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와이 순지 (Shunji Iwai)
출연 : 마츠 다카코 (Takako Matsu)
후지이 카호리 (Kahori Fujii)
카토 카즈히코 (Kazuhiko Kato)
다나베 세이치 (Seiichi Tanabe)
각본 : 이와이 순지
감독 : 이와이 순지
제작 : 이와이 순지
관련영화사 : Rockwell Eyes Inc.
"나는 그것을 '사랑의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우즈키(마츠 다카코 분)가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읊조린 말마디들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의... 기적이라... 부르고.... 싶다....
우즈키는 고등학교 선배인 야마자키를 따라 도쿄의 무사시노 대학에 입학한다. 학교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묻는 친구들에게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다. 숨기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이다. 누구를 좋아한다는, 누구를 진심으로 좋아할 때 그 사람의 이름은 쉽게 입밖으로 새어 나오는 일이 없다. 비록 자신이 '바보' 소리를 듣더라도. 고등학교 때 별달리 공부를 잘하지 못했던 우즈키에게 선생님과 부모님은 '기적'이라는 표현을 빌려가며 그녀의 대학입학을 놀라워 한다. 그만큼 기적같은 일이기도 했는데, 우즈키는 그것을 특별히 '사랑의 기적'이라 부른다. 대학생활에서는 괴짜 친구를 만나 낚시 서클에 가입하고, 이웃집 여자와 이상한 만남을 갖는 등 생소한 생활에 적응해나가는 우즈키는 동네에 있는 서점에 자주 들른다. 그 서점에서 고등학교 시절 그녀의 짝사랑이던 야마자키 선배가 일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녀가 의도하는 자연스러운 부딪힘은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비오는 날, 서점에 들른 우즈키는 야마자키 선배가 계산대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기쁨에 들뜨지만 선배는 그녀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녀가 실망한 채 돌아서려는 순간 선배는 그녀를 기억해내고는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시원스레 쏟아지는 빗속으로 선배에게 빌린 빨간 우산을 들고 뛰어나가는 우즈키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다음의 만남을 기약한다.
<내 인생의 영화>
언제부턴가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영화의 OST를 먼저 듣고 음악이 익숙해지면 영화를 보는 버릇이 생겼다. 음악이 익숙해지면 영화 장면 하나 하나가 어우러져 훨씬 인상깊게 다가온다. 나는 헐리우드의 빠른 전개의 영화보다는 느린 영화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영상이 아름다운 이와이 순지 영화가 많이 와 닿는거 같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러브레터도 물론 좋았지만 짧은 상영 시간이지만 그 시간 내내 풋풋한 사랑을 조용히 느낄 수 있는 4월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비오는 날 빨간 우산을 쓴 소녀가 작은 웃음을 머금고 서있던 영화포스터가 인상적이었던 영화. 러브레터가 추운 겨울의 하얀 사랑이라면 4월 이야기는 4월이라는 달이 보여주는 것처럼 모든 생명들이 새로 시작하는 풋사랑같은 느낌인거 같다. 여담으로 영화 속 여주인공 마츠 다카코의 극중 이름이 우즈키인데, 옛날 일본에 일,이,삼,사라는 한자식 숫자의 개념이 없던 시절에는 4월을 우즈키라고 불렀다고 한다. 4월은 卯月이라고 적고 うづき또는 うずき로 표기된다. 특히 화면을 가득채웠던 벚꽃의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영상이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고 싶다. 바닥과 하늘에서 눈처럼 벚꽃이 쌓여 있떨어지는데 그 사이를 주인공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장면. 나도 언젠가는 일본의 저 곳에 가서 떨어지는 벚꽃 아래에 서 있어 봐야지 하는 다짐을 하기도 했다. 사랑... 어쩌면 매일 매일 지겹게 듣는 말일지 모르지만 '기적'이라는 다른 말 앞에 놓일 때, 우즈키처럼 순수한 사람의 입가에서 그 말이 머뭇거릴 때, 우리는 '사랑'이란 말과 그것이 주는 느낌에 제법 가깝게 다가서곤 한다. 조금은 낯설지만, 낯설어게 느껴질수록 그 아름다움은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사랑이 이루어진것도 아니고, 상대방이 그 사랑을 알 아 준 것도 아닌것처럼 영화의 끝이 확실하게 결론을 맺고 끝나진 않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의 그 장대비가 짝사랑에 대한 설레임만으로도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지는 영화였다.
<4월 이야기의 영상>
영화라기보다는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은 내러티브의 전개나 인물 설정 등에서의 치밀한 짜임새보다는 순간 순간의 정서를 그리고 있는 영상에 그 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토리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소한 일들이 시간적으로 확장되면서 인물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이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벚꽃이 날리는 길에서 신부를 식장으로 인도하기위해 기다리고 있는 차의 운전자에게 이삿짐을 싣고 오는 트럭의 운전자가 집 위치를 물어보는 장면이나 푸른 잔디 위에서 평화롭게 낚시 연습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들은 특별한 의미는 없지만 그저 보는 이의 마음을 푸근하고 기분 좋게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우즈키에게 검정우산을 빌려주는 남자도 마찬가지다. 그 극 속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아무도 아닌 사람이지만 타인에게 선의를 베풀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이어서 저절로 미소를 자아내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사랑이라는 서정을 담아내고 있는 이 영화에서 이따금 등장하는 유머는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의 색깔을 보다 풍성하게 해준다. 우즈키가 자전거 가게 앞에 서있는 장면에서 그녀의 옆에는 여자의 종이 사진이 거의 실제인물과 같은 크기로 서있다. 롱 쇼트일 때는 마치 두 사람이 나란히 서있는 것 같기도 하다가 카메라가 좀 더 다가서면서 아닌 것을 알았을 때, 우즈키가 그 사진의 인물과 비슷한 표정으로 미소를 짓는다. 이처럼 전혀 예상 밖의 장면에서 웃음을 선사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고, 그러한 순간들은 일상에서 찾아오는 낯선 즐거움을 체험하게 한다.
<이와이 순지>
이와이 순지감독은 MTV세대의 빠르고 감각적인 영상과 인물의 섬세한 감정선을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결부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 이와이 순지의 감각적 영상미는 그의 감독데뷔작인 <언두>에 잘 나타난다. 이 작품은 결박강박증의 여성의 심리를 집안을 가득 얽히는 끈들과 그 사이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남자친구와 함께 결박되면서도 고립의 정서를 얽어내는 솜씨는 마치 한 틀의 현대미술을 연상시킨다.
이와이 순지의 자연이 인물보다 전경화되는 매혹적인 이미지는 그의 독특한 영화적 문법체계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러브 레터>에 잘 나타나 있다. 여러대의 카메라가 동시에 찍고 또 찍어 완성한 영상들은 인물의 섬세한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고 있다. 이와이 순지감독의 일본적인 스타일리스트적인 면면은 그가 일본 아이돌스타들의 뮤직비디오 연출자였다는 경력과 무관하지 않다. 개인적인 스타일의 영역을 고집할 수 있는 뮤직비디오 작업들은 이와이 순지가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일본의 독립영화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고수할 수 있게 한 밑거름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