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글씨로 자주 볼 수 있는 글귀다.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없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니 신년 휘호로 쓰면 좋을 내용이다.
어느 정도를 내다보고 계획하는 게 멀리 내다보는 걸까.
중국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가 있다. 어리석은 노인 우공이 아침마다
해를 가리는 산이 싫어 산을 아예 옮겨버릴 작정을 한다. 산신령이 보니
하찮은 인간이 가소롭기 그지없다.
주위의 사람들도 말린다. “여보시오, 우공. 고작해야 몇십년 사는 인생인데
언제 저 산을 옮기겠소. 그냥 편히 사시오”
그러나 우공의 고집은 말릴 길 없다.
“내가 못 옮기면 내 아들이, 내 아들이 못 옮기면 내 아들의 아들이,
그래도 안되면 그 아들의 아들의 아들이…”
산신령이 놀라 산을 옮겼다는 얘기다. 수백년이 걸려도 해내고야
말겠다는 이런 정신이면 실현가능성은 시간이나 능력이 아니라
철저히 의지에 달린 것이라 하겠다.
수년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요세미티 국립공원 운영권 입찰에 참여한
일본기업이 제출한 장기운영계획은 2백50년 짜리였다. 25년이 아니다.
놀랍지 않은가. 1년에 네 분기가 있으니 무려 1천 분기의 청사진인 셈이다.
손익분기점 돌파까지 수년 짜리 계획만 짜도 장기로 여기는 미국인들이
꿈도 못 꿔볼 스케일이었다.
우공이산이나 1천 분기 짜리 계획이나 공통적으로 흐르는 건
역사의식이다. 내가 마쳐야겠다고 , 나만의 업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이런 원대한 계획은 꿈도 꾸기 어렵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도 이런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 같다.
그는 자신의 회사가 3백년을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짰다고 말했다.
기업의 평균 수명인 30년의 꼭 10배가되는 세월이다. 자체 진화하는
생명체로서의 회사를 만들고 면면이 이어갈 유전인자를 주입하면
그 정도는 거뜬히 살아남을 것으로 자신했다.
이런 거창한 역사의식은 나라나 대기업을 경영하는 이들에게나
어울리는 스케일일지도 모른다. 개인이 흉내 내기엔 지나치게 크고
현실성이 없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멀리 볼 수록 지금의 길이
더 명확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다시 손정의의 말을 빌면 “가까이만 보면 어지러워 변화의 방향이
보이지 않지만 멀리 보면 훤히 보인다”.
단기 업적 중심적인 미국 기업문화지만 개인들을 보면
이런 장기계획의 효용성을 확실히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비즈니스 스쿨 입학을 위해 제출해야 하는 에세이를 예로 들자.
공통적인 질문이 바로 이런 거다.
“당신의 궁극적인 커리어 (Career) 목표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10년 후 당신은 어느 자리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이를 위해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한 직후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은 아니 우리는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가.
20년, 30년 뒤 종착역이 어디여야 할지를,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
10년 뒤, 2년 뒤 엔 내가 뭘 해야 할지를 몇달간 아니 며칠간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가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문화가 그렇다.
세속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걸 남들에게 공표 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주위를 둘러 보라. 당신 회사 사장이 되겠다고 공언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는가.
당신은 그런 얘기를 동료에게 해 본적이 있는가.
그런데 미국인들은 대학입시에서,취업인터뷰에서,인사부서에
제출해야 하는 개인 성취목표서 에서, 비즈니스스쿨에 내는
원서에서 계속 이런 질문을 만난다. 그들만의 문화라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그 효용성은 다시 봐야 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보여주는 지도를 갖고 있는 사람과
감각으로 운전하는 이, 누가 목표지점에 먼저 닿을지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특히 리더가 되고 싶고 최고를 지향하는사람은
누구에게나 떳떳이 설명할 수 있는 장기계획이 있어야 한다.
20년짜리 비전 플랜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며칠 전 MBA준비를 한다는 군인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섬에서 근무하고 사병이기 때문에 인터넷 접속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외출 나올 때마다 필자의 ‘워튼통신’을 프린트해
들어가 읽는다고 했다. 그는 당장 MBA 공부를 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다. 먼 앞날을 위해 일단 목표를 그렇게 세웠단다.
그의 동료들과는 외출 자체의 목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에게 ‘국방부 시계는 어쨋든 돈다’는 패자적 자포자기는
흔적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인생지도 어디쯤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그의 계획은 실행과정에서 몇차례 수정되고
보완될 것이다. 그러나 20대 초에 세운 비전이 그를 성공의 길로
이끌 것이란 느낌이 메일이 담긴 컴퓨터 화면에서 밀려왔다.
멀리 내다보려는 자세만으로도
그는 이미 절반의 성취에 다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