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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페드로 데 아타카마, 칠레
509일 동안 100,008km를 달리며 45개 국가를 여행한 사내가 있다. 2012년 4월 동해항에서 출발해 이듬해 8월에 귀국한 주인공은 ‘그래, 지금 떠나자!’ 라고 마음먹고, 2종 소형 면허를 취득한 뒤 곧바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준비 과정부터 돌아오는 날까지의 모든 것을 기록한 후, '모터사이클 세계일주'를 출간한 정두용 씨를 BMW 모토라드 매거진이 만나보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Q. 안녕하세요. 먼저,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A.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의 첫 번째는 언제나 세계일주였습니다. 그냥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아 모터사이클을 타고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위해 여행 출발 두 달 전 2종 소형면허를 땄어요. 처음 모터사이클을 운전해 본 초보 라이더 주제에 겁도 없이 시베리아로 무작정 출발했어요.
인생의 첫 모터사이클이었던 BMW의 G 650 X 컨트리와 한 달 동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시베리아를 횡단했고, 내친 김에 4개월 동안 유럽 일주, 3개월 간 아프리카 종단, 9개월 동안 남미에서 알래스카까지 아메리카 대륙을 종단했습니다. 그렇게 509일 만에 귀국해 모터사이클 세계일주를 완수했습니다.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제주에서 살기였고, 여행에서 돌아와 3주 만에 제주로 이주를 실행했어요. 맑은 공기, 푸른 하늘이 아름다운 제주 한동리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여행자들을 위한 숙소를 준비 중입니다.
하르툼 가는길, 수단
Q. 면허 취득 후, 처음 타보는 모터사이클로 세계여행을 떠나셨는데요, 이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은 없었는지요?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A. 걱정도 많았고, 두려움이 한 가득이었죠. 출발할 때,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 출발할 때는 어떻게든 시베리아 횡단만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면허 취득한지 한달 갓 넘은 초보 라이더가 달리기엔 시베리아는 만만한 곳이 아니니까요. 가족들은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는 것에 대해 많이 걱정했지만,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주셨어요. 다만 출발할 때는 17개월이라는 꽤 긴 여행이 될 줄은 몰랐어요. 어디까지든 달릴 수 있는 곳까지 달려보자는 생각이었고, 세상 끝에서 끝까지 지구 두 바퀴 반 거리를 달려보니 어느새 17개월의 긴 여행이 되었네요.
마사비트, 케냐
Q. 모터사이클을 타고 떠나는 세계 여행에 관한 서적은 기존에도 몇 권 출간되어 있는데요, '모터사이클 세계일주'를 집필하시면서 보다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했던 부분이 있을까요?
A. 여행 출발 전 정보를 찾기 위해 기존에 출간된 모터사이클 세계 여행 서적들을 모두 찾아보았지만, 대부분의 책들이 여행자 개인의 감상을 다룬 수필에 가까웠어요. 제가 여행을 준비하면서 정말 궁금하고 필요한 내용. 외국에서 주유는 어떻게 하는지, 국경을 통과할 때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각국의 도로상황은 어떠한지, 숙소는 어떻게 찾고, 여행경비는 얼마만큼 준비해야 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충실히 담은 가이드북 역할을 할 수 있는 책은 없었어요.
그래서 모터사이클 세계여행을 준비하는 라이더들에게 실제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모터사이클 세계여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실제 과정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싶었죠. 모터사이클 오버랜더에게 필요한 모든 정보를 담고자 했어요. 여행의 준비부터 마침까지, '모터사이클 세계일주'는 제 여행의 ‘항해일지’에요. 여행경비 내역, 모든 국경통과 과정, 모든 숙박지점의 정보 등, 제 여행의 준비부터 마침까지 전 과정을 빠짐없이 포함했어요. 책을 읽는 모든 분들은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얻으실 수 있을거에요.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 터키
Q. 출발 전 국내 투어로 연습을 하셨다는데, 어디를 다녀오셨나요? 이때 경험했던 것들이 세계여행 준비에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요?
A. 서울 근교로 짧은 주행연습을 주로 했고, 장거리 연습여행은 딱 한 번 다녀왔어요. 진안에서 개최된 2012년 BMW 모토라드 시즌 오프닝 투어였어요. 서울에서 진안까지 왕복 500km의 거리였어요. 비가 오는 중에 그렇게 긴 거리를 달려본 것이 처음이라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우천시 라이딩에 대한 대책을 더 확실하게 준비할 수 있었고, 장거리 라이딩에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어요.
새먼 글래시어, 캐나다
Q. BMW의 G 650 X 컨트리를 선택하신 이유는?
A. BMW 모터사이클의 완성도를 믿었어요. BMW의 모터사이클 중에서는 예산 때문에 더 고가의 모터사이클을 선택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당시 예산이 충분했다고 하더라도 다른 모델을 선택할 수는 없었을 거에요. BMW 모토라드의 다른 모델들은 초보자였던 당시의 저에게는 너무나 거대하고 무거웠어요. 어딘지 날카롭게 생긴 디자인도 제 여행엔 적합하지 않아 보였구요.
그에 반해 G 650 X 컨트리는 제 몸에 꼭 맞게 느껴졌어요. 상대적으로 작고 가벼운 모터사이클이라 이 정도면 내가 다룰 수 있겠구나 싶었구요. 부담스럽지 않게 귀여워 보이는 디자인과 노란색도 마음에 들었고, G 650 X 컨트리 '크로스 컨트리'라고 읽을 수 있으니, 대륙을 종횡으로 누비려고 하는 내 여행의 동반자로 적합하게 생각되었어요.
우수아이아, 아르헨티나
Q. 45개국의 여러 국가를 여행하면서, 해외의 BMW 딜러에서 수리가 용이한 편이었나요? 이와 관련해 크게 난감했던 적은 없었나요?
A. 러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 북미까지 전세계의 BMW 딜러샵에서 모터사이클 정비와 수리, 점검을 받았어요. 모든 딜러샵에서 동일한 매뉴얼에 따른 모터사이클의 정비를 받을 수 있었어요. 글로벌 브랜드인 BMW 모토라드였기에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덕분에 509일 동안 10만km를 달리는 동안 큰 문제 없이 전세계를 누빌 수 있었어요.
다만 제 모터사이클이 많이 팔린 모델이 아니어서 부품을 구하기가 힘들었던 경우는 몇 번 있었어요. 칠레에선 제 모터사이클이 수입되지 않은 모델이었기 때문에, 독일에서부터 배송되는 교체부품을 3주간 기다리기도 하였어요. 원활한 부품수급을 생각한다면 전세계에 판매된 베스트셀러 모델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 칠레
Q. 여행 중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모터사이클을 타고 혼자 달린 것은 어느 곳에서였는지요? 홀로 장거리, 장시간을 달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A. 칠레 산티아고에서 아타카마로 가는 길에 밤을 새워 1,800km를 달렸어요. 아침에 출발해서 다음날 점심 무렵까지 달렸는데, 졸려서 굉장히 위험했어요. 중간에 깜빡 졸음 운전하다가 사고도 날 뻔 했구요. 그 후로 다시는 밤샘 라이딩은 하지 않았어요.
아무도 없는 시베리아 벌판을 달릴 때는 세상에 혼자뿐인 느낌이었어요. 지평선의 끝에서 끝까지 곧게 뻗어있는 도로 수백 km를 달리는데 몇 시간을 달려도 마주 오는 차량 한대 만날 수가 없었어요. 유라시아 대륙이 얼마나 거대한지,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배울 수 있었어요.
파타고니아 루타 40, 아르헨티나
Q. 여행 중 고속도로와 자동차전용도로 등을 이용하실 기회가 많았는데, 달리면서 도로의 상태나 차량들의 주행 분위기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어땠나요?
A. 제가 여행한 나라 중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진입을 제한하는 곳은 한 곳도 없었어요. 자동차 전용도로라며 모터사이클의 출입을 제한하는 도로도 본적이 없었구요. 해외에선 모터사이클이 ‘자동차’와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운행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며, 자동차 운전자들의 모터사이클에 대한 배려가 생활화 되어 있어서 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을 운행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모터사이클에 대한 천대와 차별이 당연시되는 우리나라에 비해 동등하게 대접받는 외국의 모터사이클문화가 참 부러웠어요. 러시아와 아프리카, 그리고 볼리비아 등 중남미의 일부 나라들은 도로관리가 허술한지 노면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비포장도로도 많고 공사중인 구간들도 많아 달리기 힘들었던 경우가 많았어요.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380km의 비포장도로를 달렸는데, 1박2일 동안 380km를 힘들게 달리고 드디어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만나니 아스팔트에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었어요.
모얄레, 케냐
Q.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A. 과테말라에서 야간 주행을 하다가 3미터쯤 아래로 추락한 적이 있어요. 인부들이 보수 중인 다리 공사현장을 막아 놓지 않았어요. 야간이라 시야가 어두워 미처 다리가 끊어진 것을 확인하지 못하고 달리던 속도 그대로 점프해서 개천 아래로 추락했어요. 떨어지면서 이대로 죽는구나 싶었어요.
헬멧과 라이딩기어가 없었으면 정말 여행 끝났을 거에요. 모터사이클 떨어져 핸들이 휘어지고 짐이 모두 날아가고 했음에도 멀쩡히 시동이 걸리고 운행할 수 있었어요. BMW 모터사이클은 정말 튼튼하구나 감탄했어요.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선 칼을 들고 덤비는 강도 두 명과 싸우기도 했어요. 덕분에 핸드폰을 잃어버리긴 했지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시올로, 케냐
Q. 출발 전 여행 계획, 준비과정에서 특별히 도움받은 곳이 있다면?
A. 네이버 카페 ‘이륜차타고 세계여행(이하 이타세, http://cafe.naver.com/motorcycletraveller)’이에요. 모터사이클 세계여행을 떠나는 라이더들이 모인 공간이라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었고, 다른 회원들의 여행기를 읽으며 각오를 다질 수 있었어요. 이타세에서 얻은 정보들이 아니었다면 여행의 출발도 불가능했을 거에요. 선배 라이더들의 도움에 보답하고자 저도 여행중의 정보들을 정리해서 여행 중 실시간으로 여행기를 올렸고, 그때 포스팅 한 글들을 기반으로 다듬어 책을 출간하게 되었어요.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미국
Q. 여행중 아쉽거나 후회스러웠던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A. 마음껏 달렸기에 후회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은 힘들었던 경험들입니다. 케냐 모얄레에서 이시올로까지 380km 오프로드를 달렸을 때, 끝없이 이어지는 진흙탕 길에서 미끄러지고 엎어지고, 땀에 절어 온몸에 힘이 빠져 길 옆에 주저앉아 헉헉대던 기억이 우선 떠오릅니다.
여행 초반 러시아에서의 생각도 납니다. 바이칼 호수를 지나 우랄산맥으로 달리던 날들 중 어느 날 이었어요. 출발할 땐 날씨가 맑아 상쾌한 기분으로 출발 했는데, 점심 무렵을 지나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비 오는 것쯤이야 늘 있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달렸어요. 비가 오면서 점점 추워지더니 비가 눈으로 바뀌어갔고, 눈인지 비인지 모를 것들을 한참 맞으면서 달렸어요. 이런 상황이 한 참 지속되었고 머릿속에는 다 때려 치고 돌아가 버릴까? 아니 돌아갈 수나 있을까? 트럭들이 쌩쌩 스쳐 지나가는 시베리아 허허벌판 도로 갓길에서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참을 생각했어요.
마푸토 가는길, 모잠비크
Q. 여행 전과 후, ‘모터사이클’에 관해 달라진 생각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여행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막연하게 ‘모터사이클은 위험하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신체가 그대로 노출된 모터사이클 라이딩이 굉장히 불안해 보였구요. 그래서 여행을 준비하며 안전을 위해 BMW라이딩 기어를 구매했는데,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해요. 라이딩기어, 헬멧 등은 제대로 준비하고 갖춰 입어야만 해요. 사고는 예상할 수 없고, 최후의 순간에 라이더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은 보호장비뿐입니다. 보호장비들이 없었다면, 저는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없었을거에요.
나이로비 가는길, 케냐
Q. 언젠가 다시 한번 모터사이클 여행 혹은 세계일주를 떠날 마음이 있으신가요?
A. 네. 언제나 다음 여행을 생각합니다. 다음엔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어요. 결혼하자마자 제주로 내려오며 신혼여행도 다녀오지 않았는데, 신혼여행으로 모터사이클을 함께 타고 세계일주를 다시 다녀온다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기 위해 아내는 2종 소형면허도 취득하였어요. 다만 아내가 편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연습을 해야하고, 또 여행경비 등 준비할 것이 많아 시간이 좀 더 필요할 듯 합니다.
알래스카 달튼 하이웨이, 미국
Q. 509일간의 여행을 하시면서 가장 소중했던 경험을 딱 하나만 꼽아본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세계의 절경들을 보고 다녔던 것도 좋았지만,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아내를 만난 것입니다. 여행 중 남미 볼리비아 국경에서 처음 만나 얼마 전 결혼하였고, 지금 제주에서의 삶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 여행의 기억과 두근거림이 희미해 지더라도, 볼리비아 국경 황량한 벌판에서의 만남은 또렷할 거에요.
바오밥나무, 탄자니아
Q. 모터사이클 세계여행을 꿈꾸고 있을 다른 분들에게 경험자로서 꼭 전해주시고 싶은 말씀 한마디 부탁 드립니다.
A. 떠나세요. 집을 나설 수만 있다면, 그 다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달리지 못할 길은 없습니다. 모터사이클은 열쇠에요. 당신을 미지의 세계로 데려다 주기도 하고, 마치 마법과 같이 길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친구로 만들어주는 열쇠입니다. 모터사이클과 함께 길을 나선다면 당신도 내 말에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망설이지 마세요. 떠나면 길은 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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