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지 2024년 가을호 사상의 꽃들 수록 작품
야생의 마음
이 종 민
담장 앞에 늑대가찾아왔다
우유를 데워 먹이고 밤에는 이불을 깔아주었다 무럭무럭 자라난 늑대 나를 보면 다가와 얼굴을 핥았다 웃자란 송곳니에 작은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
낯선 사람을 보면 이빨을 드러내고 경계했지만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여기 있잖아 은빛 털이 아주 보드랍지 않니
사람들은 집 안에 무슨 늑대냐며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담장 앞에서 집을 지키는 늠름한 나의 늑대
고깃덩이를 들고 있으면 꼬리를 흔드는 나의 늑대
가끔 나를 물어서 작지 않은 상처가 났다 상처가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기르는늑대에게 물렸다고 대답한다
정말 큰 개를 기르시나 봐요
상처를 볼 수 있으면서도 늑대는 믿지 않는 사람들
손하면 발톱을 주는
밤이면 대신 울어주는 나의 늑대
어느 날늑대가 떠났다
담장 앞에 남은 이불과 살을 다 발라낸뼛조각
사람들이 물었다 저렇게 큰 늑대가 왜 집 안에 있느냐고 담장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놀라워하며 말했다
상처가 가려웠다 내게는 보이지 않지만
장성한 나의 늑대
나를 지켜주는 나의 늑대
지구의 대변혁기에는 최상위 포식자인 동물들이 모조리 다 멸종을 해나갔다고 한다. 육식성 공룡이든, 초식성 공룡이든, 하늘을 날아다니던 익룡이든지 간에, 모든 공룡들은 백악기 때 모조리 멸종되었고, 그 화석들의 흔적만을 남기고 있는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오늘날의 지구의 위기는 최상위 포식자인 우리 인간들 때문에 비롯된 것이고, 이 ‘야수 중의 야수’인 인간들의 미래는 대단히 불길하고 그 끔찍한 재앙이 약속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최상위 포식자인 우리 인간들은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을 아주 정교하고 세련되게 발전시켰으며, 그것은학교의 교육, 즉,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격본능은 아주 좁게 말하면,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에서 자기 자신의 영역을 극대화시키는것을 말하고, 방어본능은 외부의 적이나 상호 경쟁적인 동료들로부터 자기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이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이 적절하게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는 ‘생존경쟁’이라는 삶의 장으로부터 탈락을 하게 된다.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이 투쟁을 위해 자기 자신의 마음 속에 ‘늑대’ 한 마리씩은 다 기르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신용대부업은 고리대금업이라는 늑대가 지키고 있고, 모든 증권거래소는 조지 소로스나 워런 버핏 같은 늑대가 지키고 있다. 트위터나페이스북같은 플랫폼 기업은 약육강식에 충실한 늑대가 지키고 있고, 대학제도와 실버산업은 휴머니즘의 탈을 쓴 늑대들이 지키고 있다. 이종민 시인의 「야생의 마음」은 늑대의 마음이며, 내 안의 늑대를 키워나감으로써 공격본능과 방어본능을 배양해 나가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담장 앞에 늑대가찾아왔다”는 것은 어느날 늑대를 키우기로 작정을 했다는 것을 뜻하고, “우유를 데워 먹이고 밤에는 이불을 깔아주었다 무럭무럭 자라난 늑대 나를 보면 다가와 얼굴을 핥았다 웃자란 송곳니에 작은 생채기가 나기도 했다”라는 것은 나를 늑대화시켜, 그 늑대와 함께 살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약육강식의 전쟁터에서늑대가 되지 않으면 고리대금업자나 워런버핏이라는 늑대를, 또는 저커버그나 그 외의 다른 늑대들로부터 나를 지키고 방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낯선 사람을 보면 이빨을 드러내고 경계를 했지만, 그러나그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위장의 사활성이라는 말이 있다. 많이배운 자일수록 자기 자신의 이빨과 발톱을 잘 숨기고, 지능이 낮거나 사회적 천민일수록 자기 자신을 잘숨기지 못한다. 시인은 웃으며, 그 웃음으로 자비롭고 친절한 가면을 쓰고, 그 사납고 무서운 야수성을 감춘다. 그 결과, “여기 있잖아 은빛 털이 아주 보드랍지 않니”라고 사실 그대로의 진담을 말해도 “사람들은 집 안에 무슨 늑대냐며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말라고 했다”라는 시구에서처럼 아주 제대로 감쪽같이 속아넘어간 것이다. 타인들을 잘 속이는 것은즐겁고 기쁜 일이고, 타인들과 이 세계와 천하를 아주 잘속이는 것은 더없이 즐겁고 기쁜 영웅의 일이다. “담장 앞에서 집을 지키는 늠름한 나의 늑대”도나의 분신이고, “고깃덩이를 들고 있으면 꼬리를 흔드는 나의 늑대”도 나의 분신이다. 나는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 인간’이 된 것이고, 나는심리학의 대가이자 분장술의 대가가 된 것이다. 늑대의 생리와활동영역은 나의 심리학적 지식이 담당을 하고, 내가 ‘늑대 인간’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모르게 한 것은 나의 분장술이 담당을 한 것이다. “가끔 나를 물어서 작지 않은 상처가 났다 상처가 어디서 났냐고 물으면 기르는 늑대에게 물렸다고 대답한다.” 내가
‘늑대 인간’으로서 나 자신을 물어뜯었다는것은 자기 자책의일종이었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늑대 인간의 야수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정말 큰 개를 기르시나 봐요”라고아주 제대로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상처를 볼 수 있으면서도 늑대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그것을 말해주고, 또한 “손 하면 발톱을 주는/ 밤이면 대신 울어주는 나의 늑대”가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러나 어느날 늑대가떠나갔고, 담장 앞에는 늑대의 이불과 살을 다 발라낸 뼛조각만이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물었다 저렇게 큰 늑대가 왜 집 안에 있느냐고 담장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놀라워하며 말했다.” 늑대가 떠나가자 비로소 그 큰 개가 늑대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들―, 그 이웃사람들은 앎의 뿌리가 얕은 사회적 천민들이며, 그들이 그 큰 개를 늑대라고 알아차렸을때에는 이미 그 늑대는 자취를 감춘 뒤였던 것이다. 늑대의 무리들이 사슴이나 들소의 고기를 다 먹고 떠나면 독수리와까마귀들이 몰려들 듯이, 또는 이른바 큰손들이 한바탕 돈잔치를 하고 떠나가 버리면 그 텅 빈 막장을 수많은 개미들이 바글바글 모여 울부짖고 있듯이―.
나의 앎의 늑대는 그 정체를 숨겨야 하고, 그정체가 드러나더라도 ‘큰 개’이어야 하고, 그리고 그가 한바탕 큰 잔치를 벌이고 떠나면 그 큰 개는 최상위 포식자인 늑대라는 사실이 밝혀져야만 한다.
장성한 나의 늑대, 나를지켜주는 나의 늑대―.
이종민 시인의 「야생의 마음」은 그의 야수성이 분출된 시이며, 이제는 세계평화와 인간평등의 시대가 지나고, 우리 인간들의멸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가장 훌륭하고 뛰어난 연기자가 ‘바보연기’를 가장 잘하고,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늑대 인간이 가장 자비롭고 친절한 현자의 역할을 가장 잘한다. 「야생의 마음」은 늑대 인간의 마음이며, 늑대 인간의 마음은 어진 현자의 마음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만성적인 소화불량증과우울증 환자인 어진 현자 ―.
어진 현자와 인간 늑대가 함께 살 수 있는 곳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