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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이란 이름은 잘 알지만 홍로와 홍월이란 이름은 많이 들어보지 못했다. 신고배란 배의 이름처럼 사과에도 그 품종의 이름이 있었다. 굳이 그 이름을 따지지 않고 먹었던 사과를 시장에서 그 종류를 물어 보고 먹자니 새삼 그 맛이 각별했다. 우리가 많이 들었던 사과의 이름은 부사니 후지니 하는 이름의 사과종류였는데, 홍자 돌림의 트리오 사과가 있었다니 다시금 그 이름만큼이나 붉은 기운이 감도는 사과에 입맛이 당겼다.
"낱개로도 팝니까?"
"어디 산소에 가져가시게?"
"아닙니다 먹으려구요."
홍로 한 개를 골라 손에 쥐었다. 크고 묵직한 사과 한개를 손에 들고 있자니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듯 손에 가득찼다. 가게에서 홍로 한 개를 씻어 손에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당진을 가보려고 했지만 시간이 뜸하고 의외로 거리가 멀어 중국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는 통로라고 하는 안중을 한 번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부둣가의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퍼석퍼석한 스펀지 사과나 단맛만 나고 새콤한 맛이 나지 않는 사과 등 사과의 종류만도 1000여가지가 넘는다. 그 중에 과일 가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과는 몇 가지다. 특히 가장 흔한 사과가 홍로다. 추석 제사상에 오르는 홍로는 모양이 좋지만 맛은 그다지 입맛에 와 닿지는 않았다. 오히려 홍옥의 맛이 더 나았다. 홍월은 홍옥을 개량한 품종인데, 품종이 더 크고 가격도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오래토록 집에 두고 먹는 사과는 부사다. 사과를 오래 먹어왔으면서도 사과의 이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못했다. 다시금 사과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로 사과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대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대는 하나의 어두운 몸짓에 불과했다는 시의 한 구절처럼이나 사과의 이름을 알고 맛을 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었다. 안중 장날, 안중터미널에서 대나무 갓을 쓰고 죽제품을 파는 사내에게 대나무 삿갓의 이름을 묻자 가는 너무 이름에 큰 의미를 두지 말라고 했지만, 글쎄 이름도 모른 채 쓰고 다니는 것 또한 어색한 일이 아닌가. 사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장비며 농기구들의 이름 또한 일본식으로 불리는 장비들이 너무 많고, 우리 식 이름으로 고쳐부르지 못하는 바람에 영어로 불러야 하는 불편함을 치르는 경우가 많다. 테이블 리프트, 메끼. 다들 제 이름을 갖기를 바라지만 이름을 붙여주지 않거나 이름이 있어도 그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사과 이름을 통해 다시금 주위의 물건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다.
개교 104주년을 맞는 초등학교, 알고 보니 그곳은 이전 객사가 있던 자리였다. 우리나라 초창기의 전통 있는 초등학교 자리는 대개가 동헌이 있던 자리였다. 일제에 의해 강제적으로 헐린 자리에 학교가 지어졌는데 전통의 맥이 단번에 끊어진 느낌을 준다. 대체로 그 옆에는 향교가 있고, 서원이며, 그 고을의 관찰사나 혹은 현감 현령 부사의 송덕비가 서 있다. 오래된 느티나무가 서 있는 곳이다. 향교의 역사와 비슷한 육백 오십 년의 나이를 가지고 있는 향교 옆으로 교육청이 들어서 있고, 서당길이란 이름이 붙여져 있다. 초등학교에선 개교 104주년을 기념해 역사관을 열었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그 골목을 따라 어린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있었다. 오래된 길, 녹색 어머니회 어머니들의 신호, 아이가 놓고 간 준비물을 챙겨 학교로 향하는 노란색 하와이치마의 젊은 어머니, 학교급식을 돕기 위해 학교로 향하는 뚱뚱한 학부모, 아이들은 세상 걱정 없는 해맑은 표정으로 소리치며 가을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얼마 전에 화장실에 빠져버린 수첩을 대신할 수첩 하나를 사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문구점으로 향하다 바라본 풍경이었다.엄마들이 맞는 아이들을 위한 아침 속에서 백남준의 마지막 유작 '엄마'를 떠올렸다. 저고리와 치마가 드리워진 고향, 그 엄마를 향한 마지막 부름처럼 자식들을 품고 기르는 고귀한 사랑이 아침 등교길에도 햇살처럼 빛나고 있었다.
거리엔 해병 전우회의 색깔만큼이나 붉은 선홍색 깃발 하나가 내걸려 있었는데 '홍건적의 난 순직자 넋 위로 나랏굿'이라 씌여 있었다. 홍건적의 난이, 그 오래된 사건이 지금 이 시대 이 도시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낯선 홍건적의 난 그것이 고려 공민왕 때의 사건이라면 칠백년이 다 되어가는 사건일텐데 그 사건을 지금에 다시 끄집어 낸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그 사건은 이 고장 사람들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준 사건이었다고 한다. 다름이 아니라 홍건적의 난 때 수많은 고장들이 홍건적과 대항해 싸웠는데 다른 지역에서는 수없이 패했는데 이 지역에서는 홍건적과 대항해 싸워 이겼던 일을 기념해 공민왕이 느티나무와 함께 루를 지어주었다고 했다. 그 극적루가 사라졌는데 다시 지역주민들이 루를 복원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맞춤정신, 도구머리 등으로 고집스러운 자존심을 가진 지역주민의 염원이었다. 홍건적의 난과 극적루. 다시금 우뚝 솟은 비봉산의 정자가 멀리서도 위세를 떨치는 듯 서 있는 이유를 알 듯 했다.
낯설게 연결되지 않는 풍경들이 이어져 있다. 사과 이름 홍로, 개교 104주년 기념 초등학교 역사관, 그리고 홍건적의 난 순직자를 위한 나랏굿... 그 골목을 지나 시장통으로 안전화를 끌고 다가오는 사내가 눈에 띄었다. 아직 취기에서 깨어나지 못한 걸음의 그는 시장에서 된장을 사고 있었는데 주머니에서 천원짜리를 내 듬성듬성 돈을 내려놓다 돈이 날아가는 바람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돈을 다시 주워 올렸다. 그를 본 건 전날 런던호프에서였다. 그는 자신이 마흔 여섯인데 손주를 봤다면서 자신이 이제 할아버지가 됐다면서 축하해 달라고 했다. 나이 먹어가는 것이 무엇이 그리 기쁠까 마는 그는 자신의 아들이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에 야릇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아들이 스물 세 살이라고 하니, 그 아버지 또한 스물 세 살 정도에 아들을 낳았다는 말이었다. 부전자전, 자식 낳고 사는 게 참 빠르기도 한 집안이었다. 자신이 부자라면서 노래까지 꼭 부르고 가야 한다면서 노래방으로 끌고 가던 그였다. 노래 시간이 다 되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 그 사내는 어느 음습한 골목에서 술이 덜 깬 상태로 된장을 사러 시장통으로 나오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모퉁이를 돌아왔다.
종합적 엔터테이너로서의 능력을 강조하는 아이돌 스타의 텔레비전 방송을 보고 그것이 작가의 엔터테이너적인 능력도 마찬가지란 생각을 하면서 나왔던 길, 숙소 앞에서 한 여자의 눈빛이 빨려들듯 마주치는 걸 느꼈다. 무엇일까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의 초점이 유난히 투명하게 와 닿는 건. 추억 만들기란 모텔, 장수촌 음식점, 건지리란 마을이름, 금광호의 책 카페 세렌디피티. 간판이름엔 장사꾼들의 장사철학이 담겨 있다. 유난히 기막히게 지은 이름이란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이름이 있다. 타워 비뇨기과 상쾌한 이비인후과. 금광면, 옥정리가는 버스를 보면서 세상엔 너무 똑 같은 이름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군봉이나 옥녀봉처럼말이다. 오룡동이며 문화동이란 이름도 군산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치 새로운 마을 신촌이나 신기촌이란 이름처럼 도시의 형성과 관련이 있는 문화동 문화촌이란 이름도 다시금 그것이 전국적이고 시대적인 흐름에서 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러 도시에 공통적으로 중앙시장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높은 아파트의 도시와 달리 전원적으로 설계된 언덕의 대림동산은 독특했다. 그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두 얼굴을 떠올렸다. 한 사람은 중국에서 온 신호수, 그는 센양의 천하장사인데 그의 신호는 열정적이고 또한 파워풀 한 것이어서 보는 이에게 신호를 본다는 것이 예술이란 생각을 갖게 했다. 그는 거리 한 차선을 막고 차가 안쪽으로 다니도록 신호를 보내는데, 차를 향해 신호봉을 들이대면서 주목하도록 하는가 하면 휘리릭 신호봉을 돌려 마치 하얀 깃털을 단 밴드부 지휘자의 카리스마처럼이나 호르라기 하나만으로도 주위의 분위기를 싹 바꿔놓았다. 협조한 버스 기사에게 발을 굴러 힘차게 경례를 붙이기도 하고 한 차선의 차들을 한 손으로 막은 채 인삼농협에서 빠져나온 차들을 먼저 보내는 일에도 온 힘을 다해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의 말소리는 크고 너무 쉽게 흥분한 사람처럼 이북 사투리를 쏟아내는데 그의 신호솜씨는 마치 북한이나 중국의 공안요원처럼이나 절도 있고 다이나믹했다. 그의 신호동작을 보고 있노라니 우리나라 육칠십년대 신호수를 떠올리게 했다. 사라지고 없지만 호루라기 소리 속에서 밴드부의 음악을 한꺼번에 터뜨릴 것 같은 강력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두번째 사람은 키가 작고 눈에 흰 꺼풀이 내려앉은 사람이었다. 그는 음식점에서 된장국에 호박을 넣고 끓인 찌개를 먹고 나와 화가 나 있었다. 아니 무슨 된장국에 호박을 넣어. 돼 먹지 않은 집안에서 아무렇게나 음식을 만들다 음식장사라고 하니까 그 모양이지, 예로부터 할머니들이 하는 말을 잘 들었어야 하는데. 일전에 어떤 음식점에 가 식사를 하는데 일 주일 째 그 음식점에 가 식사를 해도 된장국에 호박을 넣지 않더란 말이지. 왜 그런가 하고 물어보았더니 그 주인이 버럭 화를 내듯 말하는 거야. 남의 집 손 끊어놓을 일 있습니까. 음식이라고 아무렇게나 썰어넣어 끓이는 것이 아니라고. 음식 궁함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아냐고 그는 강조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음식의 비법처럼이나 음식장사의 기본이 있는 법이라고 키 작고 얼굴 검은 양반이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정치적 소신도 밝혔는데, 사람들이 민주화 되고 좋아진 것은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전 같으면 불가능한 일이 지금은 가능하잖아요. 또 친일파 청산 문제 같은 경우나 재산 환수 문제 또한 그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논조에 따라 그대로 넘어가면서 항시 옳고 그른 판단을 흐리게 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 많아요. 그는 당차게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곳곳에 중국인들 천지다. 교포는 물론이고 아예 한국말이라고는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가득하다. 시장에도, 공사장에도, 찜질방에도... 잠을 자려고 하면 전화 속의 여인이 쏼라쏼라 귓 속으로 흘러들어온다. 마치 온 나라가 중국인들로 가득한 것만 같다. 중국산 물건처럼 힘들고 어려운 현장에는 중국인들이 우리 경제를 버티고 있다. 그들이 빠져나가 버리면 온통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부자연스럽게 눈치를 보면서 많은 말을 하지 않고 서투른 우리 말로 경계심을 갖고 대하다가 저들끼리만 있으면 갑자기 터져나오는 중국말들... 화룡, 센양, 길림, 토먼, 뤄양, 따렌...이 이렇게 가깝다니.
뚱뚱한 이순신장군의 동상이 골프장 가는 길에 서 있다. 거대한 수호신, 갑옷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적인 이순신을 방영한 드라마 속의 인물 캐릭터와 달리 온 나라를 지키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다. 그의 칼 아래 세상의 키가 낮아진다. 초등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 혹은 세종대왕의 동상에 따라 문인 혹은 무인적 분위기가 학교에 퍼진다. 학자를 만들어내려는 학교와 장군을 만들어내려는 학교가 지역 기질적으로 다른 것일까. 곳곳에 특성화 학교들이 눈에 띈다. 한국관광고등학교, 물류고등학교. 이전 농업전문학교였던 학교가 특성화 국립대학교로 사람들에게 다가선다.
칠순이 넘은 어머니가 날일을 다녀오는 마흔 아홉 아들에게 직장이 있는데 한 번 가 볼랴 하고 물어본다. 아들은 신경질적으로 어머니에게 돈을 얼마나 주는지 물어보라면서 불편한 듯 쏘아붙인다.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그러는가 봐요. 아이구 그래도 조금 알아보고 말을 해야 하는데... 멀쩡하던 직장에서 정리해고 된 후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한 그였다. 사람이 나이 들어가면서 외모가 어떻게 변하가는가를 보게 하는 사십 대 후반의 사내, 그에겐 누군가에게 무슨 일인가를 시켜대는 습성이 있었다. ...끼여.. 하는 말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가끔 순대에 막걸리 한 잔 걸치면서 거나하게 취하는 것이 사는 낙이라면서 며칠 전 낚시를 갔다가 급작스럽게 취해 다음 날 일을 못했다면서 발동걸리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건물배치도, 설계도, 청사진, 전기배선도 등 꼼꼼하고 정확하게 그린 도면처럼 세상엔 분명한 치수와 그 밑그림이 존재한다. 대충 얼버무려 될 일이 아니라 꼼꼼히 자로 재고 그 높이와 수평을 잡아 만들어진 구조물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요행을 바라듯 얼기설기 일을 이루려고 하는 때가 있다. 그 안일함이 항시 위험하다. 순간적인 방만이 모든 걸 일시에 무너뜨리기도 한다. 정확함의 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직업능력을 키워온 과정도 그 성과 면에서 점점 더 그 결실을 맺어가기까지 더 집중력을 키워야 한다. 특별한 능력도 없이 나이들어 간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동북아 물류도시, 국제도시를 표방하는 도시, 최근 미군기지 이전문제로 뜨거워진 곳, 곳곳에 장갑차들과 군용차량들이 지나다고, 평택국제여객선 터미널을 통해 중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평택이 크면서 상대적으로 서해안에 있는 다른 도시가 위축되어진 건 아닐까. 서해대교를 만호리 바닷가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위용이 참으로 대단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구조물이 저렇듯 크고 대단할 수 있구나. 항의 물류단지에 쌓여 있는 수 많은 차량들 위로 지나는 햇빛이 눈부셨다.
정보지 보는 사람들, 명광보국 한전, 애니콜 두 여인/ 한 여인은 길이가 긴 섹시한 도도녀, 다른 한 여인은 환한 미소와 배꼽을 강조한다. 핀토스 패션들, 통미 4길, 평소 감정상태와 기분, 힘 뺀 눈, 생극과 주덕, 차가운 사람, 사람과 담을 쌓고, 연락두절 고립된 채 몸이 아프다. 평평한 못, 거리에 버려진 러시아 책, 문자의 의미를 되새기게 함. 신호등 없는 터미널, 의외로 오래 머문다. 통복시장, 향촌 아파트, 포승중학교, 세상의 변화를 실감 현장에 산다. 웃는 여자의 힘, 곳곳에 터잡은 사람들, 추석 살아나는 시골마을, 농촌의 들녘이 도시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아이쿠 되치는 솜씨, 예쁜말만 하는 사내, 조끼 수건 옷차림이 다르다. 능력없는 말들, 무책임한 관념의 제시일뿐, 정토사 금빛 좌불, 우는 아이처럼 졸라대는 어른들, 시골 읍내 추석 앞둔 체육대회, 이장협의회, 새마을 지도자회...안중根치과, 고무줄 파는 영감, 안중장날, 북한산 호도, 뻥튀기는 소리, 서리태 퍽, 찬송부르는 배추장수, 돈 주면 버릇 돼 싸우듯 고마워하는 할머니들, 한물 간 가수들의 뜯겨진 사진, 남아 있는 사진, 安仲 장날 사랑의 국수, 충효단 협의회, 3월 16일부터, 장날 마다 국수 끓이는 사람들.
시골다방 처녀/물들인 머리, 오토바이 타고 뱃살 드러내고 달려가는 처녀. 어린 듯. 강한 생명력이 느껴지는 여인, 조금씩 살갗이 타들어가는 피부들.
시골 촌로/금딱지 시계를 차고, 힘줄이 불거진 검게 탄 피부, 검정 고무신 위로 때가 끼고 반들거리는 발등이 보인다. 빨간 모자를 눌러쓴 노인이 장날 터미널 약국 앞에서 해바라기를 하면서 버스를 기다린다. 웃기는 진지함, 어리석은 자의 발견. 극동 아파트 앞에서 우는 여자, 체육복을 받아든 남자가 말리지만 보도 블록에 덜썩 주저 앉은 여자가 서럽게 운다. 한복 대여점/회갑 칠순, 결혼식 한복 대여. 팽성, 포승, 만호. 너무 혼자 감읍하는 사내, 극적이 사건도 겪어내지 못하면서, 약해.
무사와 막내 공주/발단, 큰 독수리가 세 공주를 물어가고 무사가 그 독수리를 따라감, 일이 터지고 최초의 반응에 의해 사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전개/독수리가 땅 속으로 들어가는 큰 구멍으로 들어감. 일이 더 심각하게 커지고 있다. 위기/땅 속엔 많은 부하와 독소리를 거느린 무서운 도둑이 산다. 위기2/무사는 장사들을 땅 속으로 내려보내지만 다시 올라온다. 절정/무사는 혼자 내려가 막내공주를 만나지만 절구공이를 들 정도의 힘도 없어 공주가 주는 음식을 먹고 힘을 키운다. 결말/그렇게 힘을 키운 후 도둑 두목을 처치하고 공주들을 구해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어떤 이야기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발단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그 이야기를 더 재밌게 만드는 위기와 도전들의 연속, 산넘어 산 고개들, 그리고 그걸 넘어가는 과정과 해결의 실마리 찾아 도전, 해결해내기와 그 파국...
고것참 식품(주), 살아 있는 한 일을 하는 늙은 인부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자의 근력, 상대적 아이들 절대화 금지, 우상화의 맹점, 다 같은 사람들인 것을. 남녀공학, 함께 산다. 예쁘제 상호, 한글인지 영어인지, 영어식으로 우리 글들이 바뀌기는 현상들, 심복사, 지나친 욕망들, 활기 변화와 움직임을 감당해내고 창의적으로 살려내는 에너지.몸은 왜소한데 성기만 큰 노인네, 허벅지의 장미문신 한 송이 절정의 물건, 등에 관음보살상 문신, 산소 이장하던 날 육개월 아직 육탈 안 된 시신 반쯤 살이 붙어 있고 무지개빛으로 변한 수의, 시체 썪는 냄새/빽빽하게 들어찬 나무들 속의 백정골, 이제 돌아갈 곳을 바라보면서 심난한 노인, 장례식장의 식욕, 성욕, 이방인 까뮈, 빛과 살인, 장례식장의 건배, 추팔 산업단지,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추석이 가깝다. 높은들 1길. 한국관 나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