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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송입니다.
몽당연필 사무국에서 사무차장을 맡고 있어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과 함께 지난 10일부터 14일까지 일본 오사카에 다녀왔습니다. 돌아온 지 15일이 지났습니다만, 이제야 다녀온 보고를 합니다.
이번 오사카 출장은 시민모임에 속한 몽당연필 대표로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재판지원 집회’에 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울러 몇몇 조선학교를 방문하고 동포 및 고교무상화 오사카 연락회와의 교류모임도 있었습니다. 한국 측 참석자는 송송과 시민모임 손미희 공동대표, 한국여성의전화 이은영, 한국진보연대 오하나 국장, 몽당연필 장세헌 카페회원, 장세헌 회원 아들입니다.
10일 화요일, 오사카에 도착했습니다.
10일 오전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사카 간사이국제공항에 내렸습니다. 첫날 일정은 오사카부청 앞에서 매주 이뤄지는 ‘화요행동’에 참가하는 것이었습니다. 간사이국제공항에는 몽당연필 스토리펀딩 ‘바다를 건너온 아이들’ 7화 원고를 써주신 고교무상화 오사카 연락회 나가사키 유미코(長崎由美子) 사무국장님이 동포분과 함께 나와계셨습니다.
간사이국제공항이 정겨운 우리말로 반겨줬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을 걱정은 없을 것이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려 11개월간 일본어를 공부했음에도 아직 일본어가 서먹서먹합니다.
오사카로 떠나기 전 몽당연필 김명준 사무총장이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 덕분에 화요행동이 이뤄지는 오사카부청 앞 많은 동포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물론 손미희 공동대표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겠지만요.
사진 오른쪽 분이 허옥녀 선생님, 그 옆이 나가사키 유미코 선생님입니다. 허옥녀 선생님은 교원 출신으로 학교에서 우리말을 가르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얼마전 정미영 교육팀장 페이스북에 올라왔던 '작업복'이란 시를 보셨을 겁니다. 그 시의 주인공입니다. 두 분은 이번 오사카 일정 내내 저희 시민모임 w/몽당연필을 도와주셨습니다.
뭔가 정신없이 흘러간 화요행동 1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요행동도 살피고 사진도 찍고 갑자기 궁금해진 것들도 여쭤보다 보니 1시간이 금방 흘러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았습니다.
이 건물이 오사카부청이라고 들었습니다. 사진 속 고개를 돌린 분은 관계가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만.. 이 사진을 찍고 보니 괜히 명박산성 생각이 나더군요. 그리고 묵묵부답. 대화가 얼마나 소중한 행위인지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의 말을 들어줄 거란 쉬운 생각은 없었지만, 대화를 통해 남의 사정을 살피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싶었습니다.
화요행동에 참가한 많은 동포분들과 고교무상화 오사카 연락회분들이 마이크를 잡고 오사카부청을 향해, 듣지 않는 일본정부를 향해 한마디씩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노래도 불렀죠. 도쿄 금요행동 때 불렀던 노래처럼요.
그리고 오사카 화요행동에 눈길을 끄는 참가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아래 사진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분들입니다. 굉장히 익숙한 노래를 계속 연주하셨습니다. 그중 하나가 ‘고향의 봄’입니다.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에도 나왔던 노래죠.
아래 영상은 당일 화요행동 현장을 촬영한 겁니다.
다른 참가자는 오사카후쿠시마조선초급학교 아이들이었습니다. 아이들도 함께 길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줬습니다. 제 옆에 있던 남자아이가 인상 깊었습니다. “お願ねがいします.” 많은 사람들이 유인물을 받지 않고 지나갑니다. 그런데도 꿋꿋이 한 장 한 장 건네주며 “お願ねがいします”를 외칩니다. 그러다 누군가 유인물을 받으면 큰소리로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슬쩍 물어봤습니다. 사람들이 유인물을 많이 받느냐고. 대부분 받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옵니다. 어쩌면 길가에 늘어선 사람들 앞을 걸어오며 계속 유인물을 권유하니 부담도 되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 그러나 아이의 답은 씩씩했습니다.
“그래도 한 명이라도 받아주면 좋습니다.” (뭐 이런 말이었습니다.)
함께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밝은 표정으로 화요행동에 참가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날 화요행동에 함께한 오사카후쿠시마조선초급학교 아이들 중 몇 명은 공책에 할 말을 적어와 마이크를 잡기도 했습니다. 발언 마지막엔 울먹거렸습니다. 일본어로 한 말이라 알아듣진 못했지만, 울먹이는 아이와 다독여주는 다른 친구를 보니 그 마음이 이해가 됐습니다. 괜히 같이 슬퍼질까 봐 카메라를 들고 다른 쪽을 향했지요.
화요행동이 마무리되고 오사카부청 맞은편에 함께 모여 서로를 소개하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물론 아이들, 동포분들, 일본분들과 간략한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그렇게 화요행동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맛있는 밥을 먹었습니다. 오사카부청 근처 일본식 밥집인데, 쟁반을 들고 원하는 반찬을 골라서 계산하고 먹는 그런 밥집이었습니다. 저는 돌아오는 날 간사이국제공항에서 이 밥을 한 번 더 먹었습니다. 뭔가 이런 방식이 재밌었거든요. 종류도 많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조선학교에 방문했습니다.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입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저희가 방문한 때는 수업을 마친 터라 한산한 교실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전체 학급을 둘러보며 남은 아이들을 만나고 선생님들도 뵙고 아이들의 일상이 담긴 교실을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교장 선생님과 시민모임 w/몽당연필이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시민모임은 이번 오사카 일정 중 방문한 학교와 집회에 걸 대형 현수막을 준비했습니다. 한국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뤄지는 금요행동 사진을 담은 겁니다. 몽당연필 대표로 간 저는 무엇을 준비했나... 배지 몇 개 챙겨간 게 전부였다니. 한참 후회를 했죠.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유치부 아이들이 정말 귀여웠습니다. 아직 우리학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말을 모른다는 한 꼬마아이는 이를 닦으면서도 우리와 눈을 마주치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아직 우리말을 잘하지 못하는 유치부 아이들이지만, ‘다른나라 사람이다’ 또는 ‘왜 우리말을 못 하지?’ 등의 생각이 뜻밖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그런 생각을 할 거로 생각했거든요. 보고 들은 것이 많아서 저 스스로 익숙해진 게 많은 까닭이겠지만,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그 생각에 국민, 민족, 국가 이런 단어는 없었습니다.
예전에 오사카에 사는 많은 동포들은 고향이 제주도라 들었습니다. 이날 나카오사카조선중급학교에서 만난 아이들과 선생님들도 고향이 제주도라 그러더군요. 물론 오사카 출장 중 만난 대다수의 동포들 고향이 제주도였습니다.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에서 반가운 몽당연필을 만났습니다. 사진으로 보세요. 2013년 소풍 in 오사카의 흔적들인 것 같습니다. 그때 소풍에 전 함께하지 않았지만, 저도 이름은 남겼습니다.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는 교장 선생님과 면담 후 학급을 둘러보고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만나고 역사관을 둘러보고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 영상을 보는 일정이었습니다. 마지막 사진이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에 마련된 역사관입니다. 사진을 찍은 저곳에서 보면 우리학교란 네 글자가 작은 창문을 통해 보이도록 만들었더군요. 졸업생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아마 2013년 소풍을 다녀오신 분들은 보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조선학교를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일찍 학교를 나오게 돼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아! 나는 왜 일찍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가.”
숙소에 짐을 풀고 시민모임 w/몽당연필이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시민모임이 준비한 자료와 회원가입서를 주길래 저도 몽당연필 회원가입서를 내밀었습니다. 특히 부산에서 아드님과 오신 장세헌 회원님께는 특별히 두 손으로 공손히 드렸습니다. 또 시민모임 세 분이 몽당연필에 가입하시면 저도 시민모임 것을 한 장 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전 받은 게 없습니다. 이 글을 보시면 조속히 응답해주십시오. 아래 링크를 클릭하셔도 됩니다.
10일 저녁은 고교무상화 오사카 연락회 공동대표를 맡고 계신 타케시 후지나가 선생님께 좋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시민모임 w/몽당연필 숙소는 오사카 츠루하시(鶴橋) 근처 다다미가 잘 깔린 게스트하우스입니다. 오사카를 휘어잡은(?) 옥출(玉出, たまで)이마자토에키(今里駅)점 뒤편입니다. 이곳 근처 동포분이 운영하는 근사한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4박 5일간 시민모임 w/몽당연필을 잘 챙겨주신 후지나가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先生,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그리고 잠들었습니다.
이날 밤 장세헌 카페회원님과 페이스북 친구가 된 것 같습니다.
둘째 날엔 여유로운 아침을 맞았습니다.
오사카에 머무는 4박 5일간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오사카식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토스트와 삶은달걀, 커피, 샐러드가 함께 나오는 식단입니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수요일 오전에 식사를 마치고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다 함께 외출에 나섰습니다. 우선 숙소 근처 코리아타운을 둘러봤죠. 다 함께 이런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오사카 난바(難波)로 나갔습니다. 난바역에서 각자 팀을 나눠 헤어지기로 했죠. 자유시간이었습니다. 장세헌 카페회원님과 아드님은 어딘가로 쇼핑을, 손미희 대표와 오하나, 이은영팀은 또 어디로 말크림(?) 등을 사러 갔습니다. 전 난바역 근처 술집에 술을 사러 갔죠.
황홀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추웠습니다. 술병에 붙은 일본어를 한 글자 한 글자 다 읽어보려 해도 정말 추워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이 많은 사케를 앞에 두고 덜덜 떠는 모양새가 조금 웃겼지만, 다음에 또 이곳에 방문하게 되면 외투를 챙겨가야겠습니다. 적당히 둘러보고 적당히 읽어보고 적당히 물어보고 괜찮다 싶은 술을 골랐습니다.
오사카에 가기 전 정미영 회원님이 그러셨습니다. “한 병에 1리터 넘는 건 사지마. 그리고 들어올 때 면세범위가 1병인데, 2병까지는 봐줄 거야. 신고서에 체크도 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700mL로 몇 병을 살 걸 그랬습니다. 괜히 아쉽습니다. 첫 경험은 다들 서툰가 봅니다.
이날 전체 오사카 일정 중 처음 제대로 일본어를 쓰기도 했습니다. 대략 이런 대화를 술집 점원과 나눴습니다. 더듬더듬 일본어를 하는데도 하나씩 잘 들어주고 물어봐 주고 응대해줘서 고마웠습니다. 잊지 못할 겁니다..
“こんにちは。見ることが出来ますか。私は韓国からお酒を買いたいのでここに来ました。ここが有名なお店と聞きました。”
약속된 시간에 다시 만난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츠루하시로 돌아와 오사카 코리아타운에서 동포분들과 함께하는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코리아타운에 있는 시나브로라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오사카조선고급학교가 처한 상황이나 동포와 남측 사람들을 얼마나 서로를 그리워하는가, 우리 민족의 미래 등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무겁거나 괜히 진지하지 않은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동네 아저씨들과 함께 좋은 술 한 잔 마시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세헌 카페회원님과 손미희 대표 간 가벼운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지요.
“과연 오코노미야끼를 식사 대신 먹을 수 있는가.”
이 논쟁의 결말은 다음날 점심식사 때 해결됐습니다. 아울러 교류회를 마련해주신 고교무상화 오사카 연락회 대표 타케시 후지나가 선생님께 다시 두 번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先生,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코리아타운의 밤은 조용했습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 손미희 대표와 이은영씨는 목욕을 하러 갔고 남은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제가 낮에 사 온 사케와 맥주를 두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케 중 하나가 좀 독했던 모양입니다. 필름이 끊긴 건 아닌데 그날 밤 대화가 잘 기억나지 않는 건 사케가 독했기 때문일 겁니다.
셋째 날인 12일은 바쁜 날이었습니다.
이날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조선학교 두 곳과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재판지원 집회’에 참석하는 일정이 있었거든요. 아침식사 후 타케시 후지나가 선생님과 동포분들을 만나 히가시오사카조선중급학교를 갔습니다.
동중 교장 선생님께도 시민모임에서 준비한 대형 현수막을 전달했습니다.
전날까지 동중 교장 선생님은 중급부 3학년 아이들과 수학여행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모임 w/몽당연필이 방문한다는 소식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학교로 돌아오셨습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역시 학교를 천천히 둘러봤습니다. 오전에 방문한 터라 학교 아이들 대부분이 수업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학교에 가고 싶어졌습니다. 학교수업이 듣고 싶었습니다.
제게 동중은 그랬습니다.
오사카에 오면 꼭 가봐야 하는 밥집이 있다고 합니다. 오모니(어머니)라는 오코노미야끼를 파는 곳입니다. 오사카에 도착한 후 김누리 회원님의 강력한 추천을 받았습니다. 시민모임 w/몽당연필 숙소가 있던 츠루하시 코리아타운 어딘가에 있습니다. 점심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먹었습니다. 야끼소바로 시작해 오코노미야끼만 네댓 종류는 먹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동포&연락회와 가진 교류회에서 나왔던 '손미희 vs. 장세헌'(두 분은 오랜 선후배 사이라고 합니다.) 논쟁의 끝을 보기로 했습니다. '과연 오코노미야끼를 식사 대신 먹을 수 있는가.'
결국 밥이 들어간 오코노미야끼도 먹었습니다. 장세헌 카페회원님은 아마도 ‘오코노미야끼를 식사 대신 먹을 수 있다’고 인정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남습니다.
“○○아~ 오코노미야끼 먹고 학교 가거라~”
“여보~ 오늘 아침은 오코노미야끼예요~”
가능할까요? 어쨌거나 재미난 점심식사였습니다.
식사 후 오사카조선고급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를 촬영한 곳이죠. 교장 선생님을 뵙고 인사를 나누고 역시 천천히 학교를 둘러봤습니다. 이 시간에도 아이들은 수업을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그분들도 만났습니다.
아래 사진은 오사카조선고급학교에 대형 현수막을 전달하는 모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몽당연필 전재운 회원을 만났습니다. ‘졸리’라는 닉네임으로 다음 카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오사카조고 럭비부 사진을 올려주신 분이죠. 현재 오사카에 거주하신다고 합니다. 오사카조선고급학교에도 자주 들르신다고. 멋지고 좋은 분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부러워하는 렌즈를 들고 계셨습니다. 전날 밤 술자리에서 그 렌즈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전재운 회원님 렌즈를 만지작 거리니 오하나 국장이 물어봤거든요. “아 그게 그 렌즈예요?”
어쨌든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아이들은 수업을 재밌게 듣고 있었습니다. 오전에 방문한 동중과 마찬가지였죠. 선생님들과 장난도 치고 조별모임 땐 시민모임 w/몽당연필과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부러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두들겨 맞거나 고개를 숙이고 공부만 해야 했거든요.
우리가 오사카를 방문하기 전, 도쿄조선고급학교 럭비부가 하나조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지요.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럭비부는 얼마 남지 않은 오사카 지역 예선 결승전을 위해 합숙을 떠나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영광의 럭비부는 만나기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운동장에서 몸을 푸는 축구부 옆에 빛나는 럭비부가 있었습니다. 연습하러 잠시 들렀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몸을 풀고 있었습니다.
아래 사진 제 옆에서 활짝 웃으시는 분이 아마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축구부 감독님일 겁니다. 사진 가장 왼쪽은 몽당연필 소풍을 도와주시는 카오리 야마모토 선생님입니다. 인사를 나누고 이번 소풍이 무산된 것을 함께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체육관으로 이동해 다른 소조도 둘러봤습니다. 권투부(영화 <울보 권투부>에 잠깐 나옵니다)가 연습하는 체육관 지하와 배구부, 농구부가 모여 열심히 연습하던 체육관도 들렀습니다.
야구팬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일 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가 끝나는 날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야구가 끝나면 배구가 시작하거든요. 배구는 언제나 아름답습니다. 얼마 전 카페 연필1/3을 방문했던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 출연자 김근씨 따님도 한국에 온 김에 배구를 보러 간다고 했던 기억이 났습니다. 오사카 출신이라고 했거든요.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배구 소조를 했던가 봅니다.
오사카조선고급학교를 방문한 시민모임 w/몽당연필을 위해 '제48차 재일조선학생중앙예술경연대회'에서 군무(창작) 종목 금상을 수상하고 우수작품에 선정된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무용부 공연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피곤할 텐데 멀리서 찾은 우리를 위해 우수작품을 다시 보여준 오사카조선고급학교 무용부 친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무용부 공연 영상을 올리고 싶은데 용량이 너무 커요ㅠㅠㅠ
지난달 화려하게 막을 내린 몽당연필 후원주점에서 본 정순하(사진 왼쪽) 기억하시죠?
순하 후배들입니다. ^_^
오사카조선고급학교를 뒤로 하고 차에 올랐습니다. 바로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재판지원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해야 했으니까요. 피곤해서 그랬는지 꽤 오랜 시간을 달려 도착했습니다.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네 가지가 기억에 남습니다. 첫째, 일본 집회는 우리와 다르다. 둘째, ‘어? 저 두 사람 아까 조고에서 봤는데?’ 셋, 오사카 오바짱. 넷,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시민모임 w/몽당연필 모두는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재판지원 집회’를 “‘투쟁’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의 현장으로 생각했습니다. 무엇이 더 나은지 평가를 하는 건 아닙니다만 이날 집회는 세미나가 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색다른 집회 모습이 신기했습니다.
어느 정도 준비를 마치고 집회가 시작됐습니다. 사회를 맡은 남자분은 일본사람, 여자분은 동포라고 하더군요. 여자 사회자가 낯이 익었습니다. 오후에 오사카조선고급학교를 방문했을 때 뵌 일본어 선생님이었습니다. 처음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모습을 봐서 그런가 무대에 선 모습에 잠시 혼란이 왔습니다. 또 한 사람, 집회 초반 오사카조선고급학교 합창부 학생들의 작은 공연이 있었습니다. 그때 피아노 반주를 친 여자분도 낯이 익은 겁니다. 누구신지 여쭤보니 오후에 오사카조선고급학교에서 뵌 영어 선생님이셨습니다.
둘째 날 오사카 난바역 위 작은 강가에서 김명준 사무총장과 연락한 일이 있는데 감독님이 그러셨죠.
“어제 자꾸 누가 인사하는데 누군진 모르겠는데 그 사람은 절 아는 듯 하고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그래그래. 얼굴 잘 기억 못하는 나와는 다른 점을 보여줘.ㅋㅋㅋ”
저는 기억력이 좀 좋은 것 같습니다.
이날 몽당연필 스토리펀딩 ‘바다를 건너온 아이들’ 3화 필자이자 ‘오사카 오바짱’(오바-짱 아닙니다)인 리명옥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선생님과 나란히 맨 앞줄에 앉았죠. 이날 함께 찍은 사진은 제 페이스북 역사상 최고의 ‘좋아요!’를 기록했습니다. 뵙고 싶었던 분을 만나 반가웠으나, 집회가 끝난 후 금방 헤어진 게 아쉬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죠.
리명옥 선생님은 스토리펀딩에서 ‘번역가’로 소개됐습니다. 번역가. 이날 집회는 일본어로 진행됐습니다. 간단한 인사는 우리말로도 했지만, 일본분들이 많이 참석하셔서 그랬습니다. 리명옥 선생님은 손미희 대표 발언 때 동시통역을 하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집회 내용 전부를 실시간으로 손미희 대표에게 통역하시더라고요.
역시 사람은 직접 보고 들어야 합니다. 동시통역의 위대함을 보여주신 리명옥 선생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 인사드립니다. 저도 옆에서 좀 엿들어 대략적인 흐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리명옥 선생님을 뵌 반가움과 함께 오사카의 신기한 문화를 배웠습니다. ‘오사카 오바짱’이라 불리는 아주머니들입니다. 첫날부터 저희를 인솔해주신 나가사키 유미코 선생님도 그러셨습니다만, 리명옥 선생님도 만나자마자 저희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건네셨습니다. 왜 주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게 오사카에 사는 아주머니들, ‘오사카 오바짱’의 문화라고 합니다.
사탕과 초콜릿은 별것이 아닙니다. 그 작은 걸 주는 것도 의례적인 것일 겁니다. 하지만 입가에 미소가 띱니다. ^_____^ 기분이 좋아집니다.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가운데 맨 앞자리에 착석했습니다. 그러니 집회 전반의 분위기는 잘 몰랐습니다. 우리 시민모임 w/몽당연필이 잠시 일어나 인사를 했는데, 그때 깜짝 놀랐습니다. 굉장히 넓은 강당을 가득 메운 의자, 그 모든 의자에 전부 착석한 많은 사람들. 인원수로 의지를 파악하려는 건 아니지만 ‘조선학교를 위해 싸우는 일본인’을 실제 본 느낌은 놀라웠습니다.
사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수의 사람들이 우리 동포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많은 참가자를 보며 오사카 일정 내내 우리를 이끌어주신 나가사키 유미코 선생님과 타케시 후지나가 선생님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분들은 무엇을 위해 함께하고 있는 걸까.’ ‘나는 남쪽에 사는 이주민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자신에게 되물어본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집회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습니다. 가장 먼저 오사카조선고급학교 합창부 아이들이 짧은 공연을 보여줬죠. 이날은 '모아(more)'라는 새로운 노래가 발표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그 노래를 배우는 시간도 있었고, 고교무상화 재판을 위해 애쓰는 변호사 두 분의 발언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방문한 시민모임 w/몽당연필을 대표해 손미희 대표가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집회가 끝났습니다. 어딘가로 장소를 옮겨 즐거운 교류회를 가졌습니다. 거대한 병에 담긴 일본소주도 먹고 맥주도 조금 마시고 맛있는 중국음식도 먹고 즐거운 대화도 나누고 그랬습니다. 이날 교류회에 참석한 전원이 돌아가며 인사를 한마디씩 했는데요, 저도 차례가 다가왔습니다.
무려 11개월간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일본어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동포들이 열심히 우리말을 지키고 배우는 것처럼 저도 그들의 역사와 삶을 더 잘 보고 싶어 일본어를 배운 이유가 있습니다. 또 일본분들도 계셔서 나름 멋진 인사를 하려고 했습니다만, 손미희 대표의 인기와 오하나 국장의 투쟁 외침에 이어 일본어 잘하는 손미희 대표 친구 아들 다음에 인사하려니 하나도 멋지지 않더군요.
아래는 그날 돌아가는 길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입니다. 교류회 자리에서 뭐라고 길게 말했는데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진심을 말하려 했으면서 냉정함을 잃어버린 탓입니다. 나쁜 습관입니다.
“오사카조고, 동중 어머니회장님들. // 집회 뒤풀이에서 뭐라고 말을 참 많이 했는데 기억은 잘 나지 않습니다. 몽당연필 사무국 8개월 차의 느낌, 도쿄 금요행동과 오사카 화요행동의 느낌, 뉴스펀딩을 도와준 두 분(리명옥, 나가사키 유미코)과 오사카에서 뵌 많은 양심적인 일본분들, 또 관계자분들에 대한 감사, 돌아가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명준감독은 날 왜 여기에 보냈나 등. // 정말 신기하고 색다르고 많은 걸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 皆んな、どうも有り難うございました。^_^“
교류회가 끝나고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나가사키 선생님과 함께 숙소로 걸었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나가사키 선생님이 누굴 소개해주는 겁니다. 어디서 나타났나 했더니 방금 택시에서 내렸답니다. 아래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제 옆에 있는 사람입니다. 오사카의 영광 오사카조고 럭비부 선배입니다. 제 기억에는 영화 <60만번의 트라이> 럭비부의 1년 선배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 말로는 영화에 슬쩍 나온 것도 같다고 합니다.
택시에서 우연히 내리는 걸 나가사키 선생님이 보고 잡으셨다고 합니다. 뜻밖에 길을 걷다 놀라운 만남을 가졌습니다.
사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영광의 럭비부!입니다.
교류회가 끝나고 숙소에 돌아온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작은 2차를 가졌습니다. 간단하게 먹고 자기로 했습니다. 다음날 손미희 대표와 오하나 국장, 장세헌 몽당연필 카페회원과 아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거든요. 게다가 정말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저희만 피곤했던 게 아니었을 겁니다. 이날 역시 저희를 인솔하신 타케시 후지나가 선생님, 나가사키 유미코 선생님도 정말 힘드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후지나가 선생님께 다시 세 번, 나가시키 선생님께 다시 두 번째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先生, 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타케시 후지나가 선생님입니다. 우리말을 정말 잘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래는 나가사키 유미코 선생님입니다. 정말 따뜻하고 친절한 분이었습니다.
온전히 저만의 시간으로 하루를 보낸 넷째 날입니다.
역시 오사카식 아침식사를 마치고 짧은 회의 겸 이야기, 소감을 나눴습니다.
본래 시민모임이 준비한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재판지원 집회’에 몽당연필은 참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뒤늦게 참가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 숙소를 한번 옮기게 됐고 그런 과정에서 체류비가 남았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오사카조선고급학교 어머니회에 드리기로 했습니다. 영화 <그라운드의 이방인>에 잠깐 출연하셨던 토시유키 리키타케 PD를 기억하십니까? 그분과 타케시 후지나가 선생님이 함께 시민모임 w/몽당연필 숙소를 잡아주셨습니다. 두 분과 숙소 주인분이 잘 아신다고 합니다. 그래서 숙소 주인분을 통해 후지나가 선생님을 통해 어머니회에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추후 메시지가 온 바에 따르면 어머니회에서 그 돈을 다시 고교무상화 오사카 연락회에 잘 전달했다고 합니다. ^_^
나가사키 유미코 선생님 인증샷도 받았습니다.
아침식사 후 ‘시민모임 w/몽당연필’은 해체했습니다. 저는 앞에 소개한 토시유키 리키타게 형을 만나러 갔습니다. 숙소 근처 관음사란 절 8층에서 전시회를 하고 있었거든요. 이 그림전의 주인공은 김두현 선생님입니다. 후에 한국에서 건너가셨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오사카에서 돌아온 후 김두현 선생님과 페이스북 친구가 됐습니다. 선생님께서 메시지로 친구된 기념선물을 주겠다고 하셔서 냉큼 받았습니다. 제 페이스북에서 보신 그림입니다.
“ありがとう御座いました。失礼でなければ、FB友になった記念にプレゼントのつもりで絵(風景画など)を一枚アップしたいのですが、タイムラインかメッセージかどちらがよろしいですか? 勿論要らない場合は返事くださらなくていいです。そして絵は好嫌いで削除して下さって結構ですのでもいいです。”
“すみませんが、返事が遅れました。絵を受けるは本当に良いです。タイムラインてがほしいです。本当に有り難うございました。私は先生の会立ちが良かったです。^_^ // 先週の金曜日で先生の展示会で行きました。RIKITAKEさんが私に展示会を説明しました。この時に先生がないでしたから、あいさつは話しませんでした。// 次時にあいさつを話します。/ どうぞ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_^”
제가 갔을 때 선생님은 안 계셨습니다. 대신 리키타케 형님이 그림을 보면서 하나하나 소개를 해주셨습니다. 김두현 선생님은 그간 조선 민속화와 같은 느낌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다 올해 오사카 츠루하시를 배경으로 한 12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그림을 모아 전시를 연 거죠. 짧은 시간이나마 제가 둘러본 오사카 츠루하시의 곳곳이 그림에 담겨있었습니다.
김두현 선생님의 그림은 굉장히 사실적이면서 주의집중력이 강합니다. 그림으로 사진을 만든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림 속 사람들에게 집중이 잘 되고, 배경을 죽이지 않으면서 사진이라면 아웃포커싱을 준 것과 같은 느낌을 냈습니다. 그림 속 사람들은 모두가 한 명 한 명 살아 숨을 쉬고 있습니다. 그들의 표정과 주변을 잘 살펴보는 게 저는 정말 놀라웠습니다. 정말 그림 속 살아있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대단한 솜씨였습니다!
오사카에서 돌아온 후 그림 엽서를 본 백우영 공간관리팀장님 표현은 그랬습니다.
“와~ 김홍도와 신윤복을 합쳐놓은 것 같아!♡”
츠루하시를 담은 12점의 그림은 올 12월에 리키타케 형님이 카페 연필1/3으로 가지고 오실 겁니다. 진품을 가져오는 건 아니고 12점 그림을 담은 2016년 달력입니다. 사본이나마 그 12점은 직접 눈으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카페 연필1/3 어딘가에 잘 걸려있을 테니까요.
몽당연필 권해효 대표가 쓴 <내 가슴 속 조선학교>(2011)란 책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2005년 10월의 휴일이었습니다. 오사카의 한 시장통을 걷다 조선학교를 발견했습니다. 잠겨진 철문에 매달려 학교 안을 들여다 보았지요. 운동장은 좁았고, 시설은 낡아보였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저런 곳에 학교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초라했지요. 바로 옆의 일본 학교와는 하늘 땅 차이일 정도로….”
그 한 문단이 오롯이 생각나는 그림도 있었습니다.
리키타케 형님과 함께 밖으로 나섰습니다. 츠루하시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권해효 대표의 그 한 문단도 직접 눈으로 봤습니다. 바로 옆 거대한 일본학교와 비교되는 낡은 건물을 직접 봤습니다. 오사카조선제4초급학교입니다. 멀리 아이들이 재잘거리며 뛰노는 모습도 봤습니다. 다가가 인사하고 싶은, 동화책에 나올 법한 즐거운 모습이었습니다. 누구 선생님이라도 한 명 지나가면 들어갈 수 있을 것(w/리키타케) 같은 그 학교를 봤습니다. 철문 너머로요.
츠루하시를 돌며 또 본 것이 있습니다. 얼마 전 ‘몽당연필 11월 연필데이’를 화려하게 이끌어준 이범준 작가의 책 <일본제국 vs. 자이니치>(2015) 기억하시죠? 오사카로 오십시오. 츠루하시를 한 바퀴 돌아보시면 그 책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집니다. 제가 앞에 선 집엔 ‘대한민국 민단’임을 나타내는 표식이 붙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옆집엔 아무런 표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골목으로 갑니다. 그 골목을 걸으며 리키타케 형님이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입니다. ‘이 집은 왜 이름이 이렇게만 쓰여 있는가’, ’이 명패의 이름은 무엇을 의미한다.’ 전 아직 책 속 도쿄까지 가지 못했습니다만, <일본제국 vs. 자이니치>을 앞부분이나마 읽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리키타케 형님과 헤어졌습니다. 오는 12월 연필1/3에서 만나자고 약속하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전 저만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숙소를 거쳐 오사카 시내로 나가는 길에 숙소 근처 옥출을 지나갔습니다. 옥출은 가격이 저렴한 식료품점입니다. 이 옥출은 예전에 화장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몇몇 노인분들은 옥출에서 절대 고기를 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옥출에 들어가면 이런 안내방송이 계속 나옵니다.
"いらっしゃいませ、いらっしゃいませ。やすいのたまで、やすいのたまで。"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やすい, '(값이)싸다'란 뜻과 함께 '편안하다'란 뜻이 있더군요. 이 やすい를 '편안하다'라고 해석하니 기분이 좀 묘했습니다. やすい가 어떤 의미로 더 많이 쓰이는지, 또 왜 그런지는 사전에 절대 나오지 않죠. 그래서 저런 느낌이 들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오사카를 걷다 생각난 일본어였습니다.
본래 시민모임 w/몽당연필의 일정엔 히가시오사카조선중급학교가 없었습니다. 셋째 날 두 번째 학교 방문은 조호쿠조선초급학교였습니다. 가장 낡고 오래된 학교라고 김명준 사무총장에게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러나 나카오사카조선초급학교에 이어 중급학교, 고급학교를 보는 게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히가시오사카조선중급학교로 변경됐죠.
그 아쉬움에 조호쿠조선초급학교로 향했습니다. 조호쿠조선초급학교는 오사카 시미즈역에서 가깝습니다. 후지산이 보이는 시미즈가 아닙니다. 조호쿠조선초급학교 주변에도 일본학교가 몇 있었습니다. 밖에서 봤을 땐 참 깔끔하고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그사이 낡은 학교가 하나 있더군요. 마침 철문이 열렸길래 슬쩍 들여다봤습니다. 한 초급부 저학년 아이가 점심식사를 마쳤는지 어딘가에서 식판을 닦아 나오더군요.
이상한 남자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는데도, 따라서 고개 숙여 인사를 받아줍니다.
괜한 의심이 생겼습니다. 몽당연필을 팔고 들어가 봐도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누군가 불쑥 들어간다는 것이 혹 실례는 아닐까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돌면서 눈이 마주친 일본학교 학생을 보기도 하고 오사카 동네 구경을 하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학교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한 젊은 선생님이 철문을 굳게 닫고 계시더군요. 인사를 건넸습니다. 조금 큰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서로 인사를 나누고 철문은 굳게 닫혔습니다.
잠시 오사카 한신고시엔구장에 들렀습니다. 상점 직원에게 구장 내야 흙을 파냐고 물었더니 그러더군요. “つちはないです。”
대신 고시엔카레를 사와서 먹고 있습니다.
고시엔을 떠나 오사카 난바로 갔습니다. 가서 이틀 전 먹어버린 술도 다시 사고, 빛나는 김금희 운영위원께서 부탁하신 것도 사고, 갑자기 카톡으로 이것저것 사오라고 한 엄마 것도 사고. 오사카 관광은 없었습니다. 온종일 뭔가를 사러 오사카를 쏘다녔습니다.
숙소에 홀로 돌아와 잠시 쉬는데 일본인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츠루하시로 갈 테니 만나자.” 단나상과 함께 오더군요. 츠루하시 야끼니꾸 가게에서 센다이산 고기를 맛있게 구워 먹고 헤어졌습니다.
그렇게 오사카 일정이 모두 끝났습니다. 저는 14일 이른 오후에 잘 돌아왔습니다.
모두 몽당연필 덕분입니다.
..
아이들이 참 밝았습니다. 손님이 와서 그러리라 생각했으나 누구는 그게 또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런가 봅니다. 제가 본 아이들은 참 밝았습니다. 얼굴이 밝다는 게 얼굴이 웃는다는 것만은 아닙니다. 선생님과 함께 밝았습니다. 처음 보는 손님인데도 손님과 함께 밝게 웃을 줄 아는 아이들이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그렇게 스스럼없이 선생님과 학생들이 함께하는 학교라면 저라도 힘을 내서 다니고 싶을 것 같습니다. 숙제를 잘 하지 않고 공부 따윈 내팽개칠지언정 학교가 좋을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학교'라는 공동체에 직접 두 발로 찾아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어울릴 공간이 있다는 게 부러웠습니다. 저는 그러지 못했거든요. 몽둥이 들고 다니는 선생님을 피하고 속이고 골리는 게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학교는 감옥이지 공동체가 아니었으니까요.
섣부른 판단이지만 이제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는 아이들이 무엇을 알아 그리 밝을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제가 내린 판단은 선생님들의 태도였습니다. 뭔진 알 수 없어도 선생님들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가 아이들이 편하게 안길 수 있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그게 조선학교의 우리학교라고, 그렇게 이해를 해보긴 했습니다.
이번 오사카 출장을 한두 마디로 정의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느낀 게 많은 데 어떤 건 얕고 어떤 건 좀 깊습니다. 어떤 건 눈으로 본 게 적어 느꼈다고 할 수 없을 것도 있습니다. 생각을 더 해보고 싶은 것도 있고 정보를 좀 찾아보고 싶은 것도 있습니다. 다만 눈을 감고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면 리키타케 형과 걷던 츠루하시 작은 골목길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이 떠오릅니다. 우선은 그거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출장 일정 전체, 이것이 몽당연필 소풍인가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년 소풍이 기다려집니다.
..
지금까지 엄청나게 긴 오사카 출장 보고였습니다.
끝까지 한 글자 한 글자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첫댓글 생생한 후기네~~~ㅎㅎ
난 엄청나게 긴 글은 잘 못읽는 난치병 있음.
아주 심함~~ 너무 김~~ 무지 수고했음~~
뭉클하기도 하고, 재밌기도하고, 길다. 많은 활동을 하셨군요, 수고 많았어요
길다!!! 너무 자세해서 마치 보고 온 듯한 느낌입니다. 수고하셨구요. 담에 또 뵈어요!
곁에서 함께 본 것 처럼 생생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希望を...라고 쓰인 현수막 사진.. 눈에 띄더라는.
다큐 한편 감상한 느낌!!ㅋ
お疲れ様でした。^^
아~~~ 담에 오시면 아예 양조장으로 모실게요!
쿄토에 가면 양조장이 있어요.
유명한...黄桜(키자쿠라), 月桂冠(겟케이칸). 맥주도 있고, 사케도 있구요.
런치도 싸게 팔구요. 맥주 여러 종류를 비교해서 마실 수 있는 세트 메뉴도 있구요.
후기를 이렇게 잘 쓰다니. 글 쓰는 사람이었어요?^^ 덕분에 2주만에 잊혀진 기억이 새록 돋아납니다. 그리고 곧 약속 지키겠습니더. 언제 부산에들 한번 오셔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