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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展 ● 패션은 과연 예술인가? ○ 오늘날 문화·예술 각 장르간의 경계가 허물어진지 오래이며_또한 각 개별 장르를 규정하는 개념 또한 다양한 문화·사상적 층위를 바탕으로 한 여러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왔다. 패션과 미술은 거의 100년에 이르는 시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조형상의 공명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거기에 걸맞는 심도 있는 접근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서야 본격적으로 전시의 형태를 빌어 미술과 패션의 접목을 매개로 한 시도들이 있어왔는데_그러나 이들 전시 대부분이 조형예술과 패션의 시각적·조형적 유사성에 집중되어 있는 다소 표피적인 접근에 머물렀다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의 ‘신체’를 둘러싼 사고의 지형도(地形圖)로서 이 전시가 지니는 의미는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당면문제로서 ‘신체’라는 화두를 통해 미술과 패션이라는 개별 장르간의 공유가능성이 있는 심층적인 토론의 진상을 찾으려는 점일 것이다.
이불_Untitled_혼합재료_115×88×71cm_2003
이불_Untitled_혼합재료_115×88×71cm_2003
패션과 현대미술_그리고 신체 ● 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展은 패션과 현대미술의 공유 가능한 토론의 장으로서 ‘신체’를 둘러싼 여러 담론에 관한 전시이다. 이 전시는 패션과 현대미술을 통해서 90년대 이후 우리가 직면했던 주요한 이슈 중 하나였던 신체의식의 변화나 붕괴, 그리고 그 미래의 전망에 대한 일종의 문화사적 접근으로, 1999년 교토국립근대미술관에서 라는 제목으로 만들어진 전시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 전시는 20세기의 패션을 ‘신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패션 디자이너의 실험적인 작업과 미술가의 작품을 대치시킴으로써 미래의 패션과 신체와의 관계를 전망했던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제 세기가 바뀌고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는 90년대와는 다른 혹은 그 연장선상에서 신체에 대한 새로운 담론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으며, 이번 전시는 바로 그 연장선에 존재하는 발전적 단계의 예시이다. ● 따라서 이 전시는 90년대 이후 급변하는 패션 및 미술 동향을 반영하여 매우 새로운 내용으로 기획, 구성되었다. 국경을 초월한 컴퓨터 네트워크의 성립, 장기이식과 유전자공학의 발전 등 우리의 신체를 둘러싼 환경은 크게 동요하고 있으며, 신체에 관련된 현상이 사회현상으로 부각된 지금의 현실은 현대사회에서 '신체'나 '신체관'에 변화가 일어난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패션과 신체의 관계, 여성이 추구하여 온 이상적인 미에 대하여 또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규_Dress design for social women 1, 2_72×50cm×2_2004_왼쪽 최규_Dress design for religious women_82×60cm_2004_가운데
최규_전시장 풍경
최규_Pink, purple & green dress for lonely women_92×70cm_2004
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 ● 이를 위해 展의 기획단계서 부터 한·일 양측의 공동기획 및 조사를 통해 2000년대에 맞게 전시방향이 수정되고 더불어 한국과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들이 새롭게 편입되거나 보강되었다. 한국 작가의 선정은 우선, 제도로서의 피복 혹은 신체를 비평적으로 검증하고 있는 작가, 둘째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신체의 위기를 자각하면서 ‘신체개조’ 또는 ‘신체변이(變異)’를 생각하고 있는 작가, 셋째 실존의 문제로서 패션을 외부세계나 타자와의 소통 통로로서 생각하고 있는 작가 등의 측면에서 고려되었고 이불, 이형구, 최규가 선정되었다. ● 오늘날 패션(피복)이 그러하듯이 우리의 몸 또한 더 이상 우리 주체의 마지막 보루가 아니라 한낱 미디어에 의해 조작된 꿈을 가탁하는 대상으로 전락되어간다. 보통 사람의 일상에까지 침투한 성형수술과 다이어트 산업이 인간의 욕망을 기생삼아 국가와 인종을 초월한 거대한 산업이 되 버린 지금, 우리의 신체는 소비사회의 욕망을 환기시키는 허상의 직접적인 제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다만 90년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성에게 강요되었던 이 허상의 조건이 이제 성역할이나 연령, 계층, 인종을 초월해 보편적인 정서와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일 것이다. 우리가 착용하는 물건인 패션 이상으로 우리의 신체는 물건화(物件化)되었고, 이러한 현상 너머로 존재하는 심층적 근저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시각을 이들 작가의 작품을 통해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마우리치오 갈란테_Dress / Spring&Summer_1992
가와쿠보 레이_Sweater, Skirt / Autumn&Winter_1995
아라카와 신이치로_Dress / Autumn&Winter 1999
돌체&가바나_Shirt, Skirt / Spring&Summer 2004
전시장 디자인 ● 패션과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공유점을 찾으려는 시도인 이번 전시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서 전시장 설계는 건축가 인나미 히로시(Innami Hiroshi)와 최욱에게 맡겨졌다. 전시장 디자인의 기본 컨셉은 패션쇼 장(場)에 대한 "역 발상"에서 비롯되었다. 인간의 신체에 대한 가장 이상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왜곡된 형식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한 패션쇼 장. 패션의 지향점을 맞추기 위해 조형(造形)되어진 육체를 지닌 모델들이 중앙에 위치한 무대에 등장하고 이를 관객이 지켜보는 것이 패션쇼장이라면, 이번 전시는 이 두 관계가 뒤바뀐 형식 즉 관객의 위치였던 주변부로 물러난 패션과 현대미술작품을 관객이 메인 통로를 이동하면서 감상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즉 관객 스스로가 모델이 되어 전시장 내부를 캣 워킹 하는 셈인데, 뒤바뀐 의복과 신체의 관계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내부는 이러한 쇼 장의 형태를 응용한 길게 뻗은 통로와 각기 작품들을 위한 건축화 된 방으로 형성되며, 전시장 벽면은 흑색과 백색을 주조색으로 활용하여 각 작품의 볼륨감과 조형적 특징을 강조하고 있다. ● 개인적으로 문화·예술 각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어 혼합적인 형태와 양식을 도출해내는 실험적인 시도들이야말로 앞으로의 현대미술의 다양성을 보증하는 지표라고 여기며, 더불어 각 장르의 형식적, 내용적 특성들이 통합적으로 구축되어진 전시형식이야말로 앞으로 미술계가 다양한 시도를 통해 풀어야 할 숙제라고 믿는다.
Corset_1880s
마우리치오 갈란테_Dress / Spring&Summer_1992
가와쿠보 레이_Dress / Spring&Summer_1997
이시구로 노조미_Jacket, Top, Pants and "GOMI-stole" / Spring&Summer_2004
끝으로 이번 전시가 가능했던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패션 연구기관인 교토 복식문화연구재단(KCI)의 수준 높은 양질의 컬렉션과 이를 뒷받침한 인적·지적 자원, 그리고 일본국제교류기금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의상이 단순히 복식사라는 틀을 넘어 신체에 부가된 조형성과 예술성, 이 양자의 관계가 다양한 영역과 관계하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전문 기관의 존재와 그 인프라의 저력이 이 양질의 전시를 가능케 한 진정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수준 높은 컬렉션과 일본과 한국, 그리고 다른 국적의 실험적인 작가들에 의해 제작된 현대미술 작품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신인류의 ‘신체’에 대한 다양한 진단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전시가 문화영역간의 다양한 접점을 찾아내고 더 나아가 한일 양국의 소통의 한 지점으로써 앞으로 지속될 양국 간의 교류의 질을 한층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박파랑
■ 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展 전시구성
I. 프롤로그:만들어진 신체 ● 외피인 피복에 예속된 신체, 그로 인해 형태가 만들어지는 신체와 그에 이용된 코르셋, 크리놀린, 버슬 등이 도입부에 전시된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남성의 사회적 역할을 나타내는 도구로 표상되었고, 따라서 여성들이 착용하는 의상의 기능은 신체와 관련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와 관련된 즉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이 시대의 미의식을 표현하는 패션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위해 여성은 코르셋 등의 속옷으로 스스로의 신체를 조형해왔다. 「프롤로그」에서 미술가 야나 스터박(Jana Sterbak)이 크리놀린으로 제작한 작품 「리모트 콘트롤1」(1989)을 전시한 이유는 이 작품들이 패션사에 내포된 성(性)차에 의한 역할분담을 언급하면서, 그 틀 자체는 현대에 와서도 변화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역설적인 의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II. 본편:신체와 패션의 새로운 위상 ● 1906년 폴 포와레(Paul Poiret)가「코르셋 포기」를 선언한 이후 전개되었던 20세기 패션의 다채로운 양상이 소개된다. 코르셋으로 교정되지 않은 자연 상태의 신체, 즉 ‘과장되지 않은 신체’를 구가하여 신체 재발견의 시대로 정의되는 20세기의 패션 디자인은 전에 없는 조형적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이 시대는 새로운 소재의 도입, 재단 및 봉제 기술의 진보, 타 분야로부터의 영감 등을 통해 패션사에 있어 가장 화려하고 다채로운 조형 실험에 도전했던 시대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체보다 피복(패션)이 우월하다는 상황을 낳게 된다. 마치 인간의 육체가 조형 미술품과 같이 취급되어 아름다운 패션을 착용하기 위해, 이에 상응하는 이상적인 신체를 획득하고자 하는 또 다른 억압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갖는 강렬한 소망, 즉 신체 자체의 변이(mutation)에 관한 갈망은 누가 지지한 것인가? 여성인가, 남성인가 아니면 양자의 암묵에 의한 공범 관계인가? ● 이에 따라 패션의 과격해진 신체표현은 피부 자체도 표피로서 패션이 될 수 있다는 인식 아래에, 공들인 혹은 의도적으로 자연스럽게 한 화장, 문신, 피어스, 스킨케어 까지도 패션의 소재로서 인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러한 동향은 ‘피부’와 관련하여 파생되는 문제, 즉 인종적인 편견과 성(性)차, 타인과의 경계와 같이 「차이를 의식하는 것은 피부와 관련 있다」는 다소 심오한 사회·정치적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1980년대 이후 일부 디자이너들이 신체 및 피부의 차이, 성차 등에 대한 사회적·미학적 문제를 검증하게 되는데, 그 결과 그간 디자이너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제도로서의 패션 시스템’에 대한 회의를 낳게 된다. 소수의 디자이너들의 이러한 의식 형성에는 1990년대 현대 미술 동향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즉 패션 시스템 자체를 상대화하고, 비평적인 시선을 쏟는 일련의 활동은 현대 미술에 있어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실천과 중복되는 면이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패션과 미술이 처음으로 대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장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 패션에 있어 포스트모던의 시초는 콤므 데 갸르송의 「거지풍(Beggar Look, 파리컬렉션 1983년 봄-여름시즌)」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겨지며, 1980년대 말에 얼룩진 봉제인형이나 낡은 천 조각을 이어 붙인 오브제를 발표하여 룸펜 아티스트로서 주목받은 마이크 켈리(Mike Kelley)가 상당히 선행적으로 활동했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III. 에필로그:이미지로서의 패션 ● 물리적인 사물로서의 의복이 소개되는 대신, 옥외에서 자연조건과 곰팡이 침식에 의해 붕괴되어 가는 신체와 패션을 표현한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설치작업 기록(1999년, 교토)과, 크로마키 블루 기법을 구사하여 피복의 색이나 패턴이 소재 고유의 것이 아닌 자의적인 것임을 알게 해 준 빅터&롤프의 충격적인 패션 쇼 영상(파리컬렉션 2002년 가을-겨울)으로 전시가 매듭지어진다. ● 마르지엘라의 작품은 패션이 물질성을 넘어선 담론의 영역이라는 점을, 빅터&롤프는 의복으로부터 물질성을 박탈하여 다양한 이미지의 관련항이 존재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고 있는데, 두 작품 모두 패션이 인간의 이미지 생성 및 재현의 위상에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 및 표상의 위상이야말로, 패션과 미술이 대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Visions of the Body 2005_신체의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