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범 金成範(1898 ~ 1930)】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천마별영(天摩別營)의 오장(伍長)"
1898년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도원면(桃源面) 동창리(東倉里)에서 태어났다. 이명(異名)은 성범(聖範)이다.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천마별영(天摩別營)의 오장(伍長)으로 활약하였다. 천마별영은 기존의 천마산대(天摩山隊)가 광복군총영에 통합된 이후 국내 별동대로서 활동한 데서 붙여진 명칭이었다. 천마별영은 광복군총영의 직접 지시를 받거나 무기를 공급받고 국내 진입작전을 전개하였다.
원래 천마산대는 1920년 3월 평북 의주군을 거점으로 최시흥(崔時興) 등이 조직한 무장투쟁 단체였다. 의주군 고령삭면(古寧朔面)에 있는 해발 1,169미터의 험준한 천혜의 요새인 천마산을 근거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천마산대는 1920년 3월부터 평북 일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친일파인 선천군 태산(台山)면장 김은기와 강창헌, 의주경찰서 형사 김명익 등의 친일파를 처단하였다. 이 때문에 평북 일대의 관공리와 친일파들은 일제 경찰의 보호 없이는 출입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특히 생명의 불안을 느낀 면장들은 집단 사표를 제출하여 선천·용천·구성·의주군 등은 행정이 마비되기에 이르렀다. 이외에도 천마산대는 선천·철산·벽동·강계·의주 군내의 면사무소를 파괴하였고, 삭주군 구곡면, 벽동군 송회면, 의주군 옥상면, 창성군 동창면 및 구성군 사기면 신시 등에 있는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순사를 처단하고 무기를 노획하였다. 이밖에도 옥상면 우편소를 공격하여 일제의 우편행랑을 빼앗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천마산대는 1920년 광복군총영으로 통합되었다. 광복군총영의 별영은 천마별영과 벽파별영(碧波別營)이 대표적인 조직이었다.
1923년 천마별영 오장으로 활동하면서 결사대를 이끌고 46회나 국경을 넘나들었다. 초산(楚山)·창성(昌城)·벽동(碧潼)·강계(江界)·희천(熙川)·태천(泰川)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으며, 친일파 처단, 면사무소 습격 등의 활동을 20여 회나 전개하였다.
그러나 1926년 8월 22일 평양 영변군(寧邊郡) 소림면(小林面) 추동(秋洞) 산속에서 매복하던 중 영변경찰서 소속 경찰에게 붙잡혔다. 일제 경찰에 의해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살인, 강도, 방화란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1929년 11월 21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재판 결과는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판결에 대해 수십일 동안 단식하며 투쟁하였으나, 1930년 3월 17일 평양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