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로장생의 명약 ‘인삼’으로 빚어내는 ‘금산 인삼주’는 한국을 대표하는 민속전통주다. 신비한 약효 때문인지 술을 먹은 뒤에도 숙취로 인한 어려움을 겪지 않고 한잔 술에 배어나는 알싸한 인삼향과 혀끝에 감치는 맛은 여느 명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인삼주는 백제시대부터 제조된 것으로 전해지나 본초강목(本草綱目) 등에는 1399년 도승지와 이조판서를 지낸 김문기(金文起) 가문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00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당시 각국 지도자의 공식 건배주로 지정되면서 전세계의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인삼의 본고장서 빚는 명주
금산 인삼은 예부터 ‘선약’ ‘불로장생의 영약’ ‘생명의 뿌리’라고 일컬어졌다.
개성 인삼이 고구려 인삼을, 풍기 인삼이 신라 인삼의 맥을 잇고 있다면 금산 인삼은 백제 인삼의 특성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백제 인삼을 원료로 빚어내는 금산 인삼주는 삼남지방에 널리 알려진 명주로 그 맛과 품질에 있어 전통과 품격을 자랑하고 있다.
금산 인삼주는 조선시대 사육신 중 한 분인 김문기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던 것을 18대 후손인 김창수씨가 모친과 조모로부터 전승받아 현재 계승하고 있다.
금산 인삼주의 제조비법과 그 맛은 조선시대 ‘임원십육지’와 중국의 ‘천금방’, ‘본초강목’에도 나와 있고 김창수씨 집안의 가전문헌인 ‘주향녹단’ ‘잡록’에는 인삼을 넣어 술을 빚고 그 술을 제사때 사용하는 제주와 가양주로 썼다고 전해져 온다.
#5년근 이상의 인삼으로 100일간 숙성
금산 인삼주를 기존의 인삼주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제조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인삼주가 인삼자체에 소주를 부어 우려낸 침출주라면 금산 인삼주는 전통 발효주로 분류된다. 쌀과 누룩에 인삼을 분쇄해 넣고 저온(18~22도) 발효시켜 100일간 숙성시킨다. 그래서 금산 인삼주에는 인삼이 없다. 술 속에 인삼을 그대로 녹여 놓았기 때문이다.
금산 인삼주의 주원료는 인삼·쌀·통밀이며 솔잎을 약간 넣는다. 여기에 사용되는 인삼은 5년근 이상의 인삼이 쓰이며 용수는 물맛이 좋고 예부터 피부병을 낫게 하는 효능이 있다는 금성산 기슭의 약수를 사용한다.
제조기간은 밑술제조에 10일, 술덧을 담근 후 주발효와 후발효에 60일, 채주하고 숙성하는 기간 30일 등 모두 100일 가량이 소요된다. 오래 숙성할수록 향과 맛이 더해져 주질이 더욱 좋아진다.
#유기산, 비타민 등 영양 ‘듬뿍’
100일간의 제조기간을 거친 금산 인삼주에는 유기산·무기질·비타민 등이 다량 함유돼 있고 유기산의 일종인 젖산이 많아 인체에 좋은 효과를 준다. 이 때문에 술을 먹어도 숙취로 인한 어려움이 없으며 한잔 술에 담긴 맛과 향은 그 어느 명주보다도 뛰어나다.
식욕이 떨어지고 위장기능이 쇠약한 여성에게 이 술을 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인삼성분이 소화기 계통의 힘을 증강해 누렇게 뜬 얼굴에 생기가 돌게 하고 군살이 붙지 않으면서도 탐스러운 몸매를 가꿔주는 미용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금산 인삼주에는 현재 인삼약주와 인삼증류주 2가지가 있다. 술독에 100일간 발효시켜 채주한 다음 이것을 짜내면 알코올농도 12.5도짜리 인삼약주가 되고 그것을 다시 수증기로 끓이는 소주내림을 거치면 43도짜리 인삼증류주가 된다. 지금은 거대한 탱크에서 인삼주를 끓여내고 있지만 대량생산 이전에는 큰 항아리에 불을 지펴 증류했다. 최근에는 여성 애주가들을 겨냥해 홍삼을 주원료로 한 알코올농도 15도짜리 홍삼주도 개발됐다.
#삼계탕, 한우 생고기구이 등 안주 별미
인삼주에 잘 어울리는 안주로는 인삼삼계탕과 한우 생고기구이 등이 제일로 꼽힌다. 애주가들은 재래식 추어탕과 인삼어죽·매운탕·송어회 등과도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한다.
금산군 부리면에서 영월가든이라는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길영환씨는 “토종닭을 푹 삶아 마련한 인삼삼계탕과 금산 인삼주를 반주로 곁들이면 임금님 수라상도 부럽지 않을 거예요”라고 자랑했다.
농림부 전통식품 명인 2호와 무형문화재 19호로 지정된 김창수씨(64)는 국내에서 유일한 금산 인삼주 제조기능 보유자이다. 고향인 금산에서 (주)금산인삼주(금산군 금성면 파초리)를 운영하며 30여년간 오로지 전통 인삼주 재현에만 힘쓰고 있다.
김씨가 가문에서 빚던 인삼주 제조를 업(業)으로 삼게 된 것은 운명적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마을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빚기 시작한 그가 인삼주를 만들게 된 게 모두 집안 어른들의 영향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집안 제사나 명절때면 할머니와 어머니가 대대로 전해져 온 비법에 의해 인삼주를 담갔고 김씨는 어깨너머로 이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또 양조장에서 막걸리를 만들면서도 집안에 보관된 ‘주향녹단’과 ‘잡록’에 적힌 비방에 따라 인삼주를 담가보기도 했다.
지금이야 누구나 다 아는 금산 인삼주가 됐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인삼주가 전통 비법에 의해 복원돼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제조허가를 받아 현재의 위상을 갖기까지는 그의 땀이 적지않게 배어 있다. 고유의 맛을 되살리기 위해 밤을 새운 날이 허다했고 판로개척을 위해 전국을 동분서주했다.
김씨는 “전통 민속주가 예부터 내려온 술이라고 쉽게 말하지만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탄압을 받고 그후로도 단속과 규제가 이어져 왔다”며 “조상의 맛과 솜씨가 배어 있는 전통 인삼주를 1994년이 돼서야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현재 사단법인 한국전통민속주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에는 한산 소곡주, 김천 과하주 등 정부로부터 명인이나 문화재 지정을 받은 전통 민속주 업체 38개사가 가입돼 있으며 명실상부한 한국 공인 전통 민속주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전통 민속주는 한국의 대표적인 술로 2000년 서울에서 열린 ASEM 행사 때에는 인삼주가 각국 지도자들의 공식 건배주로 사용돼 국위선양을 톡톡히 해냈다”며 “정부가 전통 민속주의 세계화를 위해 세제 등의 지원해 준다면 우리는 조상의 훌륭한 솜씨로 빚어낸 한국의 술로 전세계 애주가의 입맛을 감동시키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고만고만한 산들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다르다. 다른 것들이 모여 같은 것을 이루고, 같은 것들이 흩어져 다른 것들을 만들어 내는 자리에 바람이 분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새로운 바람이 분다. 신바람이다.
신바람이 머무는 자리, 그런 곳을 풍수지리에서는 사람이 살 만하다 하여 명당이라 한다. 그래서 금산을 예부터 금수강산의 약자인 금산(錦山)이라 하였던가.
신바람이 부는 곳을 찾아 우리 선인들은 풍류판을 벌이곤 했다. 풍류판에는 우리만의 멋이 있다. 멋이 제대로 살려면 흥이 있어야 하고, 개성이 있어야 하고, 조화가 있어야 한다. 흥은 비산비야의 산천이 자아내는 바람이요, 개성은 모두 다른 제 몸짓이요, 조화는 이 모두 다른 개성이 같이 어울리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있고 또 세상을 살리는 판이 풍류이다. 자기들만 즐기는 놀이만으론 풍류가 아니다. 풍류는 자기도 살리고 다른 사람도 살려 세상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풍류에 어찌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비산비야의 금산에 인삼주가 있어 금산 인삼주라 한다. 금산 인삼주야말로 풍류판에 어울리는 술이라 할 만하다. 국가로부터 명인주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고 각 나라의 정상들이 모인 자리에서 건배주로 선정되었다고 하여 하는 말이 아니다.
풍류판에 어울리는 술은 술이면서 술이 아니어야 한다. 인위적으로 만들고 희석시킨 술은 사람에게 좋지 않아 몸을 해치고 마음을 상하게 하기 마련이지만 자연적으로 숙성시킨 술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롭게 한다. 그래서 금산 인삼주는 지금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 발효음식처럼 인삼과 누룩을 넣고 발효시킨 것으로 술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술이기에 건강을 해치지 않으면서 흥을 돋운다.
술이 아니면서 술이라고 하는 금산 인삼주는 우리 선인들이 즐기던 풍류와 닮았다.
지금 금산에는 산들마다 각양각색의 꽃들이 만발하여 산꽃나라 산꽃세상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와서 금산 인삼주로 풍류를 즐겨보는 것이 어찌 사치이고 방종이겠는가. 흥을 돋우는 술자리라면 풍류의 멋을 만끽할 수 있는 금산 인삼주가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