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4: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바울은 정중하고 고상하게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내온 선물에 대해 빌립보 교회에 감사하고 있다.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 바울에 대한 빌립보 성도들의 물질적 봉사가 한동안 끊어져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로 번역된 헬라어 '에데 포테''마침내'는 얼마동안 단절되었던 교제가 다시 연결됨을 가리킨다.
'다시 싹이 남이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네달레테'는 '다시 꽃이 피다', '소생시키다'는 뜻이다. 이것은 원래 겨울 잠을 자던 나무가 봄을 맞아 싹이 나며 꽃이 피는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되는 단어로서 여기서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1)너희가 나의 관심에 신경쓸 만큼 다시 번창하였다.
(2) 너희의 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새롭게 생겨났다. 이 두 가지 의미는 상호 보충적이다. 빌립보 교인들은 항상 바울 사도를 돕고자 하는 사려깊은 마음과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적절한 기회와 여건이 허락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여건이 마련되었으므로 그들은 바울을 돕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실현하게 되었다.
[빌 4: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 바울은 비록 자신이 곤경 가운데 처할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신의 주된 관심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로 번역된 헬라어 '엔 호이스 에이미는 문자적으로 '어떤 환경에서라도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곤경에 처한 그의 궁핍한 생활에 대해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체념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오히려 외적인 형편이 어떠하든지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초연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와 평강을 덧입고 있었으므로 외적 여건에 초연하여 자족할 수 있었다.
'자족'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우타르케스'는 신약성경에서 본절에만 사용되었으며, 스토아 철학자들이 즐겨 쓰는 윤리적인 용어였다. 당시 스토아 철학에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도 변경시킬 수 없는 불가항력적 형편을 신의 뜻으로 받아들여 초조해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숙명적으로 여겨 그 가운데서 만족하기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바울의 자족의 생활은 스토아 철학자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의 자족의 비결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았기 때문이다.
[빌 4: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모든 일에...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모든 일'은 특수한 상황과 평상적인 모든 상황을 가리킨다. 바울은 모든 상황 가운데서 살아 계셔서 역사 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함으로써 복음 사역에 매진할 수 있었다.여기서 '비결을 배웠노라'로 번역된 헬라어 '메뮈에마이'는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사용된 단어로 '비밀을 전수받다'라는 의미다. 바울은 그의 생활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 자족할 줄 알게 된 것을 하나님이 그에게 비밀로 가르쳐 주신 것으로 말하고 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수 있느니라 - 바울은 모든 환경을 극복할수 있는 능력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모든 권위있는 사본에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라는 바울의 고백을 볼 때. 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임을 믿고 있었고 이것은 그의 철저한 신앙 고백이며 강한 확신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의 생명적 관계 안에서 모든 형편에서 자족하게 되고 이길힘을 갖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비밀이며 참된 능력의 원천이다.
[빌 4: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 바울은 반의 접속사 '그러나'를 사용하여 빌립보 교인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즉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 교인들의 도움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선물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그 선물의 배후에 있는 빌립보 성도들의 고상한 정신을 더욱 귀중히 여겨 칭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