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상류층 가문에서 태어나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디스 워튼은 『올드 뉴욕』에서도 당시 상류사회를 상당히 현실감 있게 묘사한다. 그러한 상류사회의 부조리함과 위선 등을 비판적 측면에서도 곧잘 묘사하는 작가로서, 무엇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와 탁월한 내면의 심리묘사는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을 꿰뚫어 본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순수의 시대』로 여성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정교한 플롯과 내밀한 문체를 바탕으로 한 작품을 쓴 그녀는 여러 번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올드 뉴욕』은 4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로써 이디스 워튼의 작품 중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번역된 책이다. 각 단편마다 짧은 분량임에도 몰입감 있는 빠른 전개와 끝을 알 수 없는 갈등구조로 인해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문학이 주는 감동은 화려한 수사나 기교가 아닌 글 안에 담긴 삶의 철학과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일 것이다. 『올드 뉴욕』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긴 여운이 당신을 전율케 할 것이다.
헛된 기대
뉴욕 레이시 가문의 유일한 아들인 루이스 레이시. 성년을 맞이하여 아버지는 아들을 유럽으로 보낼 계획을 한다. 단순한 여행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가문 대대로 물려줄 명화 갤러리를 만들라는 아버지의 숨겨진 뜻이 있었고, 루이스는 부푼 마음으로 예술작품을 수집하러 떠난다. 작품을 수집하러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도중 푸른 눈의 영국 청년을 만나게 되고, 루이스는 자신이 알던 예술의 세계가 허물어지며 새로운 눈을 뜨게 된다.
그러나 수집한 작품들은 아버지의 분노를 일으키고 비난과 가족들의 냉대로 루이스는 뉴욕 사회에서 서서히 잊히듯 사라진다. 루이스 레이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흘러 그의 수집품들은 재평가를 받게 되는데...
노처녀
랄스턴 가문의 델리아는 사촌인 샬롯 로벨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처녀인 샬롯이 몰래 낳은 아기를 아동보호소에서 다른 아이들과 함께 기르고 있다는 것. 충격적인 이야기에 어쩔 줄 모르던 델리아는 큰 결심을 하게 되는 한편, 그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과 관계있던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었다.
오랜 세월 후 샬롯의 딸은 성인이 되었고 결혼식을 하루 앞둔 어느 날. 델리아와 샬롯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다.
불꽃
전쟁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겪은 헤일리 딜레인. 전쟁의 트라우마를 겪은 그는 매사에 과묵하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괴팍한 사람으로 통한다. 나는 그에게 알 수 없는 흥미를 느꼈고 뜻밖의 사건을 통해 그의 과거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헤일리 딜레인이 전쟁 중 부상으로 사경을 헤맬 때 그에게 다가온 낯선 의문의 남자. 그에게서 영적인 깨달음과 삶의 조언을 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흔적은 희미해지기만 한다. 시간이 흐른 뒤 우연히 집어 든 책에서 그 낯선 남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데...
새해 첫날
“그녀는 항상 행실이 나빴지. 그들은 5번가 호텔에서 만나곤 했어.”
새해 첫날의 가족 모임 중 맞은편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나는 그곳에서 황급히 뛰쳐나오는 두 남녀를 목격한다. 그녀의 이름은 리지 하젤딘. 유부녀인 그녀를 모르는 척 뒤따라 나온 남자는 뉴욕의 미혼 여성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던 헨리 프레스트였다.
그들이 그곳에서 뛰쳐나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그 둘의 만남을 부끄러운 불륜으로 치부하고 뉴욕 사회는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뉴욕의 보수적인 사교계는 오랜 시간 그녀를 배척했지만, 나는 그 만남의 이면에 있는 진실을 서서히 알게 되는데...
어느덧 생의 끝자락에 닿은 그녀에게 삶은 어떤 의미였을지, 시간을 여행하는 여행자처럼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녀를 나는 또다시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