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작질 반
열댓 명의 할머니들이 모여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얼굴을 보면 제각각이다 아주 심취하여 붓을 놀리는 사람, 웃음을 머금고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사람, 낑낑대며 용을 쓰는 사람
평균 나이 일흔이 넘은 분들이 자유롭게 호작질을 하고 있다
2022년 봄볕이 따뜻하게 내리던 5월
학산의 그늘에 앉아 시낭송을 좋아하는 몇 분과 낭송을 하고 있었다 근처에 있던 할머니 몇 분이 다가와 박수를 치며 관심을 보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오늘의 호작질 반으로 발전된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어릴 적 연애편지를 쓴다고 이쁜 말들을 찾아다가 쓰고 누구에게 마음을 예쁘게 포장하려고 글을 쓰고 시집을 뒤적거리도 했다 이슬방울처럼 영롱한 글을 쓰려고 끌적거린 적이 한두해였을까
나는 중학교 다닐 무렵 한 소녀가 내미는 일기장 선물을 받고 연애편지를 쓰게 되었다 수백 통의 편지를 썼다
그것이 밑거름이 되었을까 글쓰기와 책 읽기에 많은 재미를 가졌고 지금까지 일기를 쓰고 시를 쓰고 있다
어릴 적에는 시를 쓰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가끔씩 메모하고 좋은 시간들의 기억을 적어 보관을 했었다
2015년 7월 예순세 살의 나이에 백혈병이라는 위험한 병을 만났다 망망대해에서 싸워야 하는 큰 파도와 역경을 겪으면서 삶의 깊은 곳과 아픔을 알게 되었고 소중한 것과 따뜻한 사랑, 감사와 나눔을 알게 되었다
65세 죽음의 문턱에서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골수이식을 받았다
얼굴도 모르는 분의 골수 기증으로 나는 살아났다 그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되는 큰 사랑을 받았다
감사와 사랑을 알았고 그 마음을 나누고 싶다
필을 들었고 감사와 기쁨과 고마움을 헤아리며 적었다
행여 세상을 떠날지라도 아름다운 사랑과 감사와 감동의 순간을 남기고 싶었다 용기와 희망을 나누고 싶어 글을 썼다
여러 가지 목적과 이유로 글을 쓰겠지만 나는 새 삶의 감사와 기쁨을 남기고 싶고 나누고 싶었다
시간의 귀중함을 알기에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다
아픔을 통하여 시인이 되었다
등단도 하게 되었고 시집을 세 권 내어놓았다
잘 쓰는 글은 아니지만 꿈과 희망, 용기를 드리고 싶다 예쁜 글, 감동의 글을 만나면 행복해지는 것을 알기에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아름다운 내일을 꿈꾼다
어릴 적 크레용으로 벽에다 그리던 꿈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던 마당 모퉁이에 친구들과 소꿉놀이하던 고운 조각들을 모아 쓰고 그리며 호작질을 하고있다
우리 마을에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 행복한 호작질의 자리를 만들었다
'호작질'은 재미있는 손장난이라 한다
호작질 속에는 꿈도 있었고 아픔도 있었다 기다림도 있었고 목마름도 슬픔도 있었다 마음껏 펼치고 싶던 지난날의 이야기를 지금은 곱게 적고 이쁘게 그려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어르신들이 행복한 호작질을 마음껏 해보고 싶다
외로움도 털어내고 웃으면서 시를 쓰고 호작질을 하는 일들이 치매예방에 도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남은 시간이 얼마일까
오래오래 호작질을 하며 어르신들과 함께 행복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