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고전을 공부하는 연구자들에게 한국고전번역원(이하 번역원)은 특별하다. 방대한 고전자료가 활용하기 쉽게 디지털화되어 있고, 고전교육을 담당할 인재들도 이곳에서 양성된다. 한국고전의 연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곳의 도움을 받는다. 고전자료의 구축과 정리ㆍ활용 그리고 그 다음 세대를 위한 교육 체제 등이 제대로 갖춰진 학술기관이기 때문이다.
번역원의 전신인 민족문화추진회 시절부터 출간되고 있는 국고문헌과 문집에 대한 번역은 가장 신뢰할 만한 것으로 정평이 있다. 말하자면 명실공히 고전번역의 종가(宗家)이다. 소소한 문제를 제외한다면 번역의 정확함과 성실한 주석, 한국어로서의 유려함을 모두 고려한 번역은 이후 한국에서 출간되는 국역의 기준을 제시했다. 2007년 11월 정부출연기관으로 확대 개편된 뒤에도 이곳에서 출간하는 국고문헌 번역과 거점별 주요 대학연구소 등에서 진행하는 문집번역 역시 믿을 만한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축적된 번역 노하우가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다.
번역원에서 구축하고 있는 방대한 고전자료의 데이터베이스는 연구자들이 고전을 연구하는데 원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국고문헌과 문집자료의 원문 검색은 주장의 근거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고전연구의 논문에서 매우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편리한 검색기능은 단일한 사례뿐만이 아니라 빈도수 등 통계치를 적용할 때도 활용도가 높다.
2000년대 이후 정부의 학술지원사업 가운데 가장 평가할 만한 것이 다양한 원문 자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아닐까 한다. 그 가운데서도 번역원의 원문DB 검색시스템은 구축된 자료의 방대함과 활용의 편의성을 고려할 때 단연코 손꼽히는 업적이다. 문집과 국고문헌을 망라한 번역원의 한국고전종합DB만 곁에 두어도 ‘만권루(萬卷樓)’가 부럽지 않다. 많은 한국고전문헌을 소장하지 못한 해외한국학의 연구자들에게 한국고전종합DB는 필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울러 1974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번역원의 번역자 양성과정인 고전번역교육원(국역연수원의 후신)은 한문번역에 능통한 국내외 무수한 번역자와 연구자들을 길러냈다. 주요한 국학 연구자들의 대다수가 대학에서 부족했던 한문 공부의 갈증을 바로 이곳에서 해소했다고 볼 수 있다. 국학기관 곳곳에 포진한 이곳 출신 연구자들이 묵묵하게 그 성과를 증명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 비중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이미 대표적이지만 고전문헌의 번역, 연구, 교육을 망라하는 국학기관으로 더욱더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제언을 올린다.
번역원은 우리의 탁월한 고전을 정리하고 번역하여 민족문화를 창달한다는 취지로 최초 설립되었다(1965년 민족문화추진회 창립). 그 취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교육부 산하의 국가기관으로 확대 개편되어 발전하고 있는 지금, 그 방법은 한편으로는 좀 더 전문적이고 엄밀하게 진행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좀 더 개방적으로 대중에 다가갈 필요가 있겠다.
엄밀한 전문성을 기대하는 분야는 역시 번역과 교육 분야이다. 번역 이전의 단계를 좀 더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번역의 대본은 철저하게 정본화 과정을 통해 표점, 교감을 해야 하고, 정본으로 확정된 본을 번역대본으로 활용한다는 확고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현재 번역자들에 의해 일부 대교 등을 통한 교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역시 전면적인 방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분량이 적지 않은 국고문헌이나 주요한 문집번역의 경우 한번 진행하면 수십 년 내에 다시 진행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번역에 앞서 정본을 확정한다면 그 번역의 시효를 더욱 늘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정본작업은 번역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관련하여 번역문헌의 정본화 작업을 진행하는 전문연구자의 양성과 관련한 교육프로그램을 이후 번역원 내 신설이 요청되는 고전번역대학원대학교에서 하나의 과정으로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정본작업에 소용되는 교감과 표점에는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엄밀한 과정을 거친 정본의 확정과 충실한 번역이 한 기관에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진행되는 미래를 그려본다.
다음은 개방성 향상과 대중화 문제이다. 이미 번역원은 다양한 콘텐츠를 바탕으로 대중에 다가가고 있다. 번역원에서 직접 하지 않은 정본이나 원문작업도 원문DB에 올려주는 개방성은 크게 환영할 만하다.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원문 자료가 이곳에 모이길 기대한다.
고전산문과 한시감상, 고전명구와 고전칼럼을 제공하는 '고전산책 메일링서비스'는 3만 5천여 독자에게 발송하고 있다니, 이는 대중화의 첨병임이 분명하다. 다만 그 주옥같은 글들이 일회성의 글이 아니라 하나의 단행본으로 묶여져 전국의 도서관에 비치되었으면 좋겠다. 차제에 번역원이 주관하여 탁월한 고전번역서들을 잇달아 펴내는 노고에 대해 높이 치하한다. 아울러 ‘고전번역 우수도서’를 선정하여 전국의 도서관에 비치하는 제도를 시행하면 좋겠다. 정부 예산만 받쳐 준다면 충실한 고전번역의 결과물에 대한 상찬으로 이만한 대접은 없을 것이다. |
글쓴이함영대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주요 저서
- 『성호학파의 맹자학』, 태학사, 2011
- 『논리적 글쓰기를 위한 인문고전100』, 팬덤북스, 2014
- 『19세기 한 실학자의 발견』(공저),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16
- 『조선시대 예교담론과 예제질서』(공저), 소명출판, 2016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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