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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1 팡틴
운명
지금은 없어졌지만 19세기 초 파리 근교의 몽페르메유에는 테나르디에라는 부부가 경영하는 누추한 여관이 하나 있었다. 여관은 불랑제 골목길에 있었다. 문 위에는 널빤지 하나가 벽에 못 박혀 있었다. 이 널빤지에는 한 사나이가 또 한 사나이를 등에 업고 있는 듯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업혀 있는 사나이는 은색 별이 달린 장군의 널따란 견장을 붙이고 있었다. 몸에는 붉은 반점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은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화면의 나머지 부분에 연기가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전투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그림 밑에는 ‘워털루의 중사에게’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그 시대에는 여인숙 문 앞에 달구지나 손수레가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818년의 어느 봄날 저녁, 이 워털루의 중사 음식점 앞에 앞바퀴가 망가진 수레 한 대가 서 있었다. 어찌하여 이 수레 앞머리가 길 한가운데에 놓여 있었을까? 첫째는 길을 막기 위해서였고 둘째는 완전히 녹슬어 버리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낡은 사회 질서 가운데에는 이같이 백주에 공공연히 통행을 방해하는 일이 있었다. 그 밖에도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는 제도가 허다하게 있다.
수레 뒤쪽 양 끝 짐을 묶는 쇠사슬이 그네처럼 아래로 늘어져 있는 곳에는, 그날 저녁 어린 두 소녀가 그 사슬이 마치 그네라도 되는 듯 앉아 있었다. 한 아이는 3살가량 되어 보였고 또 한 아이는 낳은 지 1년 반밖에 안 된 어린애로 그들은 떨어지지 않도록 사슬에 띠로 하여 단단히 묶여 있었다.
두 아이는 제법 옷을 말쑥하게 입어 예쁘장하게 보였다. 마치 고철에 둘러싸인 두 송이 장미꽃 같았다. 그 눈은 반짝거렸고 복스러운 뺨은 웃고 있었다. 한 아이의 머리칼은 밤색이고 다른 아이는 갈색이었다. 천진스런 얼굴은 두 개의 황홀한 경이였다. 부근에서 풍겨 오는 꽃향기도 이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듯싶었다. 작은 아이는 배를 드러내 놓고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어린아이의 순진한 아름다움이 엿보였다. 행복에 젖고 빛 속에 묻힌 두 아이의 주위와 머리 위에는 검게 녹이 슬고 흉한 곡선과 이지러진 각도로 무섭기까지 한 거대한 수레의 앞머리가 동굴의 입구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몇 걸음 앞의 여인숙 입구에서는 별로 인상이 좋지 않은, 그러나 이때만은 제법 근사한 얼굴을 한 여자 즉, 아이들의 어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쇠사슬에 맨 긴 끈으로 두 아이를 흔들어 주고 있었다. 사고를 걱정하며 지켜보고 있는 얼굴에는 모성 특유의 본능적이고도 신성한 표정이 어려 있었다.
쇠사슬이 흔들릴 때마다 기분 나쁜 쇠고리는 분노의 고함 소리와도 같이 삐걱거렸다. 아이들은 저녁때까지 이 기쁨에 도취되어 있었다. 거인의 쇠사슬을 천사의 그네로 만든 이 우연한 놀이만큼 더 재미있는 것은 없었다. 어머니는 두 아이를 흔들어 줌녀서 당시 유행하는 가요를 박자도 맞지 않는 음정으로 나직이 불렀다.
“…….할 수 없지 하고 병사는 말했다네.”
노래를 부르고 또 자기 딸들을 지켜보느라고, 이 여자는 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거나 듣지 못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유행가의 첫 소절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누군가가 곁에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 귀 바로 옆에서 이런 말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기들이 아주 예쁘군요, 부인.”
“아름답고 귀여운…..”
어머니는 유행가를 계속하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어떤 부인이 팔에 아기를 안고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서서 물끄러미 그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꽤 커 보이는 여행 가방을 들고 있었다. 안고 있는 아기는 두세 살쯤 되어 보였는데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잠든 얼굴은 천사처럼 예뻤다. 옷맵시만 하더라도 아까 그 두 아이와 필적할 만하였다. 고급 리넨 모자를 쓰고 어깨에는 리본, 모자에는 발랑시엔 레이스를 달고 있었다. 지맛자락이 떠들려 있어서 포동포동하고 건강해 보이는 흰 넓적다리가 드러나 있었다. 발그레한 얼굴은 건강함을 연상케 했다. 아이의 뺨은 사과 같아서 깨물어 주고 싶었다. 눈은 크고 눈썹이 무척 길었다.
아이는 잠들어 있었기에 그 이상은 표현할 길이 없었다. 아이는 어린애에게 고유한 절대적 신뢰를 가지고 잠들어 있었다 어머니의 품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어서 아ㅣ들은 그 팔 안에서 안심하고 잘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아이의 어머니는 가난하고 슬퍼보였다. 마치 시골 여인으로 되돌아가려고 하는 여공 같은 모습이었다. 나이는 젊었다. 아마도 아름다운 여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차림새로 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묶어 올린 금발머리는 숱이 많은 것 같았지만 턱에다 끈을 맨 더럽고 구겨진 모자에 감춰져 있었다. 웃음을 잊은 듯한 입은 예쁘장하고 눈물이 마를 겨를이 없었던 것 같은 눈은 파랗게 맑았다. 얼굴은 창백했고 또한 피곤해 보여서 약간의 병색도 있는 듯했다.
그녀는 팔에 안겨 잠들어 있는 아이를 과연 어머니다운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이군인들이 쓰는 것 같은 커다랗고 푸른 수건을 접어 어깨에 걸치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녀의 상반신을 온통 덮고 있었다 손은 햇볕에 그을어 붉은 반점이 돋아 있고 집게손가락에는 바느질 때문에 못이 박혀 있었다. 팡틴이라는 이름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성근 털실로 짠 자줏빛 망토와 무명옷에 다 떨어진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이 여자는 테나르디에의 여관 앞을 지나가다 그 기묘한 그네에 매달려 기뻐하는 두 여자아이를 보았다. 그녀는 여기에 현혹되었다. 그리하여 이 환희의 광경 앞에 멈추어 섰던 것이다.
그녀는 완전히 감동한 눈으로 두 아이를 바라보았다. 천사의 존재는 천국을 알리는 신호이다. 그녀는 이 여인숙에서 신의 신비로운 ‘그곳’을 보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두 아이는 분명히 행복해 보였다. 여자는 그들을 바라보며 감동에 젖었다. 그래서 아이들의 어머니가 노래의 한 구절을 부르고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두 아이가 모두 귀엽군요, 부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흉포한 생물일지라도 자기 자식을 칭찬해 주면 누그러지는 법이다. 문턱에 앉아 있던 어머니는 고개 숙여 인사하고 이 지나는 여자를 입구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게 했다. 두 여자는 대화를 나누었다. 두 아이의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테나르디에 부인이에요. 이 여관을 남편과 함께 경영하고 있어요.”
그러고는 다시 유행가를 입속으로 읊조렸다.
“할 수 없지. 나는 기사이니 팔레스타인으로 떠나야 하네.”
이 테나르디에 부인은 붉은 머리를 가졌고 살이 쪘으며 우락부락했다. 흡사 여군과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주제에 소설만 읽었기 때문인지 세상 물정에 대해 아는 척하기도 했다. 아양을 떠는 남자 같은 여자였다. 싸구려 주막집 여자가 케케묵은 소설로 상상력을 기르게 되면 이런 꼴이 된다. 이 여자는 이제 갓 서른이나 되었을까 하는 아직 젊은 여자였다.
만약 이 여자가 구부리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면 그 큰 키와 시장에서나 어슬렁거림직한 거대한 몸짓으로 인해, 이 길을 가던 여자의 신뢰감을 흔들고 두려움을 갖게 했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에 이야기할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 여자가 서 있지 않고 앉아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인간의 운명이란 좌우되는 것이다.
길 가던 여자는 약간 과정을 섞어 가면서 자기의 신세타령을 했다.
“저는 파리에서 직공 노릇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죽은 데다 일거리 마저 없어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랍니다. 이 아이는 걸음마는 할 수 있습니다. 아까 좀 안아 줬더니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답니다.”
여자가 이 말을 하면서 딸에게 뜨거운 키스를 퍼붓는 바람에 아이는 그만 눈을 떴다. 아이는 눈을, 어머니의 눈을 꼭 닮은 크고 푸른 눈을 뜨고 두리번거렸다. 무엇을? 아무것도, 아닌 모든 것을. 어린아이의 순진하고 때로는 준엄한 모습은 퇴폐해 가는 어른들의 덕에 대항하여 진지하게 빛나는 신비스러운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들은 자기네가 천사이고 우리가 어른들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가 웃었다. 이어서 어머니가 아무리 억제해도 막을 길 없는 어린 아이의 걷잡을 수 없는 힘으로 땅에 쑥 미끄러져 내려왔다. 문득 그네를 타고 있는 두 아이에게로 시선이 가자, 아이는 감탄한다는 표시로 입을 벌렸다.
테나르디에 부인은 딸들을 그네에서 내려놓으며 말했다.
“셋이서 함께 놀아라.”
그 나이 또래에는 쉽게 친해진다. 테나르디에의 아이들은 금방 새로온 아이와 땅에 구멍을 파며 놀기 시작했다. 몹시 즐거운 듯싶었다.
새로 온 아이는 아주 쾌활했다. 어머니의 선량함은 아이의 쾌활함으로 나타난다. 그 아이는 나뭇조각을 삽 대신 사용하여 파리 한 마리가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구멍을 열심히 팠다. 무덤 파는 일꾼의 일도 어린애가 하면 즐거운 일이 된다. 두 여인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래, 애 이름은 뭐죠?”
“코제트예요.”
코제트라 했지만 사실은 와프라지라 해야 옳았다. 이 여자아이의 원래 이름 외프라지를 어머니는 코제트로 만들어 버렸다.
“나이는요?”
“이제 곧 세 살이 되죠.”
“우리 집 큰아이하고 같군요.
한편 세 아이는 크나큰 불안과 행복이 뒤섞인 모습으로 한데 어울려 있었다.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 마리의 벌레가 흙 속에서 나왔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섭기도 하고 흥미도 없어 법석을 떨고 있었다. 세 아이는 이마를 맞대었다. 마치 후광이 있는 듯한 세 개의 머리였다. 테나르디에 부인이 말했다.
“아이들이란 금방 친해져요. 마치 세 자매 같군요.”
이 말은 코제트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바라던 말이었다. 그녀는 테나르디에 부인의 손을 잡고 그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제 아이를 받아 주시지 않겠어요?”
테나르디에 부인은 승낙도 거절도 아닌 놀라움을 표시했다. 코제트의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저는 딸을 고향에 데려갈 수 없어요. 일에 지장이 있으니까요. 아이가 있으면 일거리가 생기지 않아요. 고향 사람들은 정말 이상해요. 이 앞을 지나가게 된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닐 수 없어요. 이처럼 귀엽고 예쁘며 깨끗한 아이들을 보았을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지요. 참으로 훌륭한 어머니라고. 그래요, 세 아이는 꼭 자매 같아요. 저도 금방 돌아올 거예요. 제 아이를 맡아 주시지 않겠어요?”
“생각해 봐야겠는데요.”
“매달 6프랑씩 드리겠어요.”
이때 안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7프랑 이하면 안 돼. 6개월분은 미리 내야 하고.”
테나르디에 부인이 말했다.
“육칠은 사십이.”
팡틴이 말햇다.
“드리겠어요.”
사내가 재빨리 덧붙였다.
“그리고 처음에 드는 비용을 15프랑.”
“모두 57프랑.”
테나르디에 부인이 말하는 소리였다. 그 부인은 숫자를 계산하며 다시금 노래를 흥얼거렸다.
“할 수 없지 하고 병사는 말했다네.”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렇게 할께요. 80프랑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고향에 갈 만한 돈은 남아요. 걸어가기만 한다면. 거기에서 돈을 벌 거예요. 돈을 조금 모으면 아이를 찾으러 오겠어요.”
“아이가 입을 옷은 있나?”
사내의 말소리에 여주인이 말했다.
“우리 집 주인 양반이에요.”
“물론 있습니다. 소중한 아이에요. 참, 주인이신 줄 알고 있습니다. 아주 좋은 옷이 있어요! 무척 고급이에요. 전부 해서 한 다스예요. 귀부인들이 입는 비단옷이랍니다. 이 여행 가방에 들어 있어요.”
여자아이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것도 놓고 가요.”
“물론입니다. 벌거벗겨 놓고 갈 수는 없으니까요.”
“좋소.”
테나르디에 바깥 주인의 얼굴이 나타나면서 말했다. 거래가 끝났다. 팡틴은 그날 밤을 이 여인숙에서 지냈다. 돈을 지불하고 아이를 맡겼다. 옷으로 가득 찼던 여행 가방을 들고 다시 오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튿날 아침 길을 떠났다. 이러한 출발은 조용한 가운데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출발은 절망을 뜻하는 것이었다.
테나르디에의 이웃에 사는 여자가 팡틴을 길에서 만났다. 이웃은 돌아와서 이런 말을 했다.
“길에서 울고 있는 여자를 보았는데, 정말 불쌍하더군요.”
코제트의 어머니가 떠난 뒤 남편이 아내더러 말했다.
“이 돈으로 내일 당장 빚을 갚으러 가야겠어. 50프랑이 모자랐는데 이젠 됐군. 당신하고 저 애가 아니었더라면 내가 감옥에 갈 뻔했는데 말야. 당신 재주도 괜찮은데.”
“별로 그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아내가 말했다.
그들이 붙잡은 봉은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마른 쥐도 좋아하는 법이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그들은 선량한 노동자도 아니요. 그렇다고 교양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벼락부자가 된 족속과 타락한 지식인으로 구성된 잡스런 계급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하층 계급의 몇 가지 결점과 중류 계급의 거의 모든 악덕을 아울러 지니고 있었다. 더구나 노동자의 고매한 정열이나 시민의 성실한 질서도 가지고 있지 못하였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어떤 사악한 불이 우연히 그들 마음속에 일어난다면, 곧 흉악하게 타오를 그런 영악한 성질을 가진 자들이었다. 아내에게는 짐승 같은 소질이 있고 남편에게는 거지 근성이 있었다. 양쪽 모두 악한 데로 발전하라면 둘째 가지 않을 정도로 최고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생명으로 향하기보다느 ㄴ오히려 그 반대로 가고 있었다. 자기네 추악성을 증가시키는 데 경험을 사용하고 끊임없이 악해져 가고 더욱더 짙어져 가는 간특함 속에 물들어 갔다. 이 두 내외는 그러한 성질의 사람들이었다.
특히 남편은 인상부터가 고약한 인물이었다. 세상에는 보기만 해도 경계심을 갖게 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양면의 암흑을 느끼게 된다. 전면에는 위협이 있고 배후에는 불안이 있다. 그들 가운데는 정체불명의 것이 도사리고 있다.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들의 시선 앞에 있는 그림자가 그들이 악인이란 것을 고발하고 있다. 그들의 말 한마디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 그들의 과거에 있었던 어두운 비밀과 그들의 장래에 있을 으슥한 비밀을 상상할 수 있으리라.
테나르디에의 말로는 자기는 과거에 군인이었으며 1815년의 전쟁 때에는 연대장을 구출한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그랬는지는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자. 그의 선술집 간판은 당시의 전공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이것을 스스로 그렸다. 비록 서툴기는 했지만, 어떤 일이든지 조금씩은 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시시한 연애소설들을 읽은 덕분으로 두 딸에게 에포닌과 아젤마라는 이름을 소설에서 따다 붙였다.
악하다는 것만으로는 사업이 번창하지 않는다. 이 선술집은 불경기였다. 길 가던 여자의 57프랑 덕택에 그는 차압을 면하였고 약소도 이행할 수 있었다. 다음 달이 되자 그들은 또다시 돈이 필요하게 되었다. 테나르디에 부인은 코제트의 옷가지를 파리로 가져가서 공영 전당포에 맡기고 60프랑을 빌려 왔다. 그 돈마저 모두 써 버리자 테나르디에 부부는 코제트를 더 이상 자비롭게 돌보아 줄 수가 없었다. 되는 대로 대우하게 된 것이다.
이미 옷이 없어졌으므로 자기 아이들의 헌 치마나 누더기가 된 속옷을 입혔다. 음식은 모두가 먹고 남긴 찌꺼기를 먹였다. 이것은 개밥보다 조금 나은 정도였다. 그뿐 아니라 개와 고양이는 언제나 아이의 식사 친구였다. 코제트는 항상 식탁 밑에서 개나 고양이의 밥그릇과 같은 나무 주발에다 개 고양이와 함께 밥을 먹었다.
몽트뢰유쉬르메르에 정착한 아이의 어머니는 자기 아이의 소식을 알기 위해 날마다 편지를 썼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남에게 부탁하여 편지를 썼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언제나 똑같은 회답을 보내왔다.
<코제트는 잘 자라고 있습니다.>
여섯 달이 지나자 코제트의 어머니는 매달 7프랑씩을 꼬박꼬박 보내왔다. 그러나 1년도 되기 전에 테나르디에는 이런 말을 했다.
“그 여자는 은혜도 몰라! 도대체 7프랑을 가지고 어쩌란 말이야?”
이제 그는 12프랑을 요구하는 편지를 썼다. 코제트의 어머니는 딸이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을 곧이 듣고 있었으므로 요구대로 12프랑을 보내주었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한쪽을 사랑하기 위해 다른 쪽을 미워한다. 테나르디에 부인은 제 두 딸을 몹시 사랑했기 때문에 다른 아이를 미워하게 되었다. 모성애에도 추악한 면이 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슬프기 짝이 없는 일이다. 코제트가 그 집에서 차지하는 부분은 극히 적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테나르디에 부인은 이 아이가 자기네 아이들이 호흡하는 공기를 감소시키고 있다는 듯이 생각했다. 이런 부류의 여자가 대개 그러하듯이, 그녀도 매일 행해야 할 일정한 분량의 애정과 일정한 분량의 매질 및 욕지거리를 가하지 않고는 못 배겼다. 만일 코제트가 없었더라면 그 딸들이 비록 사랑받는다고 해도 그 나머지 것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코제트가 매질을 떠맡음으로써 다른 아이들을 몰매에서 구해 주었다. 따라서 두 딸이 받는 것은 사랑뿐이었다.
코제트는 어떤 일을 하든 반드시 맹렬하고도 부당한 징벌을 받아야 했다. 이 세상의 일도 하느님의 일도 모르는 귀엽고 순진한 아이는 언제나 벌을 받고 욕을 먹으며 학대받고 매질을 당했다. 그 곁에서는 자기 또래의 두 아이가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별로 말썽를 부리는 일이 없는데도 테나르디에 부인은 코제트를 번번이 쥐어박곤 했다. 이처럼 테나르디에 부인이 코제트를 학대하자 에포닌과 아젤마도 심술궂게 굴었다. 이 나이의 아이들이란 다만 크기가 작을 뿐 어머니의 행동을 그대로 하는 판박이에 지나지 않는다.
1년이 지나고 또 1년이 지났다. 마을에서는 이렇게들 말했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참 좋은 사람들이야. 자기들도 넉넉하지 못한데 버리고 간 아이를 길러 주다니!”
사람들은 코제트가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테나르디에가 어떤 방법을 썼는지 몰라도, 이 아이가 사생아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팡틴이 이 사실을 고백하지 못하리란 걸 알고는 한 달에 15프랑씩을 요구했다. ‘그 아이’도 이제는 자랐기 때문에 ‘많이 먹는다’며 그렇지 않으면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다.
테나르디에는 중얼거렸다.
“제가 안 주고 배길 것 같아! 숨기고 있는 낯짝에 갖다 던져 주겠어. 돈을 더 내놓지 않는다면.”
애 어머니는 15프랑씩 지불했다. 해마다 아이는 자랐다. 이에 따라 아이의 고통도 심해갔다. 코제트가 어렸을 때에는 두 아이의 놀림감이었다. 그러나 좀 자라자, 그러니까 5살쯤 되자 하녀처럼 되고 말았다. 설마 5살에 그럴 수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었다. 세상의 고통은 나이에 관계없이 시작되는 것이다.
코제트는 심부름을 하고 방과 뜰과 가게를 청소했으며, 접시 닦기와 짐 운반까지 했다. 테나르디에 부부는 몽트뢰유쉬르메르에 있는 어머니가 돈을 제때 보내지 않으르로 이런 일을 시킬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몇 달 동안 지불이 밀렸던 것이다. 만일 팡틴이 4년 뒤 몽페르메유에 돌아왔다 하더라도 자기 자식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에는 그렇게 깨끗하고 토실토실했던 코제트가 지금은 마르고 창백하며 늘 겁먹은 얼굴을 하고 잇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
“앙큼한 것.”
테나르디에 부부는 툭하면 그렇게 말하고 했다.
부정적인 생각은 아이의 성격을 비뚤어지게 만든다. 이 아이에게 남은 것은 오직 아름다운 눈뿐이었으나 그것 역시 가련했다. 눈이 큰 만큼 슬픔도 컸기 때문이다.
겨울에는 이 6살밖에 안 된 아이의 모습이 더욱 애처로웠다. 구멍이 난 헌 무명옷을 입고 추위에 바들바들 떨면서 빨갛게 언 작은 손에 큰 비를 들고 큰 눈에 가득히 눈물을 머금고는, 해가 돋기도 전에 가게 앞을 쓰는 모습이란 보기에도 딱한 것이었다.
그 고장에서는 이 아이를 ‘종달새’라 불렀다. 비유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새보다 별로 크깆 않은 그 아이를 이렇게 부르며 좋아했다. 이 작은 아이는 떨며 흐느끼며 겁을 먹고서 마을의 어느 누구보다도 일찍 일어나 거리나 들에 나와 있었다. 다만 가련한 이 종달새는 결코 노래를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