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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역사(들)
Histoire de la littérature
소설의 윤리와 변신 가능한 인간의 길
지금 한국문학은 근대에서 포스트 근대로, 역사적인 문턱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네이션을 상상하는 장치로 기능했던 소설은,
역사의 종언이라는 유사 사건의 여파 속에서 근대적 정체성의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중단하고,
이제는 오히려 그러한 정체성들을 의심하고 파괴하는 쪽으로 돌아서려고 한다.
지은이 전성욱 | 정가 30,000원 | 쪽수 608쪽
출판일 2017년 12월 29일 | 판형 사륙판 (130*188) 무선
도서 상태 초판 | 출판사 도서출판 갈무리 | 총서명 Cupiditas, 카이로스총서 48
ISBN 978-89-6195-173-9 03800 | CIP제어번호 CIP2017034729
도서분류 1. 문학 2. 문학비평 3. 철학 4. 정치학
종언 이후에도 문학이 존재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은 천박하다. 이제라도 모든 것을 무릅쓸 수 있는가, 에 대하여 물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 모든 것을 무릅쓸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문학은 수전 손택이 믿었던 바의 그 자유를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물론 그 자유는 자유주의자의 그것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 문학은 아직 오지 않은 세상, 도착해야 할 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무위의 기다림이다.
『문학의 역사(들)』 간략한 소개
『문학의 역사(들)』은 문학평론가 전성욱의 네 번째 책이고, 『바로 그 시간』(2010) 이후 두 번째로 출간하는 문학평론집이다. 기존의 글을 단순하게 수합하여 내는 관행화된 평론집과는 달리 나름의 일관된 주제의식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 비평집이 단지 ‘문학평론집’이 아니라 ‘문학론집’으로 읽히기를 바란다.
비평집의 제목과 목차의 체제는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을 차용하고 변형하였다. 영화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고 있을 때, 그는 이 영화의 제작에 착수했다. 그에게 영화의 쇠퇴는 단지 한 예술 장르의 퇴락이 아니라, 개인이 세계와 맺는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거나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저자는 소설의 쇠락을 목도하며 고다르의 역사적 사색을 떠올린 것이다.
『문학의 역사(들)』 출간의 의미
‘근대문학의 종말’을 근대적인 주체의 포스트모던한 갱신 속에서 읽어낸다
이 비평집은 근래에 나온 한국 소설들을 집중적으로 독해함으로써, 문학의 그 질적인 변화에서 역사적 전환의 기미를 포착하고 있다. 예술의 종말 혹은 근대문학의 종말이란 예술과 문학 그 자체의 종말이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전환 속에서 낡은 것들이 허물어지고 새로운 것이 나타나는 어떤 전회 내지는 갱신을 일컫는다. 근대라는 한 시대의 역사적 종막을 ‘역사의 종말’이라고 한다면 탈냉전, 액체근대, 인지자본, 포스트휴먼과 같은 어휘들은 그 이후 펼쳐진 포스트 근대의 시간과 밀착된 개념들이라 할 수 있다. ‘포스트모던’은 그 전면적이고 급진적인 역사의 전환을 단적으로 집약하는 어휘이다.
이 문학론집의 핵심은 한국 소설을 통해 바로 그 역사적 전환의 요지를 근대적인 주체의 포스트모던한 갱신 속에서 읽어내는 데 있다. 근대적 주체란 모든 전제적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이다.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분배로부터의 배제, 합리적 지성과 문화적 향유로부터의 배제로부터 자기의 몫을 요구하고 역사에 등장한 것이 근대적 주체로서의 자유주의적 개인이다. 근대문학은 바로 그 리버럴한 주체의 지성과 정감을 바탕으로 성립된 일종의 제도였으며, 그러한 근대적 주체는 곧 네이션이라는 국민국가의 이념을 정초하는 핵심이었다. 근대문학은 신의 섭리라는 초월성으로부터 독립한 세속적인 개인의 예술이었다. 그 세속적 개인이 독창성과 자율성의 이념으로 고고하게 자기를 신성화하다가 마침내 파국에 이른 것이 근대문학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독창성의 이념이 새로운 것의 창조라는 강박을 낳았고, 그 강박이 낡고 진부한 것들의 부정이라는 증상으로 표출되었으며, 그렇게 극단적인 부정을 거듭하다가 끝내는 자기의 존재론적 기반까지 말소해버리는 파국에 이르렀다. 그것이 바로 모더니즘의 파국, 다시 말해 근대적 예술의 종언이다.
지성의 문학, 공감의 문학, 자유주의 문학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비판
지금 한국문학은 근대에서 포스트 근대로, 역사적인 문턱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근대적인 주체의 존재론적 근거가 무너짐으로써 새로운 주체가 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다. 확고부동하고 나르시시즘적인 근대적 주체는, 유동적이고 개방적인 주체로 변신 가능하다. 그렇게 변신 가능한 포스트모던한 주체는 아집과 독아론을 극복하고 외부의 타자와 접속함으로써 자기를 그 무엇으로도 변이시킬 수 있는 잠재성의 주체이다. 문턱 건너의 문학, 근대문학 종말 이후의 문학은 바로 그 변신 가능한 잠재성의 주체에 대한 모색과 성찰로 드러난다. 이 평론집의 부제로 삼은 ‘소설의 윤리와 변신 가능한 인간의 길’이라는 구절 속에 그런 뜻이 집약되어 있다. 그것을 극기복례(克己復禮), 천하위공(天下爲公)이라는 의고적인 표현으로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체를 위해서 멸사(滅私)하는 주체가 아니라, 자기 이외의 다른 세계와 만나기 위해 아집을 극복하는 극기(克己)의 주체. 그 주체가 이 세계의 정의와 공익을 위해 자기를 극복하는 것이 곧 윤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학론집은 한국에서 근대적인 문학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지성의 문학, 공감의 문학, 그러니까 그 부르주아적인 자유주의 문학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비판을 함축한다. 여기서 특히 주의할 것은 그 비판이 계급주의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적인 비판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적 비판이 아니라는 것이다. 강조하기 위해 거듭 밝히지만, 이는 자유주의 문학에 대한 포스트모던한 비판이다. ‘지성’의 한계를 보완하는 ‘또 다른 인지적 역량’의 발굴, ‘공감’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적대’의 현실에 민감하게 맞서는 주체, ‘개체의 자유’를 넘어 ‘공공의 정의’로 도약하는 정치, ‘서구적 근대성’에서 비서구적인 가치를 포괄하는 ‘다원적 근대성’으로, 이러한 것들이 그 포스트모던한 비판의 대략적 요지이다. 그리고 그것을 한국소설의 맥락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타자와의 충돌을 감당할 수 있는 주체, 그 충돌을 통해 스스로를 갱신하는 주체
◇ 낯섦을 소비하는 새로움이 아니라 낯섦으로부터 새로워지는 진부함
◇ 조화로 미봉되는 여행이 아니라 불화로 파열되는 여행
◇ 세상의 이치대로 교양되지 않는 아이들
◇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도달해야만 하는 것
◇ 재현의 불가능성으로부터 불가능의 무릅씀으로
◇ 찬란한 하나의 별빛에서 별무리의 미약한 반짝임으로
이 책의 구성
이 책은 근래에 출간된 한국소설들에 대한 정밀한 비평이면서, 그 작품들의 저류를 흐르는 역사적 맥락에 대한 (인)문학적 고찰이다. 서문과 뒤이은 보론에서는 역사의 전환이라는 거시적 차원에 응대하는 새로운 문학의 논리를 구상하였다. 서구적 근대성에 치우쳐온 자유주의 문학론을 향한 포스트모던한 비판을 수행하면서, 우리가 도달해야 할 규제적 이념으로서의 문학적 이상을 ‘소설의 윤리와 갱신 가능한 주체’라는 논리를 통해 개진하였다.
본문은 모두 한국문학의 구체적 현장을 파고든 평문들이다. 염무웅, 미시마 유키오, 신경숙, 마광수, 장정일, 김원일, 윤정규, 조갑상, 권성우 등이 등장하는 I부는 한국의 파행적 근대화가 낳은 굴곡들이 낙인처럼 찍힌 한국문학의 표면과 심층에 대한 탐구이다. 황정은, 편혜영, 윤대녕, 손보미, 권여선, 정이현, 조해진, 고은규 등의 작품을 비평한 II부에서는 최근의 한국소설에서 드러난 역사적 변화의 기미를 포착하면서 앞으로 가능할 새로운 문학의 미래를 예감한다. I부가 지나간 시간에 대한 성찰이라면, II부는 현재의 시간에 대한 비판과 미래의 모색이다. 정영수, 조남주, 김사과, 김애란 등의 작품을 다룬 III부는 II부의 주제 중에서도 ‘현재의 시간’에 대한 심화된 접근으로서, 세속의 현실에 감응하는 소설의 예민함을 윤리적인고 미학적인 힘이라는 관점으로 독해하였다.
저자 인터뷰
1) 현재 제목은 이 책이 “문학사”를 쓴 책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부제 “소설의 윤리와 변신 가능한 인간의 길”을 보면 문학사보다는 좀더 큰 기획을 염두에 두고 쓰인 책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목과 부제에 대해서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간단히 설명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책의 제목인 ‘문학의 역사(들)’에는 공허하고 균질적인 시간을 흐르는 연대기적인 문학사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습니다. 서구적 근대성으로부터 주조된 한국문학은 ‘근대’나 ‘한국’과 같은 거대한 환영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문학은 그들 각자의 것으로 쓰이고 또 읽혀져야 할 것입니다. 부제가 의미하는 바는, 다른 그 무엇과 기꺼이 접속할 수 있고, 그 접속으로써 자기를 또 다른 무엇으로 갱신할 수 있는 윤리적 인간, 우리가 도달해야 할 소설의 미래는 그런 인간형의 모색을 통해 가능하리라는 믿음입니다.
2) 『82년생 김지영』처럼 2016~2017년에 독자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은 소설들에 관한 비평문이 책에 수록되었습니다. 독자들이 『문학의 역사(들)』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몇몇 소설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관점을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82년생 김지영』은 많은 이들로부터 공감을 얻었던 소설입니다. 그 공감의 요지는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대단히 사실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소설의 서사구조가 갖는 상투성이 여성의 현실을 통속화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소재나 주제로 여성을 전면화하였으나 정치적으로는 대단히 반여성적인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신경숙의 「전설」을 두고 벌어졌던 표절시비에 대해서도 저는 좀 다른 입장에서 접근하였습니다. 저는 한 작가의 인격에 대한 도덕적 비난 혹은 그를 옹위하는 세력에 대한 반권력적 비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문학권력’을 비판하는 이들은 자주 권력을 실체화하는 오류를 범하였습니다. 권력은 누군가 움켜쥐고 있는 것이라기보다 관계의 배치 속에서 발휘되는 것입니다. 신경숙 표절 논란은 그런 관계의 배치가 한국의 파행적 근대성과 깊이 연루하고 있다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소중한 성찰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지만, 이 책의 평문들에는 제가 놓인 위치에서 발생한 시차(視差)를 통해 각각의 작품들을 독해하려는 분명한 자의식이 담겨있습니다.
3) 이 책을 어떤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지요?
널리 읽히기 보다는 깊이 읽히기를 바랍니다. 자기의지를 공고하게 하려는 이들보다 자의식이 깨어지기를 원하는 이들이 읽었으면 합니다. 공감하려는 이들보다 반론하는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혹은 공감하면서도 반론할 수 있는 이들에게 읽히기를 바랍니다. 문학을 사랑해서 그 문학에 분노하는 이들이 읽어주었으면 합니다. 지방에서 읽고 쓰는 저자에 대한 도도한 편견 없이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4) 우리 시대에 문학이 “불가능을 무릅쓰는”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는지요?
무릅쓰는 것, 그 자체가 불가능에 응대하는 방법입니다. 무릅쓴다는 것은 다가올 위험과 고통을 감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이익에 몰두하는 자는 무릅쓸 수 없습니다. 자기를 드높이려는 의욕에 몸이 달은 자들이 불가능성을 소리 높여 이야기하곤 합니다. 자기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공공의 이해에 대한 책임을 갖는 윤리적 인간만이 무릅쓸 수 있습니다. 재현 불가능하므로 그 아포리아를 표현해야 한다거나, 대의 불가능하므로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은 가혹한 경험의 부담이 없는 공허한 언술이기 십상입니다. 자기 스스로 재현과 대의의 좌절을 그 자체로 생생하게 겪어내는 이가 무릅쓰는 사람입니다. 겪어내고 견뎌내려는 자, 그러니까 자기로부터 망명하는 이가 곧 무릅쓰는 사람입니다.
추천사
혹시라도 책을 펼치기 전, 이 문장을 먼저 만나는 독자가 있다면
여러 위치를 동시에 유지하려는 한 인간, 그 자리들을 모두 필요로 하는 한 인간, 그 영위들을 애써 관계지으려는 한 인간에게 문학비평은 무엇으로 어떻게 존재하는지
그 자는 비평의 손을 어디까지 뻗고 깊숙이 넣는지, 비평의 말은 얼마나 중층적이고 생생한지, 비평의 관계는 상대를 어떻게 두텁게 하고 펼쳐내는지, 그로써 비평의/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자신과 비평적 관계에 들어서는지
라는 물음을 지참해드리고 싶다.
― 윤여일 / 동아시아사상사 연구자
전성욱의 글은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다. 문장도 길며 문단도 한 페이지가 넘는 것이 예사이다. 그렇다고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경구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는 마치 그것을 감수하겠다는 태도로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해댄다. 마치 일말의 타협도 없다는 듯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에 온전히 열중한다. 그 열기가 너무 뜨거운 나머지 손이 델 정도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의 비평은 동시대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었다. 이 점에서 전성욱의 비평은 확실히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비평이란 본래 ‘반시대적 고찰’로서만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그가 신경숙, 마광수, 장정일, 조남주 등을 호명하여 다룰 때 놀라게 되는 것은 이토록 자신의 감각에 철저한 비평가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조영일 / 문학평론가
책 속에서 : 『문학의 역사(들)』과 근대문학의 종말
지성의 역량에 의해 전개되어온 근대적인 문학은, 지성과 정서와 의지를 감싸고 또 떨쳐내는 새로운 감각을 통해 타자의 낯섦을 ‘경험’하는 또 다른 문학의 가능성으로 반전될 수 있지 않을까. 갱신되어 도착하여야 할 문학을 위하여, 비평은 그 믿음과 함께 그런 반전을 위한 열의에 동참하는 난해한 행동이어야 하리라.
― 보론 : 지성과 반지성, 80쪽
‘공감’이라는 역능을 통해 네이션을 상상하는 장치로 기능했던 소설은, 역사의 종언이라는 유사 사건의 여파 속에서 공공의 아이덴티티에 내러티브를 부여하는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망실했다. 그리하여 소설은 근대적 정체성의 구축이라는 역사적 과업을 중단하고, 이제는 오히려 그런 정체성들을 의심하고 파괴하는 쪽으로 돌아서려고 한다.
― 변이하는 세계, 변태하는 서사, 84쪽
창안된 개념으로서의 문학, 고안된 제도로서의 문학, 그것은 자연적인 실체가 아니라, 결국은 우리들의 막대한 욕망이었다. 그것은 누군가가 아비의 부재라고 명명하기도 했던, 그 역사적 결여와 공백을 메우는 위대한 망집이었다. 흠모하고, 모방하고, 답습하는 가운데, 마침내 환상은 실상을 대리하는 막강한 이데올로기로 자리를 잡았다.
― 서문 : 도착하지 않은 문학들, 15쪽
그렇다면 종언 이후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그 이후에 남은 것은 그야말로 온갖 포스트주의의 난립이었고, 적대적인 투쟁의 대상을 잃은 스놉들의 활개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 난립과 활개를 새로운 시대의 활력으로 오인했다. 이제 ‘종말’은 파국과 구원의 정치신학으로 일어서고, ‘혼란’은 창조적 분열의 아방가르드로 추앙된다.
― 변신하고 갱신하는 자의 사상, 109쪽
우리의 근대가 이처럼 번역과 중역으로 얼룩진 필사(筆寫/必死) 의 시간이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신경숙이다.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비서구의 어느 반도 국가에서, 저 필사의 시간을 제대로 통과해낸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신경숙이라는 한 인격체를 비판하는 것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니라, 필사로 구축된 신경숙이라는 주체성에 대하여 사유하는 일이 우선이다.
― 익명의 비평, 169쪽
미루어 짐작건대 정지돈에게 소설은 이미 근대적 장르로서 고형화된 문학의 한 형식이 아니다. 고다르에게 영화는 에크리튀르이고, 카메라는 펜이며, 찍는다는 것은 쓴다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위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그에게 가장 위대한 소설의 작가적 전범이 고다르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고다르에 대한 애호가 느껴지는 그의 소설들에서, 정작 역사가로서의 고다르를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 박람강기의 저작술, 넝마주이의 글쓰기, 315쪽
지은이 소개
전성욱 (Jeon Seong Wook)
문학평론가. 동아대학교 한국어문학과 조교수. 계간 『오늘의문예비평』 편집위원과 편집주간으로 일했다. 동아대학교 국문학과의 학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성대에서 소설론과 지역문화론을, 부경대에서 문예비평론을, 한국해양대에서 북한문화론을, 동의대에서 글쓰기를 강의했다. 지은 책으로 비평집 『바로 그 시간』(2010), 산문집 『현재는 이상한 짐승이다』(2014), 연구서 『남은 자들의 말』(2017)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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