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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서울성곽길 순례
1. 누구와 : 산어울마당회원 17명
2. 언제 : 2011년 1월 9일(일)
3. 어디를 : 서울성곽길
4. 날씨 : 맑음
5. 산행코스 숭례문→남산→장충체육관→광희문→흥인지문→낙산→혜화문→숙정문→북악산→창의문→인왕산→소의문→숭례문
6. 거리 및 소요시간 : 약 22.5km / 9시간 22분
7. 기타자료
1) gps트랙
2) 구글맵
3) 구글어스
4) 고도표
산행기
Ι. 총설 산어울마당 신년산행은 매년 '서울성곽길' 걷기로 정하였다. 작년에는 무릎 부상 때문에 참석치 못하여 못내 아쉬움이 컸었고, 이후 나홀로 산행계획을 세웠지만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어느덧 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다.
백두대간의 목적은 단순히 백두대간 길을 따라 걷는데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백두대간을 하면서 우리나라 산맥체계를 이해하고, 그 안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살피는데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서울성곽길 걷기의 목적은 단순히 서울성곽길을 걷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울성곽의 구조를 이해하고, 그 속에 깃든 역사와 문화를 살피는 데 있다.
서울성곽길이 온전히 열린 해는 2007년이다. 1968년 김신조 일당의 1.21시테 이후 북악산과 인왕산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돼 왔으나 1993년 인왕산이 먼저 일반에 개방됐고, 참여정부 때인 2007년에 북악산 숙정문~창의문 구간의 성곽길이 열리며 비로소 서울성곽을 따라 도는 걷기여행이 가능해졌다. 서울성곽길에 관련된 주요자료는 녹색연합에서 가져왔으며, 이를 활용하여 서울성곽길을 짚어보기로 한다.
1. 서울성곽길이란? 서울성곽은 북악산(北岳山)을 주산으로 서울의 안쪽을 감싸는 내사산(內四山)을 중심으로 축성되었고, 그 길이는 18.2km이다. 내사산은 좌청룡에 해당하는 낙산 (駱山), 우백호는 인왕산(仁旺山), 남주작은 목멱산(木覓山, 현 南山), 북현무는 백악산(白岳山, 현 北岳山) 등이고, 내사산의 줄기와 능선을 따라 사방으로 도성의 문이 만들어 진 것이 사대문(四大門)이고, 사대문의 중간중간에 만들어진 작은 문이 사소문(四小門)이다. 4대문 중 흥인지문은 성문을 이중으로 보호하기 위한 옹성(甕城)을 쌓았고, 북문인 숙정문은 원래 숙청문이었는데 이 숙청문은 비밀통로인 암문으로 문루(門樓)를 세우지 않았다.
서울성곽의 4소문은 동북의 홍화문(弘化門, 동소문이라고도 불렀으며, 중종 6년(1511)에 혜화문(惠化門)으로 이름을 바꿈), 동남의 광희문(光熙門, 남소문이라고 불림), 서북의 창의문(彰義門, 북소문이라고 불림), 서남의 소덕문(昭德門, 서소문이라고도 불렀으며, 영조 20년(1744) 문루를 세우면서 소의문(昭義門)으로 이름을 바꿈) 등이 있고, 대문의 보조용도로 활용되었다.
2. 서울성곽길 구간 나눔 서울성곽길은 내사산을 기준으로 편의상 4구간으로 나누었다. . 1구간(숭례문~장충체육관, 약 6km) : 서울의 안산(案山), 남산 - '전통역사와 현대문화를 만나다' . 2구간(장충체육관~혜화문, 약 5.5km) : 북악의 좌청룡, 낙산(駱山) - '과거와 현대의 공존, 예술과 패션을 만나다' . 3구간(혜화문~창의문, 약 5.5km) : 서울의 주산, 북악산(北岳山) - '600년 도읍지 한양을 만나다' . 4구간(창의문~숭례문, 약6km) : 북악의 우백호, 인왕산(仁旺山) - '조선건국사와 현대사가 만나다'
3. 서울성곽 구조 및 축조기법 1) 수선전도(首善全圖) 수선전도는 1840년대에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목판본 서울지도로 수선이란 한서 (漢書) 유림전(儒林傳)에 '으뜸 가는 선을 세움은 서울에서 비롯한다'는 뜻으로 쓰인 낱말로서, 서울을 지칭하는 별호로 쓰였다. 수선전도에는 도성의 주요도로, 시설, 성밖의 마을과 산, 그리고 절까지도 자세하게 담겨져 있고, 그 정확성과와 정밀함, 그리고 크기(가로67.5cm, 세로 82.5cm) 때문에 서울 도성지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지도로 평가받고 있다.
2) 서울성곽의 용어 설명 . 성곽(城郭) : 성의둘레. 내성(內城)과 외성(外城) 전부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성(城)은 내성, 곽(郭)은 외성을 뜻한다. . 체성(體成) : 성곽의 몸체가 되는 부분으로 크고작은 돌드로 가지런히 쌓아올린 부분이다. . 곡장(曲墻)과 치성(雉城) : 성벽으로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성곽의 일부를 자연 지세에 맞추어 돌출시킨 것으로 둥근모양을 곡장이라고 하고 각이 진 형태를 치성이라고 한다. . 암문(暗門) : 성벽에 누각없이 만들어 놓은 문. 정식문이 아니라 대문과 소문 사이에 낸 사잇문으로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필요시에만 사용하는 비밀문이다. . 수문(水門) : 성을 쌓을 때 물의 흐름과 양을 조정하기 위해 물이 흐르는 곳에 설치하는 문으로 성곽의 역할을 하면서도 물이 빠지게 만들었다. 서울 도성에서 가장 낮은 지역은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인데 이곳에는 도성에서 흘러내린 물을 도성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 성벽 수문을 설치하였는데 남산에서 발원된 물이 흐르는 곳에 설치된 이간수문과 청계천의 물이 흐르는 곳에 설치된 오간수문이 있다. . 오간수문(五間水門) : 오간수문은 흥인지문과 광희문 사이를 흐르는 청계천 물을 도성의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 만든 수문으로 아치형의 홍예가 다섯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여 오간수문이라고 한다. . 이간수문(二間水門) : 이간수문은 남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도성 바깥으로 내보내기 위해 만든 수문으로 아치형의 홍예가 두칸으로 이루어져 있어 이간수문이라고 한다. . 홍예(虹霓) : 성문 아랫쪽에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아치형의 문이다. . 문루(門樓) : 성문의 위쪽에 지은 누각이다. . 옹성(甕城) :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또 한겹의 성벽을 둘러쌓아 이중으로 쌓은 성벽을 말한다.
2) 시대별 축조기법 서울성곽은 뒷면에 쌓은 흙의 압력을 견디게 하기 위해 위로 올라갈 수록 안쪽으로 기우는 '물림쌓기' 기법을 사용하였다. . 태조 5년(1396)에 축성된 성곽 - 큰 메주만한 자연석재를 사용하여 성곽을 쌓았다. . 세종 4년(1422)에 축성된 성곽 - 하부는 대형석재를 사용하여는데 직각적으로 다듬지 않고 둥글둥글한 형태로 된 석재를 이용하여 쌓았고, 상부는 태조때의 잔돌을 그대로 사용하여 쌓았다. . 숙종 30년(1704)에 축성된 성곽 - 정방향으로 다듬어 벽돌 쌓듯이 빈틈이 없도록 견고히 쌓았다.
4) 서울성곽길을 만든 이유 제주도 올레를 필두로 대한민국 전역은 걷기 열풍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러나 아직 즐겁고 안전하게 걸으면서 자연과 문화, 역사를 폭넓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북한산과 관악산 등 일부 산에 등산객들이 집중되어 수용의 한계를 넘어선지 오래이다. 또한 정상정복형 등산이나 종주중심의 산행문화는 장애인이나 노인, 그리고 어린아이가 즐기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대안이 필요한 시점에 있었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개선하여 자연과 문화, 역사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코스를 개발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게 하고, 가족중심의 걷기문화를 정착시키고, 시민의 건강을 지키고자 함이다.
5) 서울성곽길 걷기의 마음가짐 및 준비물 서울성곽길은 자연과 대화하는 곳이고, 역사를 반추해보는 곳이고, 동료들과 함께 호흡하는 곳이다. 그래서 담배꽁초나 쓰레기 안 버리기는 기본이고, 자연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걷기, 문화유산 보호하기, 교행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걷기 등 성숙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분증은 반드시 챙겨야 한다.
Ⅱ. 구간별 여정
◇ 1구간(숭례문~장충체육관, 약 6km) : 서울의 안산(案山), 남산 - '전통역사와 현대문화를 만나다'
<1구간 구글맵>
<1구간 구글어스>
<1구간 고도표>
오늘은 산어울마당 신년산행을 하는 날이다. 작년에 무릎 부상 때문에 동료들의 뒷모습만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집으로 향해야 했던 아픈 추억이 뇌리를 스친다. 아직도 성하지 못한 무릎이지만 천천히 걸으면 못갈 것 같지는 않다.
우리의 산행을 시샘하는지 날씨는 차갑고 매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명의 예정인원이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1구간 시작지점인 숭례문을 가려면 서울역 4번 출구로 나가야 한다. 서울역 4번 출구를 나서면 약 200미터 전방에 숭례문이 아닌 숭례문 건설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역 4번 출구>
* 숭례문(崇禮門)
숭례문은 3년 전 방화로 인하여 소실되었고, 현재 복원공사가 진행 중이고, 2012년에 완공된다고 한다. 다시 완공된다고 한들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없고, 더 이상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에 미리 문화재 보호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 같다.
<숭례문 앞 기념촬영>
<숭례문 발굴조사>
<숭례문 건립>
숭례문은 현재 외부인의 접근을 통제하기 위한 가림막이 설치되있고, 기온이나 강수, 바람 등 기상요인에 의한 추가 붕괴 방지를 위하여 덮개를 씌운 상태이다. 숭례문 주변에는 숭례문의 발굴과정과 건립계획, 그리고 년도별 사진을 배치해 놓아 실모습은 볼 수 없지만 간접적이나마 숭례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1890년대 모습, 1940년대 모습, 1980년대 모습 등 그 시대상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아주 신기하고 유익하다.
숭례문 오른쪽에 난 계단을 통해 소월길로 올라서고, 이 길을 따라 서울 도성의 안산(案山)인 남산을 향한다. 숭례문 이후 서울성곽은 sk빌딩 앞 일부를 제외하곤 남산분수대까지 도심과 공원개발로 인하여 소실된 상태이다. 성곽없는 성곽길 순례,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든다.
* 남산(南山)
도동삼거리에서 건널목을 건너 남산공원에 들어서자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드넓은 공원광장이 우리를 반긴다. 공원계단길을 올라 백범광장으로 가려는데 아직 보수공사가 끝나지 않아 펜스가 쳐져 있다. 하는 수없이 왼쪽으로 우회하여 안중근의사 기념관으로 직행한다.
<교육정보연구원>
<안중근의사 동상>
<안중근의사 글귀>
안중근의사 기념관에는 안중근의사 동상이 우뚝 서있고, 주변에는 안중근의사가 사용했던 글귀들이 커단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바로 위는 남산분수대이고, 겨울철이라서 분수대가 가동되지 않아 을씨년스런 기분이 든다.
<남산분수대광장 앞 조형물>
남산분수대 이후부터 서울성곽은 잘 정비되어 있고, 주변의 나무와 어우러져 고풍스런 멋을 자아낸다. 서울성곽 계단길을 천천히 오르다보니 전망대가 보이고,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우리가 오늘 가야할 성곽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안산>
<북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악산(왼쪽), 북한산 형제봉(중간)>
오늘 우리의 여정은 숭례문을 출발하여 내사산을 돈 후 다시 숭례문으로 돌아가는 원점회귀산행이다. 거리가 약 23km 정도 되기 때문에 하루 산행치고는 약간 길다 라는 생각이 들지만 해마다 하는 산행이기에 체력적으로는 별 문제는 없다. 전망대 이후 남산 정상까지는 가파른 계단길로 이어진다.
<남산 정상으로 오르는 계단길>
<남산 케이블카>
남산케이블카 종점에서 조금 더 오르니 남산 정상이고, 남산봉수대가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긴다.
* 남산 봉수대[烽燧臺]
<남산 봉수대>
봉수(烽燧)는 햇불과 연기를 뜻하고, 밤에 올리는 봉화(烽火)를 봉(烽)이라 하고, 낮에 올리는 봉연(烽烟)을 수(燧)라고 한다. 예전에는 통신수단이 발달되지 않았기에 낮엔 연기를 피우고 밤엔 불을 피워 긴급한 상황을 알렸다.
<국사당터 표시석>
팔각정 앞엔 국사당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태조는 한양 천도 뒤 이곳에 목멱산신을 모시는 사당을 짓고 나라의 평안을 비는 제를 올렸다. 일제가 이곳에 조선신궁을 지으면서 국사당은 인왕산 기슭으로 옮겨졌다.
<N서울타워 옆 화환>
<남산 전망대>
N서울타워는 남산의 정상이다. 타워에 올라가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고, 남산의 위치가 서울 도심이기에 서울 전체의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바라볼 수 있다. 남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목멱산 봉수대터 표시석이 설치되어 있다. 현재 봉수대 위치와 원래 봉수대 위치가 조금 다른가 보다.
<봉수대터 표시석>
남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니 남산 순환버스정류장이 있고, 이곳에서 남산순환도로와 만난다. 서울성곽은 남산정상에서 남동쪽 산봉우리로 이어진다. 하지만 남동쪽 산봉우리 들머리부터는 출입통제구역이기 때문에 별수없이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
<남산 친환경 전기버스>
<남산순환도로 전망대에서 바라본 N서울타워>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중간중간에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도 취하고 주변 경관을 감상할 수 있어서 아주 좋다.
<남동쪽 산봉우리에서 이어진 서울성곽>
<국립극장>
남산순환도로를 따라 U자 모양으로 남동쪽 산봉우리를 우회하여 진행하니 다시 서울성곽과 만나지만, 서울성곽은 장충단길까지만 이어지지고, 이후부터는 성곽이 소실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유지라서 들어갈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국립극장을 지나 자유총연맹 앞 마당을 가로질러 우회한다.
<한국자유총연맹 정문>
자유총연맹 앞마당을 가로질러 우회하면 서울성곽과 다시 만나는데, 서울성곽은 좌측으로 90도 정도 꺽여져서 장충단공원을 향하여 뻗어간다. 여기서부터는 서울성곽은 잘 정비되어 있고, 길은 아주 평탄한 오솔길이고, 오른쪽 성곽 너머로 서울 시가지가 엿보인다.
<평탄한 오솔길>
<첫 철문>
첫번째 철문을 지나고 두번째 철문을 지나니 왼쪽으로 신라호텔이 보이고, 등로 및 쉼터 등이 잘 조성되어 있다.
<쉼터>
서울성곽의 남동쪽은 주로 경상 지역 주민들이, 남서쪽은 주로 전라 지역 주민들이 성곽을 쌓았다고 한다. 1구간은 남동쪽이므로 경상 주민들이 서울성곽 쌓기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서울성곽은 신라호텔을 지나서 장충체육관이 보이는 동호로까지 이어지고, 이곳에서 광희문까지는 도심개발로 인하여 성곽이 소실되고 없다. 숭례문에서 여기까지 서울성곽길 1구간이고, 오전 8시 23분에 숭례문을 출발하여 약 2시간만에 1구간 순례를 마무리 한다.
서울성곽 1구간은 숭례문, 봉수대, 국사당 등 전통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남산공원, 김구광장, 안중근기념관, N서울타워, 신라호텔, 장충체육관으로 대별되는 현대문명이 함께 공존하여 과거와 현재의 조화가 꾸준히 모색되고 있는 구간이다.
◇ 2구간(장충체육관~혜화문, 약 5.5km) : 북악의 좌청룡, 낙산 - '과거와 현대의 공존, 예술과 패션이 만나다'
2구간 시작은 실제로는 장충체육관이 아니고 동호로부터이다. 장충체육관은 서울성곽길로부터 약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2구간의 중심산은 낙산이고, 낙산은 서울 도성의 주산인 북악산의 왼쪽을 지키는 산이다.
<2구간 구글맵>
<2구간 구글어스>
<2구간 고도표>
<장충체육관>
동호로에서 서울성곽길 2구간을 이어가려면 동호로 맞은편 삼성자동차 장충지점과 아세아빌딩 사잇길로 들어서면 되고, 이 길은 동호로20길이다. 동호로를 끝으로 서울성곽은 끊겼지만 동호로20길을 걸으면서 왼쪽 건물의 축대를 바라보면 서울성곽의 흔적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사유지라 돌이킬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왠지 허전한 마음이 드는 이유는 어인 일일까.
<삼성자동차 장충지점>
동호로20길로 들어서서 성곽없는 성곽길을 막연히 걷다보니 천주교신당동교회와 신승빌라를 지난 후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하고, 다시 50미터 전방에 있는 사거리(금호동길)에서 좌회전 한다.
<금호동길 사거리 오른쪽 코너>
조금 걷다보니 광희문교회를 지나게 되고, 150미터 전방에 남소문인 광희문이 보인다.
<광희문교회>
* 광희문(光熙門)
<남소문 광희문>
광희문은 서소문과 함께 도성 안의 시신을 내보내던 문이었다고 한다. 광희문은 원래 길 한복판에 있었는데 1975년 문을 현위치로 옮겨 문루와 함께 복원했단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서울성곽길은 광희문 맞은편에 있는 나인스포츠에서 우회전 하고, 조금 진행 후 삼거리에서 다시 좌회전 한 후 한양공고 쪽으로 길을 건넌다. 옛 동대문운동장 터엔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 공사가 한창이다. 최근 운동장 땅 밑에서 서울성곽 터가 발견됐고,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중이다. 80여년 전 일제가 흥인지문~광희문을 잇는 성곽을 허물고 동궁 결혼기념으로 경성운동장을 만든 것이 동대문운동장의 시초다. 발굴 뒤 성곽 일부도 복원할 예정이라고 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공사현장>
서울성곽길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우로 끼고 돌아 오간수교로 이어진다. 오간수교는 원래 오간수문이 있었던 자리였는데 청계천 복개공사로 완전히 없어졌다가 2003년 7월부터 청계천복원사업의 일환으로 청계천 역사유적을 발굴할 때 오간수문의 아래쪽 끝받침과 홍예(虹霓:무지개 모양의 구조물) 기초부, 돌거북 등이 발굴됨에 따라 2004년부터 복원사업을 추진하였다. 새롭게 만들어진 오간수교는 오간수문의 전통적인 모양을 살려 5개 수문과 무지개 모양의 홍예 아치를 재현하였다. 오간수문은 홍예로 된 수문이 5칸, 즉 5개의 수문으로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란다.
<오간수교>
서울성곽길은 오간수교를 지나 흥인지문으로 이어진다.
* 흥인지문(興仁之門)
국보 제1호인 흥인지문을 잠시 둘러본 후 동대문역 6번출구로 들어가 1번 출구로 나온 후 창신성곽길로 들어선다.
<동대문역>
창신성곽길 들머리에는 낙산공원 1.2km라는 이정목이 세워져 있다.
<낙산공원 안내 표지목>
* 낙산(駱山)
낙산은 고도가 150m도 채 되지 않은 야산이기에 산이라기보다는 산책길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낙산성곽길>
잘 정비된 낙산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니 선조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하다. 낙산공원암문을 통해 낙산공원 안쪽으로 들어간다.
<낙산공원암문1>
<낙산공원 안쪽 성곽길>
낙산공원길 왼쪽은 다닥다닥 붙은 옛 주택가들이 이어진다. 이화동 산동네란다. 북쪽을 바라보니 우리가 잠시 후에 가야할 성곽길인 북악산.인왕산의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그 뒤쪽으로는 북한산 산줄기가 살짝이 엿보인다.
<낙산에서 바라본 보현봉>
<낙산에서 바라본 북악산>
<낙산에서 바라본 안산 인왕산>
<낙산 쉼터>
낙산쉼터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는다. 추위 때문에 오래 쉴 수도 없다. 성곽길을 따라 걷다보니 다시 암문이 하나 나오고, 이곳에서 낙산공원 밖으로 나간다.
<낙산공원 암문2>
<하단은 세종때 석축기법, 중간은 숙종때, 상단은 최근에 축조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낙산공원 외성곽길을 따라 서울성곽길 여행은 계속되고, 축대처럼 높게 쌓아올려진 낙산성곽은 시대별로 뚜렷한 차이점을 드러낸다. 위 사진에서 하부는 대형석재를 사용하고 직각적으로 다듬지 않고 둥글둥글한 형태로 된 석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세종때 축성된 것이고, 중간은 정방향의 석재가 사용된 것으로 보아 숙종때 축성된 것이고, 상단은 시멘트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최근에 축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혜화문으로 이어진 낙산성곽길)>
<낙산성곽 끝에서 바라본 혜화문>
서울(낙산)성곽길은 동소문로에서 끊기고 맞은편 혜화문에서 다시 이어진다. 혜화문으로 가기 위해서 한성대입구역 4번출구로 들어가 5번 출구로 나온다. 서울성곽길 2구간은 장충체육관에서 시작되어 헤화문에서 끝난다. 거리는 약 5.5km이고, 약 2시간이 걸렸다.
<한성대입구역>
서울성곽길 2구간 주된 산은 낙산이고, 주된 도심은 동대문 패션가이다. 전통 역사와 자연, 그리고 현대적인 패션디자인이 공존의 길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구간이다.
◇ 3구간(혜화문~창의문, 약 5.5km) : 서울의 주산, 북악산(北岳山) - '600년 도읍지 한양을 만나다'
3구간은 경사가 급한 지역과 계단이 많아 다른 구간에 비해 난이도가 조금 높지만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참모습을 드러내는 핵심구간이다. 창의문과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종묘, 성균관, 삼청동, 북촌 한옥마을, 성북동의 역사문화자원을 볼 수 있다.
<3구간 구글맵>
<3구간 구글어스>
<3구간 고도표>
* 혜화문(駱山)
원래 혜화문의 위치는 동소문로에 있었고, 양주·포천 방면으로 통하는 중요한 출입구 구실을 하였단다. 그러나 일제가 전차길을 내면서 헐어버렸고, 1992년 복원시 도로에 복원을 할 수 없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을 하였단다.
<동소문 혜화문>
혜화문에서 이어지는 서울성곽길은 거대한 성벽같이 높고 위엄이 있다. 또한 정방형의 석재로 쌓아져 단아하고 깔끔하다. 그런데 조금 가다보면 서울성곽길은 아쉽게도 왼쪽 성곽 위로 주택가가 형성되었고, 주택의 축대 역할을 하고 있다. 도성을 지켜야 할 성곽이 주택을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또 혜화문 근처 서울성곽 위에 위치해 있는 서울시장 공관을 서울시가 서울성곽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별도 건물을 지어놓고도 공관이전을 미루 있단다. 서울시장 공관이 서울성곽 복원의 걸림돌이 되지 않기 바란다.
<높고 위엄이 있는 서울성곽>
<현대와 과거의 묘한 대조>
서울성곽길은 두산빌라를 끝으로 끊기고 서울과학고와 성북쉼터 사잇길에서 다시 이어진다. 서울과학고등학교 맞은편에 있는 서울왕돈까스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서울왕돈까스>
서울왕돈까스집은 이 주위의 맛집이라고 한다. 휴일인데도 빈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돈까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끼 떼우는 데는 그런대로 괞찮은 것 같다.
* 북악산 [北岳山 ]
<서울성곽길 북악산 진입로>
점심 후 서울 도성의 진산 북악산 진입로로 들어선다. 서울성곽은 북악산 진입로 오른쪽 담장 역할을 대신한다. 휴일이지만 날씨가 추워서인지 산객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숲길을 한동안 걷다보니 와룡공원쉼터에 도착한다. 이곳이 일반적으로 북악산 산행의 출발점으로 삼는 곳이란다.
<말바위 안내소 가는길>
와룡공원쉼터 암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성곽은 높고 우람차다. 아름드리 나무는 없지만 성곽 주위로 숲길이 잘 조성되어 옛 도성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추운 날씨지만 추위가 몸속으로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 만큼 선조들의 피와 땀이 얼룩졌기 때문이다. 와룡공원쉼터에서 약400미터 정도 걸어가니 북악산 내부로 들어가는 나무계단이 있다. 나무계단을 통해 북악산 내부로 들어선다.. 나무계단에서바라보니 저멀리 불암산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새 눈으로만 불수도북을 해버린다.
<나무계단에서 바라본 수락산 불암산>
<나무계단에서 바라본 도봉산>
<말바위 안내소>
나무계단에서 내려와 성곽길을 조금 걷다보니 말바위 안내소에 도착한다. 신분증을 제시하고 패찰을 교부받는다. 작년에는 신분증이 없으면 주민등록번호를 조회하여 입장을 시켜줬는데 올 해는 신분증이 없으면 일절 들여보내주지 않는다. 우리 일행 중 두사람이 신분증을 미지참하여 북악산 밖으로 나가 우회하여 창의문으로 진행한다.
<말바위안내소에서 바라본 삼청각>
말바위 안내소에서 동쪽을 바라보니 홍련사 길상사 등 유서 깊은 사찰이 즐비하다. 말바위 안내소에서 약 200미터 정도 걸어가니 4대문 중 북대문인 숙정문에 이른다.
* 숙정문(肅靖門)
<숙정문 기념촬영>
숙정문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잠시 휴식 후 성곽길 여행을 계속한다. 숙정문부터는 계단길이 아주 가파르다. 숨이 목까지 차올 무렵 곡장갈림길이 나온다. 성곽을 따르는 오른쪽길은 막아놓았기에 왼쪽길을 택하여 가다가 곡장으로 곧장 오른다.
곡장은 성벽으로 기어오르는 적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시설로 성곽의 일부를 자연 지세에 맞추어 돌출시킨 것으로 둥근모양을 한 형태를 말하고, 각이 진 형태를 치성이라고 한단다. 곡장의 실재 모양은 방공호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밖을 감시하는 감시창이 있으며, 감시창을 통해서 보면 북한산 및 서울 도심이 또렷이 시야에 들어온다. 아쉽지만 이곳은 사진촬영 금지 장소이다.
급경사 계단길을 내려갔다시 다시 급경사 계단길을 오르니 청운대이다. 청운대는 근래에 북한산 백운대를 본따서 청운대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다시 250미터 정도 급경사 계단길을 헉헉거리면서 오르니 한양 도성의 주산 정상임을 알리는 백악산 정상석이 우리를 반긴다.
<북악산 정상석>
노무현 정부 이전에는 이곳에 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북악산도 시민의 것이므로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 라는 고 고무현 대통령님의 신념이 있었기에 내가 오늘 여기에 머물 수 있는 것이다. 님은 갔어도 님이 그토록 원했던 '사람사는 세상'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북악산 정상 바위>
북악산 정상에서는 서울 도성의 주산답게 도성의 울타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우백호인 인왕산은 서쪽에 우뚝 솟아있고, 북악산에서 인왕산까지 성곽의 이어짐이 또럿하게 보인다. 좌청룡인 낙산성곽도 동쪽에 병풍을 쳐 놓은 듯 고풍스런 멋을 자아낸다. 남산은 뿌연 가스 때문에 희미하긴 하지만 N서울타워가 우뚝 솟아있어 남주작의 위용을 뽐내는듯 하다. 파노라마 같이 펼쳐진 600년 도읍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고, 서울 도성이 천혜의 요새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서울 도성의 젖줄인 청계천의 발원지는 북악산 서쪽 계곡이고, 길이 10.84km, 유역면적 59.83㎢이다. 청계천은 동쪽으로 흐르면서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 등 내사산의 물줄기를 담은 후 서울성곽의 수문인 오간수교를 빠져나가 왕십리 밖 살곶이다리[箭串橋] 근처에서 중랑천(中浪川)과 합수된다.
북악산에서 내려가는 성곽길은 급경사 계단길이다. 겨울이기 때문에 미끄러지 않도록 조심해서 내려간다. 도중 전망대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보현봉을 필두로 비봉능선의 봉우리들이 저마다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북악산에서 바라본 북한산>
<창의문 안내소>
창의문 안내소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5분이다. 혜화문에서 출발한 지 약 3시간(식사시간 포함)만이다. 패찰을 돌려주고 창의문으로 내려간다.
◇ 4구간(창의문~숭례문, 약6km) : 북악의 우백호, 인왕산(仁旺山) - '조선건국사와 현대사가 만나다'
<4구간 구글맵>
<4구간 구글어스>
<4구간 고도표>
† 인왕산의 조선건국에 얽힌 이야기 * 인왕산의 조선건국 일화와 탕춘대성 인왕산 선바위는 신성한 대상물이 되고 있는 바위로,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은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불교의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부른단다.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성을 쌓을 때 당시의 문신이었던 정도전과 왕사였던 무학대사가 선바위를 안에 두느냐 성 밖에 두느냐로 크게 의견대립을 보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만일 이 바위를 성 안에 두면 불교가 왕성하여 유학에 조예가 깊은 문신들은 힘을 못쓰고, 성 밖에 두면 반대로 승려가 힘을 못쓰게 된다는 주장이었다. 결정을 못 내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었는데 특이하게도 눈이 녹지 않은 자리가 있어 태조는 이것을 성터라고 생각하였고, 결국 선바위는 정도전의 의견에 따라 성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한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국방과 수도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한양도성과 북한산성 연결하여 성을 쌓았는데, 이것이 바로 탕춘대 산성이다. 인왕산 동북쪽 기차바위부터 북한산 서남쪽 비봉까지 연결된 산성이다.
* 선바위와 국사당 인왕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 오른쪽에는 신기하게 생긴 바위가 하나 있는데,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은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하여 불교의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라부른단다. 예로부터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모두 이루어진다고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되어오다가 일제시대에 남산에 있던 목면신사(국사당)를 이곳에 옮겨오면서 선바위에 대한 신앙은 무속신앙을 강하게 띠었고, 오늘날까지 기도처로 유명하다.
* 창의문(彰義門)
<창의문>
창의문은 서울 사소문 중 유일하게 그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문으로 이 곳 계곡의 이름을 따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고 한다. 창의(彰義)란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다. 창의문에서 청운동 방향으로 약간 내려가면1.21사태 때 순직한 고 최규식 총경의 동상이 있다. 실제로 최규식 총경이 순직한 곳은 이곳이 아니라 청와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청운실버센터라고 한다. 그곳에는 고인의 얼을 기리기 위해 종로구와 종로경찰서에서 표지석을 세웠다고 한다.
<창의문과 북악산>
'자하문로'를 건너 맞은편 소로를 통해서 인왕산을 향한다. 서울성곽은 자하문로에서 약 150m 정도 오르면 인왕산길을 넘어 인왕산으로 연결되지만 통제구역이기 때문에 별수없이 400미터를 더 진행한 후 통제소가 있는 곳에서 인왕산으로 들어선다.
<인왕산 들머리>
인왕산 성곽길은 처음에는 외곽길로 이어지다가 암문을 통과하여 내부로 들어선 이후부터는 급경사 계단길로 이어진다. 산행 도중 뒤를 돌아보니 서울성곽은 인왕산에서 북악산 정상까지 울타리를 쳐 놓은 듯 힘차게 뻗어있다. 성곽의 여장은 보수공사를 한 후라서 아주 깔끔하고 산뜻하다.
<인왕산 성곽길>
인왕산 정상이 지척에 보이는 봉우리에 도착하고, 이곳은 인왕산 정상쪽으로 가는 길과 산줄기가 북쪽으로 뻗은 기차바위능선이 갈리는 곳이다. 이 기차바위 능선에서 북한산 비봉까지 이어진 산성이 탕춘대성이고, 1715년(숙종 41)에 서울의 도성과 북한산성의 방어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었다.
<인왕산정상>
내사산의 마지막 산인 인왕산 정상에 도착한다. 영하의 매서운 추위에도 불구하고 콧등에 땀방울이 맺힌다. 그 만큼 경사도가 세고, 그 만큼 산성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인왕산은 내사산의 주산인 북악산 서쪽에 위치하여 주산의 오른쪽 방호를 맡는다.
<인왕산에서 바라본 비봉능선>
<인왕산에서 바라본 보현봉 문수봉>
<인왕산에서 바라본 청와대>
인왕산 정상은 우백호답게 서울의 주요산과 도심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내사산의 산줄기가 서울 도심에 동그라미를 그리고 있고, 북쪽으로는 북한산, 서쪽으로는 봉산, 동쪽으로는 용마산, 남쪽으로는 관악산 등 외사산의 산줄기도 병풍처럼 둘러쳐져 서울의 외곽을 감싸고 있다. 또한 북악산에서 보이지 않던 청와대가 선명하게 보이고, 한강은 서울을 동서로 가르고 있고, 주요고궁과 공원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인왕산 곡장>
인왕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 계단길이다. 난간을 붙잡은 채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인왕산 성곽의 곡장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갈 수가 없다. 아직 공사중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까지 공사가 완료된다고 하였는데.... 스님이 장삼을 입은 모습의 '선바위'와 태조 때 남산 팔각정 자리에 세웠던 목멱신사를 일제 때 현재의 자리로 옮긴 '국사당'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통제소가 있는 곳에서 왼쪽길로 내려선다. 별 수 없이 눈으로만 성곽을 따라간다. 인왕산 순환길로 내려서고, 이 길을 따라 서울성곽이 있는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인왕산길 삼거리 호랑이상>
<공사로 인하여 출입금지된 인왕산 성곽길>
군초소가 있는 곳에서 다시 인왕산 성곽길과 만나지만, 인왕산 성곽길은 보수공사로 인하여 철문이 굳게 잠겨있고. 굽이쳐 오르는 성곽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곳부터는 서울성곽길 조성공사로 인하여 성곽길은 아주 잘 정비되어 있다. 성곽 안쪽길과 바깥쪽길 어디로 진행해도 상관은 없으나 처음에는 외성곽길로 진행하다가 중간 암문부터 안쪽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외성곽길>
외성곽길은 담장의 높이가 5미터 정도로 높고 위엄이 있다. 성곽을 따라 내려가다보면 각 시대별 성곽쌓기기법을 번갈아 볼 수 있다.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호젓하고, 성곽 주변을 두루 조망을 할 수 있어서 좋다.
<암문>
중간 암문을 통해 성곽 안쪽으로 들어선다. 안쪽은 운동시설, 의자, 쉼터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완만한 성곽길을 걷는 기분이 솔솔하다. 어두운 그림자가 점차 드리우고, 바람은 더욱 냉기를 뿜는다.
<날머리>
날머리에는 인왕산 전체 안내도가 있어 지나온 길을 반추해볼 수 있다.
<옥경이 슈퍼>
날머리 맞은편 왼쪽 편에 옥경이슈퍼가 있고, 서울성곽길은 곧장 아래로 이어지지만 오른쪽 주택가로 내려가면 행주대첩의 권율장군의 집터를 구경할 수 있다. 오른쪽 주택가로 내려서서 두번째 주택을 끼고 돌아 대문을 나서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보인다. 이곳이 권율장군 집터이다.
<권율장군집터 및 보호수>
이 은행나무는 권율장군이 심었다고 하고, 이 은행나무 때문에 이 곳의 지명이 행촌동(杏村洞)이 되었단다. 또한 이곳은 종로구 역사탐방로이기 때문에 답사차 나온 학상들도 보인다.
옥경이 슈퍼에서 100미터 정도 내려가면 상록수 어린이집이 있고, 이곳부터 서울성곽은 소실되고 없다.
<상록수 어린이집>
서울성곽길은 정우빌라6차 건물을 끼고 오른쪽으로 꺽이고, 삼거리슈퍼에서 왼쪽으로 꺽인다. 조금 가다보니 홍난파 가옥이 고풍스런 자태를 드러낸다.
<홍난판 가옥>
성곽은 없어졌지만 성곽의 흔적은 주택가 곳곳에 남아있다. 오랫동안 묻혀있던 서울성곽의 흔적들이 서울성곽길 조성공사로 인하여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 다행이다. 서울성곽의 흔적은 옛 기상청 건물 및 서울복지재단 담장으로 이어진다.
<강북 삼성병원 안 경교장>
<경교장 복원공사>
새문안길을 앞두고 오른쪽 끝 건물이 강북삼성병원(옛 고려병원)이고, 이곳 안에 경교장이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뒤 임시정부 집무실 겸 숙소로 썼던 곳이자,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진 장소이다. 2층에 집무실을 복원해 백범기념실을 만들었단다. 삼성병원쪽은 병원 부속건물로 쓰던 경교장의 내부 전체를 2011년까지 옛 모습대로 복원할 계획이란다. 아쉽지만 현재는 토요일 한정된 시간에만 개방하기 때문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다.
* 돈의문(光熙門)
<강북삼성병원 앞 돈의문터>
돈의문은 일제때 도로확장 공사로 인하여 철거되었고, 현재는 강북삼성병원 앞 나무계단길 벽에 돈의문터 표식을 해놓았다. 세종4년 1422년 서전문을 헐고 돈의문(서대문)을 지금의 강북삼성병원 앞 고개에 세웠고, 사람들은 이 문을 '새문(新門)’이라 불렀고, 지금도 이 지명이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새문안길'이나 '신문로’라는 지명은 여기에서 비롯됐다.
<느티나무>
서울성곽길은 돈의문터~창덕여중~이화여고~소덕문터로 이어지지만 사유지라서 들어갈 수 없다. 하는 수없이 우회로인 경향신문앞 정동길로 들어선다.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가 가장 먼저 반긴다. 창덕여중과 이화여고를 지나고 정동극장이 눈에 띄인다.
<이화여고>
<정동극장>
<정동제일교회>
정동제일교회를 우측으로 끼고 돌아 '러시아대사관'과 한국 최초의 근대식 중등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을 지나 외환은행 쪽으로 서소문로를 건넌다. 건널목에서 약 150미터 정도 서소문공원 방향으로 가면 시위병영터가 있고, 이곳에서 30미터 정도 더 가면 왼쪽 중앙빌딩주차장 담 위에 소덕문 표지석이 있다.
* 소의문(昭義門)
<시위병영터 표지석>
<소덕문터 표지석>
소의문은 광희문과 함께 시체를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 구실을 하였단다. '소서문로'라는 지명은 소의문을 소서문이라고 불리는 데서 유래한다.
<중앙일보>
중앙빌딩 주차장을 왼쪽으로 끼고 도니 오른쪽에 중앙일보 빌딩이 우뚝 서있다. 서울성곽은 소덕문터~대한통운본사~대한상공회의소~숭례문으로 이어진다. 상공회의소 건물 담에 성곽의 흔적이 남아있다. 다시 숭례문을 맞는다. '한양도성의 정문'이라는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런데 막상 숭례문은 보이지 않는다. 초저녁의 차가운 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4구간 거리는 6km이고, 2시간 37분 걸렸다. 전체 gps 거리는 22.5km이고, 출발한지 9시간 22분이 걸렸다.
<숭례문>
III. 결론
서울성곽길은 역사여행이고 느림의 미학을 실천하는 장소이다. 체력이 되면 얼마든지 하루에 돌 수 있다. 하지만 빨리 가는 만큼 놓치는 것은 많아진다. 역사적 사실을 살피면서,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자연과 대화를 하면서 여행을 즐기는 것이 좋지 않나 생각한다.
우리 카페에서 하루에 전체코스를 잡은 이유는 전체 코스를 익히게 함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일단 전체코스를 익히고 나서 틈이 나는 대로 구간별로 나눠서 천천히 여행을 한다면 그보다 좋을 순 없을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1395년 9월 축성을 담당할 '도성축조도감'이 설치되었고, 도성축조공사는1396년 1월 9일부터 부터 시작하여 2월 28일까지 총 49일이 걸렸다고 한다. 엄청난 속도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조선의 축성기술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전국에서 성곽 쌓기에 동원된 백성들은 11만 8천명(당시 한양의 인구는 5만명)에 이르렀고, 공사 중 사망자만 872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엄동설한에 전국 각지에서 징발된 노비와 빈농과 힘없는 백성들이 감당해야 했던 뼈아픈 노역의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으리라. 그 곳에서 생사를 달리한 민초들의 운명은 또 얼마나 허망한가. 누구를 위해, 왜 그들은 그러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는가.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다.
서울에서 수십년 동안 살았지만 오늘 여행을 통해서 서울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관심 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오늘 너무 많은 것을 보았고,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너무 보람찬 하루였다.
앞으로 서울성곽길과 서울둘레길이 많은 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트레킹코스가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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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말 훌륭한 자료입니다. 가까운 시일내에 저도 한번 다녀오고자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화일이 열리지 않던데요? seonggwag(110109).gpx
죄송하지만 스크랩을 했기 대문에 수정을 할 수 없네요.
1번부터 4번까지 합한 것이 마지막 파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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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자료 후답자에게 많은 도웁이 되네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