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멈춰지는 성전 건축
에스라 4장 16절 – 24절 2024년 6월 9일 주일 오후 말씀지
에스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도움’입니다. 무엇을 도우시나요? 내몸을 성전을 삼고 지어나가는 일을 도우십니다. 우리는 하늘에서 은혜로 택함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또한 택자들은 이미 하늘에서 영원한 구원을 은혜로 받은 자입니다. 딤후2:9-
택함받고 구원받아 다된 것이 아니라 이제 육신 입혀 이땅에 보내사 성령의 도움으로
1.아들의 생명이 살아나고 (요3:16의 영생) 2.자라나고 (요6:27의 영생) 3.열매를 맺게 하사 하늘의 상들을 얻게 하시는 영생인 것입니다. 갈6:8-
이것이 복음(福音)인데 아직도 내가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열심히 믿어서 구원(천국)받으려 하는 자들이 많은 것은 에스라서에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성경에 귀한 영적 뜻을 알지 못하고 글자 지식으로 읽고 배운 탓입니다. 그러니 아담 때 택자 모두에게 입힌 가죽옷과 십자가로 입힌 의의 옷을 입혀 이 땅에 보내신 것을 부인하고 있는 소경이 되는 것입니다. 공관 복음에는 벳새다 소경, 여리고 소경을 나타내주셨는데 요한으로만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나타내주신 것을 보는 자가 적습니다. 요9:1-
그리고 열매를 맺는 것 중에 한 생명을 살리는 일, 살림 받은 자들을 자라게 하는 일, 자란 자들을 일군으로 세우는 일을 하다가 가게 하시는데 지금 각자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영적 생명이 자라는 역사가 성전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이 성전인데 그 성전을 지어나가는 것은 날마다 기쁨과 감사의 열매를 맺는 생활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성전이 무너졌다는 것은 이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멸망한 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패역한 유다 백성들도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앞서 달려가라고 영광의 직분을 주시고 은사까지 주시고 복까지 주셨건만 앞으로 닥칠 죽음 곧 환난을 준비하지 않고 세월만 허송하는 미련한 다섯 처녀 같은 자들입니다. 이번에 성전 짓는 것을 계속해나가는 자들에게는 더욱 견고케 하사 남은 생애를 왕같은 제사장의 거룩 생활을 하게 하시고 이미 성전 짓는 일을 멈춘 자들에게 에스라서의 말씀을 양식으로 주셔서 다시 회복하게 하십니다.
16절 이제 감히 왕에게 고하오니 영토 확장에 대한 왕의 욕심을 자극하는 말을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돈으로 매수한 관리들이 거짓으로 조서를 꾸며 왕에게 올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닥사스다 왕도 이 말에 넘어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5장 40절과 41절에 속옷은 생명 역사로 우리가 생명 역사를 하며 살 때에 부끄러움을 당치 않습니다. 겉옷은 직분으로 그 직분을 세상 사람들이 금지할 때에는 그 직분을 버리고도 생명 역사를 해야 합니다.
41절에 오리는 빌라도 법정 곧 고소를 당하는 자리입니다. 구원의 복음, 은혜의 복음, 영광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세상주의 자들에게 고소를 당할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라 이들의 시기를 받아서 이렇게 고소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27:18-
십리는 골고다 언덕까지인데 순교당하는 자리입니다. 당시 총독 빌라도는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제사장과 장로들이 시기해서 큰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을 알아챈것입니다. 요19:12-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시기가 발동을 하고 죽이는 역사에 참여합니다. 구약에 다니엘 때에도 다른 신하들이 함정을 만들어서 참소를 하였는데 (단6:24) 다니엘 때에만 이루신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고 흠없이 나가는 자들에게 첫 삼 년 반 환난 때 반드시 이루실 일입니다.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을 필역하면 이로 말미암아 사마리아 사람들은 택하심과 구원하심과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삼위로 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모르고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우상도 섬기는 자입니다. 내 몸이 성전인 줄 모르고 우상을 5가지나 만들어서 교권주의, 외식주의, 신비주의, 세상주의, 육신주의에 빠져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원받기 위해 세상적인 것을 얻기 위해 열심히 예배를 합니다. 남들처럼 찬송과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구하는 것은 역시 잠깐 있다가 없어질 세상 것, 육신 평안입니다.
왕의 강 서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다시금 유다 나라가 세워지면 바사 나라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거짓으로 고하는 것입니다. 영적 신앙생활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열매를 맺고 생명 살리는 일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이 일은 순탄할 때도 있지만 세상주의자, 잘못된 자들에 의해서 모함도 당하고 죽임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때에 타락하게 되면 다시 회복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예수님과 사도들 특히 사도바울도 고소를 당했습니다. (행24:5-6) 그러므로 영광길 가는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난 자라면 미리 온갖 소리 듣고 미움과 시기를 당할 것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모함도, 고소도, 환난도, 핍박도 심지어 죽임도 당할 것입니다. 눅21:12-
그런데 성전 기초만 놓고 17년간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을 주시고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양식으로 삼으면 기쁨이요 힘이 생기고 강해집니다.
17절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한 저희 동료와 세상 역사까지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한 시대를 다스리라고 세우신 자들이 왕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오늘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고레스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로 유다 백성으로 성전 역사를 다시 하게 하시려고 세우신 왕입니다. (스1:1-2) 아닥사스다 왕도 세워 성전 건축을 멈추게 하신 하나님입니다. 자기 뜻대로 하는 것 같아도 실상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그 왕을 들어 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바로 왕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려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통을 주게 하는 데 쓰신 왕입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오늘날 세상의 왕들을 보며 기가 막힐 뿐이요 원망뿐입니다. 방백들은 왕이 나라를 다스릴 때에 협력하는 자들입니다. 르훔과 심새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뇌물을 받고 성전 역사를 방해하는 조서를 올리는 자들입니다. 스4:5-
강 서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왕이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아도 하나님이 왕의 마음을 주장하신 것입니다. 무너진 성전을 다시 지으려 할 때에는 반드시 방해 세력이 있어 중지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이 믿어지게 하사 그 생명이 살았다면 잠시라도 게으르지 말고 항상 깨어 내 몸을 성전 삼고 1.원죄를 이기기 위해 2.세상의 유혹을 이기기 위해 3.온갖 거짓말로 미혹하는 자들을 이기기 위해 항상 깨어 양식을 채워야 합니다. 왕이 주는 평안은 세상 평안으로 자기의 말만 들으면 얻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참된 평안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왕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계명을 어기는 일이라면 다니엘의 세친구처럼 차라리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 불을 택하는 자들이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난 자들입니다. 단3:18-
18절 너희의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시기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관리들이 뇌물을 받고 올린 것입니다.
19절 명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열왕을 거역하며 오직 세상 왕들의 일치점은 오직 자기 때에 큰 나라를 이루어 공로를 세우고 자기를 떠받들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제 지난날의 역사를 들먹거리며 자신들이 피해를 본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다윗 왕 후에 유다에 세운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큰 나라를 거역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모반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자기들을 따르지 않으면 가차없이 쳐서 망하게 하는 세상의 열왕들이 었습니다.
20절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주재하는 큰 군왕이 있어서 전무후무한 다윗 왕과 지혜의 대왕 솔로몬 왕을 역사 지식으로 알고 있는 왕입니다. 여호와를 목자 삼게 하사 온 세상에 우뚝 세운 왕입니다. 시72:8-
강 서편 모든 땅도 주재하매 다윗과 솔로몬 때에 그 지경을 넓게 하셨습니다. 왕상4:21-
조공과 잡세와 부세를 저에게 다 바쳤도다 전쟁에 지면 이긴 나라에 속국이 되어 시키는 대로 다 바칠 수밖에 없습니다.
21절 이제 너희는 명을 전하여 그 사람들로 역사를 그치게 하여 또 다시 그런 왕이 나타날까봐 겁이 난 것입니다. 실상은 여호와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그 성을 건축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일단은 성전 건축 공사를 중지시킨 것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이 하신 역사입니다.
22절 너희는 삼가서 이 일에 게으르지 말라 성전 건축을 중지시키는 일을 속히 하라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화를 더하여 왕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랴 하였더라 지난 날의 역사를 알기에 두려운 것입니다. 그 두려움이 자신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계기가 되면 좋은데 오히려 대적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23절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저희가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역사를 그치게 하니 사마리아 사람들의 계략이 성공한 것입니다. 자신들도 성전 역사에 함께 하겠다고 하였지만 이들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섬기던 우상을 여전히 섬기면서 예루살렘 성전을 짓는 일에 참여했다는 것을 나타내고 그것으로 인해 세상 복을 받은 것을 내세우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늘의 것을 바라보게 하시는 양식을 주시는데 그것을 들으면서 육신이 평안하고 세상에서 잘되기만을 바라며 듣는 자들이 바로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24절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전 역사가 그쳐서 성전을 짓는 역사를 왜 그치게 하셨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을 본 자와 못 본 자들이 있는데 전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성전을 짓게 하시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입니다. 보지 못했던 자들은 이런 방해를 겪으면서 하나님께 불평을 하게 됩니다. 나에게는 성전을 짓는 역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습니까? 이런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 역사를 보지 못하면 또다시 나에게 성전 짓는 역사가 없게 됩니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로만 내 몸을 성전 삼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안식 신앙입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은 그 안식에 미치지 못하게 됩니다. (히2:1) 오늘도 잘못된 거짓 교훈들이 넘쳐나고 있는데 거기에 흘러 떠내려가는 자들이 많은 것입니다. 히3:12
귀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은 기어코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날마다 양식을 주셔서 기어코 그 영광을 얻는 자리에 이르게 하십니다. 그러나 에서와 같이 그 식물에 장자 권을 팔아먹는 자들은 이 은혜를 알지 못합니다. (히12:15) 식물에 장자 권을 판다는 것은 육신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상태입니다.
바사 왕 다리오 제 이년까지 이르니라 이제 다른 왕을 세우사 성전 건축을 다시 하게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에 유다인들은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예배도 할 수 없고 포로로 잡혀 왔으니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요? 이제 다시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중지되고 말았으니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아직도 내 성전이 무너졌는지, 깨끗한지, 계속 지어져 가는지 모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건축을 방해하였는데 오늘날 외적인 사마리아 사람(잘못된 교훈을 받은 자들)과 내 속의 사마리아 사람인 훼방이 올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막7: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