아지려는 마음가짐”을 가진 시민이 많을수록 더 좋은 사회로 발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일상이 구원(救援) 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혹시 들어 보셨습니까? 지난 주일 도곡성당에서 김종옥 미카엘 주임 신부님이 강론 중 하신 말씀입니다. 일상을 잘 관리해 나가면 인생사가 수월 하게 잘 풀릴 수가 있습니다. 때로 일상이 복병을 만나 순조롭지 않을 경우도 상정할 수 있습니다. 그를 경우에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 며 대범하게 어려움을 수용하고 난관을 극복해야만 합니다. “개울 바닥에 돌이 없으면 시냇물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 이라는 말을 상기합시다. 나를 힘들게 하는 일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는 신조를 가지면 일상의 장애 요인은 가볍게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본 바와 같이 일과 인생사이에서 “사랑”, “공부 또는 배움” 그리고 “일상”의 세가지 키워드에 우선순위를 두고 충실하게 살아 갈수 있다면 누구라도 다가오는 병오년의 세파를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병오년 작심 3일의 축제에 초대받은 여러분의 특별한 소망은 무엇입니까? 독일의 문호 괴테는 소망에 대해서 “우리의 소망이란 우리들 속에 있는 능력의 예감” 이라고 말했습니다. 병오년 새해 아침 내 안에 잠재하고 있는 능력을 끄집어 내어 새해 소망을 마음껏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병오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미리 새해인사 올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