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200년전 인류는 8,000년 가까운 '농업의 시대'에서 '공업의 시대'로 전환했다.
100년전에는 전화, 영화, 알루미늄 같은 새로운 산업이 탄생했고, 각 지방의 경제는 국민전체의 경제로 변했다. 그리고 오늘날 부의 원천은 '지식'이 되고 있다. 레스터 서로우교수는 최근 저서 '富의 피라밋'에서 이 극적인 변화를 '제3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렀으며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고 명명했다. 이처럼 거대한 변화를 가능케 했던 것은 바로 IT(정보기술)다.
사람들의 가치관까지 바꿔버릴지 모를 'IT혁명'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대전환이다.
현재의 산업과 기업시스템은 18세기 중반의 산업혁명 이후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돼온 것이다.
그러나 21세기초에 일어날 IT혁명으로 인해 그 시스템은 일시에 붕괴돼 버릴 것이다. 서기 2000 년이 코앞에 다가왔다. 후세 역사가들은 지난 100년을 인류가 2번에 걸친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대량 학살을 저질렀던 '전쟁의 세기'로 기억할지 모른다. 혹은 과학기술이 경이적인 진보를 이룩했던 '테크놀로지의 세기'로 역사의 새로운 한 페이지를 기록할 수도 있다.
1903년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를 발명했다. 그들이 첫 비행에 성공했을 당시, 500인승 점보 제트기가 하루 24시간동안 전세계 대도시를 오가고, 도쿄-뉴욕을 10만엔 전후의 요금으로 13시간만에 왕복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 표면의 '조용한 바다'에 착륙, 2명의 미국인 우주비행사가 우주선에서 내려섰다. 그때 전세계 인류는 '미지와의 조우'에 경이를 금치 못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날, 국제 우주 정거장 건설을 위한 스페이스 셔틀의 발사는 연중행사로 자리잡았다. 미국의 무인탐사선은 화성과 목성으로 날아가 관측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인류는 우주탐사와 우주개발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진행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美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그린스펀 의장은 "경제학자들은 버블 붕괴를 예상하지 못한다"며 최근 美 주식시장의 과열양상에 대해 경종을 울렸다. 1929년 미국의 주가가 대폭락, 세계경제는 대공황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 주가 대폭락 직전, 당시 위대한 경제학자였던 예일대학의 어빈 피셔 교수는 "미국의 주가는 한동안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발언, 경제학자로서의 신용을 크게 실추시켰다. 인류의 지혜는 결국 그정도밖에 안되는지도 모른다.
과거의 발상으로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미래공학연구소 R&D 전략연구그룹의 스즈키 아쓰시(鈴木潤) 선임 연구원은 "특히 IT는 5년후 정도라면 현재 기술의 연장선상에서 일정 정도 예측할 수 있으나 20년 후의 일은 솔직히 전혀 알 수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새로운 세기,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인류는 "21세기는 어떤 시대가 될 것인가" 또는 "IT혁명이 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를 생각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다. 사회과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호기심이다. 따라서 21세기초 20년 동안의 시기에 초점을 맞춰 IT혁명으로 가장 큰 충격을 받게 될 몇개 분야를 들여다보자.
20세기 예언의 적중률 80% 이상
다가올 21세기를 예측하는 데 있어서 '호치(報知)신문'이 1901년에 보도했던 '20세기 예언'이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당시 이 신문은 총 23개 항목을 예언한 바 있다. 편집부의 판단으로 예언의 적중 여부를 판단했을 때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 호치신문 '20세기 예언' 적중 여부(1901년 1월 2일∼3일 게재)
― 적중한 내용 : △ 무선전신 및 전화 △ 원거리 사진 △ 7일간의 세계일주 △ 공중 군함·공중포대 △ 모기와 벼룩 멸망 △ 냉방·보온시설 △ 음성확대 기술 △ 사진전화 △ 전기 세계 △ 철도 속력(도쿄∼고베간 2시간반) △ 시가지 철도 △ 철도의 연결(5대주 관통) △ 의술의 진보 △ 자동차 세상 △ 전기 수송
― 어느 정도 적중한 내용 : △ 야수의 멸망 △ 식물과 전기(전기를 이용해 야채를 성장시킬 수 있게 될 것이며…그린랜드에서 열대식물을 키울 수 있을 것) △ 쇼핑의 편리성 향상(사진전화를 통해 원거리에서 물건을 고르고 거래를 하며, 그 물건은 지하 매설관을 통해 순식간에 손에 넣을 수 있게 될 것) △ 폭풍을 막을 수 있게 될 것(기상관측 기술의 진보로 자연재해를 1개월 전에 예측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자연재해 중 가장 무서운 폭풍이 일어날 때에는 공중에 대포를 쏴 비로 바꿔 버릴 것이다)
― 예상에서 벗어난 내용 : △ 사하라사막의 옥토화 △ 신체의 변화(운동기술과 외과수술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신장은 6척을 넘게 될 것) △ 사람과 동물과의 대화가 가능해 질 것 △ 유치원 제도의 폐지
이 신문의 예언이 '정확히 적중한 내용'과 '어느 정도 적중한 내용'을 합하면 예언의 적중률은 80% 이상에 달한다. 기술평론가이며 방송대학 교수인 모리타니 마사노리(森谷正規)는 저서 '21세기의 기술과 사회'를 통해 이 '20세기 예언'을 얘기하면서 21세기의 기술발전 가능성을 논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이 신문의 예언은 인공물의 창조와 관련된 기술과 인간, 생물, 자연에 관련된 기술로 크게 구분되는데, 前者에 관한 예언은 거의 적중한 반면 後者는 거의 틀렸다. 즉 인공물의 창조에 관한 예측은 상당히 확률이 높지만 인간, 생물, 자연과 관련된 기술에 대한 예측은 적중률이 그다지 높지 못하다는 얘기다.
그 이유는 "인간이나 자연과 관련된 기술은 인공물과 관련된 기술에 비해 그 복잡도가 매우 높기 때문" 이라고 모리타니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21세기 전반까지 '기술의 폭발' 계속
다음 내용은 지금부터 2003년까지 실용화가 기대되는 미래기술을 정리한 것으로, 日 과학기술청이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기술예측조사보고서를 근거로 작성된 것이다.
모리타니 교수는 앞의 저서를 통해 1971년에 발표된 제1회 예측조사가 20년 후인 91년에 어느 정도 적중했는지를 상세히 분석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정보기술 분야는 거의 절반의 예측이 실현됐으나, 국토개발·도시개발, 교통, 해양개발, 에너지 등 다른 분야에 대한 예측은 적중률이 매우 낮아 10∼20%밖에 안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인간이나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은 정확도가 낮지만, 인공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에 대한 예측의 정확도는 훨씬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진행중인 IT는 後者에 속한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미래기술 연표를 훑어보면 2030년경까지의 미래의 모습이 어렴풋하게나마 눈앞에 그려질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IT혁명은 관련부문의 큰 발전을 가져올 것이며, 그 성과는 정보영역 뿐만 아니라 원자재와 에너지 분야에까지 널리 파급될 것으로 예상된다.
모리타니 교수에 따르면, 기술의 기본 3요소는 물질(원자재), 에너지, 정보다. 역사적으로 이 3요소 중 가장 먼저 발전했던 것은 물질(원자재)이었다. 에너지 관련기술이 그 뒤를 이었고, 정보는 항상 발전속도가 뒤쳐지곤 했다. 전화, 무선 관련 기술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초에 걸쳐 크게 발전했으나,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는 컴퓨터 기술의 본격적인 발전은 20세기 중반에 와서야 이뤄졌다.
그러나 앞으로는 물질, 에너지, 정보가 동등한 발전속도를 보이면서 기술은 폭발적인 발전을 이룩해갈 것으로 예상된다. 모리타니 교수는 이 '기술의 폭발'이 21세기 전반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시간과 거리의 한계를 뛰어넘다
이같은 IT혁명 주도의 '기술 폭발'이 일으킬 사회변화란 대체 어떤 것일까. 도쿄대학 공학부의 쓰키오 요시오(月尾嘉男) 교수는 그것을 산업 '역전' 혁명이라고 부른다. IT의 보급으로 인해 산업 및 경제구조는 산업혁명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대담한 예측이다. 막스 베버式으로 말하자면,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경제구조가 바뀌면 상부구조인 정치·사회 구조, 가족관계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는 얘기다.
IT혁명은 우선 거리와 시간 등 20세기형 비즈니스에 있어서 중대한 제약들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21세기가 시작되면 현재 간이휴대전화(PHS)나 휴대전화가 무료로 보급되고 있는 것 처럼 PC 가격도 크게 낮아질 것이며, 그 결과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PC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통신요금도 거리와 관계없이 균등해지거나 시간 제약을 받지 않는 정액제로 전환될 것이다. 회선의 통신속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달에 1만엔만 내면 대용량 통신회선을 무제한 쓸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
전세계 어디서든 똑같은 조건으로 새로운 통신회선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기존의 1개사 독점에 따른 문제는 일거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며, 그 영향으로 이전에는 대도시에서만 가능했던 비즈니스들이 지방도시로 대거 이전될 수도 있다.
애니메이션 산업이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전세계 애니메이션 산업의 60% 이상이 일본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그중 90% 이상이 도쿄에 집중돼 있는 상태다. 애니메이션의 최대 납품처인 방송국 대부분이 도쿄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홋카이도(北海道)의 삿포로(札幌)市나 그 근교에서 애니메이션을 생산하는 기업의 설립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통신회선의 대용량화와 통신요금의 하락에 힘입어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국으로부터 직접 주문을 받고,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다시 네트워크를 통해 납품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굳이 작품을 들고 도쿄 시내의 방송국을 찾아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오키나와(沖繩)도 멀티미디어 특구(特區)로 크게 도약하고 있다. 제조업체가 전화를 통해 소비자의 크레임이나 고장에 관한 문의 등을 받는 곳을 콜 센터라고 부른다. 이전에는 공장 근처에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으나, 최근에는 아웃소싱을 통해 외부에 관련업무를 위탁, 전문가가 아닌 사람도 컴퓨터에 입력만 하면 세탁기나 냉장고의 배선도 및 크레임 처리를 위한 매뉴얼 등을 보면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처리할 수 있게 됐다.
그 콜 센터가 이제 인건비가 낮고 정부보조금도 받을 수 있는 오키나와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 최대의 콜 센터는 NTT의 전화번호 안내국으로, 지금은 대부분이 오키나와에 몰려 있다.
도쿄 긴자(銀座)를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오키나와 현지 오퍼레이터가 전화번호부와 지도 및 고객의 정보만을 가지고 도쿄 주민에게 긴자에 위치한 레스토랑의 전화번호를 가르쳐 주는,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기업규모 크다고 유리한 것 아니다
규모의 '개념'도 크게 바뀔 것이다. 이제 기업규모의 크기는 사업상 중요 요인에서 제외될 것이다.
인터넷 통신판매가 그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인터넷 통신판매 초기단계에는 NTT나 IBM 등 대기업이 진출했으나 당초 예상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현재 인터넷 통신판매분야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은 라쿠덴(樂天)이라고 불리는 영세 기업(기존 개념에서 보면)이다. 종업원 35명, 평균 연령 20대 중반인 이 회사는 도쿄 메구로(目黑)區에 위치하고 있다. 이 회사의 가상상점가 '라쿠덴 시장'은 연간 5,000억엔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정보의 세계에서는 막대한 자본금도, 거대한 설비투자도 필요 없다. 초기투자는 통신 네트워크와 컴퓨터뿐이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영세기업도 대기업을 압도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IT 업계에서는 연령과 성별에 따른 차별도 전혀 없다. IT 비즈니스 분야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평등하다. 임신중인 젊은 여성도,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주부도 일을 할 수가 있으며, 젊어서 신용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경우도 찾아볼 수 없다.
산업혁명 이전 세계로
IT혁명이 더욱더 확대되면 쓰키오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산업혁명 이전으로 되돌아가는 것도 더 이상 공상만은 아닐 것이다. 자동차 생산을 예로 들어보자. 20세기초 헨리 포드가 T자형 모델을 개발하기 이전에는 주문생산이 업계표준이었다.
당시에는 고객으로부터 모델을 주문받아 도면을 작성하고 설계도가 완성되면 수개월에 걸쳐 생산한 후 고객에게 제품을 인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즉 당시의 제품생산은 대중을 상대로 수요를 예측하고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주문생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제조업체가 설계도
제작부터 시작했으므로 가상적 세계라고 할 수 있었으며, 주문생산이 일반적이었다는 것은 소비자가 거래상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드는 이와 같은 세계를 크게 바꿔놓았다. 대량생산방식의 도입으로 자동차 산업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판매가 가능해졌으며, 거래의 주도권은 소비자에서 자동차 제조업체로 넘어갔다. 또한 소비자와 생산자가 설계도를 통해 연결됐던 가상세계가 사라지고, 제조업체가 사전에 생산한 자동차를 매개로 소비자와 생산자가 대치하는 실물경제가 주류를 이루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IT혁명은 이와 같은 흐름을 다시 한번 역전시킬 가능성을 갖고 있다. 현재 美 델 컴퓨터社에서 생산되는 컴퓨터 중 40%는 고객의 직접 주문에 따라 만들어진다. 고객이 홈페이지에 메모리, 하드디스크용량 등 사양을 지정하면 델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컴퓨터를 생산, 고객에게 제품을 보내는 것이다. 이는 포드 이전의 주문생산 시스템과 매우 흡사한 형태로, 소비자가 제조업체로 부터 거래의 주도권을 되찾기 시작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결과 21세기 중반에는 앤더슨 컨설팅社의 히오키 가쓰시(日置克史)가 주장해왔던 '에코 시스템'이 실현될지도 모른다. 에코 시스템이란 기업간 전자상거래와 나아가서는 경제조직 전체가 생물(에코)조직과 같이 유연해진 시스템을 말한다. 개별 세포(기업)들은 자신 있는 분야에만 집중한 결과 단순화(기능 분화) 되겠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복잡한 기능을 갖추게 된다. 인체나 개미집단처럼 개별 세포간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몇몇 세포들은 죽음에 이를 수도 있지만, 복잡한 전체기능은 전혀 손상을 입지 않고 유지될 수 있다.
선진국의 현재 산업 및 기업시스템은 산업혁명 이후 오랜 세월을 거쳐 구축돼 온 것이다. 그 시스템이 IT혁명의 확산으로 붕괴될 날도 머지 않았다. 이제 2020년경의 경제사회를 상상하면서 IT혁명이 몰고올 충격들을 살펴보자.
Ⅱ. 가전제품과 IT
- 가정 내외 연결하는 네트워크 구축
50세의 가와구치 고지(川口幸二)는 홈 서버의 디스크를 검색하면서 "이렇게 많아. 좀 지나쳤나"라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2주간 그는 의뢰 받은 집필작업으로 눈코 뜰 새가 없었다.
그러나 마침 그동안 TV에서는 '21세기 20년 특집'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20년간을 회고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될 예정이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도 방송될 예정이어서 가와구치는 보고싶은 프로그램을 모두 예약 녹화해 두었던 것이다.
일에서 해방돼 오랜만에 3주간의 휴가를 받은 가와구치는 가장 먼저 영화를 보기로 결정했다. 디지털방송도 보급된 지 10여년의 시간이 지나 영화나 스포츠 프로그램들은 내용과 양적인 면에서 그 이전과 비교도 안될 정도로 충실해졌다. 또한 서버의 용량도 크게 늘어나 가정내의 모든 정보를
축적할 수 있게 됐다. TV 프로그램과 전송을 받은 영화뿐만 아니라 일에 필요한 자료, 아내의 요리책, 아이들의 성장 기록 등 모든 정보가 카테고리별로 디스크에 기록돼 있다.
전자메일의 송수신도 모두 디스크에 기록된다. 가와구치는 아직 읽지 않은 메일이 한 통 있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거의 매일 얼굴을 맞대왔던 편집자가 보낸 이 메일에는 영상파일이 첨부돼 있었다.
"그 사람 얼굴은 한동안 보고싶지 않아"라고 생각한 가와구치는 영상을 재생하지 않는 문자모드로 전환했다. "가와구치씨 수고하셨습니다. 휴가가 3주나 되다니 참 좋겠군요. 편히 쉬십시오. 나중에 또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그리고 원고료는 오늘 입금하겠습니다"
대용량 데이터 송수신 가능
"전자메일을 수신했습니다. 화면에 영상을 표시하겠습니까" 스페이스 액션 영화가 시작된지 얼마 되지 않아, 거실 벽에 붙여진 60인치 액정 프로젝션 모니터에 전자메일의 착신을 나타내는 메시지가 떴다.
이번에는 아들 다쿠야(卓哉)로부터의 편지였다. 2년전 미국에 유학을 떠난 다쿠야는 올해로 20세가 된다. 가와구치는 영화를 중단시키기가 싫었지만 'YES' 버튼을 눌렀다. "아버지 저예요. 스코틀랜드의 폐기물 처리에 대해 리포트를 써야하기 때문에 어제부터 영국에 와 있어요. 내일이면 일이 끝나고 그 이후 1주일 정도는 스케줄이 비어 있으니까 일본에 한번 가볼까 해요"
20년 전인 2000년부터 PC와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전자메일이 널리 쓰이게 됐다. 비디오 카메라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진 것도 그때의 일이다. 그후 각 가정에 광섬유가 깔리면서 대용량 데이터 통신이 가능해졌고, 그 결과 누구나 디지털 비디오로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쌍방향 대화도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디지털 비디오를 이용해 개인방송국을 개설한 사람이 1만명을 넘어섰고, 다쿠야도 그중 한사람이다.
정보단말기 통해 현재 위치 확인
그날 아내인 아키코(明子)는 아침부터 학생시절 친구와 클래식 콘서트를 보러갔다. 이제 날도 어둑어둑해지고 있으니 지금쯤은 차라도 한잔 하면서 옛날 얘기로 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가와구치가 아키코의 ID를 입력하자 모니터에 긴자 지도가 나타났고, 지도 한 곳에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예상대로 잡지에도 가끔 등장하는 유명한 카페였다. GPS(위성 위치측정 시스템)가 장착된 휴대정보 단말기에 자신의 ID카드를 넣으면 집에 있으면서도 외출한 가족의 위치를 알 수 있다.
가와구치는 음성입력 기능을 켜 아들로부터 메일이 왔으며 3일 후에 일본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를 한 후 문자로 변환시켜 아키코의 단말기로 송신했다.
영화를 다시 켠지 20분 정도 지났을까. 욕실과 세탁기에 물이 담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곧 돌아 오려나 보군" 아키코가 외출한 날에는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이 소리는 이제 30분만 지나면 아키코가 돌아올 것이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욕실, 세탁기, 에어콘 등 모든
가전제품이 네트워크에 접속돼 있어 외부에서 조작을 할 수가 있다.
가와구치는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ID카드를 모니터 화면 아래부분에 있는 슬롯에 삽입하고 자신의 넘버를 입력했다. 예상대로 원고료는 계좌에 입금돼 있었다.
잠시 후 현관문에 불이 들어오고, 모니터에 아키코의 얼굴이 나타나더니 몇초 후 현관문이 열렸다.
아내의 표정이 밝았다. 가와구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야마모토가 다음달에 이탈리아로 같이 가자더군요. 빨리 여권을 갱신해야지" 그러더니 갑자기 ID카드를 슬롯에 꽂고 갱신을 시작했다.
조금 전 확인한 계좌잔고가 가와구치의 머리 속을 맴돌았다.
<포인트>
홈 네트워크 - 홈 서버를 중심으로 AV 기기, 가전제품 등을 네트워크로 접속함으로써 외부에서도 다양한 정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Ⅲ. 미디어와 IT
- 인터넷이 TV를 삼킨다
2020년이 다가오면서 미디어는 크게 변모할 것이다. 콘텐츠와 정보매체는 IP(인터넷 프로토콜)를 대표하는 오픈 스탠더드 규격으로 분리될 것이며, 정보매체는 광섬유와 무선 통신망으로 일원화될 것이다. 그 결과 미디어 산업도 수평부업형으로 재편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예측이다.
고쿠사이(國際)대학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센터의 이케다 노부오(池田信夫) 조교수는 "IP는 통신망과 전자메일, WEB 등 콘텐츠 층을 분리시킨다. 두 층이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이 가진 혁신성은 바로 이 IP에 있다"고 지적한다.
인터넷으로 물리층과 콘텐츠층이 분리됨에 따라, 콘텐츠층에 대한 기술자는 통신망에 관계없이 신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 또한 물리층 기술자도 콘텐츠층의 발전과는 독립적으로 케이블 TV(CATV)망이나 이동통신을 활용해 기술을 혁신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인터넷이 모든 미디어를 확보하는 기술진화를 이룩했을 때, 미디어 산업은 '임계점'을 맞게될 것이다. 2020년이면 이같은 일이 확실히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미디어가 IP로 통합
이미 문자정보인 신문과 출판은 인터넷으로 이행중이다. 음악과 게임 소프트웨어도 현재 네트워크를 통한 전송이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전화 서비스도 수년 후에는 기존의 교환기에서 IP 베이스로의 이행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콘텐츠와 물리층이 결합돼 있는 미디어는 어떻게 될까. 수평분업형으로 이행함으로써 마지막 까지 살아남겠지만 동시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 바로 TV 방송국이다.
다른 미디어의 경우에는 출판사가 콘텐츠를, 인쇄회사가 정보매체를 생산하는 것처럼 사실 예전부터 분업형 체제를 이뤄왔다. 그러나 TV 방송국만은 프로그램(콘텐츠) 제작과 우정성으로부터 공짜로 할당받은 전파(물리층)를 한 회사가 모두 사용하고 있다. 콘텐츠와 물리층이 분리됐을 때 TV
방송국의 핵심사업은 어느 쪽이 될 것인가가 관건이다. 이케다 교수는 "프로그램 제작이 본질적인 핵심사업이 될 것이다. TV 방송국은 콘텐츠로 특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공중파의 디지털化를 둘러싸고 민간 방송국과 우정성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프로그램의 디지털化만을 위해 설비와 철탑, 그리고 국민 전체의 수신기까지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공중파의 디지털化는 2010년경 완료될 것이다. 인터넷에 비교하면 그 발전속도가 매우 느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은 방송의 IP 규격으로 차세대 표준 데이터 기술 언어인 'XML'을 베이스로 한 개방형 규격 'SMIL 2.0'을 책정토록 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가정까지 광섬유와 무선을 통해 'IP 방송'을 전송하는 인프라가 구축되면 TV 방송국은 유한자원인 전파를 국가에 반환할 것이며 그 전파는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는 모바일 단말기 등에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때문에 각 민간 방송사들은 공중파 디지털化에 반대하고 있다. 광섬유를 통해 TV를 보는 시대가 되면 거액의 디지털化 투자가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공중파 디지털化를 반대하는 움직임은 TV방송국이 콘텐츠 기업으로 이행하는 첫 단계가 시작됐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수평분업형으로 이행한 이후 미디어산업의 판도는 어떻게 될까. 우선 콘텐츠는 종합화를 향해 치달을 것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타임워너와 바이어 컴, 디즈니 등이 영화, TV 프로그램,음악, 게임, 출판 등을 모두 취급하는 복합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소니와 후지
TV의 연합(위성방송), 도쿠마(德間)서점과 디즈니의 제휴, 가도가와(角川)서점과 독일의 미디어 복합기업 베르텔스만의 제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물리층과 콘텐츠층의 중간에 위치하는 어플리케이션 층의 대표적인 존재는 MS다. 이 회사는 윈도를 이용한 사실상의 표준화 전략에서 XML·SMIL로 짜인 소프트웨어로 승부하는 오픈 스탠더드 전략으로 전환중이며, 앞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
제3의 정보 인프라는 규모의 이익이 매우 중요하다. 통신망에 얼마나 많은 콘텐츠(=수익원)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일본에서는 역시 NTT 그룹이 최강이다. 4.400만 세대의 가정에 연결된 가입자망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망을 저비용으로 고속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또한 미디어의 수평분업화에 있어서 중요한 걸림돌이기도 하다. NTT가 고비용 체질개선에 노력하는 동안 CATV 세력 등이 재편을 통해 거대화함으로써 각 가정까지 연결된 통신망의 혁신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포인트>
XML : 현재 홈페이지 구축에 이용되고 있는 'HTML'을 대신할 차세대 언어. 이것을 베이스로 방송용 SMIL 등의 언어를 만들 수 있다.
Ⅳ. 불로장생과 IT
- 인간의 평균수명 120세로 연장
옛날 중국의 황제들은 불로장생의 꿈을 꾸며 이상한 약을 먹다가 오히려 명을 단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지금도 불로장생은 꿈과 같은 얘기지만, IT혁명에 힘입어 생명의 비밀이 빠른 속도로 풀려가고 있으며 인간의 수명이 100∼120세까지 연장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추진중인 '인간 게놈계획'의 성공 여부가 주목을 받고 있다. 게놈은 각 생물이 갖고 있는 유전정보 세트를 말한다. 인간의 게놈은 암호와 비슷한 30억개의 문자배열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중에는 신체의 각종 기능과 구조를 발현시키는 유전자가 10만개 정도 포함돼 있다.
인간 게놈계획은 게놈의 전체배열을 해독한 후 그 기능을 상세히 해석하자는 국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불치의 병에 대한 치료약을 개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약품을 보다 효과적으로 투여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인류의 공동재산인 인간 유전정보를 해독하는 것이니 만큼, 세계각국이 2005년 완료를 목표로 이 작업을 추진해 왔으나 최근 그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게놈에 대한 해석을 근간으로 생명공학 산업의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 美 정부가 거액의 예산을 쏟아 부어 독자적으로 작업함으로써
유럽과 일본을 따돌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서도 게놈 정보를 특허로 확보하면 제약회사 등에게 고액으로 팔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美 벤처기업들도 독자적으로 작업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 게놈의 30억 문자 배열은 신문으로 치면 30년분의 정보량에 해당한다. 당연히 IT기술을 구사하지 않으면 해독은 불가능하다. IT산업의 본고장이기도 한 미국에서는 벤처기업이 수백대의 최첨단 수퍼컴퓨터를 도입, 해독완료목표를 2001년으로 앞당겨 미국 정부를 당황시키고 있다. 그러나 만병통치를 위한 획기적인 신약 만들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인간 게놈계획은 아직 출발단계에 불과하다.
인간의 게놈 해명으로 무병장수
일본 제약업계에서는 이미 차세대 키워드로 '게놈창약(創藥)'과 '테라메이트 의료'라는 개념들이 얘기되고 있다. 야마노우치(山之內)제약의 부사장 등을 거쳐 日 게놈 벤처기업의 선구자인 헤릭스 연구소의 초대 사장을 맡고 있는 노구치 테루히사(野口照久, 현재 게놈창약 포럼 대표)가 제창한 단어다.
게놈창약이란 지금까지의 경험과 감에 의존해 왔던 제약 작업을, 게놈정보에 따라 효율화시키는 새로운 기법을 말한다. 또한 테라메이드 의료는 개체별 차이에 주목해 어떤 약이 효과가 있을지 여부와 부작용이 있을지 여부를 개인의 유전자를 통해 판정하는 기법이다. 노구치 사장은 "2010년에는 게놈창약과 테라메이드 의료 모두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불로장생은 자연에 반하는 일이지만 최소한 '무병장수'를 실현함으로써 120세 정도까지 건강하고 밝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인의 경우 평균수명은 남성 77세, 여성 84세 정도다. 70∼80세의 사망원인을 살펴보면 성인병인 뇌경색과 심근경색 그리고 암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순수한 노화는 5∼6%에 불과하다.
따라서 발병을 통제할 수 있다면 평균수명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인간의 노화는 주로 '뇌'에 가장 잘 나타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나이를 먹으면서 손이나 발의 운동기능이 떨어지더라도 대뇌의 지혜만 남아있으면 젊은이들과 함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쓰비시(三菱)화학 생명과학연구소의 BILD 연구센터 소장인 데라 니시토요(寺西豊) 공학박사는 "예를들어 걷는 속도는 노화되더라도 반 정도로 떨어질 뿐이지만, 치매 등으로 인해 대뇌가 손상되면 노화가 빨라진다. 역시 중요한 것은 기억력"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알츠하이머병은 오래 살다보면 언젠가는 나타나게 되는 노화현상이라고 한다. 그 원인중 하나인 기억전달 물질의 농도저하를 막는 치료약은 이미 개발이 끝났으나, 또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뇌의 위축을 막을 수 있는 치료법은 아직 개발되지 않았다.
뇌 세포를 위축시키는 물질은 이미 판명돼 있기 때문에 이 연구소에서는 그 물질의 생성을 방해하는 약제를 개발함으로써 2010년에는 치매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장수를 위한 의학의 발전은 착착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인간사회는 노인의 죽음과 젊은이의 대두를 통한 신진대사로 인해 진보를 이룩해왔다. 가능하다면 현역 세대의 신세를 지지 않을 수 있도록 아무런 병치레 없이 100살, 120살까지 살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포인트>
인간 게놈 : 게놈은 유전정보의 세트를 말한다. 사람의 경우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의 염기가 약 30억개 정도 배열돼 있다.
Ⅴ. 기업간 거래와 IT
- 완전한 글로벌 경쟁 시대로 진입
인터넷을 이용한 전자상거래(E-Commerce)의 발전으로 인해 앞으로 기업과 개인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다가올 미래는 가혹한 경쟁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는 전세계의 기업, 개인과의 '메가 경쟁(Mega Competition)'에 내던져질 것이다. 아무도 그같은 흐름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여러 기업들이 도입하고 있는 전자상거래는 제품·기술정보, 수주·발주 데이터를 거래상대와 공유할 뿐만 아니라, 외상거래대금과 관련된 채권채무를 상쇄 결제함으로써 기업의 시간과 비용절감에 도움이 되고 있다.
그리고 전자상거래는 전용선을 이용하는 폐쇄된 환경에서, 인터넷을 활용한 개방적 환경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라면 재무상태가 취약한 중소기업도 쉽게 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인터넷을 이용한 기업간 거래가 확산돼 왔으나 앞으로는 기업의 규모와 상관없이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지는 환경이 만들어질 것이다.
지금까지는 인터넷을 경유하는 전자상거래라도 암호 등을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참가할 수 있는 기업은 한정돼 있었다. 계열, 지역, 이전부터의 거래관계 등에 기초한 신용 등으로 인한 진입장벽이 구축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국경이 없으며 누구든 접근할 수 있다는 인터넷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보다 개방적인 진입환경이 필요할 것이다. 이미 상당수의 기업들은 중요도가 낮은 자재조달의 경우에는 개방적인 네트워크 상에서 공모하고 있다.
앞으로는 기업의 신용 리스크와 기술수준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인증기관이 생겨날 것이며 인터넷을 통한 개방적 거래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즉 지금까지는 1대 1 또는 1대 다수였던 거래관계가 1대 무한대 또는 무한대 對 무한대로 확대될 것이라는 얘기다.
자재조달을 예로 들어보면, 자재를 조달하는 기업은 전세계에서 저렴하고 질적으로도 우수한 제품과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재를 공급하는 측은 미국, 중국, 인도의 기업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기업간 거래의 IT혁명에 대한 참여가 늦어지는 기업은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이쪽은 아무런 준비도 돼 있지 않은데, 경쟁상대가 네트워크를 통한 전자상거래를 도입한다면 경쟁력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시스템이 확산된다면 이미 무너져가고 있는 계열관계는 완전히 붕괴될 것이며 완전한 글로벌 경쟁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기업활동 변하고 아웃소싱 확산
기업활동의 내용도 달라질 것이다.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기업은 더 이상 한계부문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1월초 미쓰비시상사, 미쓰이(三井)물산 등의 대형 상사와 후지쓰(富士通)등의 컴퓨터 관련기업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현재 한 건의 무역거래가 이뤄질 경우 최대 27社가 이에 관여하며, 이들 사이에 오고가는 문서는 최대 40종에 이른다. 이들 데이터의 재입력 및 조합에 따른 부담도 물론 상당하다. 그래서 미쓰비시상사를 비롯한 3社는 인터넷 기술을 이용하는 '무역금융 EDI 공통기반 시스템'을 개발, 내년
4월부터 실증실험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실험이 성공하면 무역업무의 처리속도가 크게 향상될 뿐 아니라 관련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무역실무를 다루던 부서와 인원은 대폭 감축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기업간 거래의 네트워크化가 확산되면 기존 영업부서와 세일즈맨은 그 존재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이다.
또한 전세계에서 최적의 제품을 조달할 수 있게 된다면 회사내에 경쟁력 없는 제조·개발부문을 둘 여유가 없어지게 된다. 네트워크化로 인해 '거리'라는 개념이 의미를 완전히 상실할 뿐만 아니라 아웃소싱이 더욱더 확산되면서 기업의 전문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종합기업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뛰어난 강점을 갖고 있지 않은 기업들은 해체 또는 전문화의길을 걸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기업들만이 종합기업으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의 전문화에 맞는 전문능력 필요
기업과 노동자의 관계도 변할 것이다. 기업의 전문화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자는 그 기업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웃소싱 기업간 경쟁도 치열해져 그곳에서 일을 하려해도 관련 전문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입사'가 아닌 '취직'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반면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에 자신 있는 사람은 고용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프로젝트 단위의 버츄얼 컴퍼니 일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개인의 입장에서도 치열한 경쟁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의 지위는 크게 향상될 것이다. 소비자가 수집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면서 기업과 개인의 정보격차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자동차 네트워크 딜러, 통신판매 등을 통해 이미 상황은 진행되고 있으나, 소비자와 생산자와의 거리가 대폭 축소되면서 제품의 가격도 크게 하락할 것이다. 또한 생산자와 직접적인 연결을 갖게 되면서 기존에는 없었던 제품도 주문생산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IT의 발전으로 인해 기업간 거래는 '超경쟁사회'로 진입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사회가 살기 좋은 사회인지 아닌지는 당신이 하기에 달려있다.
<포인트>
전자상거래 : 네트워크 상에서 이뤄지는 상거래. 기업과 소비자간, 기업과 기업간으로 크게 나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수·발주 데이터를 교환할 수 있으며 자재조달에서 결제까지 처리가 가능하다.
Ⅵ. 국가와 IT
- 전자투표로 대의제 사라진다?
IT의 발달에 따른 정보의 유통은 기업으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국가의 입장에서는 중앙집권체제를 완화시키는 원심력으로 작용할 것이므로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 IT 엔지니어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프로바이더가 6개로 한정돼 있으며 이용자의 정보는 당국이 모두 파악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경유하는 정보의 제어에는 한계가 있다. 싱가포르가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엄격한 언론통제로 유명한 싱가포르 정부는 네트워크 상의 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가 관리하는 컴퓨터에 입력된 정보를 모두 스크린 하기에는 그 양이
너무나 방대했기 때문이다.
IT의 발달은 기존의 커뮤니케이션 수단과는 전혀 이질적인 툴을 만들어낼 것이다. 일방통행적인 전달이 아닌,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가정에 있으면서도 네크워크를 통한 투표가 가능해지며(과학기술청은 2009년경 이같은 일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자국회 또는 전자지방의회가 개최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자투표를 통한 법안(조례)이 통과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청은 2013년경 이같은 일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그 결과 국민의 직접적인 정치참여가 가능해지므로 대의제가 사라지고, 단순히 주민의 의견을 전달하게 될 정당은 불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국민의 부담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전에는 국회에서 논의됐어야 할 모든 문제에 대해서 모든 국민이 잘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위와는 전혀 다른 전망도 제기되고 있다. 그들은 강력한 지도자가 전체의 조화를 유지하는 시스템, 즉 '철인정치'의 출현을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IT의 발달이 곧바로 분권화로 연결될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 美 중서부처럼 중간 규모의 도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교통 인프라로
이들 도시가 연결돼 있는 사회라면 IT를 도입함으로써 의사결정 기구가 분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기능의 집중화가 보다 많은 장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면 IT의 발달이 기업의 행동을 바꾸고, 그것이 세수의 증감을 통해 국가운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할 수도 있다.
한 종합상사의 IT 담당 간부는 "지금 일본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 차원의 디자인이다. 이것은 IT를 운운하기 이전의 문제다. 지금의 중간관리직들이 퇴직하고 경영자 세대가 교체되는 2020년 전후 까지 일본의 국가 경쟁력은 회복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지적하고 있다.
국가의 경쟁력은 기업의 사업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그래서 일부 전문가들은 조세자유지역의 발전적형태가 네트워크 상에 구축되는 미래를 상상하고 있다. 한 무인도에 서버를 한 대 설치하고 네트워크상에 가상국가를 만든다. 이 가상국가의 국민은 조세회피를 목적으로 하는 다국적 기업들이다.
이곳에서는 독자적인 통화는 만들지만 지폐나 화폐는 발행하지 않는다. 이 가상국가의 국민인 기업들은 가상국가의 통화로 社內 결제와 기업간 거래에 따른 결제를 처리함으로써 환차손에서 해방될 수 있다.
가상국가의 운영을 맡는 조직은 국민(기업)들의 출자로 설립되며 그 주식을 시장에 공개한다.
이 조직의 운영능력은 주가에 의해 판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다국적 기업들이 기존 국가에서 적지않은 이득도 얻고 있기 때문에, 이같은 모델이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포인트>
전자투표 : 투표용지에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넣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의 터치 패널에서 후보자를 선택하는 투표방식. 미국, 캐나다, 브라질 등 5개국에서는 이 방식을 이미 도입했다.
디지털 이코노미
- IT혁명이 경제성장 견인
다음은 일본경제연구센터 고자이 야스시(香西泰) 회장이 펼치는 디지털 이코노미 이론이다.
인구의 감소, 고도성장 시스템의 기능 불안전 등을 감안했을 때 앞으로 일본 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혁신, 특히 IT혁명에서 그 원천을 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IT혁명에 의한 생산성 향상은 어떤 식으로 나타날 것인가. 그것을 음미하기 이전에 '생산성 향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여기서는 우선 복잡계 이론을 전개하고 있는 브리언 아더의 '수확체증'論을 살펴보자.
그는 마샬의 경제학이 '수확체감'을 특징으로 하고 있는 데 반해 현대는 '수확체증의 시대'에 돌입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주장에 의문을 갖고 있다. 원래 마샬은 '수확체증'에 대해서도 얘기한 바 있었으며, 그의 말처럼 철강 화학 자동차와 같은 기존의 대표적인 산업들은 '규모의 이익'을 실현하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고 있는 틈새산업의 발흥 양상, 다운사이징, 벤처기업이 요즘과 같이 중시되고 있다는 사실(중소기업의 시대)은 '규모의 이익' 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IT혁명에 의한 현대의 '수확체증'(=생산성의 향상)은 종래의 공급측 뿐만 아니라 수요측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IT혁명이 경제성장 이론에 미치는 영향은 공급, 수요 양측의 '규모의 이익'에 집중돼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규모의 이익'은 공급측에 나타날 때와 수요측에 나타날 때 서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규모의 경제'는 공급측만을 의미한다. 투입(Input)이 2배가 되면 생산(Output)은 2배 이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수요측의 '규모의 경제'는 한계효용이 체증하는, 예를 들면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식의 관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IT혁명에 의한 수요측의 '규모의 경제'는 '나'와는 다른 주체가 어떤 행동을 함으로써 '나'가 영향을 받는 관계를 의미한다. 즉 '네트워크의 외부성'이야말로 현대의 '규모의 경제'가 갖는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소비에 있어서 나타나는 '외부성'은 생산성의 향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네트워크의 외부성'으로 인해 소비자도 생산자가 될 수 있다. 이전에는 의류 디자인은 관련업체가 결정해 소비자에게 제공해왔지만, 지금은 IT혁명으로 인해 소비자가 옷을 디자인하고
그 주문에 따라 업체가 생산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얘기했던 '생산소비자(Prosumer)'가 탄생한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일체화하고 있다.
슘페터가 얘기한 '창조적 파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IT혁명은 '창조'와 '파괴'를 동시에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전자상거래가 유통비용을 크게 감축시켰을 때 유통을 담당했던 업체들은 '파괴'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금융중개기관, 중간관리직, 거래소, 정당과 같은 미들 마켓들도 모두 '파괴'될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 자본주의에는 항상 '창조적 파괴'가 수반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도 노동시장의 유동화 등을 통해 이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창조와 파괴'를 국가간 관계에 적용시켜보면, IT 산업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은 항상 '창조'를하고 일본은 언제나 '파괴'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IT혁명에 의한 '규모의 이익'은 예전 US스틸과 같은 기술적 독점, 혹은 '자연독점'과는 의미가 다르다. 현대의 독점은
MS처럼 '아이디어 독점' 또는 '창업자 독점'이며, 경쟁상대에 대한 진입장벽은 이전에 비하면 매우 낮다.
즉 할 배리언 등이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이전의 경제가 '안정된 과점사회'였다면 IT혁명 이후는 '불안정한 독점사회'가 될 것이다. 이전의 '기술독점'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겠지만 결국은 승리자가 모든 것을 갖는 (winner take all) 세계가 도래할 것이다.
<포인트>
수확체감·수확체증 : 자본설비가 일정하다고 보고 노동 투하량을 늘리면 그 최종단위의 노동이 만들어내는 생산물의 가치가 감소한다는 것을 수확체감의 법칙이라고 한다. 수확체증은 그 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