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신라 경순왕영정의 제작과 그 의의(정병모).pdf
경순왕 어진 초본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고려시대 경주' 특별전에서 전시중에 있다.
(사) 신라 숭혜전릉 보존회, '경순왕 영정 4점' 국립경주박물관에 기증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사)신라 숭혜전릉 보존회로부터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 영정’ 4건 4점을 기증 받고, 2013년 6월 24일(월) 11시에 국립경주박물관에서 김성호 숭혜전 전참봉殿參奉을 비롯한 경주 김씨 문중 어른들을 모시고 기증식을 가졌습니다.(사진 1)
기증된 경순왕 영정 4점 가운데 3점은 채색을 하였으며, 1점은 부분채색을 한 초본입니다. 채색본 3점은 사찰에 봉안되는 진영과 같은 형식과 초상 형식 등 2가지 형식입니다. 영정은 최초에 그려진 모습을 보고 모사模寫하여 얼굴의 이목구비와 눈썹, 입 주변의 수염은 모두 비슷하게 표현되었습니다. 그러나 영정을 모사한 사람에 따라 머리에 쓰고 있는 일월관, 착용한 옷, 그리고 앉아 있는 의자 등 세부표현은 각기 다르게 표현하였습니다.
먼저 경순왕 영정 채색본 1은 기증된 4점 가운데 시기적으로 가장 오래된 작품입니다. 화면 중앙에 일월관을 쓴 경순왕을 중심으로 좌우에 시녀를 배치하였습니다. 그러나 보관 상태가 좋지 않아 제작연대를 추정하기 어렵습니다. 두 번째 경순왕 영정 채색본 2(사진 2)는 화면 하단 좌측의 화기畵記에 “乾隆(?)拾肆年(14년)己 巳三月日安于, 於上聳庵, 李夏極兩主保体, 李(?)東望兩主保体, 李德化兩主保体”라는 명문銘文의 일부가 남아 있어 1749년 3월에 영천 은해사 상용암上聳庵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형식은 첫 번째 작품과 비슷하게 중앙에 경순왕을 좌우에 시자와 시녀를 배치하였습니다. 세 번째 경순왕 영정 채색본 3(사진 3)은 경순왕의 좌우에 배치되던 시종이 사라지고 홀로 경순왕이 어좌탑御座榻에 앉아 있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조선시대 후기 화단畵壇에 유행했던 음영법陰影法을 옷주름에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또한 바닥의 돗자리 문양을 세밀하게 묘사한 것으로 보아 18세기에서 19세기에 모사한 작품으로 판단됩니다. 네 번째 경순왕 영정 초본(사진 4)은 일월관日月冠을 쓴 경순왕을 단독으로 그렸습니다. 이목구비와 얼굴 손 등에는 채색을 하였으나, 옷주름은 먹선으로 윤곽선을 그리고, 바림하여 음영을 나타냈습니다. 특히 이 작품은 일월관의 세부표현, 옷주름 등의 선묘에서 화승畵僧 이진춘李瑨春이 1904년 무렵에 그린 작품의 초본으로 판단됩니다.
경순왕(敬順王: ?~978, 재위연간: 927~935)은 신라의 57대 왕이자 마지막 군주였습니다. 성은 김金이고, 이름은 부傅로 문성왕의 6대손입니다. 아버지는 이찬伊湌을 지낸 효종孝宗이며,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 계아태후桂娥太后입니다. 경순왕은 본래 왕족이었으나, 경애왕(?~927, 재위: 924~927)의 갑작스런 변고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재위 8년만인 935년에 신라의 국운이 다하자 국권國權을 고려에 양도하여 천년 신라 역사는 끝이 났습니다.
(사)신라 숭혜전릉 보존회의 기증으로 국립경주박물관은 더 많은 우수 문화재를 소장하게 되었으며, 이를 보다 많은 국민들에게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기증자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 국민들의 기증문화 활성화에도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증 받은 경순왕 영정 4점은 상태가 좋지 않아 보존수복이 완료되는 대로 추후에 일반인에게 공개할 예정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3년 6월 25일 배포
사진 1 (사) 신라 숭혜전릉 보존회 기증식
사진 2. 경순왕 영정(은해사 상용암), 조선시대 후기/1749년 추정, 124×85.6cm, 비단에 채색
사진 3. 경순왕 진영, 연대미상, 148×88cm, 비단에 채색
사진 4. 경순왕 영정 초본, 연대미상, 87×85.5cm, 종이에 부분 채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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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敬順王’ 초상화 첫 공개
고려 초 원본 베껴 그린 5점
17세기 本은 현존 最古 어진
1794년 초상화가 이명기가 그린 경순왕 초상(왼쪽)과 이 작품을 보고
1904년 승려화가 이진춘이 제작한 경순왕 초상의 밑그림(초본). 사진 제공 정병모 교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御眞, 삼국 통일신라시대의 유일한 어진. 통일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어진 5점의 전모가 처음 공개된다.
정병모 경주대 교수(한국회화사)는 12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제20회 한국미술사연구소 학술세미나를 통해 경순왕 어진에 관한 논문 ‘최고의 어진, 신라 경순왕 영정의 회화사적 의의’를 발표한다.
경순왕의 어진을 처음 제작한 것은 통일신라가 멸망한 직후인 고려 초. 경순왕을 추모하기 위해 그린 이 어진은 강원 원주시 고자암(高自庵)에 봉안해 놓았다. 그 후 원본은 사라졌지만 조선시대에 이모한 작품 5점이 전하고 있다. 5점은 ① 1677년 강원 원주의 고자암(高自庵)에서 제작한 것, ② 1749년 경북 영천 은해사 상용암(上聳庵)에서 그린 것, ③ 1794년 초상화가 이명기(李命基)가 은해사본을 보고 다시 그린 것, ④ 1904년 화가 이진춘(李瑨春)이 이명기본을 보고 다시 그린 것과 ⑤ 이진춘본의 초본. 이들 어진 5점은 경순왕 사당인 경북 경주시 숭혜전 창고에 방치돼 오다 2007년 그 존재가 처음 확인됐다. 이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위탁 보관해 왔지만 그 전모는 알려지지 않았다.
17, 18세기 경순왕의 어진은 현존하는 조선시대 어진보다도 시대가 앞선다. 현재 전해 오는 조선 태조 어진도 15세기 원본을 1872년에 이모한 것이다. 15세기 원본은 사라졌다.
정 교수는 “5점의 경순왕 어진은 고려 초의 원본을 모사한 것이어서 경순왕의 얼굴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그리는 사람에 따라 복식과 배경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이어 이들 작품이 사찰에 봉안된 어진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사찰에 봉안하는 어진제도가 궁정에 봉안하는 어진제도보다 더 전통이 오래된 것”이라며 “경순왕 어진은 사찰 어진의 전래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정 교수는 이명기가 그린 작품에 특히 주목한다. 이명기는 18세기의 대표적인 초상화가. 정 교수는 “이명기가 그린 초상화는 거의 보물로 지정됐을 정도다. 이 작품은 어진인 데다 보존 상태도 양호해 한국 초상화 역사에 또 하나의 명품을 추가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동아일보 이광표 기자 2010-06-02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