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소설·정통문학 벽 허문 日문단의 거장
"인간은 이다지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나 파랗습니다."
일본 체류시절 무엇에 홀리듯 나가사키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엔도 슈사쿠의 소설 '침묵' 때문이었다. 그에게 묻고 싶었다. 인간은 뭔지, 영성은 무엇이고, 선과 악은 또 무엇인지.
나가사키 근처 소토메((外海)라는 작은 어촌마을에 가면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있다. 서두에 인용한 문장은 건물 앞 문학비에 써 있는 글이다.
인간의 초라함을 인간의 무망함을 이렇게 잘 표현한 문장이 또 있을까. 쪽빛 바다 앞에 외롭게 서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문장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다.
에도시대 초기. 소토메는 끔찍한 고난의 장소였다. 가톨릭을 믿었던 사람들은 이곳에서 잔혹하게 고문당하고 처참하게 죽어갔다. 그들은 바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기를 찢는 비명에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는 신을 원망했을까? 누구도 알 수 없다. 엔도 슈사쿠의 대표작 '침묵'은 바로 이때 이야기다.
1600년대 초반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가톨릭을 금지시킨다. 이른바 '기리시탄 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가장 심한 박해가 벌어진 곳은 나가사키였다. 신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였기 때문이다.
포르투갈의 예수회 신부 세바스티안 로드리고는 스승이었던 페레이라 신부마저 고문에 못 이겨 배교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진해서 일본에 들어간다. 나가사키 항구 앞 소토섬에 잠입한 로드리고는 신자들이 잔인하게 처형되는 것을 보며 기적을 바라는 기도를 바치지만 신은 침묵한다. 결국 로드리고도 체포되고 그 역시 배교를 강요당한다.
나가사키를 지배하던 권력자인 이노우에는 '후미에'라는 방식으로 배교자를 가려냈다. 예수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을 바닥에 놓고 그것을 밟으면 살려주고, 밟지 않으면 처형했다. 로드리고 역시 그 시험대에 서게 된다.
이노우에는 로드리고에게 한층 더 잔인한 조건을 건다. 후미에를 밟으면 당사자인 로드리고는 물론 잡혀 있는 신자들도 모두 살려주고, 밟지 않으면 이미 배교한 사람이라 해도 무조건 함께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로드리고의 결정에 신자들의 목숨이 걸리게 된 것. 며칠 후 로드리고는 고문당하는 신자들의 비명소리에 마음이 흔들린다. 대답도 없는 신을 위해 저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 과연 옳은 믿음인지 고뇌하던 그는 결국 배교를 선택한다. 로드리고가 후미에를 밟는 순간 설명하기 힘든 통증과 함께 예수의 음성이 들려온다.
"밟아라. 밟아라.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어 가지기 위해 십자가를 졌다. 밟아라."
소설 '침묵'은 그 깊이와 세밀함으로 육중한 질문을 던진다. 굴욕을 견디고 살아서 믿음을 이어가는 것이 옳은 신앙인지, 아니면 순교로 끝을 내는 것이 진정한 신앙인지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다. 이것은 비단 신앙의 문제만이 아니다. 다른 어떤 삶의 문제를 대입해도 충분한 담론이 될 수 있는 화두다.
게이오대학과 프랑스 리옹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엔도 슈사쿠는 1966년 '침묵'을 발표하면서 종교소설과 일반소설의 벽을 무너뜨린 몇 안 되는 작가로 찬사를 받는다. 일본 작가 중 가장 자주 노벨상 후보에 거론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가 쪽빛 바다를 보면서 던진 질문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유효하다.
인간은 슬프고 바다는 언제나 파랗기 때문에….
[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