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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 자동차 부품을 만드는 발레오 공장에선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 직원 875명 중 생산직 종업원 600여명이 석달이 넘도록 파업을 벌이고 있는데, 오히려 매출액(賣出額)과 이익(利益) 규모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된 영문일까?
기자가 얼마 전 썼던 '경주 발레오 공장 강기봉 사장 이야기'를 기억하는 독자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발레오는 직원 전원이 정규직이고, 경비원 평균 임금 7600만원, 청소원·식당아줌마·운전기사의 평균 임금이 7200만원으로 유명해진 회사다. 노조는 지난 2월 정규직인 경비원을 생산직으로 전환하고, 경비 업무를 외주(外注)로 전환하려는 회사 방침에 반발,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측은 회사가 현대·기아차에 제때에 납품(納品)을 못하면 수백억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약점을 쥐고 있다. 프랑스에 있는 발레오 본사는 경주 공장 철수를 추진하다가, 강기봉 사장이 한번 회사를 살려 보겠다고 나서면서 철수는 유보된 상태다.
노조가 파업을 벌이자 강 사장은 직장 폐쇄를 단행하고, 관리직과 일용직 직원을 생산 라인에 투입했다. 생산직 사원의 평균 연봉은 7700만원, 생산 라인을 가동하는 관리직 평균 연봉은 7000만원이다.
그러자 발레오의 경영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올 1분기 매출액은 작년 4분기보다 오히려 20% 이상 늘었다. 불량률은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사상 처음으로 이익을 기록했다. 이 회사는 지난해 8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올해는 적자폭이 훨씬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회사를 살리겠다는 직원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어느 때보다도 사기(士氣)도 높다.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노조의 불법 파업에 굴복하지 말라는 성원도 쏟아졌다. 현대·기아자동차도 품질이 좋아진 발레오 제품을 계속 구매하겠다고 전해왔다.
경영 성과가 좋아진 것은 경영진이 무노동 무임금(無勞動 無賃金) 원칙을 철저히 적용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조합원들의 급여가 워낙 높았기 때문에 대체 인력을 투입한 1분기엔 엄청난 수익이 난 것이다. 600여명의 생산직 사원이 없는데도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간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조 분위기도 바뀌고 있다.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조합원 수는 현저하게 줄었다. 500여명에 달하던 농성자 수가 요즘은 100여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느 때처럼 파업만 하면 회사측이 모든 요구를 들어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회사가 문제없이 돌아가자 당황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무노동 무임금에 따른 노조원들의 생활고(生活苦)도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농성 조합원들은 점심값을 아끼려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고 한다.
노조원들도 원만한 협상 타결(妥結)을 기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노조 지회장이 불법 파업 혐의로 구속되는 바람에 협상 창구가 없는 상황이다. 회사측은 빨리 새로운 노조 지도부가 구성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동안 파업을 지원하고 있던 민주노총만 빠져주면 협상 타결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회사측 판단이다.
이제 우리 노동 운동도 시대적·사회적 흐름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회사 경영이야 어떻든 노조원 밥그릇만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이기주의적인 생각은 공멸(共滅)을 부를 뿐이다. 노사 분규가 하루라도 빨리 타결돼서 직원들이 모두 일터에 돌아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