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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uary 9, 1995 미아리통신
윤 대 녕
1
이연주의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을 며칠째 읽고 있습니다. 이 시집처럼 내 존재도 사위어가고 있습니다. 알코올의 과다한 섭취는 생리적인의미이든 그것이 또다시 불러오는 반항의 의미이든 간에 존재의 ‘썩음’ 혹은 ‘사위어감’의 궁극은 한곳을 향해 열려 있는 게 아닐까요. 이를테면 열반이나 해탈 따위들 말예요. 한때는 스물아홉 살 된(아니, 이제는 서른 살 된) 여자의 노련함으로 아무 곳에도 발 담그지 않고 늘 적당한 중량을 지탱하면서 내면에의 투시를 놓치지 않는 투명한 속을 가진 여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말하자면 장기가 아주 튼튼한 아마추어로 남아 있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고 대꾸하고 싶으시겠죠. 하지만 이제는 너무 닳아버린 느낌입니다. 불가항력적으로 빠져든 연애에서 저는 다시금 예의 그 쓴맛을 보고야 말았습니다. 연애는 피맛 같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연주가 목매 죽었단 소릴 듣고 며칠 동안 구역질을 해대느라 잠까지 설쳤습니다. 존재감 때문이었습니다. 죽음은 바다와 같은 것이라죠? 오늘 아침엔 불현듯 자고 일어난 피부에서 마른버짐이 피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 오래오래 마사지 크림을 유령처럼 처바르고 문질러주었습니다. 손가락 끝으로 살이 조금씩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 와 급기야는 울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말았지만요. 나는 내가 왜 추해지는 걸 보고 싶어 하는 걸까요. 세종 형도 그렇게 생각하죠? 저 늙은 애는 더 외로워져야겠다고요. 사람들은 잔인해요. 토요일에 만나 술이나 한잔해요. 오랜 세월 마셔댄 술 탓인지 마침내 장에 이상이 생긴 것 같아요. 아침마다 변기에 주저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아귀처럼 소리를 질러대곤 합니다. 그래도 마셔야 속이 좀 편해져요. 그럼……
어제 이런 내용의 봉함엽서*를 내게 보내온 여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벽에 걸려 있는 에이젠슈테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그녀는 장자크 베넥스의 영화 「베티 블루 37°2」의 여주인공 베아트리체 달의 얼굴을 훔친 듯 닮아 있다. 그리고 그 영화를 아마 열 번쯤 보았을 것이다. 그녀는 스물여덟 살까지 시를 쓰다 지금은 방송국 스크립터*로 일하고 있다. 그 옆에는 서른네 살의 전업 작가 ‘투생’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는 군에서 얻은 허릿병으로 줄기차게 고생을 하고 있다. 그는 『욕조』라는 소설을 쓴 프랑스의 소설가 장 필리프 투생의 큰 키와 대머리를 닮았으며 그의 문체에 대해 늘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대곤 한다. 나는 그들과 마주 앉아 무채색으로 흐려 있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서른세 살의, 역시 장기가 좋지 않은 나는 언제나 양쪽 주머니에 백 원짜리 동전을 한 주먹씩 넣고 다닌다. 물건을 살 땐 언제나 지폐를 사용하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동전을 옷이 축 늘어지도록 넣고 다니는 것이다. 술값이 없을 때 그들은 으레 내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나 나를 세종이라 부르는 그들은 백 원짜리 동전에 양각된 인물이 세종대왕이 아니라 이순신이라는 걸 모르고 있다.
밖엔 겨울비가 주름져 내리고 있다. 희뿌연 창문 속으로, 미국의 사진작가 스티글리츠가 1895년 2월 22일에 촬영한 「5번가의 겨울」을 연상케 하는 거리가 내다보인다. 카페 앞에는 푸른 스타킹을 신은 여자 하나가 까만 우산을 들고 서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다. 벌써 삼십 분 이상을. 우리는 푸른 스타킹의 여자가 기다리는 남자가 오기 전까지, 어디로 자리를 옮길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다. 우리가 앉아 있는 자리는 선실 바닥처럼 춥고 눅눅한 습기가 배어 있다. 우리는 오후반 수업을 빼먹은 초등학생들 같다. 혹은 썰물 진 바닷가 모래언덕에 우두커니 서서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외지인들 같다.
토요일 오후 세 시. 충무로. 카페 ‘전함 포탬킨.’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질 좋은 마란츠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2
불어터진 자장면을 먹었을 때처럼 더부룩한 기분으로 맞이한 1993년 벽두부터 우리가 만났던 것은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제나저제나 시답잖은 궁리에 빠져 눈이 벌게져 있던 베티가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믿는 내게 엽서를 보내온 것이 그날 모임을 갖게 된 동기였다. 그다지 내키진 않았으나 오후 내내 할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미뤄두고 있던 세면을 하고 아직 덜 마른 양말을 신은 채 밖으로 나왔다. 투생의 전화를 받은 것은 외출하기 한 시간 전쯤이었다.
“세종? 나요. 잡지사에 원고 마감하러 나왔다가 그냥 전화해봤어요. 날씨도 구질한데 술이나 한잔 할까 싶어서요. 지난 연말에도 못 봤잖아요.”
그의 목소리는 우물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소리 같았다. 투생과 베티는 전에 나와 서너 번 자리를 함께한 일이 있었으므로 서먹할 정도의 관계는 아니었다. 나는 투생에게 합석하자고 말했다. 밖엔 이틀째 눈 아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처럼 나는 문 앞에서 잠시 허둥거렸다.
정작 그렇게 만나긴 했으나 딱히 나눌 만한 얘기란 없었다. 이미 선거가 끝나 차기 대통령이 결정된 마당이었으며, 황영조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도, 휴거*의 파문도, 국내 경제가 십이 년 만에 최저 성장을 기록한 것도,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이뤄진 것도, 김대중 씨가 정계에서 은퇴했다는 것도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으며, 또한 클린턴이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고 유고 내전이 최악의 인권분쟁으로 번지고 소말리 아에션 삼십만 명이 굶어 죽고 LA 흑인 폭동으로 인한 후유증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일본 자위대가 해외 파병을 결정한 일조차도 역시 우리에겐 아무런 화젯거리가 되어주지 못했다. 마지막 한 장 남았던 지난해의 달력을 뜯어내 버리기가 무섭게 우리는 그 모든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완료되었거나 확정된 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여력이 우리에겐 남아 있지 않았다. 검은 뻘밭* 같은 날들이 우리 앞에 음험하게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세종 형, 우리 어디 교외로 나갔다 올까요?”
이미 식어버린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베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교외 어디? 이 구질구질한 날씨에. 차 가진 사람도 없잖아.”
“그럼 한강에 가서 유람선이라도 탈까?”
“우리가 무슨 시골에서 올라온 노인네야. 촌스럽게. 꼼지락거리지 않고 할 만한 일 좀 없냐? 우린 별써 63빌딩의 반을 더 올라온 나이들 아니냐.”
“그럼 술이나 처먹든지!”
베티가 느닷없이 얼굴을 붉히며 가래침을 내뱉듯 쏘아붙였다.
“글쎄, 술을 먹긴 죽 이르지 않아요? 얼굴이 빨개서 대낮에 돌아다니면 흉해 보이더라구요.”
분위기가 좀 사나워지는 듯하자 투생이 점잖게 끼어들었다. 푸른 스타킹의 여자는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가 사라지기 전에 우리도 자리를 옮겨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하고 싶은 일이 우리에겐 남아 있지 않았다. 영화관에 가는 것도, 연극을 보러 가는 것도 이십 대에 무던히 해본 일이어서 이젠 궁상맞고 식상한 일쯤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서른 살이 훌쩍 넘다 보면 모든 일에 지치고 흥미를 잃게 마련이다. 겉으론 좀 무디고 태연해지는 대신 안으론 불안이 가중되고 으레 사는 일과 관계된 뼈다귀 같은 일들만 남게 된다. 그러다 보면 투생처럼 몸이 배배 틀어지며 며리가 벗겨지고 얼굴은 흙빛으로 변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희망의 밥그릇은 비워진 지 오래고 혁명을 꿈꾸기에는 벌써 나약해져 있는 나이들이다.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나이를 더 먹어버리는 것일 게다. 끔찍한 발상이긴 하지만 불혹. 그쯤 되면 두 손 들고 깨끗이 항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왜 정초부터 그렇게 심란한 얼굴을 하고 있어요?”
“……일은 무슨 일, 그냥 먹고사는 일이 고달파서 그렇지.”
푸른 스타킹의 여자는 스물두엇쯤 돼 보이는 앳된 모습이다. 무언가를 기다리더라도 아직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있을 나이다. 하늘색 스카프에 검은 코트를 입고 있다. 어째서 이런 날씨에 길에서 약속을 했는지 알 수 없다.
오늘 투생은 여느 때보다 더욱 불안해 보인다. 작년 여름에 불과 서너 달치의 생활비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받고 잡지사 그만 둔 후 그는 손 끝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대고 있으나 생활은 조금도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허리 때문에 한 시간 이상은 의자에 앉아 있지도 못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전업 작가에겐 쓰는 것이 곧 생존이다. 한데 전업 후 사 개월 간격으로 낸 두 권의 장편소설이 생활에 그다지 보탬이 되어주질 못했다. 날이 갈수록 투생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변해가고 있었다.
“집 근처 학교 앞에다 분식집이라도 하나 차릴까 해요. 이제 처자식 얼굴을 보면 공포스러워져요.”
아내와 두 딸은, 매일같이 두 평 남짓한 서재에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만 음울하게 바라보고 있는 수밖에 없다. 분위기는 자연 침울하게 가라앉아 버렸다. 우리는 한동안 침묵에 빠져 딱 세 개비가 남은 담배를 하나씩 나눠 피워 물었다. 그때 건널목을 가로질러 카키색 바바리를 입은 청년이 감색 우산을 받쳐 들고 ‘전함 포템킨’을 향해 곧장 걸어오고 있는 게 보였다. 왔어, 라고 베티가 낮은 목소리고 말했고 우리는 가벼운 절망감에 빠져 서로의 얼굴을 화난 듯한 표정으로 바라본 다음 엉거주춤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맥없이 졸고 있다 종점까지 와버린 버스에서 내리는 심정으로 말이다. 그 와중에 베티가 그냥
생각 없이 해보는 소리인 것이 분명한 어조로, 우리 점이나 보러 갈까요? 라고 말했고 투생과 나는 뭐라고? 하는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보며 밖으로 나왔다. 카키색 바바리와 푸른 스타킹은 감색 우산을 쓰고 명보극장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거리는 화장이 잘 받지 않는 서른 살 된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3
점이란, 미망에 빠지기 쉬운 오십 대의 아녀자들이나 보러 다니는 것쯤으로 알고 있던 우리에게 베티의 제안은 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간혹 결혼을 앞둔 남녀들이 재미 삼아 파고다공원 옆이나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낄낄거리며 점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은 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재미일 뿐이라고 보아 넘긴 터였다. 괜히 경직된 얼굴로 점집을 찾아가는 젊은 놈은 푼수쯤으로 경멸받아 마땅하다고 누구든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제 인생을 남에게 숨김없이 터놓고 묻기까지에는 더 많은 절망과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리고 우선 수치심부터 없애버려야 한다. 좋게 말하면 삶에 대해 보다 겸허해져야 하고 나쁘게 말하면 완전히 탈진하거나 몰락한 상태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암암한 표정으로 비 내리는 거리에 나부끼듯 서서 누군가가 먼저 ‘동의’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표류하듯 ‘매일경제신문사’ 앞까지 왔을 때 먼저 입을 연 것은 그중 나이가 많은 투생이었다.
“뭐, 재미 삼아서 한번 가봅시다. 사실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그런 것도 무시 못 하겠더라구요. 예정된 대로 살아지는 경우란 없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뭔가 불가시적인 힘이 사는 일에 개입돼 있잖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정말 팔자라는 게 있다면 미리 알아두는 것도 괜찮아요? 나도 다시 직장을 가져야 할지 원……”
“그래, 그냥 한번 가봐요. 나 노처녀 신세 언제 면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구요. 남의 말 듣는대서 나쁠 것 없잖아요? 어디 우리보다 못난 사람들만 점집 드나드는 것도 아니더라. 한다 하는 고관대작들 정치인들도 용하다는 점집은 다 찾아다닌다고 하잖아요. 세종 형도 점 한번 봐야 하는 거 아냐? 언제까지 혼자 살려고 해.”
“닥쳐! 여자만 보면 이제 신물이 다 넘어온다. 위화감 때문에·… 둘이 살면서 혼자 아닌 척하는 것도 고역이야.”
“위화감?”
투생이 내 말을 되받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전철 안에서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제각기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더 이상 실랑이를 할 사이도 없이 우리는 성신여대입구역까지 가는 전철을 타고 있었던 것이다. 우산 끝에서 흘러내리는 빗물로 전철 바닥은 질펀하게 젖어 있었다. 눈앞에 붙어 있는 화장품 광고의 모델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던 베티가 귀엣말로, 저거 세종 형이 찍은 거 아네요? 했고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창밖을 스쳐 가는 지하의 어두운 콘크리트 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나는 너무 오래 자본주의의 얼굴만 찍으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는 전철에서 내려 지하의 매캐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리며 파충류처럼 어기적거리며 계단을 올라갔다. 베티가 앞장섰고 투생과 나는 그녀의 뒤를 따라 ‘고명중상고’라고 씌어 있는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그새 비는 좀 꺼끔해 있었으나 미아리고개로 올라가는 길은 안개가 잔뜩 낀 늪지대처럼 흐려 있었다. 먼 빛으로 고가도로에 반쯤 가려진 돈암동 산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목탄화가 비에 젖고 있어, 하고 하고 베티가 목이 잠긴 소리로 말했다.
“여기가 그렇게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눈물의 미아리고갠가?”
투생은 자못 비감한 표정을 지으며 사방을 휘둘러보았다. 길 건너 돈암극장에서는 「여배우 엠마뉴옐」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었으며 그 앞에선 교회 합창대 사람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빗속에서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다. 다시 투생이 영화 선전용 간판을 쳐다보며, 미아리답군, 미아리다워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고 이어 내가, 어디로 가지? 하며 주춤주춤 빗속으로 나가려는데 베티가 마뜩찮은 소리로 내 뒤를 잡아끌었다.
“여기가 거긴가? 너무 삭막하고 지저분하지 않아요?”
고가의 콘크리트 회벽에선 먹물 같은 빗물이 토악질을 하듯 울컥울컥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점집이 늘어서 있는 그 좁은 길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마을처럼 괴기스러운 빛으로 하나같이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뭐, 이런 덴 줄 몰랐어?”
내가 먼저 빗속으로 걸어 나가자 투생과 베티도 마지못한 얼굴로 우산을 좍 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점집들이 늘어서 있는 고가 밑은 허름한 창가*를 연상시켰다. 페인트 껍질이 불쑥불쑥 일어나 있는 녹슨 함석 간판엔 사주·관상·수상·신수·이사·해몽·재수·궁합·작명·택일이란i 말들이 흘림체로 씌어 있었으며 예상외로 그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별반 눈에 띄질 않았다.
“여기 오니까 몸서리가 쳐져요. 내가 스물세 살 때 생각이 나요, 갑자기.”
“스물세 살? 왜지?”
베티가 축축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고 투생이 심문관의 말투를 흉내 내어 그녀에게 물었다.
“그때 나는 첫사랑의 남자와 이런 데서 일금 오천 원짜리 사랑을 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면지가 하얗게 쌓인 방에서 부적을 써주듯 그에게 처녀를 줬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단 말예요.”
“왠지 서글퍼지는군. 그게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야.”
투생이 정말 서글픈 어조로 그렇게 되받았다.
“……그러게. 나도 처음은 이런 음습하고 축축하고 더러운 곳에서였어. 내 동정은 어여쁜 사랑에게 기쁘게 바쳐지는 것이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지 못한 게 못내 쓰라려. 그멘 왜 그걸 그렇게 버리지 못해 안달이었을까. 굳이 어른이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는데 말이지.”
“어른이 아니라 사막이 되지. 세종, 구것도 하나의 목숨이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마구 헤쳐진 꽃밭을 들여다보는 얼굴로 투생이 나를 보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죽어버린 목숨인 것이다.
우리는 왼쪽 아리랑고개로 빠지는 골목길의 입구에서 잠시 발을 멈추고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저기 예언의 집 백장미 어때요?”
투생이 별 내키지 않는 표정우로 한마디 했고 베티와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막힌 물꼬를 트는 일에 익숙한 투생도 그리 담담한 얼굴은 아니었다.
“그럼 그 옆에 바로니아 여성침술원에서 침이나 한 대씩 맞을까? 허리도 아픈데 잘됐네.”
“……조금 더 올라가 봐요. 미아리라 그런가요? 왜 여자가 하는 점집뿐이죠?”
우리는 ‘흑진주여자운명감정소’를 지나 ‘상록수여자철학관’을 지나 ‘홍일점 여학사역학점술원’을 지나 ‘성심여자거북철학원’을 지나 ‘확실한 희망의 메아리’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목련화여자예언의집’을 지나 ‘천도화여자점성가’를 지나 ‘백암’ ‘송학’ ‘대산’ 운명철학관을 지나 오른쪽 성산여자중학교와 성산포교원으로 빠지는 고가 굴다리 밑에까지 와서 다시 발을 멈췄다. 우리는 마치 난생처음 여관방을 찾아가는 한 쌍의 연인들 같았다. 그것도 대낮에 말이다. 그러니 아무 데서나 ‘목숨’을 버리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미아리고개의 중턱까지 와 있었다.
“구두가 새나? 양말이 다 젖었네.”
투생이 대머리에 묻은 물기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투덜거렸다.
“……우리 고갯마루까지 계속 올라가 봐요. 혹시 알아요? 좀 깔끔한 데가 있을지.”
베티가 주눅이 든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으므로 하는 수˛. 없이 우리는 다시 고갯마루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위로 올라갈수록 바람이 거세게 불어댔다. 우리는 신경을 잔뜩 곤두세운 채 다시 ‘체내림―신경성위장병’을 지나 ‘동심초여학사철학원’을 지나 ‘이화여성 점성가’를 지나 ‘개나리’ ‘봉선화’ 운명 철학원을 지나 ‘지리산처녀도사’를 지나 ‘가야산신도사’를 지나 육교 밑에 있는 ‘안도현운명철학관’ 앞까지 와서 숨을 몰아쉬었다. 우리는 추위 때문에 부들부들 떨며 저마다 곤혹스러운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이른바 미아리 점집의 군락 지역
을 벗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민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먼저 점집 얘기를 꺼낸 베티였다. 하지만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만회라도 하려는 듯 부러 농을 했다.
“안도현은 이리에 사는 시인 아녜요? 올라와서 개업 했지?”
“객쩍은 소리 작작하고 좀 더 찾아보자구, 어디 그럴싸한 데 없나? 이런 데서 우리의 장래를 논할 수야 없지 않은가.”
“무슨 장래를 논해요 논하긴. 그냥 재미 삼아 보자는 거였지.”
“재미? 이러다 독감이라도 걸리면 점쟁이가 약이라도 한 첩 지어 준다든?”
자칫 말다툼、으로 변할 것 같은 험상궂은 분위기가 감돌자 투생이 얼른 끼어들었다.
“이러지 말고 아무 데나 그냥 들어가요. 나도 발이 시려 더는 못 참겠어 요.”
우리는 참혹한 기분에 빠져 붉은 벽돌집들이 겹겹이 들어차 있는 돈암동 산동네의 잔뜩 흐려 있는 풍경을 망연히 쳐다보았다. 동네 기슭엔 ‘벧엘교회’ 라는 큼지막한 건물이 들어서 있었고 그 옆으론 부처님 상이 분명한 조형물이 하얗게 치솟아 있었다. 그곳은 우리가 쫓기다 못해 숨어들어 갈: 수 있는 최후의 마을인 것처럼 생각됐다. 마치 소도(蘇塗)* 같은 곳 말이다. 우리는 바람에 맥없이 나부끼며 저마다 말문을 닫고 철벅거리며 올라온 길을 돌아다보았다.
“비감하군 비감해. 모든 게 우리의 나이를 닮아 있어. 쓰다버린 소설을 닮아 있어. 자, 이럴 게 아니라 길음동 쪽으로 내려가 봅시다.
우리는 다시 바람이 몰아치고 있는 언덕길을 줄지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축대로 만든 담벼락엔 사납게 찢긴 영화 포스터들이 몇 겹으로 붙어 있었고 소변 금지를 뜻하는 가위 그림이 그려져 있었으며, 생선 궤짝과, 옷걸이, 라면 박스, 냉장고 따위들이 비를 맞고 길모퉁이에 아무렇게나 버려져 있었다. 베티는 파출소 앞을 지나며 푸른 비닐우산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우리는 이미 어지간히 지쳐 있는 상태였다.
“여기는 연말연시도 명절도 공휴일도 없는 동네가 분명해요. 오늘이 도대체 며칠이죠?”
베티가 잠이 오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참는 목소리로 나를 보고 물었으나 투생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신년이 되고 여러 날이 지났을 뿐인 것이다.
4
‘국화정사숙녀점성가.’ 우리는 낡은 기와집의 담벽에 걸려 있는 노란 간판을 올려다보고 서 있었다. 그 집은 가파른 축대 위에 위태롭게 세워져 있었다.
“국화정사? 거 이름 한번 야릇하네. 우리가 지금까지 여기를 찾아다닌 것 같은 기분마저 드네. 안 그래요? 우리 여기로 갑시다.”
투생이 어딘가 모르게 농기가 섞인 말투로 그렇게 말했고 베티와 나 또한 더 이상 점집을 골라 다닐 기분이 아니었으므로 투생의 뒤를 따라 경사가 급한 계단을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잠시 후 우리는 가로 다섯 뼘쯤 되는 나무 대문 앞에서 발을 멈췄다. 대문 앞엔 문패 두 배 크기의 판자가 걸려 있었다. ‘菊花精含淑女占星家.’
아, 저 정사였구먼…… 하며 투생이 먼저 마당으로 들어섰다. 베티와 나도 기웃기웃 투생의 뒤를 붙잡고 안으로 들어갔다. 아닌 게 아니라 검게 얼어붙어 있는 국화 화분 몇 개가 마당가에 놓여 있었다. 어딘가에서 국화 향기가 풍겨와 우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사위*를 둘러보았다. 처마 밑에 말라 죽은 국화들이 한 움큼씩 묶여 나란히 매달려 있는 게 보였다.
“어둡고 이상한 집이에요.”
베티가 내 팔을 가만히 붙들며 소곤거렸다. 마당 위에 걸려 있는 주황색 빨랫줄에서 빗방울이 뚝뚝 듣고* 있었다. 하늘색 플라스틱 차양이 마당을 반쯤 가리고 있어 집 안은 어둑어둑했다. 황홀히 고적한* 집이었다.
도르래가 달린 유리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웬 노란 한복을 입은 여자가 갸웃이 문을 열구 이쪽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입을 벌려 우리에게 무어라 말하는 것 같았으나 우리는 그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아마 들어오라는 말이었을 게다. 우리는 문을 드르륵 열고 초칠을 해 반들거리는 마루를 통해 노란 한복의 여자가 앉아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천장이 낮고 바닥엔 전기요가 깔려 있었으나 외풍 때문인지 추웠다. 한쪽 구석에 공단*이불이 단정하게 개켜져 있었으며 검은 옻칠을 한 책상 위엔 양은 주전자와 물컵, 그리고 양초 두 자루와 향이 타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으레 점집이라고 생각하는 만큼의 음습하고 괴기스러운 방은 아니었다. 춥지? 앉아, 하고 노란 한복은 대뜸 반말을 하며 전기요의 스위치를 조절했다. 우리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어색하게 쭈그리고 앉았다.
“점 보러 왔어? 젊은 것들이 원…… 아무튼 잘 왔어.”
노란 한복이 무표정한 얼굴을 가만히 들이대며 우리를 쏘아보았다. 매끈한 이마에 날렵한 눈썹, 그리고 쌍꺼풀 진 두 눈 사이로 가는 코가 오뚝 솟아 있었다. 잘 조화를 이룬 얼굴이었다. 마치 조선 시대 국화를 잘 치는 기방* 처녀를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눈가에는 잔주름이 선명했고 얼굴엔 범접 못 할 예의 무당기 같은 게 서려 있었다.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그녀는 주전자의 보리차를 따라 주며 밭은기침⁕ 해댔다.
“어디 누구부터 볼까…… 너 용띠 처녀. 공망에 팔풍일이 끼었구먼. 쯧쯧 작년에도 남자 하나 잡아먹지 않았어? 그래, 너부터 보자! 사내들은 저 방에 가서 기다리고 있어.”
허뜩 베티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보며 투생과 나는 엉거주춤 도로 자레에서 일어났다. 투생은 방바닥에 양말자국을 남기지 않으려고 뒤꿈치를 들고 어기적거리며 노란 한복이 가리킨 방으로 앞질러 들어갔다.
그 방도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방엔 전기장판마저 없었다. 꾀죄죄한 담요가 방바닥에 한 장 깔려 있을 뿐이었다.
“아, 이상하게 수감된 느낌이 드네. 그치 않아요?”
“글쎄요. 좀 께름칙하긴 하네요.”
투생과 나는 좁은 방 한가운데 서서 사위를 둘러보았다.
“꼭 대학 다닐 때 내 자취방 같네. 여기 무슨 공부방 같지 않아요?”
투생의 말대로 생뚱한 표정을 지으며 벽에 걸린 오윤의 판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투생의 말대로 그 방은 정말 가난한 학생의 자취방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싸구려 철제 책상 위에 빨간 금성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와 먹다 남은 이 홉 짜리 소주 한 병이 놓여 있었으며, 해태제과에서 제작한 캘린더가 비뚜름하게 책상 옆에 붙어 있었다. 또한 청바지 등속의 캐주얼한 옷들이 벅에 걸려 있었으며 창문 옆에 놓인 검은 책꽂이엔 책들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투생은 병마개를 따고 소주를 한 모금 들이킨 다음 다시 책상 위에 살그머니 내려놓았다.
“소주 맛도 자취할 때 바로 그 맛이야. 아르바이트하는 학생인가? 요즘 대학생들 그런 거 많이 하잖아요? ……되레 잘됐네. 그러나저러나 한참을 걸었더니 허리가 아파 좀 누워 있어야겠네.”
투생은 부상당한 병사처럼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담요 위에 길게 누워버렸다. 웬 책이 이렇게 많아? 하고 투생은 책장을 올려다보며 낮은 소리로 책 제목들을 읽어나갔다.
“관상대전, 팔자대전, 개운의 신비, 십간십이지인생비법, 수상대전, 격암유록, 천부경, 계의신결? 명리요강, 명학신해, 사주추명학, 단이대전? 명학정해, 어? 베트남 현대사! 야 이런 걸 다 읽었단 말이야?”
문 하나 사이, 부러 엿들을 생각이 아니었는데도 옆방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이쪽 방까지 환하게 들려왔다. 물론 신경을 쓰지 않으면 들리지 않았겠지 만 말이다.
“자기가 태어난 시를 몰라? 점을 보러 왔다면서?”
돌연 베티를 나무라는 노란 한복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 취조하듯 다그치는 것 아닌가. 정말 대학생이라면 말이다. 이어 사이를 두고 있다가 전화를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나 태어난 시가 언제야?…… 아, 그냥 빨리…… 그래, 점 보러 왔어…… 시외전환데 빨리…… 낮 열두 시? ……밤이라고? ……알았어, 끊어…… 알았어, 내일 전화할게.”
“노동기본권 연구, 황토, 레닌주의 연구, 불교문학서설, 러시아반종파투쟁, 법화경, 화엄경, 마르크스주의 위기와 포스트마르크스주의, ……기가 막히네, 기가 막혀! 핵전쟁과 인류, 새벽노래, 금단의 땅, 새로운 사회학강의, 카프문학연구, 해방신학, 이 여자가 그런데·…… 노동법해설, 창작과 비평, 사회학의 과제, 유럽의 봉건제도, 마르크스 전기, 철학사강의, 아메리카 요람, 막심 고리키 전기, ……미치겠구만 이거. 점쟁이가 아니라 이건 도사구먼 도사. 그치 않아요. 세종?”
“글쎄요, 점쟁이나 도사나 같은 거 아녜요?”
“그런가? 아무튼 이 여자 이거 문화부에 상신해야* 되겠네. 인간문화재로 말이야.”
투생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무얼 하는지 옆방에서 한참이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우리는 정말 취조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 같았다. 이윽고.
“사주엔 운명의 네 기둥을 뜻하는 연주 월주 일주 시주가 있지.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을 잘 듣고 그걸 분명히 기억해둬야 해. 사주는 바꿀 수 없는 것이지만 피나는 노력을 하면 어지간히 피해갈 수는 있는 것이니까. 아가씨는 우선 연주에 편관성이 있어…… 무슨 말인고 하니 이런 경우의 여자는 결혼에는 이르지 못할 사랑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야. 설사 기혼녀가 되더라도 남편 이외의 남자와 깊은 관계를 가질 확률이 아주 많아. 게다가 비인에 도화살*까지 껴 있어.”
“……그럼 어떡하면 되죠?”
베티는 지금 떨고 있다.
“일지가 편인성인 남자를 만나야 해. 이런 경우를 소길궁합이라고 하지. 이런 남자는 우유부단하고 게으르긴 하지만 늘 받들어 주기만 하여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있어. 쥐띠 음력 가을생을 만나면 임자라고 생각해. 이 남자가 바로 아가씨의 살을 눌러줄 사람이야. 그 남자가 아니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면 서서히 남편을 망쳐놓게 될 팔자야.”
“……실은 작년 겨울에 헤어진 남자가 있어요. 그 남자도 쥐띤데 다시 만날 수는 없을까요?”
“생년월일 대봐.”
베티는 여전히 떨고 있다. 그녀는 너무 쉽게 자백하고 있다. 또 시간이 꽤 걸린다.
“그 남자와 다시 만나길 바래? 이혼, 별거, 살아서 이별, 죽어서 이별 이런 악운 중의 하난데도 다시 만나길 바래?”
그다음 베티가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병신 같긴. 그럼,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렇게 해보겠어?”
다시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저 여자 지독하군, 지독해. 저러단 베티 다 죽이겠어. 쯧쯧.”
투생은 팔꿈치를 괴고 누워 강소주를 마시고 있다. 그는 왠지 태연한 얼굴이다.
“그 남자의 속옷을 구해 부적을 써서 서북향의 암자에 가서 태우는 거야. 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 천신에게 신고를 하면 차후 둘은 싫어도 부부가 되게 마련이지.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야 되겠어?”
“그런 방법밖에 없나요?”
베티는 지금 애원하고 있다. 차라리 형(刑)을 받고 말리라. 산다는 일은 어차피 금기의 위반이다.
“잊어, 인연이 아니니까 잊으라고! 회자정리⁕ 가는 사람 잡을 수 없는 법 아닌가.”
회자정리라면,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는 이자필반*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아가씬 일간이 임, 계의 계질을 타고났으니 수성 관련 질병, 즉 방광염, 신부전, 치질, 성병, 자궁암, 냉증 등 하반신 질병을 조심해. 주로 파란색 알약을 먹고 옷도 지금 입은 붉은색 계통은 네 몸의 기운을 해치니 흰색이나 노란색을 입도록 해. 그리고 여자가 술자리를 자꾸 만들지 마. 내 말 듣지 않으면 나중에 정육점을 하며 업살을 풀고 살 팔자니 명심하라구, 알았어?”
베티는 말이 없다. 남자 속옷에다, 하반신 질병에다, 정육점이라니!
얼마 후 눈이 붉게 충혈된 베티가 고문을 당한 듯한 모습으로 들어오고 투생이 불콰한 얼굴에 비죽비죽 웃음을 흘리며 취조실로 들어갔다.
“나쁜 년! 그래, 그 정도밖에 못 봐? 지가 뭐라구.”
이렇게 씨부렁거리며 베티는 스타킹이 흘러내린 것도 모르는지 두 다리를 쭉 뻗고 방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뜯어 코를 푼 다음 냉큼 담배부터 피워 물었다. 두 눈이 퀭하니 들어가 있었다. 그녀는 담배를 다 피울 때까지 내내 거친 숨소리를 뱉어내며 몹쓸 년! 하고 자꾸 되뇌었다.
“세종 형, 나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일찌감치 정육점을 차리든지 해야지 뭐.”
“다 들었어?”
“듣긴 뮐 들어. 네 관상을 보면 그렇게 써 있는데.”
그녀는 숄더백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꼭꼭 찍어낸다. 비에 젖은 머리칼이 마르면서 부드럽게 풀어지고 있다. 속눈썹이 형광빛에 파랗게 떨고 있다. 마치……달밤 같다. 언제 보아도 차갑고 고혹적인 모습, 비록 나이를 먹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엔 결코 지울 수 없는 아름다움이 존재하고 있다. 손을 대면 그대로 타서 없어져 버릴, 백조의 아름다움이 바로 그것이다. 본인은 그걸 모른다. 한때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그걸 모른다. 그녀는 혼자인 듯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결혼하고 집도 있지?”
“그렇네요.”
“자식도 있지?”
“그렇 네요.”
“부모님 살아 계시지?”:
“정정하시죠.”
“그럼 뭐 때문에 점은 보러 왔어?”
“글쎄요, 뭐 침을 하루에 여덟 개씩 꽂아도 허릿병이 낫질 않는데 웬일인가 싶어서 .”
무슨 코미디 방송을 듣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베티는 듣고 있지 않다. 그녀는 아까부터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무슨 심상찮은 말을 하려 할 때 그녀는 저렇듯 감당할 수 없는 눈으로 상대를 쳐다보곤 한다. 거역할 수 없는 투명한 눈빛이다. 이럴 때면 그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이 거리가 너무 힘겹고 생소하게 느껴진다. 나는 긴장하고 있다. 왜 백조가 여자의 알몸을 뜻한다는 걸까. 비에 젖은 하양. 그녀의 자줏빛 실크 스카프가 방심한 채 풀려 있고 하얀 목덜미가 처녀처럼 드러나 보인다. 그녀는 좀체 몸을 추스르지 않는다. 숨이나 쉬고 있는 걸까. 오래전에 그녀와 묵호 바다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세차게 퍼붓던 비. 빗속의 염탐. 공복과 취기. 축축한 여관방. 그러나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밤새 지워지지 않았다. 둘 다 사랑에 가난했기 때문이다. 누가 그랬던가. 여자는 하나의 쓰라린 조국, 이라고. 벌써 십 년이 넘게 그녀를 만나오고 있다. 불가해한 일이다. 각기 다른 사랑을 하고 마침내 그 사랑이 끝나기만 하면 어김없이 서로를 찾아 돌아온다. 사랑에 서툰 자 되어.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연다. 메마른 입술에서 번져 나오는 저 소리의 소문. 나는 잔뜩 긴장하여 몸을 곧추세운다.
“정섭 씨.”
그녀가 나를 정섭 씨, 라고 부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팔자에도 없이 나는 그녀의 ‘형’으로 살아온 것이다.
“교활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 내가 정섭 씨 사랑한 거 알아?”
모른다. 그러나 지금 그녀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안다. 어디선가 국화 향기가 난다.
“정섭 씨, 나하고 재혼해.”
재혼? 아득히 시간이 거꾸로 쏟아져 내린다.
그래, 그동안 나는 결혼을 했고 이혼을 했고 지금은 여자 없이 사는 일에 오래 익숙해져 있다. 만 레이 같은 비범한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지금은 아이스크림, 샴푸, 속옷 나부랭이나 찍어대고 있다. 그만둘 수 없는 처지다. 이혼할 때 나는 알몸이 되었고 지금은 빚까지 지고 있다. 너무 늦은 것이다. 나는 사랑하지 않고 사는 일에도 이미 익숙해져 있는지 모른다. 옆방에서 하는 말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투생은 이렇듯 오래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남들은 지금 무얼 하며 살고 있는 중일까.
정섭 씨, 하고 그녀는 다시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만 고개를 꺾어버린다.
운다.
손수건만 한 창문 속으로 추억처럼 눈이 내리고 있다.
5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만큼 캄캄한 어둠이 먹물져 내리고 있었다. 점집을 나와 우리는 눈이 내리고 있는 거리에서 어둔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었다. 벌써 여덟 시가 다 돼 있었다. 우리는 성신여대 입구역보다 길음역 쪽에 가까이 와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족히 십 분은 걸어야 할 거리였다.
“전철역 근처에서 술이나 한잔씩 하고 가죠.”
베티를 이대로 돌려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무도 내 말에 대꾸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천천히 미아리고개를 내려가고 있었다. 베티는 정릉과 종암동으로 갈라지는 다리까지 올 동안 고개를 숙이고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길음역을 좀 지나쳐 삼부아파트 건너편, 병원과 철물점과 찻집과 전자 제품 대리점과 학원과 서점 같은 것들이 들어차 있는 건물들 속에서 갈 만한 술집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눈발이 그새 굵어져 있었다.
“아까 그 점집 여자 뭐 하는 여자죠?”
가로등 불빛 속으로 쏟아져 내리는 눈발을 훔쳐보며 내가 투생에게 물었다.
“그 여자요? 지금은 그냥 점보는 여자예요. 하지만 좀 역사적인 과거를 가진 여잡디다. 왠지 비감해지더라구요.”
“나쁜 년!”
베티가 잊고 있었던 듯 예의 거친 말로 내뱉었다. 그 말은 어쩐지 나를 겨냥해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투생은 고즈넉한 얼굴로 거리에 몰아치는 눈발을 바라보았다.
“대학에서 불교문학을 전공했대요. 팔칠 년에 시위를 주동하다 쫓겨 산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때 거기서 스님한테 사주보는 법을 배웠다죠.”
“누가요?”
“국화 얘기예요.”
“국화 좋아하시네.”
베티가 다시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투생의 말을 가로챘다.
“무슨 무술 영화 같네요. 그래서요? 그렇다고 점쟁이가 됐어요?”
“나이는 서른하나. 이름은 끝내 밝히지 않데요. 애인도 구학련* 소속 지하 운동권였답니다. 팔육 년에 검거돼 재작년에 출감하고 나서 이틀 만에 교통사고로 죽었대요. 하필이면 새벽 두 시에 국화를 만나러 오다 그렇게 됐답니다. 국화가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시간에 와달라고 했다는 거죠. 자기도 모르겠대요. 무엇에 홀렸는지 자다 일어나 그냥 전화를 해서 와달라고 했답니다. 나중에 궁합을 보니 그 남자를 잡아먹을 사주였대요…… 미혹에 빠진 거죠.”
“그래서 점집을 해요?”
“세상에 보시* 공양하는 마음으로 산답니다. 사람이 그런 일을 당하면 미욱해지게* 마련인가 봅니다. 저는 비구니가 되어야 할 사주 팔자래요. 속세에서 그렇게 보시하며 업살을 풀어낸 다음엔 다시 운동을 하겠답니다…… 왠지 속이 거북해요. 그 여자 얼굴을 보고 있으니 누군가 그 여자의 피를 다 빨아먹은 것처럼 보여요. 아무튼 그 여잔 지금 점쟁이일 뿐이에요. 미혹에 빠진 중생 일 따름예요.”
“사주팔자라는 게 있긴 있는 모양이죠?”
“있으나마나, 그렇다고 사는 게 뭐 달라집니까? 어쨌든 살아야 하는 거죠. 다만 내 경우엔 분식집이 하나의 미혹을 뜻한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는 미아시장 근처의 허름한 생맥줏집에서 골뱅이 무침과 감자튀김을 시켜놓고 빠른 속도로 술을 마셔댔다. 술집은 춥고 어둡고 습기가 차 있었으며 주방에서 음식 만드는 냄새가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다. 비틀스와 에릭 클랩턴과 실비 바르탕과 샤데이와 핑크 플로이드와 제니스 조플린의 음악이 없었다면 앉아 있기 힘든 술집이었다. 나는 동숭동에 있는 ‘베티 블루’라는 술집을 떠올렸고, 잊고 있었던 듯 곁에 앉아 있는 베티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녀는 머리칼을 제멋대로 풀어 헤친 채 소리 없이 술만 마시고 있었다. 그녀의 앉은키가 조금씩 작아져 갔다. 그녀의 풀린 어깨가 내 어깨로 무너져 올 때마다 나는 제풀에 놀라 몸을 외틀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인가 나는 베티가 술에 취해, 개새끼 지가 뭔데·…‥ 병신 같은 게·…‥ 영수증과 마침표만 있으면 다야…… 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십 년을 만나온 지금 나는 베티를 생각하며 자주 근친상간이란 말을 떠올리곤 했다. 근친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안 되는 것일까.
투생은 파스텔 톤으로 내려앉고 있는 거리를 초점 없는 눈으로 묵연히 내다보고 있었다. 그 언젠가 우리 청춘의 날들에 ‘목숨’을 버리러 왔던 색동의 거리를. 하지만 ‘목숨’ 없이도 이념 없이도 사랑과 희망이 없이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아득해라, 마지막 하나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는.
6
보다 추운 쪽으로 돌아눕고 싶소, 베티. 이 어둡고 적막한 겨울의 한가운데, 우리 밤으로 온 길은 너무도 멀었소. 아무도 없었소, 아무도. 나는 얼마나 완강히 희망을 꿈꿔왔는지. 흰 쌀밥 같은 사랑과 시대를 꿈꿔왔는지. 그리하여 나는 차라리 절망을 획책하며 살았소. 가시관을 쓰고 살아야 하는 핏덩이 같은 우리의 삶. 그때 우리 기댐은 정녕 어여쁠 수 있는 것일까. 기대지 않고 살 수도 깠으련만. 그러나 마지막 남은 네가 내게서 멀어지기 전에, 저 박명에 떠는 새벽 숲의 안개가 걷히기 전에 나는 곱다랗게 눈을 뜨고 일어나, 온몸의 비늘을 털고 일어나 네게서 살아야지, 살아야겠다.
온몸에 가득히 술기운이 퍼져 이런 계면조*의 방백에 빠져 있을 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흔들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온몸이 추웠다. 스피커에서는 낮게 낮게 정태춘의 「북한강에서」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안에 남은 것을 우리 둘뿐인 듯했다.
“그만 가요, 세종.”
투생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들었다. 베티는 곁에 없었다. 짐작이 갔지만 확인하는 심정으로 나는 투생에게 물었다.
“몰라요. 아까 화장실 가는 줄 알았는데 그냥 갔나 봐요. 많이 취했더라구요.”
우리는 술값을 지불하고 하얗게 변해버린 거리로 나왔다. 눈이 퍼붓는 거리는 소리마저 조용히 죽어 있었다. 먼 곳 이불 속에 누워 여자와 아이를 낳고 싶은 밤이었다.
투생과 나는 곱사등을 하고 길음역까지 걸어가 전철을 탔다.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지 않았고 우리 또한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2호선으로 갈라지는 동대문운동장역에 와서 투생과 나는 헤어졌다. 그가 막 돌아서려고 할 때 나는 뜬금없이 그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죠?”
“네?”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듯 투생은 한동안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빙긋 웃으며, 그래요 잘 가요 하고 손을 흔들며 계단을 올라갔다. '
7
나는 삐걱거리는 쇠침대 위에 누워 전화를 건다.
아득히 이어지는 발신음. 받지 않는다.
다시 건다. 받지 않는다.
창밖에 가득히 내리는 눈. 자정.
베티, 그녀는 지금 춥겠다.
다시, 걸려다, 만다. 스탠드의 불을 끈다.
미혹.*
『문학정신』 75호(1993. 3)' 『은어낚시통신』 (문학동네 1994)
* 2006년 6월 작가가 부분 수정함
윤대녕(尹大寧)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단국대 불문과를 졸업했다. 1990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소설 「어머니의 숲」 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복잡한 대도시에서 혼자 살아가는 고독한 개인의 내면 풍경을 감각적인 언어로 그려낸 작품들을 발표했다.
소설집 『은어낚시통신』 『남쪽 계단을 보라』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흩러갔다』 『누가 걸어간다』,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달의 지평선』 『미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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