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본문 누가복음 10장 25-37절
찬송 453장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강도들은 그에게서 가진 것을 모두 빼앗고 거의 죽을 지경이 되도록 상해를 입힌 다음, 그를 길 가에 버려두고 가버렸습니다. 마침 그때 그 길로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된 사람을 못 본 체하고 도망치듯 지나가버렸습니다. 머뭇거리다가는 자기들도 강도 만난 사람과 같은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겠지요. 아니면 쓸데없이 남의 일에 간섭해서 손해 볼 필요가 없다는 계산 때문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뒤를 이어 한 사마리아 사람도 그 길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였을까요?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가 타고 가던 나귀에 그를 태우고 여관까지 데려가 극진한 사랑으로 돌보아주었습니다. 다음 날 떠날 때는 여관 주인에게 돈을 주며 잘 돌보아달라고 부탁까지 하였습니다. 참 놀랍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입니다.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을, 그것도 평소 원수처럼 지내던 유대인을 향한 사마리아 사람의 호의와 사랑은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지금까지 나눈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하신 유명한 비유입니다. 사람들은 이 비유를 일컬어 선한 사마리아 인의 비유라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마치신 다음에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이 사람들 중에 누가 너의 이웃이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으신 것은 지금 예수님 앞에 나아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람이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하고 먼저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29.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10:25–29)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10:36–37)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셨는지 알고 싶으세요? 이 질문들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이 한 율법사의 질문, 곧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 에 대한 대답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다음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⓵우리의 진짜 이웃은 누구입니까? ⓶우리는 우리의 이웃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까? ⓷우리는 이웃 사랑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야 합니까?
이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이웃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생각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보십시오. 예수님을 찾아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질문했던 율법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크게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사의 이런 잘못된 생각을 다음과 같이 지적해 주십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사람들이 자기 이웃에 대해 얼마나 크게 오해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나의 이웃이 누구입니까? 질문하는 율법사는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율법대로 이웃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의로운 사람이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성경은 그가 예수님을 향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하고 질문을 던진 진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보여줍니다.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눅10:29)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마22:25-26)
자세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 율법 교사가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이웃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했던 진짜 이유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더욱 잘 지켜 행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런 열심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시험할 목적으로 예수님께 나아왔고, 또 자기를 자랑하려는 열심으로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그가 사람들 앞에 자기를 옳게 보일 목적으로 예수님께 질문을 하였다는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율법 교사는 그가 너무나 잘 안다고 자랑하는 하나님의 율법대로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어줄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오직 그 속에 이웃을 이용해서 자기를 자랑하려는 교만함과 욕망만 가득 차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웃 사랑을 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인생입니까? 친절하게도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이런 그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십니다.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을 통해서입니다.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모습이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평소 그들은 누구보다 더 이웃 사랑에 열심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필요를 따라 이웃을 사랑하는 척 하는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위험이 닥치면 언제든지 이웃 사랑을 포기합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이웃은 사랑하지만, 자기에게 손해가 되는 이웃은 미워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원수라고 생각되는 사람을 절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왜요? 그에게 원수는 사랑해야 할 이웃이 아닙니다. 미워하고 저주해야 할 대상입니다.
어떻습니까?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살아가지요? 심지어 하나님의 사람들조차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구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다 이렇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가장 지혜롭게 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내게 좋은 사람만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고, 내게 해를 끼칠 것 같은 사람은 내가 사랑해야 할 이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웃 사랑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6-48)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웃은 내게 유익을 주는 사람뿐 아니라 내게 해를 끼치는 원수까지 포함합니다. 어떻게 원수가 이웃이 될 수 있느냐고요? 물론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이유는 너무나 분명해집니다. 우리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자들에게나 선한 자들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시고 햇빛을 허락해주십시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살아가는 원수들을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그가 믿는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시라는 사실을 알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와 성도는 다음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순종합니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5:43-44)
이런 영적 원리를 따라 볼 때,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얼마나 악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그들의 원수를 사랑하기는커녕, 강도 만나 그의 도움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이웃을 모른 체하였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율법에 정통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율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 율법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자기 이익을 따라 나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향하여 악하다 하는 것입니다.
물론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기도 강도를 만날까 두려웠습니다. 또 생전 처음 보는 사람 때문에 손해 보기 싫었습니다. 철저하게 자기 이익을 따라 행동한 것이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생각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도 다 그들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런데 여기 똑같은 상황 앞에서 전혀 다르게 행동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의 뒤를 이어 그곳을 지나가게 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나 죽어가고 있는 이웃을 발견하고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싸매어줍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가 타고 가던 나귀에 그 사람을 태우고 주막까지 데려가 극진한 마음으로 치료해줍니다. 심지어 이튿날이 되자 주막 주인에게 혹시 비용이 더 들면 자기가 부담할 테니 마지막까지 그를 잘 치료해달라고 신신당부하고 떠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누구를 닮았습니까? 죄인을 위해 당신의 목숨을 내어주신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원수를 위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아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라미아인의 비유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들 예수님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는지 보게 하시고, 그 사랑을 본받아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10:37)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행동이 없었다면, 혹 제사장과 레위인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그래! 그런 상황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되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말미암아 제사장과 레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버려두고 도망친 일은 그 어떤 말로도 핑계 댈 수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너무 너무 악한 자들입니다.
똑같은 이유 때문에 예수님을 시험하고 자기를 자랑하려는 목적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질문했던 율법사는 너무너무 악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 이익과 자기 자랑을 위해 이웃을 이용할 줄만 알았지 이웃을 사랑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속하는 죽음을 당하실 예수님 앞에서 자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비참하고 불쌍한 인생입니까?
이렇게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악한 사람인가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참된 이웃 사랑의 비밀을 알고 감격하게 웁니다.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저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 길이 제게 생명이고 영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