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야수파이다. 인간의 감정은 ‘이성’이란 잣대로 마치 기하학자처럼 정확하게 재단할 수 없다. 인간은 절대 선과 악으로 정확하게 재단할 수 없는 야수성을 가진다. 물론 야수파는 인간의 이성을 무시하거나 선악의 기준을 파괴하는 야성은 아니다. 이성 못지않게 욕망과 광기에도 질서가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눈에 보이는 색채가 아니라, 마음에 느껴지는 색채를 강조한다. 빛이 선사하는 색채를 사실주의에 입각해서 수동적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영감을 보다 강렬하게 그리고 단순하고 거칠게 원색적으로 표현한다. 이른바 야수파 혹은 포비즘(fauvism)이다. 이것은 후기인상파와 중첩된다. 후기(post)인상파는 인상파를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왜 비판적인가? 인상파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다만 강한 자연의 빛을 모사하는 데 반해, 후기인상파는 이런 면을 계승하면서도 화가의 마음을 보다 강하게 원색적으로 표현한다. 야수파 역시 강렬한 원색으로 야수처럼 감정을 쏟아낸다. 이지적으로 표현하기에는 아쉬운 감정을 단적으로 쏟아낸다. 마음에 강하게 새겨지는 인상을 질서에 따라 하나하나 표현하지 않는다. 주관의 영감을 색채로 과격하게 표현하는 주관적 색채주의가 바로 야수파가 지향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원시적 영감처럼 정리되지 않는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한다. ‘원시적’이란 이성의 손이 덜 간 원초적 감정을 거칠게 표현하는 방식이다. 그의 〈춤〉(1909)은 빨강, 파랑, 초록 세 개의 색만으로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그린다.
후기인상파는 소박한 인상론자처럼 그저 빛에서 주어지는 인상을 수동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이 때문에 초기 모네의 인상파를 객관주의적 인상파로 부르기도 한다. 고흐의 후기인상파와 마티스의 야수파는 빛으로 들어오는 인상을 수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관에 현전하는 생생한 원-인상(Ur-impression)을 강렬하게 표현한다. 초기 ’객관주의적 인상파‘와 구분하여 ’주관주의적 인상파'라고 할 수 있다. 주관의 강렬한 원인상을 구도나 형태가 아닌 색으로 표현하는 것이 기존의 표현주의와는 다른 특징이다.
그 야수성으로 초보자의 시선을 강탈하는 그림이 앙리 마티스이다. 그는 20세기 초 프랑스 야수파 운동의 핵심이다. 야수파는 9년간 짧지만 강하게 일어났던 프랑스 미술의 혁신적 활동이다.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에 15개월간 머무는 동안 180여 점의 그림을 그린다. 이곳에서의 그의 그림은 후기인상파로 분류될 정도로 원색적인 색채로 자신의 강렬한 감정을 표현한다. 그에게 색은 존재의 메타포이다.
앙리 마티스의 초기 작품인 〈사치, 평온, 쾌락〉은 그가 1904년에 생 트로페에서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그가 상징주의 화가로서 마지막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가 상징주의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시 「여행에의 초대」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25년에 그린 〈꽃무늬 배경 위에 장식적 인물〉이다. 이 작품은 전성기의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치, 평온, 쾌락〉보다 터치가 강렬하고 색채가 더 야수적이다. 야수파로서의 초기 작품에는 오베르 시기의 고흐와 중첩되는 면도 있지만, 후기 작품인 1925년 작품은 이미 고흐의 세심한 터치를 넘어 서고 있는 듯하다.
첫댓글 통도사 반야암 영축산 (지안스님) 카페에서 옮긴 글입니다.
야수파와 후기 인상파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